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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들에게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행 2:4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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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보면, "능하신 이가 큰 일을 행하신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믿는다면 하나님 앞에 나온 우리는 오늘 우리의 현실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여기에 믿음이 있는 것을 믿어야 됩니다.  여기에 소망이 있는 것을 믿어야 됩니다.  여기에 사랑이 있는 것을 믿어야 됩니다.  여기에 자유가 있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여기에 주님의 능력이 있는 것을 믿어야 됩니다.  여기에 주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함께 하심을 믿어야 됩니다.  여기에 만사를 변화시키는 기도가 있는 것을 믿어야 됩니다.

기도는 능력의 세미한 신경입니다.  기도하면 모든 능력의 세미한 신경들이 살아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기도 없이는 능력도 없습니다.  기도 없이는 응답도 없습니다.  기도 없이는 고침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능력이 임합니다.  기도하면 응답의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모든 것이 고쳐집니다.  더 중요한 것은 기도하면 심령에 말할 수 없는 평안이 찾아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리러 나왔습니다.  성경은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모든 사람은 진실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진실한 예배는 바로 기도의 심정이 일어나는 예배입니다.  예배 드리다가 갑자기 기도하고 싶어져야 그 예배가 바로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예배를 드리다가 여러분의 심령에 기도하고 싶은 뜨거운 마음이 불같이 강하게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주여, 나에게도 기도하는 마음을 주옵소서.
기도하는 뜨거운 마음을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역사를 일으키는 기도를 탐내고 드리십시오.  이 땅을 움직이는 기도를 탐내고 드리십시오.  이 도성을 변화시키는 기도를 탐내고 드리십시오.  하늘 문을 여는 기도를 탐내고 드리십시오.

저는 오늘도 믿음의 기도는 홍해를 가르는 기적을 일으킬 것을 믿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오늘도 바위에서 생수가 터질 것을 믿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오늘도 하늘로부터 양식을 내리게 할 것을 믿습니다.  오늘도 믿음의 기도는 하늘에 떠있는 태양도 멈추게 할 것을 믿습니다.  오늘도 믿음의 기도는 이 땅에 하늘의 불을 내리게 하는 것을 믿습니다.
"여호와여, 지금 이곳에 성령의 불로 응답하시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에서 좋은 지식을 배우려고 하지 말고 믿음의 기도를 붙드십시오.  사람을 붙들고 문제를 해결 받으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해서 기도로 문제를 해결 받으십시오.  사람에게서 위로를 받으려고 하지 말고 기도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위로 받으십시오.

아십니까?  뭐니 뭐니해도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심령이 제일 값진 것입니다.  무릎 꿇고 기도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고귀한 기쁨은 기도의 신비한 세계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주 앞에서 예배 드리다가, 찬송하고 말씀을 듣는 가운데서 여러분의 심령에 기도하고 싶어하는 뜨거운 마음이 불같이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여정을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결코 잊지 말아야할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나의 유일한 자산은 오직 기도뿐이다.  믿음의 여정을 걸어가다 보면 어느 날인가 내 유일한 자산은 오직 기도 밖에는 없다는 사실이 마음속에서 강하게 부딪혀 오는 때가 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기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그때부터 두려움은 사라지고 내 속에 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서 담대해집니다.  그때부터 무슨 일을 당하든지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의지해서 인내하며 승리의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그때부터 내 안에 남다른 신령한 힘이 강하게 역사 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언제요?  기도할 때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내 속에서, 우리들 속에서, 내 가정과 일터와 이 민족 속에서 큰 일을 행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이제부터라도 기도하겠다는 자기 결단을 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로 하늘 문을 여십시오.  기도로 하늘 보좌를 움직이십시오.  기도로 하나님의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창조적인 역사를 경험하십시오.
이 시간 우리를 향해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기도 외에는 어떤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삶이 곤고하십니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시간마다 때마다 새 힘을 공급하여 주실 것입니다.

나와 내 가정과 직장과 사업이 걱정되고 염려가 되십니까?
기도하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자의 중심을 보시고 지켜주실 것입니다.  더 크게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채워주실 것입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염려하십니까?
주님 앞에 무릎꿇고 간구해 보세요.
마음을 정결하게 뜻을 다하여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염려하십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한번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에게 기도하는 시간보다 더 좋은 시간이 있을까요?
우리에게 기도하는 시간보다 더 귀한 시간이 있을까요?
우리에게 기도하는 시간보다 더 즐거운 시간이 있을까요?
기도하는 시간보다 사람이 착해지는 시간이 있을까요?
기도하는 시간보다 우리에게 더 보람된 시간이 있을까요?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이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명령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사람은 감동에 의해서 움직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자기 감동을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함으로 내 심령 깊은 곳에 감동을 공급해 주어야 합니다.  기도함으로 성령의 권능을 받아서 자기 감동을 주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기도하는 심령 위에 능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큰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사실 초대교회 주님의 제자들을 보면 오늘날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성공의 요소라고 하는 것들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의 요소는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솔직히 세상적인 성공의 잣대로 제자들을 한번 평가해 보십시오.  그들에게 돈이 많았습니까?  그들은 갈릴리의 가난한 어부 출신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애초에 넉넉한 재산도 없었지만 그나마 가지고 있던 것도 다 버려 두고 주님을 따랐던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그들에게는 자신의 몸 밖에는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고 지식이 남들보다 뛰어났습니까, 사회적으로 높은 명예를 가지고 있었습니까?  백그라운드가 든든했습니까?

주님의 제자들과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는 돈을 가진 사람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건물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정치적인 영향력이나 사회적인 지위가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조직력이나 높은 수준의 학문이니 하는 것들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가 이야기하는 보통 인간의 성공 요소나 성공의 조건하고는 전혀 맞지 않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 120여명이 좁고 좁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옹기종기 모여 엎드려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역사를 뒤엎었습니다.  사회의 분위기를 변화시켰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한 마디로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영에 의하여 점화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늘에 권능에 붙잡혀 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저들이 다 새 술에 취하였다"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아무쪼록 성령의 새 술에 취하여 비틀비틀해 가시기 바랍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종교를 붙들지 않고 성령을 붙들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현대 교회의 교인들은 종교를 붙든 사람은 많아도 성령을 붙든 사람은 적습니다.  큰 건물에 소속된 것으로 자신의 신앙을 자위하는 허황된 신앙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주일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만족하는 착각적인 신앙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종교꾼이 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의 사람이 되십시오.

사실,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더 잘 알아봅니다.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사단이 먼저 우리를 알아봅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십시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의 거리를 걸어가는데 귀신들린 여자 아이가 이들을 졸졸 따라오면서 아주 큰 소리로 외칩니다.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다."

바울이 마음이 너무 아파서 선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그랬더니 귀신이 즉시로 그 여자 아이에게서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19장에 보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가고 악귀가 나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자리에서 귀신 축출가로 행세하면서 떠돌아다니는 몇몇 유대인들이 이러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귀신들린 사람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고 하면서 흉내를 냅니다.  그들 가운데 스게와라는 유대인 제사장의 일곱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귀신이 그들에게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고 하면서 달려들었습니다.  귀신들린 사람들이 그들을 때리고 옷을 찢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발가벗긴 채 그 집에서 도망쳤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거짓된 종교 놀이를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위선과 가식으로 사람들 앞에서 혼자 잘 믿는 척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귀신이 먼저 알아봅니다.  우리의 영적 상태를 귀신이 더 잘 압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저는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사렛 예수 이름의 권세와 성령의 능력에 붙잡히십시오.  성경에는 하나님의 성령에 붙잡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성령에 붙잡혀 이 땅을 변화시키는 능력의 사람이 되십시오.  믿을 때에 저항할 수 하나님의 절대 권능 앞에 한번 포로가 되는 사건을 경험해 보십시오.

오늘 본문은 주님의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난 이후에 일어난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47절에 보면, 성령 충만함을 받았던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을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본문 47절을 다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우리가 여기에서 깨달아야 하는 교훈은 바른 믿음, 건강한 믿음에는 언제나 건강한 열매로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믿음의 열매를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한다면 그 믿음의 내용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잊지 마십시오.  우리의 믿음이 생활 속에서 열매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된 믿음이요, 종교놀이를 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들은 오늘의 시대를 가리켜서 혼돈과 무질서의 시대라고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영혼들이 거리를 방황하고 있습니다.  이 혼돈과 무질서의 시대 속에서도 세상 사람들은 우리 믿음의 사람들의 행동을 유심히 보고 있습니다.  자기들과는 뭔가 다를 것만 같은, 그리고 달라야 한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해답이 분명해 지면 그들도 우리와 함께 복음의 여정을 걸어갈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에 다른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믿지 않는 저들보다 더 못한 우리의 행실 때문에 실망하고 떠나가는 것입니다.  저들도 참 안식과 사랑을 얻기 위하여 몸부림치고 기다렸지만 우리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전해지지 않으면 저들은 우리를 향해 돌을 던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믿는 이 믿음이 바른 믿음이고, 나와 내 가정과 이 민족을 살리는 것이 확실하다면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에게 무엇을 보여줄 것입니까?

먼저는, 성령 충만함을 받아 변화된 우리의 삶과 인격을 그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필립 브룩스(Philip Brooks)라는 목사님은 설교에 관하여 이렇게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설교자의 인격을 통해 전달하는 것이 설교다"  아무리 설교자가 설득력이 있고 언변이 좋다고 할지라도 그에게서 예수의 냄새가 나지 않고 세상적인 냄새가 난다고 한다면, 그의 설교는 청중들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설교자에게만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일관되게 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당신들이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지 말고, 말로만 섬긴다고 하지 말고, 말로만 봉사를 외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 달라.  말로만 신앙을 외치지 말고 행동하는 신앙을 보여 달라.  당신들이 믿는 그 예수의 인격과 성품을 당신들의 삶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보여달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아무리 찬송을 잘 부르고, 성경구절을 많이 암송한다고 해서 감동을 받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독교의 교리에 관하여 많이 알고 있고, 성경공부도 많이 했고, 교회에서 직분을 맡고 있다고 해서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우러러보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변화된 삶을 보고 싶어합니다.  그들과는 무엇인가 다른 순결하고 성결한 삶을 바라보고 감동을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1장 27절에서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그렇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 그것만이 세상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희랍이나 러시아 정교회의 예배에는 많은 향을 피워서 교회가 향냄새와 연기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들이 예배에 참석한 후 집에 돌아오면 내 옷과 몸에서 향냄새가 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냄새가 나야만 합니다.  그러할 때에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마음의 문을 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솔직히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정직한 사람이라고 말합니까?
내가 교회 직분자라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세상 사람들은 나를 가리켜 신뢰하고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말합니까?

요즘 세상 사람들은 '장로'를 가리켜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장기간 노는 사람'  권사를 가리켜서는 '권투 사범' 이라고 합니다.  '집사'를 가리켜서는 '집적거려서 열받게 만드는 사람' 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목사는 뭐라고 하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을 합디다.  '목적 없이 사는 사람'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사람들로서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도 우리들에게서 이런 모습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를 믿고 변화된 내 삶과 인격을 그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적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기적 가운데 가장 위대한 기적은 사람이 변화되는 기적입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의 권능에 붙잡혀 내 삶이 변하고, 가치관이 변하고, 인생의 목적이 변화되는 놀라운 기적들이 우리들의 삶에서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우리들에게서 일어난 축복과 부흥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초대교회에는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성전에 한마음으로 모이기를 힘썼다고 했습니다.  성도와의 아름다운 교제가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예루살렘의 모든 시민들이 초대 교회의 성도들에게 호감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다음에는요?  기사와 표적이 일어나고, 날마다 모이기를 힘쓰고, 탁월한 교제가 일어났다면 그 다음에 결과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본문 마지막 부분에서 이러한 성도들이 모습으로 인한 결과를 어떻게 증거하고 있습니까?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영적 성장의 결과는 바로 내가 하나님 안에서 축복을 받고, 하나님의 교회가 부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받은 축복과 부흥의 역사를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가 복을 받지 못하고, 우리 교회가 부흥하지 못하면 결국 세상 사람들에게 염려와 조롱거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가 부흥하지 못하면 이 세상에는 어둠의 영들이 득실거리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우리 언양 영신교회와 여러분들이 이 지역에서 염려와 조롱의 대상이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우리들은 그 지체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교회는 세상 사람들이 존경하고, 흠모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이어야 합니다.  죽어져 가는 이 땅을 살리고 변화시키는 교회이어야 합니다.  이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교회이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언양 영신교회는 더 부흥해야 합니다.  이 자리가 가득 차고 넘쳐야 합니다.  이곳에서 복음의 메아리가 강하고 크게 울려 퍼져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이 교회와 함께 하늘의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 가운데는 구경꾼이 없어야 합니다.  통계적으로 교회에는 10%만이 구체적인 사역에 참여한다고 합니다.  나머지는 소비자들입니다.  이들은 교회 안에서 구체적으로 섬기고 활동하지 않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소비자 교인들로는 부흥의 역사를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부흥의 역사를 경험하기를 원한다면 소비자 교인에서 생산자 교인들로 바뀌어져야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사역의 현장에서 헌신해야 합니다.

오늘날 모두가 자기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들이 섬기는 자로 오신 예수를 닮아 섬기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 교회는 성령님과 함께 역사하는 부흥의 모습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보실 때 목자 없이 유리하는 양떼처럼 보시고 항상 민망히 여기며, 불쌍히 여기는 눈으로 바라보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웃을 바라볼 때 인간적인 눈으로 바라보아서는 안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랑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야만 한 영혼을 내 어깨 위에 세울 수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권능을 받아서 내 어깨 위에 한 영혼을 세워서 믿음의 계보를 만들어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마가 다락방에 모였던 그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삶이 거룩하게 변화되었습니다.  베드로가 그 변화된 모습으로 오순절 날 무리들을 향하여 설교를 하자 3천명의 사람이 회개를 하여 세례를 받고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사도들은 예루살렘교회를 세워 성도들을 말씀으로 가르치며 양육하며, 서로 사랑을 나누는 신앙공동체를 이루어 나갈 때, 47절에 보면 "…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본문 43절에 보면 초대교회를 세상 사람들은 두려워했다고 했습니다.  47절에는 교회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왜 초대교회를 세상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칭송했습니까?
교회의 지체인 성도들에게는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순결하고 성결한 삶의 모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변화되어야 합니다.  말로만의 변화가 아니라 내 삶이 바뀌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들에게 외치고 있습니다.
"당신이 믿는 하나님이 누구인지 나는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은 압니다.  그런데 당신에게서는 그 어떤 하나님의 모습도 찾아볼 수가 없는데 이것이 어찌된 일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내가 사랑하는 예수를 세상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 주시겠습니까?
내가 믿는 이 신앙을 세상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 주시겠습니까?
여러분은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됨을 무엇으로 보여주고 있습니까?

누군가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죽은 양심이다' 라고 했습니다.  야고보는 '행동하지 않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다' 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저는 한마디 덧붙이고 싶습니다.  재생산이 일어나지 않는 신앙은 부끄러운 소비자 신앙이다.

지금 우리 교회는 성령님의 놀라운 은사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번 양육반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방언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어떤 분은 더 놀라운 은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와 여러분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이 복음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제 말이 맞습니까?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마땅히 교회의 부흥의 역사를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주어야 합니다.

아십니까?  지금 우리들 주변의 사람들이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 교회를 향해 던지는 물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많이 부흥되었겠네요?"
이제 우리는 그 답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언제요?
다음 주일에 말입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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