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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선한 것을 본받으라 (요삼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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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1서를 시작하면서 첫 번째 설교 제목을 기억하십니까?
웰빙의 복음이라 했습니다.
오늘 요한3서 2절은 진정한 웰빙이 어떤 것인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요한3서1:2덜
[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
이 성경 구절을 조 용기 목사님이 삼박자 구원이라고 해서
    한편에서는 비판을 합니다만
그러나 조용기 목사님이 1958년도에 대조동에서 개척교회를 시작하면서
    당시 모인 교인들 형편이 지옥인들 이보다 못하겠느냐? 싶은데
이 말씀에 눈이 버쩍 뜨이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으로서
우리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건강한 삶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그래서 아멘 하고 붙들고
      지금까지 삼박자 구원을 외치고 있습니다.
이런 은혜를 총체적 은혜라고도 합니다. 
    현대말로 표현하자면 진정한 웰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혼이 잘되는 웰빙, 범사가 잘되는 웰빙, 건강하게 잘 지내는 웰빙. 
이 은혜는 우리 인생의 모든 분야에서 잘 되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다시 한번 웰빙의 복음을 붙들기 위해
    진정한 웰빙이 무엇인지 눈이 뜨여지기를 바랍니다.

성경에는 항상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의 두 모델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왜 축복의 모델만 제시해 주지 않고 저주의 모델까지 제시해 주고 있는가?
그것은 우리에게 경고의 말씀이기도 하지만
    또 한 가지는 축복의 배색이라는 것입니다.
축복의 모델을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배색 배경을 허용하신 것입니다.
오늘 요3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인물을 통해 우리에게 주는
      신앙적 교훈이 무엇인지 깨닫는 시간되시기 바랍니다.

요한3서는 요한1서, 2서와 달리 교회 공동체에 보낸 편지와는 달리
  가이오라는 신실한 믿음의 형제에게 보낸 편지로서
당시 복음전도를 위해서 각지를 여행하면서 복음을 전파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순회전도자들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런 순회 전도자들을 잘 도와주는 가이오라는 성도에게          <2>
    칭찬과 위로와 그리고 경계의 말씀을 전하는 내용의 편지입니다.

그럼 사도 요한이 가이오에게 보낸 편지 인사에 나타난
      축복의 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 너무나 유명한 말씀인데
      이 축복의 말씀을 나는 어떻게 받아드리고 있습니까?
1. 사도 요한이 가이오에게 보낸 편지 인사에 나타난
                  축복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드립니까?(1-4절)
먼저 가이오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그 이름의 뜻은 ‘기뻐하다’란 말인데
가이오란 당시 흔한 이름으로서 성경에도 3번이나 나오는 이름으로서
      평범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이오는 자기 이름 그대로 살면서 사람들을 기쁘게 했더니,
사도 요한은 가이오의 이러한 삶의 이야기를 듣고는
너무나 마음이 흐뭇해서 붓을 들고 가이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본서를 쓰면서
    그의 애정을 가이오에게 마음껏 쏟아 부으면서 축복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저는 가이오를 향한 요한의 이 아름다운 칭찬과 축복을 보면서,
신앙의 선배들이 후배들을 바라볼 때, 목회자가 성도들을 바라볼 때사랑하는 마음이 북받치고 축복하고 싶은 마음이 불일 듯 일어나는
      그런 성도들이 계신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바로 여러분들이 바로 그런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어디에 가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여러분들을 바라보는 신앙인들이 여러분들에게
축복하고 싶은 마음이 막 일어나도록 하는 그런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비록 가이오가 평범한 교인이었지마는
    그러나 사도 요한에게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자요
        마음껏 축복해 주고 싶은 성도였던 것입니다.

요한이 가이오를 사랑했다는 사실은 요한 자신의 고백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1절에서 [ 장로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 라고 하고 있으며 2절에서도 [ 사랑하는 자여 ] 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사랑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지만,
성경학자들은 사도 요한이 순회하면서 복음을 전할 때
그가 전한 복음을 받고 그리스도를 영접하고는
    요한의 사랑 받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라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맺어진 두 사람 사이에서 요한은                <3>
본문을 통해 가이오에게 `사랑하는 자여` 라고 합니다.
아주 남다른 애정이 깊은 어투의 고백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고백 다음에는 가이오를 향한 인정과 축복이 뒤따르기 때문입니다.

2절을 계속 보실까요.
[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
우리는 사도 요한의 축복의 간구에서 가이오에게 해당되는
    3개의 동사를 보게됩니다.
[ 잘되다 ] 라는 동사 2개와  [ 강건하다 ] 라는 동사 하나가 그것입니다.
‘영혼이 잘되다` 에서 `잘되다` 라는 동사는 현재형 수동태이고,
`범사가 잘되다`와 `강건하다`라는 동사는 미래형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가이오의 영혼은 미래에 잘될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현재 잘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여기 `잘되다`는 말은 헬라어 `유오도오`(uodow)에서 온 말인데
그 뜻은 `번영하다, 업이 성공하다` 라는 의미이며,
      원뜻은 ‘좋은 길로 들어서다’ 란 말입니다.
따라서 `영혼이 잘된다`는 말은 영혼이 좋은 길을 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가이오의 영혼이 잘 되어가고 있고,
    가이오의 영혼이 좋은 길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영혼은 어떻습니까? 좋은 길로 가고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이렇게 영혼이 잘되도록 관리될 수 있을까요?
오늘 우리는 영혼이 잘되었던 가이오를 통해 이것을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 영혼이 잘되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세상에 일도 잘되어야 하겠지만 그 무엇보다도 영혼이 잘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다른 것도 부차적으로 잘 될 수 있습니다.
지금 가이오는 그렇게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세상 것이 잘 된 후에 영혼이 잘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으라고 하면 `돈 좀 벌어놓고 믿겠다`고 합니다.
    ` 세상에서 성공한 후에 믿겠다고 합니다.
    이런 분들은 절대 예수 못 믿어요. 기회가 오지를 않으니까요.
그러므로 우선순위가 바뀌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내일 교우 여러분,
나의 삶이 자꾸만 안 되고 풀려지지 않는 이유는 딱 한가지입니다.
영혼이 잘 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부 여러분 밥을 어떻게 합니까?                        <4>
쌀 하고 물하고 불만 있으면 밥을 합니다.
그러나 순서대로 해야 밥이 됩니다.
    순서가 바뀌면 밥이 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순서가 바뀌면 복된 삶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잭 하트만> 이라고 하는 사람은
「성경은 경영학 교과서입니다」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사람은 1974년 미국에서 사업을 하다가 망하고 말았습니다.
미국도 우리나라처럼 이렇게 어려울 때가 있었습니다.
잭 하트만은 빚이 얼마나 많은지
  그 빚을 갚기가 너무나 어려워 신경쇠약에 걸렸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을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할일이 없으니 성경이나 보자고 생각하고 성경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성경을 보는 가운데 자신이 재기할 수 있는 길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회사도 일으키고 건강도 되찾았습니다.
그는 그 방법을 두 가지로 말했습니다.
첫째는 성경공부로 시작한 방법이다.
사업가 세 명이, 그것도 망한 사람들 세 명이 모여 성경공부를 시작했는데
    지금은 약 천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이는 모임이 되었다고 합니다.  둘째는 드리는 생활이었습니다.
그는 사업을 하여 이익이 생기면 늘 빚 갚기가 바쁘기 때문에 드릴 것이 없어서
‘하나님 드릴 것 없으니 용서하실 줄로 믿습니다’하고 안 드렸던 것입니다.
그러니 빚도 다 못갚고 사업도 안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공부를 하면서 깨닫게 된 것이
    이것처럼 잘못된 것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땅에다가 씨앗이 없다고 안 뿌리면 열매가 맺히지 않듯이
      하나님께 바칠 것은 바쳐야 한다고 깨닫게 된 것입니다.
없는 중에도 드려야 빚에서도 해방 받고
    국가적인 불경기 속에서도 해방 받을 수 있다고 깨닫고 
    드릴 수 없는 중에 드렸더니 정말 빚에서도 해방 받고,
국가적인 불경기에서도 사업이 회복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성도는 세상 것을 믿음 안에서 누리는 자들입니다.
이게 복입니다. 가이오는 이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가이오는 남들이 어떻게 생활하든 개의치 않고
    신실하게 받은 복음대로 생활해 나간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의 영혼이 잘되어갔습니다.
거기에 사도 요한은 영혼이 잘되고 있는 가이오를 향해 덤의 축복을 합니다.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했습니다. <5>
여러분들에게도 이런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사도 요한이 가이오에 대한 칭찬과 권면이 무엇입니까?
2. 사도 요한이 가이오에 대한 칭찬과 권면이 무엇입니까?(5-8절)
먼저 가이오가 받은 칭찬에 대해 이해하려고 하면
    당시 시대적 상황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가이오가 살던 시대는 기독교 초기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가신 후에 약속하신 대로 오순절 성령을 주셔서
  복음은 세계로 전파되어갔고 곳곳에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많은 핍박과 박해가 있었으나 복음의 불길은 계속 타 올랐고,
그래서 교회는 많은 곳에 세워졌는데,
한 가지 문제는 곳곳에 세워진 교회를 맡아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교사들이 부족하였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편으로 순회 전도자 제도가 생겨
이들 전도자들이 곳곳을 순회하면서 전도도 하며 교회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나 바울, 바나바, 빌립 등도 모두 순회 전도자였고, 교사였으며
      사도 요한 역시 동일한 일을 하는 사역자였습니다.
순회 전도자들은 보수를 받지 않고 단지 머무는 곳에서 숙식을 제공받았으며    다른 지역으로 옮겨 갈 때 필요한 여비만을 조달 받았습니다.
    이러한 제도 하에 교회는 여러 면에서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었는데,
    이러한 제도가 계속되다 보니 한 가지 문제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이곳, 저곳에서 순회 교사를 가장한 거짓 교사들이 출현하여
진리를 오도하고 교인들에게 부당한 짐을 지도록 함으로써,
이제까지 순수하게 순회 전도자들을 접대하며 교회를 섬기던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고 순회 교사들을 접대하는 일을 꺼려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다가 디오드레베라는 사람을 중심으로
  순회 교사를 접대하는 일을 공식적으로 거부케 하고,
  만약에 이를 듣지 않을 때에는 출교시킴으로써             
  순회 교사들을 접대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우리는 압니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 비록 남들이 하지 않으려는 일,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으며 오히려 비방하고 조롱해도
지금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옳다면 소신을 굽히지 않고
꾸준히 그 일을 감당했던 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가이오도 바로 그렇게 살았습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더라도
가이오는 흔들리지 않고 처음부터 섬기던 일을 꾸준히 계속하였습니다.
그랬더니 5-6절에 보면                          <6>
이러한 가이오의 삶의 이야기가 이웃에게 전하여지고
    사도 요한에게까지 들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가이오의 삶을 이렇게 칭찬했습니다.
6절에 [ 저희가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거하였느니라 ]
그러니 순회 전도자들이 가이오의 섬김에 대해서
        간증하고 다녔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3절에도 같은 말이지요
[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고 하더라. ] 
이 말은 가이오가 받은 바 복음의 진리를
      생활 속에서 신실하게 실천하고 있다는 것을 밝힌 것입니다.
이미 앞에서 밝혔듯이 나그네 된 자들을 돌보고 접대하는 것이
초대교회의 사회에서 기독교인의 마땅한 의무였는데,
가이오는 순회 교사들을 접대하는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 볼 것은,
    형제들을 접대하는 일이 뭐가 그렇게 대수롭기에
    `진리 안에서 행한다`고 이야기 할 수 있느냐? 고 말할 수도 있지만, 사도 요한이 그런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전도자들의 접대를 거부하는 디오드레베의 악행과 비교해서       
[ 실생활을 통하여 나타나는 진리만이 참 진리이며           
  생활과 분리된 진리는 거짓임을 밝혀주기 위함 ] 이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가이오는 요한으로부터 그런 사랑과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가 무슨 큰일을 해서가 아니라,
그저 평시에 하던 대로 순회 전도자들을 흔들림 없이 꾸준히 섬겼더니
그런 은총을 입을 수 있었습니다.
무슨 일을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가지를 하더라도 믿음으로 섬기면
      그 일은 복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가이오는 단지 순회 전도자들을 초지일관한 마음으로 섬긴 것이
      아름다운 미덕이 되었고, 영혼이 잘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 외에 어떤 다른 일이 언급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중단 없이 계속 섬기는 것입니다.
그 길이 바로 여러분들의 영혼을 잘되게 하는 것입니다.

특히 사도 요한은 8절에서
[ 우리가 이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 ]
즉 이 말은 예수님의 말씀과 통하는 말씀입니다.              <7>
마10:40-41절에
[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
[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
앞서 복음 전하는 목회자나 선교사님들 잘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보냄 받은 선교사나 보내는 선교사나 같은 상급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가이오와는 반대로 살았던 한 사람도 소개됩니다.
3. 디오드레베와 같은 인물을 통해
          우리에게 교훈하는 경계의 말씀이 무엇입니까?(9-10절)
바로 디오드레베라는 사람입니다.
사도 요한이 이 사람을 향해서는 강한 책망을 품어내고 있습니다.
9절 10절 내용이 그것입니다.
그는 세속에 물들어 교회에서도 으뜸 되기를 좋아했습니다.
바꾸어 말씀을 드리면 교회를 자가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려는     
    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요한이 부탁했던 권고
즉 순회 전도자들을 잘 접대하라는 당부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요한을 무례하게 헐뜯었습니다.
망령되이 폄론하였다는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폄론이라는 말은 우리가 잘 쓰지 않는 말인데
      `재잘거리다,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요한에 대해 좋은 말을 하였을 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는 전도자들을 접대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전도자들을 대접하는 성도들을 교회에서 내어 쫓는
    악한 짓까지를 스스럼없이 했습니다.
따라서 요한은 그에게 어떤 칭찬이나 축복을 하기는커녕
그를 책망하면서 자기가 가면
    그의 모든 악행을 낱낱이 들추어 낼 것이라고 했습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람이 교회의 머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겸손하여 언제나 자기를 낮추면서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가이오는 그러한 말씀을 들은 사람이었으나
      디오드레베는 그러한 말씀을 듣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동일한 환경 속에서 동일한 기회가 주어졌건만
가이오는 영혼이 잘되는 길을 걸어 덤으로 축복을 받는 자가 되었으나
디오드레베는 악행을 행함으로 영혼을 망치고 책망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왜 한 교회 안에서 가이오는 축복의 모델리 되고              <8>
  디오드레베는 저주의 모델이 됩니까?
자기가 으뜸이 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가이오는 대접을 하고자 했고
디오드레베는 대접을 받고자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막10:44절
[ 너희 중에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
예수 안에 으뜸은 섬김의 으뜸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미국의 헨리 클라우드란 학자가 쓴 책, <실패보다 쉬운 성공원칙 9가지>
제목부터 발칙하지요.
성공원칙이 실패보다 쉽다니.
이 말이 사실이라면 세상에는 성공한 사람들로 넘쳐나야 하지 않을까.
저자는 성공한 사람들은 데자부(기시감)를 유발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에게는 뭔가 모르겠지만 한눈에 느껴지는 뭔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아홉 가지 가운데 한 가지만 소개하겠는데
  -공평하게 경기하지 말라-입니다. 이것 또한 상당히 역적적인 말이지요.
공평하게 경기하지 말라는 말은
자신이 받은 것보다 더 좋은 것을 남에게 되돌려주라는 의미입니다.
남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논리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가이오 처럼 유익을 기치는 성도 되시기 바랍니다.
디오드레베처럼 자기가 으뜸이 되고자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따라서 요한은 가이오에게                           
    디오드레베와 같은 사람을 따르지 말라고 교훈을 줍니다.
4. 사도 요한이 성도들에게 권면하는 말씀의 핵심이 무엇입니까?(11절)
그 내용이 11절에서 나옵니다.
[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느니라 ] 고 했습니다.
그럼 왜 현재 영혼이 잘 되고 있는
가이오에게 사도 요한이 교훈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사람은 완전하지 못하여 현재는 잘 나가다가도       
      한눈 팔 때가 있고, 삐꺽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딤후4:10절 보세요
[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
이처럼 사람은 자기를 관리하지 않으면 너무 쉽게 변할 수가 있습니다. <9>
그래서 지금 요한은 사랑하는 가이오에게 자기의 사랑하는 마음을 쏟아 붓고, 또 한껏 축복하고는 세심한 당부 겸 교훈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악행하는 디오드레베의 삶을 본받지 말라고 말입니다.         
나아가 선한 것을 본받으라고 권면합니다.
선한 것을 본받는 가이오같은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요한3서의 핵심이 무엇이겠습니까?
영혼이 잘 되는 길입니다. - 그 예로 가이오를 모델로 들고 있습니다.
가이오의 어떤 모습입니까? - 바로 주의 종들을 잘 섬기는 모습입니다.
지금 인터넷 교회 사이트에 들어 가보면
    제일 많이 뜨는 글들이 목사 비방하는 글입니다.
    물론 목사의 잘못하는 점도 있겠지요. 사람이니깐?
그렇지만 영혼이 잘 되는 길은 - 선한 것을 본받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술주정뱅이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큰 아들도 술주정뱅이가 되었습니다.
술만 마시면 입 버릇처럼 하는 말이
    우리 아버지 아들인데 내가 그렇지 뭐,
그러나 둘째는 그와 반대로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기자가 인터뷰를 하면서
[ 한 아버지 밑에서 어떻게 그렇게 다를 수 있습니까? ]
[ 아버지 그런 모습 보고 내가 어떻게 술을 입에 댈 수 있습니까? ] 하더랍니다.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는 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우리의 선한 일이 어떻게 증명되어야 합니까?
5. 우리의 선한 일이 어떻게 증명되어야 합니까?(12절)
사도 요한은 또 한 사람을 들어 우리에게 선한 것을 본 받으라고 합니다.
12절 [ 데메드리오는 뭇사람에게도, 진리에게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거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거가 참된 줄을 아느니라 ]
사도 요한은 편지 뒷부분에서
    신실한 가이오에게 데메드리오를 천거하고 있습니다.
데메드리오가 어떤 교인인지, 또 어떤 선한 일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데메드리오의 선한 일이
1) 뭇사람에게 증거를 받았다고 합니다.
2) 진리에게도 증거를 받았고, 3) 또 우리도 증거한다고 합니다.
정돈 한다면 교인들과 성경과 교역자에게 인정받는 선한 일군임을 말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데메드리오는 말씀에 일치하는 삶을 살므로
교역자와 교인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일군임을 말합니다.
나는 지금 영혼이 잘되는 길로 가고 있습니까?              <10>
영혼만 잘 되면 범사와 건강은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축복의 우선 순위를 바꾸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요한 3서를 통해 사도 요한이
    가이오의 예를 들어 우리에게 말씀하는 바는
복음 전도자들을 잘 섬기는 자가되어
    진정한 웰빙의 복된 삶을 누리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 하나 더 하고 마치겠습니다.
잭 켄필드의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라는 유명한 책이 있지요.
6번째 나오는 이야기 한 토막입니다.
아주 임종이 가까운 한 노인이 있었습니다.
바로 몇 시간 전에 있었던 심장마비와 강한 진통제로 인해서
    정신이 몽롱해진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대 간호원이 큰 소리로 이분에게 외쳤습니다.
[ 할아버지, 아드님이 오셨습니다 ]
그때 건강하게 생긴 해병대 복장을 한 청년 하나가 문에 들어섰습니다. 윤곽을 알아볼 정도밖에는 분명하게 사람을 볼 수가 없는 상태고
    말을 하고 싶지만은 말이 안 되는 그런 시간입니다.
아주 쇠약해진 손을 내밀었습니다.
이 청년은 그 손을 두 손으로 꽉 붙들었습니다.
그리고 서로 주고받는 말은 없습니다.
이렇게 한밤을 꼬박 지내게 됩니다.
의사와 간호원이 간간이 들어와서 상태를 체크했습니다.
간호원은 정성스럽게 앉아있는 그 청년을 보고
  이렇게 너무 피곤하게 지내지 말고 잠깐 눈이라도 좀 붙이라고 했습니다.
이 청년은 여전히 그 노인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손을 꼭 쥐고 있습니다. 한밤을 아주 고대로 세웠습니다.
새벽녘이 되었을 때 이 노인은 세상을 떴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이 간호원에게 묻습니다. [ 이 노인은 누굽니까? ] 
간호원은 깜짝 놀랐습니다.
[ 이 노인의 아들이 아니세요? 이 노인의 당신의 아버지가 아니세요? ]
할 때에 청년은 말했습니다. [ 아뇨? ]
[ 근데 어떻게 해서 그 노인과 함께 밤을 세운 겁니까? ]
[ 제가 이 병실 문을 여열고 이 노인의 눈빛을 보는 순간
  나는 거기에 사로잡혔고 도저히 내가 당신의 아들이 아닙니다
  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도저히 이 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이 노인에게는 누군가가 옆에서 손을 잡아줄  바로 그 사람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 간절한 소원을 뿌리치지 아니한 이 청년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11>
      가장 행복한 그런 생을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 이 청년의 눈을 우리 모두가 가졌으면 합니다.

때로는 지나가는 선교사님들, 그리고 개척교회 농촌교회 교역자들
귀찮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만나보면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것 있지요.
선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앉아서 선교 선교 하더라도 진정한 선교 후원할 수 없습니다.
현장에 한 번 가보면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선교가 되고 마는 것 있지요.
오늘 사도 요한이 우리에게 들려준 진정한 웰빙의 삶
    바로 영혼이 잘 되는 길에 들어서야 합니다.
그 실천적 삶이 바로 복음 전도자들을 잘 영접하고 대접하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한 삶을 사는
    내일의 하나님의 가족들 되시기 바랍니다.
(김성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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