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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능하신 하나님(1) (창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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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신앙고백을 설교하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우리 기독 신자에게는 필수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믿고 암송해야 되고, 또 마음으로, 입으로, 행동으로 고백해야 할 것이 3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는 십계명이고
둘째는 주기도이고
셋째는 오늘부터 생각하려고 하는 사도신경입니다.

십계명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신자들의 행동강령인 윤리헌장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 될 것 생활의 표본에 대해서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주기도문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하는 주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기도의 표준입니다.

사도신경, 혹은 신앙고백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어떻게 믿을 것인가>에 대한 표준으로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사도신경은 사도들의 신앙고백문입니다. 
사도란 12제자를 의미하고 있고, 신경이란 것은 초기 교회부터 오늘까지 역사상의 주님의 교회가 변함없이 고백하는 기독교 신앙내용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사도신경이라는 것은 <사도들이 믿는 신앙이 이것이다>.
그래서 사도들의 신앙고백서라고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신경(Creed)이란 말은 호몰로기아(ὁμολογἰα)인데 동의, 일치, 시인, 고백, 교리, 신조 등을 뜻합니다. 신조는 신앙의 선포입니다. 신조는 바른 신앙을 정하기 위하여 필요합니다. 곧 기독 신자가 무엇을 어떻게 믿느냐는, 성경에 기록된 복음 진리를 바르게 정의함에 필요합니다.
신조는 신앙의 규법, 모범, 표준을 제공해 주는 데 필요합니다.
세례와 성찬이나, 예배 모임이나 권징 등 교회에서 행하는 여러 가지 거룩한 규례들의 뿌리가 곧 신조입니다.
신조는 자녀 교육과 설교의 뿌리가 됩니다. 자녀들에게 기독교의 중심진리를 정확하게 요약해서 가르침에나 설교의 기본원리들을 제시해 줍니다.

신조는 교회 안에 들어오는 이단을 방어하고 물리치기 위하여 필요합니다.
지상교회는 언제나 가라지 운동이 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신앙고백이 바르지 못하면 교회가 크게 흔들리고, 구원 신앙에서 멀어져 버립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도신경은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주신 전 신구약 66권의 기본 뜻을 집약해 놓으신 교회사적인 일이라고 할 것입니다.
사도신경은 초대 12사도들의 신앙고백이 구전을 거치고, 성문화되는 재정시대를 거쳐 오늘 우리에게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오늘날은 여러 교파가 있고 교파마다 자기네의 신앙고백서가 있습니다. 그러나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신. 구교를 막론하고 온 교회가 다 같이 갖는 한 신조가 있는데 우리가 예배 때마다 고백하는 사도신경입니다.
이 사도신경은 신조 가운데 가장 오래된 신조입니다. 또 모든 신조의 기초가 되기도 합니다.
주후4세기에 루피너스라고 하는 학자가 사도신경에 대해 주석을 섰습니다.
이 사도신경은 사도들이 오순절 날 성령의 은혜를 받아서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증거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그들의 핍박이 일어나자 이제 흩어졌는데 그때에 이들은 흩어지면서 사도들의 신앙고백서를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사도신경은 주후 1세기부터 온 교회가 채택해서 신앙 고백한 것으로 나타나있습니다.
이 사도신경은 신구약 성경 66권을 요약한 것으로 우리들이 성경전체를 모르더라도 이 사도신경을 알면 기독교에 대해서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은 그 첫 부분으로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입니다.

오늘 첫 부분을 보면 하나님에 대한 3가지 수식어가 나옵니다.
<첫째 전능하사, 둘째 천지를 만드신, 셋째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입니다.
어떤 하나님을 믿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아버지로 내가 믿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오늘 이 세 가지 가운데 첫 번째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를 생각하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17장 1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99세 때에 여호와께서 나타나셔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히브리어로 <엘샤다이>입니다.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는 절대의 능력을 말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람도 만드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산도 바다고 그의 것이고
또 천사도, 이 자연들도 사람도 우주의 모든 것을 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도 이 전능성을 말씀하셨는데 <사람으로서는 살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할 수 있느니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1.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믿습니다

우리의 신앙 고백에는 <전능하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시다>함은!
하나님이 스스로 존재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변할 수 없으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지식, 선하심, 사랑하심, 의로우심, 거룩하심, 주권과 능력에 있어서 무한하심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시간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영원하시고, 공간과의 관계에 있어서 불변하심을 뜻합니다.
하나님 자신의 본성은 어떤 복합된 분이 아니시고(composite), 단순성(the simplicity)이신 분임을 뜻합니다.
말하자면 <스스로 영원히 살아 계신 유일하신 하나님, 인격적인 하나님을 가리켜 전능하시다>고 합니다.

유물론적 공산주의 신봉자들은 하나님은 없다고 합니다. 이것은 칼막스(K. Marx)의 주장인 <하나님은 없다>는 데서 그 직접적인 동기를 얻게 된 것입니다.
초인적인 철학자 니체는 <하나님은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야스퍼스(Jaspers, Karl)는 <현대는 하나님이 퇴위를 당하고, 그 자리를 인간이 대신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사르트르(Sartre, Jean Paul)는 <고대의 원리(신)는 자연이요, 중세는 신이요, 현대는 인간>이라고 했습니다.
범신론적 신봉자들은 세상의 피조물들로 신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중국에는 인귀, 다신, 다귀, 하늘을 숭배의 대상으로 믿습니다.
인도 같은 데는 삼억 칠천만이나 되는 잡신을 믿습니다.
일본에는 팔백만의 신도주의로 나타났습니다.
우리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여러 잡신들을 섬겨왔는데 그것이 샤머니즘으로 묶어졌습니다(무속신앙). 단군신화는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어거스틴은 그의 저서 <신도>에서 시인들의 신이 있고, 철인들의 신이 있고, 정치인들의 신이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인조적인 신이 아닌, 스스로 존재하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신 4:35. 딤전 2:5).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다>. 이것을 우리가 전제하고 신앙 고백한다고 하면 우리들이 신앙생활 하다가 염려하고 낙심하고 절망가운데 있어서는 안 됩니다.
만일 우리가 이 신앙을 고백하고 절망 가운데 있다면 우리는 이 신앙을 잘못 고백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사도들이 이 고백을 할 때는 그들이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의 능력을 믿겠다는 단호한 결단이 이 속에 포함되어있었습니다.

초대교회에 사도들이 말씀을 전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전하다 매도 맞았습니다.
예수님을 전하다 감옥에도 갇혔습니다.
예수님을 전하다 재산도 빼앗기고
예수님을 전하다 죽을 뻔도 하고
예수님을 전하다가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의 마음에 속에는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우리는 그 사실을 믿는다. 우리는 할 수 없지만 그분은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는 분이다. 이까짓 것 고통이 문제냐! 이까짓 것 매가 문제냐! 감옥이 문제냐!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이 믿음으로 세상의 어려움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 고백을 하는 한 우리는 낙심과 절망과 실망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실패했을 때도, 병들었을 때도, 어려운 일 만났을 때도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도 <전능하신 하나님> 이런 고백을 하면서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1984년 5월 14일 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나라를 잃은 지 2534년 만에 독립했습니다.
작은 이스라엘 나라에 독립을 했는데, 강한 아랍나라들이 연합군이 되어서 세 번이나 공격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세 번이나 이 전쟁을 승리했습니다.
이스라엘은 1차 전쟁을 25일만에 승리하였습니다.
2차 전쟁을 11일만에 승리하였습니다.
3차 전쟁을 6일만에 초전 박살 시켜서 세계를 경악케 했습니다.

그 해법을 자세히 알기 위해서 우리 정부에서 군사 전문가를 파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10일 걸려서 조사했지만 이렇다할 정확한 조사를 하지 못했습니다. 지리적으로 보아도 우리나라 강원도만한 좁은 땅 덩어리입니다.
엄청난 아랍 연합군에 비하면 인적 자원은 60대 1이 됩니다.
연합군이 1억 6천만에 비해서 이스라엘은 267만, 약 대구 인구정도 밖에 되지를 않습니다.
군사적으로도 100대 1의 비율이었습니다. 이렇게 작은 나라, 이 무력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나라가 승리를 했는지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돌아가려고 할 때에 그 조사원 중에  크리스천 대령이 <우리가 한번더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을 만나보자!> 이렇게 제안을 해서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를 만났습니다.
종교지도자가 하는 말이! 놀랐습니다
①이스라엘이 1차 전쟁을 할 때는 사막에서 모래 바람이 일어나서 적진의 눈에 적진의 시야를 가려서 대 승리를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②2차전 승리는 사막에서 벌떼가 나타나서 그들을 쏨으로 이길 수 있었다고 합니다.
③3차전은 하늘에서 불비가 내려서 이스라엘이 승리를 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3차전 승리를 전폭기 조정사가 촬영을 했는데 그 사진에도 불비가 내리는 것이 찍혔다고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 줍니까? 전쟁 때마다 ■모래 바람이 일어나고, ■벌떼가 일어나서 쏘고, ■하늘에서 불비가 내렸다는 것은 하나님이 전능하심을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 전쟁사에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해 주셔서 우리가 승리했습니다> 이런 보고였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와 아랍 나라가 싸울 때에 아랍군은 수십만이 되고, 이스라엘은 소년 252명, 장정7천명밖에 안 됩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크게 전쟁에서 승리를 했습니다. 그 원인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워 주셨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해 주셔서 이스라엘이 승리를 했습니다.

2. 둘째 우리가 <전능하사> 이렇게 고백할 때 구체적으로 3가지로 생각 할 수 있습니다.

1) 첫째 전능하다는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그리고 크게는 온 우주로부터 작게는 모든 미생물까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우리가 신학적으로 작정을 말할 때에 하다 못 해 이슬비가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이 하나님의 작정이라고 그렇게 말을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온전히 주관하십니다.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십니다.
나의 모든 것을 주관하십니다.
나의 삶도 주관하십니다.
나의 고생도, 나의 기쁨도, 나의 전부를 그분은 주관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에 의해서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일본 히로시마는 제 2차 대전의 막을 내리게 한 원자탄이 떨어진 곳으로 유명한 것은 누구나 다 잘 압니다.
그때 그 원자탄이 이 모라 카톨릭 천주교 성당에 떨어졌는데 성당 안의 모든 것이 다 파괴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중 유독 노란 종 하나는 파괴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엄청난 원자탄의 위력 앞에 40만 명의 생명을 잃고, 그리고 돌도 녹고 쇠도 다 녹는데 이상하게 노란 종 하나가 녹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성당을 새로 지을 때에 거기에다 <불가사이한 일이다>라고 기록했다고 합니다. 
불가사이한 일! 그러나 우리가 신앙으로 생각하기를 하나님은 역사를 주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노란 종 하나를 남김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역사를 주관하고 있는 전능하신 분임을 우리들에게 오늘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구별 없이 모든 역사는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계십니다.

2) 둘째 하나님이 전능하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가능하다는 것을 믿습니다.

여기서 가능하다는 것은 폭력적인 의미나, 아니면 자기의 욕망대로 하는 악한 그런 지배를 의미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가능한데 그의 선하신 섭리 그대로 온전하게 그 일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못하시는 일이 없으십니다. 태양도 멈추시고, 죽은 자도 살리시고, 바다도 가르시고. 성도 무너뜨리시고. 3년 육 개월 간 가뭄도 주시고, 땅도 가르시고, 천지창조도 하시고, 물도 다스리시고, 모든 것을 다 하시는 분이 십니다.

1967년 이스라엘의 3차 전쟁 때의 일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람이 살지 못하는 문제의 시나이 반도에 진주하여 진을 쳤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초저녁에 메추라기가 하늘에서 떨어지는데 그야말로 우박처럼 쌔 까맣게 떨어졌다고 합니다.
군인들은 머리 위에 뒹굴고 있는 그 메추라기 알을 주워 먹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기이하게 본 전문가들이 연구를 했는데 그 지방에는 메추라기들이 철새처럼 무리를 지어서 다니는 그들이 하늘을 날아다니다가 힘이 떨어지면 그냥 한 곳에 머문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룻밤을 지내고 다시 힘을 얻은 다음에 떼를 지어서 날아간다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이 너무도 힘들고 어렵고 고난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전능하신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 가정의 문제, 내 자신의 문제!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은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꼭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3) 셋째 하나님의 전능은 우리들에게 사랑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사랑하지만 능력이 부족합니다. 
어린아이가 아파서 고통을 당할 때 그의 어머니나 할머니 그 모습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밤새 잠을 자지 못하고 아이의 아른 것을 고쳐 주기 위해 애쓰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 아픈 모습을 보고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저 아이의 아픔은 나 때문인 것처럼 내가 잘 돌봐 주지 못해서 그런 것처럼 고통이 있습니다.

가난한 아버지가 자식에게 충분한 교육을 시키고 싶지만 그러나 충분한 교육을 시키지 못할 때에 너무나 안타까워서 <난 너를 사랑한다> 그렇게 말하지만 그 아이에게 큰 위로가 되겠습니까?
인간의 사랑은 무능합니다. 인간의 사랑뿐 아닙니다. 인간의 지식은 한없이 부족합니다.
고린도전서 1장15절에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은 어리석어서 우리가 생각을 하면서 <할 수 없다> 그렇게 포기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도저히 할 수 없을 때는 기도해도 소용없다. 안 된다. 할 수 없다. 이렇게 낙심을 하기가 쉽습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 너는 내 앞에서 완전 하라> 이것은 아브라함의  불신앙을 책망하신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75세 때에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때는 이미 사라가 단산을 했을 때입니다. 그리고 나서 24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99세 사라의 89세가 되었습니다. 인간의 의학적으로 볼 때는 인간이 애기를 낳는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이 상속자가 되기를 원하고,
창세기 24장에 보면 엘리엘셀 종이 상속자가 될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마엘도 아니고 엘리에셀도 상속자가 아니다 네게서 날 아들, 사라를 통해서 날 아들이 상속자가 될 것이다.
창세기 18:14절에 <여호와께서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이 사실을 아브라함도 믿지 못하고 사라도 웃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왜 믿지 못하느냐? 왜 웃느냐?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내가 한다면 하는 것이지 네 아내가 단산한 것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 흔들리지 말고 믿어라> 그렇게 하나님은 요구하십니다.

여러분의 눈으로 볼 때 안 될 것 같은 것이 있습니까?
지금까지 기도를 했는데 안 될 것 같아 포기한 기도가 있습니까?
주위에 사람들이 우매한 짓이라고 욕을 하고 놀리는 일이 있습니까?
말할 수 없는 고통 때문에 괴로워하십니까?
나의 지식으로는 나의 환경으로는 나의 힘으로는 도저히 안 될 일이 있습니까?

한 가지 믿으십시오. <하나님은 전능자하시다>는 사실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여러분이 고백을 했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믿으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주관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무엇이 걱정입니까? 무엇이 두렵습니까? 무엇 때문에 슬퍼하십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믿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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