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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사헌신예배] 꿈을 먹고사는 어린이가 되게 하라(창 3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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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그를 사니라.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으로 가정 총무를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하니 그가 요셉에게 자기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주인이 그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하고 자기 식료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더라."

어느 날 '파리'와 '하루살이(Ephemeroptera) 벌레'가 친구가 되어서 놀고 있었습니다. 파리와 하루살이는 아침에 만나서 저녁까지 놀다가 보니 금새 아주 절친한 친구사이가 되어버렸습니다. 하루 종일을 재미있게 놀다가 이제 해가 서산으로 지려고 할 때 파리가 하루살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 하루살이야! 이제 해가 지니까. 집으로 가야대. 엄마가 늦게 오면 걱정하셔. 그럼 내일 또 만나서 재미있게 놀자. 안녕! "하고 파리는 자기 집으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하루살이도 순간은 "그래! 내일 만나자." 라고 했지만, 돌아서서 생각을 하니까. "나는 하루살인데. 나에게는 내일이라는 것이 없을지도 모르는데" 라며 슬피 울었다고 합니다. 사실 하루살이는 몇 시간에서 일주일 정도 삽니다. 하루살이는 알, 애벌레, 아성충(亞成蟲)의 시기를 거쳐 성충이 되는데 입은 씹는 입으로 퇴화해 작습니다. 특히 아성충(亞成蟲) 시기가 되면 입이 퇴화되어 아무것도 먹을 수 없기에 영양을 섭취할 수 없어서 짧은 시간을 살 수 밖에 없고, 내일 아침의 시간이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울었다는 것것입니다.

"여러분! 만일 나에게 내일은 없다."면 어떻게 행동하시겠습니까? 그 사람은 지금은 재미있게 놀고, 신나게 즐기고 있지만 미래를 생각해 보면 소망이 없는 삶이기 때문에 쉽게 허무감을 느끼며, 좌절하고, 절망하게 될 것이며, 곧 기쁨을 잃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들의 마음속에 내일에 대한 비전과 꿈이 없다면, 그 사람은 아무런 인생의 의미도 소망도 발견하지 못하고, 오늘 소개한 '하루살이처럼 쓸쓸하고, 처절한 절망으로 가득한 삶을 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꿈과 비전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특히 어린이나 청소년시절의 꿈은 그 인생을 좌우하기 때문에 더욱 영향력이 큽니다. 오늘 참석한 교사 여러분들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의 꿈이 무엇입니까? 유 초등부 아이들에게 물으면, 말을 잘하는데. 중학교만 가는 연령이 되면 이제 꿈 이야기는 유치한 이야기로 변하고 맙니다. "그건 철모를 때나 하는 이야기이고, 이제는 대통령이니. 장관이니. 과학자니. 미스코리아니 이런 것들은 말 그대로 개꿈이 되어버렸습니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어떻게 보면, 매우 현실적인 것 같지만 꿈을 잃어버리고 사는 세대가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대입니다. 직장인들은 미래에 대한 꿈이 없습니다. 아무리 돈을 모아도 월급으로는 아파트 한 채 사기 어려우니 소망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요사이 사람들이 컴퓨터의 가상공간인 몰입하는 하나의 이유가 바로 그런 이유 중의 하나가 소망을 잃어버렸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꿈이 없다보니 그저 시간만 나면 컴퓨터에 앉아서 자신의 정신을 빼앗아 가는 게임하기에만 열중합니다. 그것도 영혼을 키우고 생각을 발전시키고 기쁨과 평화와 안식을 가져다주는 홈페이지나 그런 종류의 게임이 아니라 그저 차고 부수고 죽이는 것뿐입니다. 심지어 우리 아이들마저 영혼과 정서가 너무나도 말라버려서 이제는 학교 교실 안에서도 같은 반 급우를 칼로 찔러 죽이는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꿈이 있느냐? 고 물어보면 "대학가는 것이 최고의 꿈"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너 대학가서 무엇 하려고? 하고 물어보면 "좋은데 취직하려고요!" 그래 그러면 좋은데 취직해서 무엇 하려고? 물어보면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해야지요!" 또 물어 봅니다. 결혼해서 무엇 하려고? "그거요. 그냥 결혼해서 남처럼 애 낳고 사는 거지요 뭐!"??더 이상의 비전이나. 발전이 없는 그런 상실감의 시대가 바로 요즘 젊은이들의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물론 그렇게 사는 것도 훌륭한 인생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이러한 일반적인 꿈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뭐! 위대하고, 대단한 것을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부족하고, 모자라고, 연약해도 주안에서 성실하게 정말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산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 시간 바로 요셉의 꿈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아직 어리고, 또 젊습니다. 그러므로 오를 헌신예배를 드리는 교사 여러분들은 좀 더 가슴을 펴고, 주님이 주시는 대망(大望)을 품고, 이 어두운 시대에 하나님이 쓰시는 귀한 교사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높이 난만큼 더 넓고 더 큰 세상을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새가 맛있는 것을 먹는다."고 했습니다. 부지런한 사람이 큰일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꿈을 가진 사람만이 그것을 이루려고 노력하게 되고, 또한 그렇게 꿈을 가지고 노력하는 자만이 더 큰 세상을 볼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 젊은 만화가가 자신의 그림을 들고 여러 신문사를 찾아다니며 연재를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도 자신의 그림을 인정해주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한 신문사의 기자는 그의 그림을 보고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당신은 그림에 재능이 없어요. 어찌 이런 이상한 그림을 가져와 가지고는 실어달라니 아무도 당신을 인정해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화가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교회에서 만화가는 교회의 홍보물에 그림을 그리며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는 너무나 가난했기 때문에 쥐가 우글거리는 창고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는 어느새 창고에 사는 커다란 생쥐 한 마리와 친해졌습니다.

그 생쥐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한 그는 귀여운 생쥐 캐릭터를 그렸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고 만화가는 일약 거부가 됐습니다.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바로 미국 만화영화의 개척자 `월트 디즈니`입니다. 그리고 생쥐 그림이 바로 그 유명한 ‘미키 마우스’입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성공의 빛을 봅니다. 다만 꿈으로 인한 고난을 감수해야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하려는 것은 밤에 잠잘 때 꾸는 꿈이 아닙니다. 현실의 꿈을 말합니다. 이 꿈은 '희망' 또는 '소망'이라 말할 수 있고, '환상'이나 '이상'이란 말이며, 요사이 쓰는 말로 '비전'이며, '목표'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어드린 말씀은 구약성경에 나타난 꿈을 잘 꾸고 꿈을 잘 해석하기로 유명한 꿈의 사람 요셉의 일생에 대한 한 토막 기록입니다. 요셉은 일찍이 17세에 하나님께서 꿈을 통하여 그를 부르셨고, 그에게 꿈을 주셨습니다. 오늘 교사의 사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신앙적으로 어린 생명이 예수님 구주로 믿고, 성경 진리를 잘 가르치며, 참된 믿음의 일꾼으로 키우는 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주일학교 교사는 어린 생먕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비전을 심어주는 사명을??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들이 꿈을 가지게 됩니까? 한마디로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모든 사람들의 꿈의 공통점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꿈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즉, 꿈의 원천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좋은 꿈 아름다운 꿈 승리하는 꿈 영광의 꿈을 갖고 싶다면 하나님과 각별히 동행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 놀라운 일을 감당할 꿈을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의 큰 축복입니다. 모든 사람의 꿈 다 같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 어떤 사람도 예외 없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을 간직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꿈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왜 교사가 되께 하셨습니까? 가르치는 어린 생명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귀한 사명이 있기 때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 꿈을 심어주는 교사가 되어야 합니까?

1. 꿈과 소망이 있어야 절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형들이 들에서 양을 칠 때 아버지의 심부름을 갔다가 펴상시에 꿈을 잘꾸는 일로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는데 그 시기와 미움 때문에 애굽으로 가는 무역상인 들에게 종으로 팔았고, 결국 바로의 시위대장(경호 대장)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려왔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그렇게 충성을 다했는데도 보디말 아내의 유혹을 겇절하였던 일로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일이나 옥중에서 왕의 술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주고 자신의 억울한 일을 구명해 주기를 요청했으나 무관심한 일 등, 수많은 기막힌 고난 중에도 그는 단 한 번도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꿈을 통해 소망을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토마스 브룩스'는 "소망은 가장 짙은 구름 속에서도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다."고 하였고, '윌리암 거널'은 "신앙과 선한 양심은 소망의 양 날개이다."라고 하였으며, '폴 매드슨'은 "복음에 대한 소망을 잃으면 모든 것은 무의미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W.T 퍼키져'씨는 "미래가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사실, 이것이 바로 소망이다."고 하였으며, '아도니램 저드슨'씨는 "내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만큼 나의 미래는 밝다."고 하였고, '윌리엄 젠킨'씨 역시 "소망은 인내의 어머니이다."라고 하였으며, 'A. J 크로닌'씨는 "당신이 소망을 잃었을 때, 당신은 소망이 없는 지옥의 입구에 서 있는 것이다."라고 까지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세기 12:1-2절에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큰 민족의 조상이 될 꿈과 함께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을 끼칠 복의 근원이 될 꿈을 갖게 하셨습니다. 그는 이 엄청난 꿈을 품었기에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가나안땅으로 옮겨갔습니다.

'야곱'도 하란을 향하여 외롭게 가는 길에 하나님께서 ‘벧엘’에서 나타나 위로해 주시고,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 복을 받게 하리라" (창28:14)하시고, 어디로 가든지 함께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여, 그에게 큰 꿈을 가지고 두려움 없이 나아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의 주인공 요셉도, 그의 나이 17세 때, 형들의 곡식 단들이 요셉의 곡식 단을 둘러서서 절하는 것을 꿈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요셉은 이 때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꿈을 평생 간직하고 흔들리지 않고 생을 살았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민족을 구원해 가나안땅으로 인도할 꿈을 가지고 평생을 바쳤고, 다윗은 하나님 의 왕국 건설의 꿈을 가지고 살다가 그 꿈대로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통일 이스라엘 왕국을 세웠던 것입니다.

제2차 대전 때 동남아시아에서 일본군 점령지의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던 미군들 중에는 전사자들보다도 수용소에서 더 많이 죽었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은 포로로 잡혀있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장래에 대한 소망을 잃어버리고 절망했기 때문입니다. 절망하면 병든 자도 회복이 되지 않고, 죽게 됩니다. 환자에게 믿음을 넣어주면 심령에 평화가 생기고 병을 이기고 살아난 이유가 무엇입니까? 믿음이 절망을 몰아내고, 희망을 주기 때문입니다.

시편기자는 시 71:14절에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 더욱 찬송 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만 인생에게 소망이 있기에 이 귀한 사실을 어린 생명들에게 잘 가르쳐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의 소망의 토대는 그리스도에게 있으며, 또 우리 소망의 증거도 우리 마음속에 임재하시는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어린이들이라고 할지라도 눈동자를 보면 소망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역대의 기록을 남긴 사람들은 한 가지씩 자신의 소망을 갖고 그 일을 진행 시켜 나가는데 자신의 일생을 쏟았습니다. 교사 여러분들과 성도 여러분들에도 하나님과 천국과 삶에 대한 소망이 가득하길 소원합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요셉처럼 절망이라는 병에 걸리지 않습니다. 교사 여러분들이 이 비전을 어린 생명들에게 말씀으로 심어주시기를 부탁합니다.

2. 꿈이 있는 사람은 믿음이 흔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그 어린 나이로 그 험악한 일을 당했으나, 하나님께서 주신 그 큰 꿈을 끌어안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지켜 나갔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간직하고 사는 사람은 고난이 온다고 해서, 신앙을 잃지 않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꿈과 믿음이 서로 세워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가지고, 신뢰하도록 인도하는 교사의 사명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믿어지면 교사들은 '아멘'해 봅시다.

'아브라함 링컨'이 대통령 후보로 미국 전역을 누비며 선거 유세를 하고 있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한 소녀가 어머니와 산책을 하다 연설하고 있는 링컨 후보를 보았습니다. 엄마가 '노예 해방을 외치는 훌륭한 대통령 후보'라고 말하자, 소녀는 '링컨이 큰일을 하기에는 너무 말랐다는 생각'이 들어 링컨 후보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링컨 선생님, 선생님의 얼굴은 무척 말라보여요. 턱수염을 길러 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링컨은 이 편지에 짤막한 감사의 답장을 잊지 않았고, 그가 당선되어 워싱턴에 연설을 하러 갔습니다. 기차역에 내려서 인사하는데, 그 작은 소녀가 손을 내밀며 “축하합니다. 링컨 선생님” 하자 링컨은 “고마워요. 모두 아가씨 덕분이야” 하고 뽀뽀를 해주었습니다. 수염 때문에 따가웠지만 소녀는 기뻤습니다. 그 수염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를 외치는 자유의 인간 링컨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또 한 통의 편지는 링컨이 남북 전쟁 때 한 전투를 마치고 장군에게 총공격을 명령할 때 사용되어 졌습니다. “미드 장군, 이 작전이 성공한다면 그것은 모두 당신의 공이오. 실패의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소. 만약 작전이 실패하면 장군은 링컨의 명령이었다고 말하시오. 그리고 이 편지를 공개하시오.”

크고 작은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듣고 소중히 여긴 링컨 대통령은 사후에 더욱 많은 존경을 받았습니다. 지도력이 있는 지도자는 사람을 소중히 여길 줄 압니다. 그래서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능력을 부각시켜 주며, 사기를 북돋워 주며, 신뢰하며 일을 맡깁니다. 성도 여러분들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습니까? 우리 교사들은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여러분들의 섬김에서 신실한 모습을 어린이들에게 보여 주어야 합니다.

믿음은 그 꿈을 포기하지 않게 신뢰를 세워주고, 또 꿈은 믿음이 약해지려 할 때 중심이 흔들리지 않게 붙들어 줍니다. 그러므로 큰 꿈을 가진 사람마다, 큰 믿음의 사람들은 큰 꿈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사 여러분! 여러분들은 정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큰 믿음과 큰 꿈을 모두 다 소유할 뿐만 아니라 어린 생명들에게 심어주는 이 귀한 사명을 잘 감당하며, 특별히 인도하는 교사에게 먼저 신뢰할 수 있도록 신앙의 모범을 모여 위대한 지도자가 되는 길로 인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꿈을 심어주면 어린이들은 결코 방황하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탕자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왜! 둘째 아들이 생을 방황하고, 재물을 다 허비했습니까? 그가 그렇게 방탕해 버린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꿈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둘째 아들이 꿈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만약 꿈이 없었다면 어떻게 아버지에게 미리 자신의 유산을 챙겨 가지고 나왔겠습니까? 그러나 그의 꿈은 세상 적인 꿈이었습니다. 그저 여러분처럼 대학가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애 낳고 그렇게 살다가 가는 그런 일반적 세상 꿈! 다시 말해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주어진 희망의 꿈이 아니라??돈 많이 벌어 부자가 되고자 하는 그런 썩어 없어질 세상 꿈! 바로 그런 꿈을 갖고 출발하였기 때문에 둘째 아들은 세상 사람들의 칭찬과 자랑과 욕망의 정욕에 빠져 가진 재산을 다 탕진한 것입니다. 만일 이 청년이 아버지보다 열 배나 더 많은 재물을 가지고 나갔을 지라도 다 탕진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사회의 고민이 무엇입니까? 청소년뿐 아니라, 청장년 심지어는 늙은 자 까지 성적인 범죄의 홍수를 이루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꿈이 없기 때문입니다. 불타는 꿈이 없으니, 불타는 욕망으로 인간이기를 거절하는, 고작 그런 행위나 하는 것이 그들 인생의 전부인 것입니다.

로마서 13:12-14를 함께 읽어봅시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교사 여러분, 꿈이 있는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어린 생명들에게 비전을 심어줘야 합니다. 중심이 흔들리면 끝장입니다.

히브리서 2:16절에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주려 하심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4년마다 있는 월드컵이나 올림픽대회, 심지어 아시안 게임 때에는 중계방송을 시청하느라 다들 밤잠을 설치면서 경기를 구경합니다. 그런데 경기를 보다보면 '얼마나 많은 훈련을 했을까?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간 체력의 한계에 도전하는 선수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모두 모여서 경쟁을 벌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승부수는 기술이 아니라 마음가짐에 따라 승패가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음이 흔들리면 그동안 애쓴 기술과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됩니다. 어떤 선수들은 사방에서 꽹과리를 치고 박수를 쳐도 아랑곳하지 않는데, 이들 역시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주변으로 인해 중심이 흐트러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결국 마지막은 심력 싸움인 셉입니다.

마찬가지로 마음과 중심이 흔들리면 사단에게 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환경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꿈과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비전을 가지게 되면 꿈을 이루기 위하여 방황하거나 방탕할 시간이 없습니다. 성도는 올바르게 살기도 바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이 귀한 사명을 잘 감당하는 교사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4. 꿈이 있는 사람은 삶에 성실합니다.

애굽 왕의 경호대장이 어찌해서 아직 어린 청년 요셉을 많은 종들을 두고도 가정 총무로 삼았습니까? 그 청년이 하는 일마다 형통했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형통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불성실하고 아무렇게나 하는데도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요셉이 매사에 성실하게 일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꿈을 가지고 그 마음을 불성실한데 맡겨 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딤전 1:12절에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백화점의 선구자였던 ‘존 워너메커’는 자신이 경영하는 뉴욕의 백화점 게시판에 이런 글을 써 놓았다고 합니다.

1) 주일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출근하지 말 것.
2) 수입담배를 피우거나 유흥업소나 댄스홀에 가야 할 때는 사유서를 제출할 것.
3) 교회에 가서 연간 5불 이상의 헌금을 바칠 것.
4) 매주 성경 공부 반에 가서 공부할 것.

이렇게 4가지가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존은 4가지를 권면할 수 있는 신앙의 자세를 먼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세계적인 갑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축복 받을 수 있도록 원칙을 세워놓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직분과 사명을 주실 때 그것을 귀찮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봉사는 언제나 기회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사, 성가대, 식당 봉사를 하고 싶어도 감각이 무디어 지고 건강이 나빠지면 할 수 없고, 주위 환경이 허락되지 않으면 하고 싶어도 못할 때가 찾아옵니다. 또한 교회를 섬기기에 최선을 다할 때 주님이 기뻐하시고 복을 더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 모두 솔선수범(率先垂範)해서 남보다 먼저 실천하는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을 잘 섬기는 종이 되시기 바랍니다.

꿈을 가진 청년은 어떤 힘든 일, 어떤 어려운 장애가 있다 할 찌라도 그것 때문에 삶이 흩트러지지 않았습니다. 꿈을 심어줘야 하는 교사의 사명이 이처럼 중요한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5. 꿈이 있는 사람은 마음을 감사로 채웁니다.

요셉이 자신의 꿈과는 반대로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려나가고 보디발의 아내에게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힐 때에 그의 마음속에는 감사하는 마음은커녕, 오히려 땅을 치고 통곡하고, 날마다 눈물과 탄식으로 세월 보내야 마땅하리라 생각됩니다.

날마다 꿈을 반대로 끌고 나가시는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해야 마땅합니다. 형들에게 원망하고 저주해야 마땅합니다. 세상 위치로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는 팔려왔을 때나 종으로 다시 팔렸을 때나, 오해받았을 때나, 감옥에 들어갔을 때나, 전혀 불평이나 원망의 그림자도 없습니다. 그의 심령이 감사로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누가 원망하고 반역했습니까? 가나안땅에 대한 꿈을 잃은 자들이었습니다. 꿈을 가진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은 고난과 시험 앞에서도 절대로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이사야 41:10절에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말씀합니다.

1346년 성탄절 전야의 영국은 '공포의 밤'을 맞고 있었습니다. 가공할 전염병인 페스트의 공격을 받아 인구의 절반이 쓰러졌습니다. 영국은 사형선고를 받고 죽음을 기다리는 죄수처럼 '절망의 땅'으로 변했습니다. 그 때 청년 서너명이 성탄절에 "기쁘다. 구주 오셨네."라는 찬송가를 부르며 런던 거리를 행진했습니다. 그러자 집안에 칩거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거리로 뛰쳐나와 함께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래서 전염병으로 공포에 떨던 도시는 금방 활기를 되찾았습니다.

런던의 하늘에 수만명이 함께 부르는 희망의 노래가 울려 퍼졌습니다. 시민들은 페스트에 대한 공포를 떨쳐버리고 새로운 출발을 선언했습니다. 청년 몇 사람이 시작한 희망의 노래가 영국을 질병의 공포에서 해방시킨 것입니다. 고난의 때일수록 희망의 노래와 밝은 대화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오히려 그 심령 속에는 감사로 채워져 있었기에 이 위대한 역사를 일르키는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꿈과 희망은 이처럼 절망적인 자리에서 떨쳐 벗어나게 합니다. 그러므로 교사가 얼마나 위대한 사명인지 깨달을 수 있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6. 꿈이 있는 사람은 늙지 않습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빨리 늙고 폐인이 됩니까? 꿈도 목적도 없이 세월 보내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4:16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 겉 사람은 늙어도 속사람은 날마다 새롭다고 고백했습니다.

'쟌 듀어'가 90세 때, 담당 의사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선생님처럼 건강하고 위대한 생을 살 수 있습니까?" "산에 오르게" "산에는 왜요?" "다시 오를 다른 산을 보기 위해서야, 그러다가 더 오를 산이 없어지면 그때는 자네도 죽을 때가 된 거야" 꿈이 없으면 그때는 죽은 송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을 때까지 꿈을 간직하고 살아야 합니다.

'피터 마샬' 목사님의 부인은 '마샬 목사님'이 세상을 떠날 때 그 부인에게 빙그레 웃으면서 "슬퍼하지 마시오. 내일 아침 다시 만납시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한 마디가 그 마음에 영감을 주어서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사람입니다.

"내일 아침 다시 만납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또 우리가 새겨야 할 말입니다. 그 날을 바라보고 있고, 그 날을 믿습니까? 그 날의 모습이 어떻게 나타날 것 같습니까?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4장 7절에서 "내 앞에 면류관이 있다."고 말합니다. 나뿐만 아니라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이 면류관이 주어질 것이라고 그 날을 바라보면서 마지막 순교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이것이 성도의 길입니다. 그 밝은 미래를 바라보고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여기에 삶이 있고,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현실에 걸려 넘어지지 말고, 그 미래를 바라보며 가시기 바랍니다.

오늘 헌신예배를 드리는 교사 모두가 이 귀한 꿈을 말씀으로 어린 생명들에게 심어주는 위대한 사역을 잘 감당하시기를 다시 한 번 부탁합니다. 꿈을 잃지 않고 사는 사람은 바로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 꿈을 이루어 가는 즐거움 속에서 살며, 힘 있게 살며, 남에게 용기와 기쁨을 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그런 꿈이 있는 사람들로서 살아가며, 어린 생명들에게 끔을 심어주는 교사 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황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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