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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부이신 하나님 (막 1: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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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구약에는 아브라함에게 고향을 떠나라하고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어부로 종사하는 제자들 보고 그물을 버리고 나를 따라오라고 합니다. 오늘 떠나는 날입니다. 구약의 말씀을 보면 아브람이 떠나는데 특별한 몇 가지 사건이 있습니다. 네 고향 땅 하란을 떠나라. 다른 본문에 보면 갈대야 우루 지방을 떠났다라고 합니다. 구약에서는 지명을 똑같은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름으로도 부르고 있습니다. 갈대야 우르를 떠났다라는 말은 서울 지역에 중구를 떠났다라는 것이 될것이고 하란을 떠나라 는 말은 장충동을 떠나라는 말이 됩니다. 어쨌든 아브람은 자기의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75세 되던 해에 하나님이 명령을 하십니다. 지금의 수준으로 75세 되는 해에 고향을 떠나라. 가족도 떠나라. 내가 지정하는 땅으로 가라. 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구약에 나타난 모세 아브람 엘리야 모든 선지자들 나이가 전부 100살을 넘었기 때문에 장수했구나 하는 생각은 듭니다. 정확한 시간은 따지지 못해도 장수한 사람들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75세쯤이면 당시 평균연령의 절반은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장년 때 고향을 떠나라. 아마 아브람이 고향을 떠나지 않았으면 이스라엘은 없었을지 모릅니다. 갈대야 우르. 하란은 지금의 이라크입니다. 이라크에 고향을 둔 아브람이 이라크를 떠나서 중동 한참 가다가 지금 팔레스타인 이라는 곳에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고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떠나라. 미지의 세계로 떠나라. 그 미지란 말은 아브람이 모르는 세계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작정하신 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알고 저는 모르는 제가 몰라서 미지라 이름 하지만 하나님이 다 아시는 그 땅을 향해서 저는 지금 떠나야 합니다. 떠날 때 하나님은 약속 하나를 하십니다. 79세 때 약속입니다. 그 약속의 내용은 할례라 이름 하는 약속입니다. 할례는 우리가 베푼 세례와 같습니다. 난지 8일 되는 날 그날 할례예식은 남자 아이마다 거행을 합니다만 그것은 당시의 상징적 행위고 오늘날 우리의 영적인 세례를 의미합니다. 할례의 의미는 너희는 떠나라 나와 함께 가자. 나는 떠나는 너와 세상 끝날 까지 내 목적이 이루어 질 때까지 항상 함께 있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례가 뭐냐고 물으면 저는 하나님과 특별 계약을 맺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언제까지냐 하면 세상 끝날 때까지 목숨이 다할 때까지 생명이 있을 때까지. 이게 세례 받는 사람의 감사고 세례 받을 때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입니다. 계약입니다. 이 계약을 아브람에게는 할례로 베풀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브람이 할례를 받은 그날로부터 아브람은 변신을 시작합니다. 변신의 가장 구체적인 증거가 이름입니다.

오늘 떠나라 하나님이 함께 하겠다. 미지 세계로 가라 할례라는 약속으로 우리 서로 계약을 확인하자. 이 순간부터 아브람은 이름이 바뀝니다. 아브람에서 아브라함. 함자하나 더 들어갑니다. 무슨 뜻이냐면 우리 가족의 어르신에서 모든 민족의 어르신. 함이란 그런 뜻입니다. 모든 백성, 많은 사람, 모든 민족을 의미합니다.이스라엘 백성에게 중요한 것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지 아브람은 그냥 가족의 역사입니다. 저희들한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역사는 아브라함. 계약 이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약속. 그래서 아브라함이 중요합니다.

우리 모두가 태어나서 매년 생일을 맞습니다. 얼마나 중요한 날입니까. 가족의 경사고 모든 분의 경사입니다. 아주 중요한 날입니다. 아브라함도 birthday가 있었습니다. 근데 아브라함에게는 할례를 받고 언약을 받은 날부터 또 다른 날이 있었습니다. 함이라고 붙은 날, 새로운 이름을 얻은 날, 그래서 그날을 namesday 그렇게 말합니다. 태어난 날, 이름을 받은 날 그래서 아브라함의 날은 namesday 그날로부터 하나님께 떠나라는 출애굽의 역사가 시작이 됩니다. 여러분한테도 두 가지 이름이 있습니다. 두 날이 있습니다. 저는 목사로 안수 받던 날 저한테 namesday. 여러분께서 장로로 임직하신 날 집사로 권사로 또는 교회 무슨 일로 하나님께 약속하고 임직 받은 날 아니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 받고 하나님과 계약을 체결하신 날 그날이 여러분의 namesday입니다.

성함이  중요한 것은 아브람은 가족의 역사이지만 아브라함은 모든 민족의 역사입니다. 강원용 목사님이 쓰신 여해는 종교와 심지어 모든 인종을 떠나서 여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온 세상적, 우주적 그런 이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두 가지를 같이 주신 것 같습니다. 가족의 역사, 교회의 역사, 나라의 역사, 사회의 역사 플러스 모든 제한을 뛰어넘는 온 백성 하나님이 미치는 모든 역사의 한 주인. 한 아버지가 되라. 그 역사를 내가 함께하마. 아브라함의 역사. 그날로부터 나는 너와 항상 함께 있겠다. 예수께서 와서 함께 있겠다는 역사가 제자들을 부르신 사건에서 생겨납니다. 제자들을 불렀습니다. 어부 직을 떠나라. 그물을 던져라. 가족도 버려라. 떠나자 새 이름을 주마. 보통 베드로가 아니고 이제 반석이라 이름 하는 베드로. 이런 이름을 다시 얻고 제자들이 예수와 함께 떠납니다. 방향은 예수만 압니다. 예수 한사람만 믿고 다시 떠납니다.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자기 스스로 자기 제자인 앞서간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만 천하에 약속하고 그리고 제자들을 불러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나도 세례 받은 것과 같이 그대들도 많은 사람들 끌어다가 제자로 만들고 성부와 성자와 성부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새로운 이름을 주고 내가 제시하는 새로운 역사를 함께 시작하자. 자 그러면 예수의 세례 받은 장면 잠깐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보면 예수께서 세례 받으실 때 요단강에서 세례 받으시는데 그때 장면입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 같이 내려오는 것을 예수께서 느꼈습니다. 그건 하나님이 보는 장면이고 예수의 장면입니다. 그 장면 속에 들리시는 하늘의 음성이 있었습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나는 너를 좋아한다. 사랑한다. 좋아한다. 그 예수께서는 그 말씀을 마지막 제자들을 보내시며 승천하시면 하는 말씀입니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함께 있겠다.

아버지가 나와 함께 있는 모양대로 나도 그들과 함께 있겠다. 주보 표지 한번 보십시다. 이 표지는 정명오 집사님이 찍은 사진인데 아마 우리 교회가 지붕이 없이 지었던 여해관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여해관에서 하늘을 향해서 찍은 사진입니다. 예수께서 세례 받으신 장면 생각해 보십시오. 하늘이 열리고 약간의 구름들이 있는데 이게 비둘기가 성령이 비둘기처럼 우리 교회 안으로 내려오시고, 상상이 되시죠. 예수 세례 받는 장면 새로운 이름을 얻은 장면 이 장면을 그림으로 아주 명쾌하게 표현해놨습니다. 이 사진이 오늘 우리들에게 주시는 은혜가 아주 큽니다. 예수님 이후로 다시 보시면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 같이 내려왔다고 했는데 보시면 하늘이 열렸습니까. 언제 하늘이 닫혀 있었습니까? 하늘이 열렸습니까? 땅이 열렸습니까? 이 사진 속에 분명히 우리가 지은 건물의 뚜껑이 열렸습니다. 열린 뚜껑으로 봤더니 하늘이 열린다고 믿었습니다만 열린 것은 뚜껑이지 하늘이 아닙니다. 하늘은 본래 닫힌 적이 없습니다. 이 사진 속에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세례 받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 것이 감사하여 옛날 사람들의 표현이긴 하나 하늘이 열렸다고 하나님이 오셨다고 나와 함께 하신다고 하늘이 열린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사실은 열린건 하늘이 아니고 땅입니다. 언제 하늘이 닫혀 있어서 하늘 뜻을 거부하는 사람에게 비를 안주고 하나님 믿는 사람에게만 비를 보내주었습니까? 언제 하늘이 폐쇄 적이어서 자기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햇빛 주고 싫어하는 사람에게 햇빛 안줬습니까?

하나님은 인간의 편파성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하늘은 한번도 닫힌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늘 열려계셨고 늘 함께 계셨습니다. 닫힌 것은 우리의 건물이었습니다. 닫힌 것은 저 자신의 인간이었습니다. 닫힌 것은 우리 가족이었습니다. 닫힌 것은 우리 나라였고 사회였고 우리 모습이 닫혔지 하늘이 닫힌 적이 없습니다. 자기가 닫혀놓고 하늘을 향해서 하나님이 열리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없다. 무신론은 사람이 만들어냈지 하나님과 상관이 없습니다. 자기가 좀 열어서 회개하면 하늘이 열린 것 같아서 하나님은 계신다. 유신론. 닫혔는지 열렸는지 모르는 사람이 하늘을 보니 열린 것 같기도 하고 닫힌 것 같기도 하고 하나님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 불가지론. 하나님에 관해서 수많은 얘기들을 나 자신의 열림과 닫힘과 깨닳음을 가지고 하늘을 향해서 계단을 놓습니다. 계시다 안계시다 모르겠다.

어느 것 하나를 우리한테 강요합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 명확합니다. 나는 닫힌 적도 없고 연적도 없고 항상 개방된 하늘이다. 나 하나님은 누구한테나 있다. 단 나와 함께 하겠다고 나하고 계약을 맺은 사람은. 할례. 세례를 통해서 결단을 맺은 사람에게는 단 하나의 약속 나는 세상 끝날 때까지 항상 함께 있겠다. 창조 때부터 마지막까지 열린 자세로 항상 함께 계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깨닫고 깨닫지 못하면 당신들 책임이지 왜 나한테 닫혔다고 열지 않았다고 얘기하느냐. 우리 자신이 열리지 않으면 열린 하나님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왜 그렇게 고통당하는 사람의 고통을 모르십니까? 하나님은 고통당하는 자와 함께 계시면서 아픔을 끌어안고 고통을 없애시기 때문에 템포가 늦습니다. 하나님은 왜 그렇게 힘들어하는 사람들한테 빨리 기적을 내리시지 왜 그렇게 더디십니까? 아파하는 사람한테 가서 함께 아파하면서 아픔을 없애 버리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기적을 일으키시지 않는다고 할 때는 우리와 함께 하신 하나님 말고 우리를 위하여 계시는 하나님만 찾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내가 그대들을 이제는 기적의 사람 말고 나처럼 세상과 함께 있으면서 어려움과 함께 있으면서 기쁨과 함께 있으면서 이 세상에 구원을 이룰 그런 어부가 되게 할테니 나와 함께 이 길을 가자. 아브라함이 갔던 길 예수께서 갔던 길 우리 모두 가야 할 길은 똑같습니다. 단 하나의 약속입니다. 세상 끝날 까지 하늘은 열려있다. 미래도 열려있다. 축복도 열려있어서 아브라함에게 축복의 근원이라고 까지 해줬습니다. 열린 미래가 우리를 기다립니다. 닫힌 것 있으면 우리 스스로 엽시다. 그래야 오늘 저희들이 먹고 마시는 떡과 포도주가 하늘에 열린 양식이 됩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서만 계시지 않고 우리와 함께 끝날 까지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합니다. 축복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박종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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