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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도 베드로처럼 (마 14: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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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은 자기 머리나 자기 경험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일이 일어나면 기적이라고 하든지 아니면 속임수라고 몰아 부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 수많은 기적들을 전부 신화나 거짓말로 단정하고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천지창조부터 모세의 홍해 도하 사건, 여리고 성 무너진 사건, 동정녀 마리아의 잉태사건, 예수님의 부활사건, 그밖에 예수님이 행하신 수많은 기적 사건들, 전부 믿을 수 없는 신화로 단정합니다.

오늘 본문도 대표적인 사건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 위로 걷는 예수님, 이 사건은 너무나도 분명하게 예수님의 신성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도저히 인간은 할 수 없는 사건입니다. 그러나 천지를 주관하시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물위를 걸으시는 기적을 행하십니다.
사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하게 만듭니다.

몇가지를 제가 해보겠습니다.
왜 예수님이 재촉하여 보낸 제자들이 타고 간 배가 풍랑을 만났는가?
왜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시고 기도하러 홀로 산으로 올라가셨는가?
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가오실 때 물위를 걸어오셨을까?
왜 베드로는 주님에게 나도 걷게 해 달라 했는가?
왜 베드로는 물속으로 빠져 들어갔는가?
왜 예수님이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그쳤는가?

간단하게 그 질문들에 답변을 하고 넘어 가야합니다.
1) 왜 예수님이 재촉하여 보낸 제자들이 타고 간 배가 풍랑을 만났는가?
제자들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맛보고 헛된 생각 품게 되는 것을 막으시려하셨습니다. 백성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려 하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배를 태워 건너편으로 보내십니다. 
동시에 자신들의 한계를 알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들의 전문분야는 갈릴리 바다였는데 그 전문분야에서 힘을 못 쓰게 하심으로 자신들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알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무리들과 제자들을 억지로 분리시키십니다. 재촉하셨다는 말은 강제로 억지로 보내셨다는 뜻이 있습니다. 왜요? 제자들이 교만해지지 않게 하고 겸손해 지도록 하시기 위한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2) 왜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시고 기도하러 홀로 산으로 올라가셨는가?
  우리 주님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존재를 깨닫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리러 가신 것입니다.
당시 제자들은 두부류였습니다. 한 부류는 예수님을 정치적인 메시야로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 나라를 로마 식민지 정권에서 해방될 날을 주님은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로 알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또 한 부류는 예수님을 선생님으로, 랍비로 따랐던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올바로 알고 믿도록 기도한 것입니다.
그 기도의 응답으로 풍랑이 닥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제자들은 주님이 기도하는 동안 바다를 건너지 못하고 바다 가운데서 죽을 고생을 하였습니다. 저물 때 떠났는데 밤 사경에 주님이 물위를 걸어서 다가 오셨습니다. 
 
3) 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가오실 때 물위를 걸어오셨을까?
예수님의 신성과 능력을 보이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아들 되심을 믿게 하려고 일부러 물위로 걸어오셨고 풍랑을 잠잠케 하신 것입니다. 자연 만물을 지배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이 예수님이심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4) 왜 예수님이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그쳤는가?
예수님이 만물을 다스리시는 진정한 메시야임을 그들이 믿게하기 위해서입니다. 결국 33절에 보면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저는 오늘 이 본문에서 몇가지 중요한 질문을 더 해보려고 합니다.
왜 베드로만이 주님에게 나도 걷게 해 달라 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왜 베드로가 물위로 걷다가 물속으로 빠져 들어갔는가 하는 것입니다. 정답은 여러분 모두가 다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함께 구체적으로 살펴보길 원합니다.

1. 왜 베드로만이 주님에게 나도 걷게 해 달라 했는가?

1)베드로의 도전정신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성격적으로 모험심이 강했습니다. 남들이 하는 것은 자신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모험정신이며 도전정신입니다. 신앙은 모험과 도전정신이 있을 때 성장합니다. 궁금한 것을 그냥 넘기면 안됩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도전 정신이 내 신앙을 성숙하게 합니다.
베드로는 이 나서는 기질을 가졌기에 넘어지기도 하고 부끄러움을 당하기도 하지만 이 도전정신이 그를 물위로 걷는 최초의 인간이 되게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예 도전 자체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냥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말씀 중에 가장 많은 내용이 두려워 말라, 담대하라, 그리고 믿음대로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나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무슨 일이든지 도전하고 성취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주님의 능력을 신뢰하였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이 말씀하시면 된다고 믿었습니다. 베드로가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위로 오라 하소서” 한 말을 자세히 보세요. 베드로가 그냥 단순한 호기심에서 말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 주님이시라면 나에게 명령하세요. 물위로 오라고 명령해 주세요. 그러면 나도 갈을 수 있을 줄 믿습니다.”라는 것입니다.
그는 주님이 능력이 있으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었습니다. 그가 말씀하시면 되는 것을 믿었습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걸으려고 했던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명령하시면 자신도 그 주님의 능력으로 걸을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렀습니다. 욥이 욥42:2에서 “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라고 했고 천사가 마리아에게 눅1:37에서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했듯이 우리 주님이 말씀하시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목사님도 물위로 걸을 수 있냐고요? 주님이 제게 물위로 걸으라 명하시면 걸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능력이 아닙니다. 주님의 능력입니다.

3)믿음이 기적을 만든 것입니다.
베드로는 어떻게 이런 믿음을 갖게 되었을까요? 본문 앞부분을 보세요. 그 내용이 뭡니까? 오병이어 기적 사건입니다. 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그 놀라운 현장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전능자임을 깨달았고 눈으로 보았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여러 가지로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믿었습니다. 그 믿음이 베드로의 가슴에 있었기에 그가 주님께 걷게 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었고 결국 걸을 수 있었습니다. 믿음은 대단한 힘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11장은 믿음장이라 합니다. 거기에는 믿음으로 살았던 우리 믿음의 선배들의 놀라운 삶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평범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 속에 믿음이 들어가면서 그들의 삶은 평범한 삶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 믿음이 기적을 만들고 놀라운 힘을 만들어내면서 그들 생애는 달라졌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속에 예수님이 여러분을 위해 죽으신 분이라는 믿음이 있습니까?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습니까? 2000년 전에 죽으신 그분의 죽음이 나를 위해 죽음임을 믿습니까? 그리고 그분이 성경에서 약속한 약속들이 반드시 이루어질 약속임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도 기적은 만들어지고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힘은 우리 속에도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안 된다, 못한다 하지 마시고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믿음으로 나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나는 여러분이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 라고 외치시기를 바랍니다.

또 하나
2. 왜 베드로는 물속으로 빠져 들어갔는가?

1)두려움이 임했습니다.
시퍼런 물위를 걷습니다. 신기합니다. 빠져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러는 중에 갑자기 두려움이 임하였습니다. 두려움이 임하자 믿음이 사라집니다. 결국 빠져 들어갑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두려움이 임하면 믿음이 사라집니다. 절대로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노라고 큰소리쳤던 베드로를 보세요. 주님이 잡혀가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닥치니 도망칩니다. 제사장 집 뜰까지는 슬그머니 따라왔으나 너도 그 예수와 한패라는 소리에 저주하며 맹세하여 부인합니다.
왜요?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두려움이 닥치면 그렇게 됩니다. 그러기에 임마누엘을 믿어야 합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세상 끝 날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는 말이 성경에 얼마나 많습니까? “두려워 말라” 이 말만 58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15:1 아브라함에게도 두려워 말라 하십니다.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창46:3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비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신7:21 너는 그들을 두려워 말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 곧 크고 두려운 하나님이 너희 중에 계심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고 그 약속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의심했습니다. 
베드로는 믿음으로 걸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환경을 보니 갑자기 의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빠지면 어쩌나 두려워했습니다. 결국 그 순간 베드로는 물속으로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물에 빠지는 베드로를 붙잡아 주신 주님 그에게 뭐라 하십니까?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의심! 이것도 두려움과 함께 기적을 만드는데 심각한 장애요소입니다. 인간은 전능자 하나님을 알면서도 내 능력에 비추어 불가능한 것은 안 된다고 믿습니다. 이 의심이 불신앙으로 전개되면 엄청난 파괴력을 갖게 됩니다. 마귀가 하와를 유혹할 때 이 방법을 씁니다.
창세기3:1 하반절을 보세요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의심케 합니다. 처음에는 의심케 합니다. 이 전략에 하와가 넘어갑니다.

성경에 의심이 생깁니까? 덮어놓고 믿으려 하지 마세요.
물론 우리 인간의 이해력으로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부분도 있으나 대부분이 상경이 이해되고 믿어지게 만들어져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배워야 합니다.
그냥 덮어놓고 믿어 하면 맹신이 될 수 있습니다. 의심이 지나치면 불신으로 발전될 수 있으나 의심을 말씀으로 잘 해결하면 굳건한 믿음이 됩니다.

성경의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치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전능하신 능력으로 무한대와 같은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 그리고 전능하신 능력으로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 그리고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신 하나님!
그분을 믿으면 우리도 베드로같이 물위를 걷어보진 못했으나 순간순간 하나님이 만드시는 기적을 체험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나도 베드로처럼 기적을 만들고 나도 베드로처럼 주님을 위해 일생을 바치며 사는 생애를 살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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