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인생의 자기 운영 (출 7:5~7)

  • 잡초 잡초
  • 212
  • 0

첨부 1


              그들이 바로에게 말할 때에 모세는 80세였고 아론은 팔십 삼세였더라.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첫째주일은 어린이 주일로 드렸고 둘째 주일은 어버이주일, 경로주일로 드렸습니다. 오늘은 중년의 삶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중년은 몸으로 말하자면 허리에 해당하는 중요한 때입니다. 그래서 중년은 중후한 인생의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년의 때는 무엇보다도 삶의 내용이 든든해져야 할 때입니다. 가정도 건실하고 사업도 건실하고 나라에 공헌도 해야 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든든한 헌신자가 되어 살아갈 때입니다. 그것이 중년의 때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모세의 일생의 모습을 통해서 중년의 모습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모세는 3기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모세의 인생을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제 1기 왕궁생활 40년

이때는 말하자면 모세의 청소년기의 때입니다. 성경에 보면 모세의 청소년기가 잘 나타나 있지 않지만 모세는 그때 불가능이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인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모세는 그때 왕궁생활을 통해서 엘리트의식에 사로잡혀 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잘 생기고 능력 있고 왕자들 가운데서 기골이 장대하고 능력이 특출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청소년기를 기고만장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런 때가 있습니다. 조금 성공하거나 공부를 좀 잘하면 기고만장하고 그때 좀 일찍 성공했다 싶으면 더 기고만장할 것입니다. 이때가 모세의 청소년기의 모습입니다. 모세의 청소년기는 한마디로 기고만장했던 불가능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시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 2기 연단의 생활 40년

사람이 기고만장하면 반드시 한번 꺾일 때가옵니다. 그래서 이탈한 궤도를 수정하게 됩니다. 모세는 그렇게 기고만장하게 살아가다가 어느 날 공사판에 나갔다가 싸우는 노동자들을 보고 말린다는 것이 한번 치게 되었고 그것이 그만 사람을 죽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에게 미움을 사서 그 길로 광야로 도망가서 좌절의 때를 보냅니다. 그때부터 40년 동안 모세는 광야에서 살인자로, 전과자로, 실패자로, 패배자로, 도망자로 전락한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순간적으로 전혀 다른 환경으로 전락합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이렇게 한 번씩 실패를 경험하게 됩니다. 사람이 기고만장할 때는 옆이나 위나 깊은 곳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모세가 그렇게 기고만장할 때 그의 눈에 아무도 안 보였습니다. 오직 자신의 능력만 보였고 실력만 보였고 수단이나 힘만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불가능은 없다 하고 자만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패하고 나서 보니까 비로소 보이지 않던 곳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이웃이 보이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자신의 무능이 보였고 자만했던 자신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까마득히 잊고 있던 하나님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40년 동안 광야에서 코가 쑥 빠져서 살아가다가 어느 날 호렙산으로 올라갑니다. 가서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 무릎을 꿇는다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이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이제는 당신의 뜻을 알았다는 말이고 뭔가 발견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서 무릎을 꿇는 생활이 참 중요합니다.

모세가 그날 호렙산에 올라가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데 80년이 걸렸습니다. 이 순간이 모세로 하여금 인생을 전환시키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그때 모세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으셨는데 오늘 비로소 모세가 무릎을 꿇으니까 찾아오셨습니다. 전에는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뭐라 하셨어도 모세가 알아듣지도 상관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실패자의 자리에서 비로소 겸손하게 무릎을 꿇으니까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런 면에서 실패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실패의 자리는 눈을 뜨게 하는 자리이고 옆을 보게 하는 자리이고 생각이 깊어지는 자리이고 깊은 곳을 보게 하는 자리입니다. 

어떤 사람이 집을 너무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집을 꾸미고 칠하고 단장하고 나가지도 않고 이웃도 모르고 오직 집안에 머물며 집만 단장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집에 불이 나서 다 타버렸습니다. 그러자 평소 왕래도 하지 않았던 이웃 사람들이 몰려와 불을 끄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건축업자는 집을 지어 팔려고 내 놓은 새 집에 와서 당분간 살라고 집을 선뜻 내주었습니다. 그 집에 가 보니까 새 침대에 새 이불에 화장실에 새 수건이 부엌에 먹을 것들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때 이 분이 비로소 마음과 인격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멋진 집에서 혼자 사는 것 보다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분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이번 일로 이웃이 어떤 것인가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화재로 인해서 집과 살림은 없어졌지만 이 일로 이해서 더 소중한 이웃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모세가 좌절을 맛보면서 비로소 눈이 뜨였습니다. 눈을 뜨고 보니까 이웃이 보였고 자신이 보였고 고난 받는 민족이 눈에 보였고 보이지도 않고 생각도 하지 않고 살던 하나님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내 인생의 저 밑바닥에 하나님의 섭리가 흐르고 있음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저 깊은 곳, 저 높은 곳, 저 높은 하나님의 뜻은 아무나 느끼고 보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가 그 경지를 보고 느끼는데 80년이 걸렸습니다. 그러니까 실패도 좌절도 중병을 앓는 것도 다 중요한 일입니다. 그 일을 통해서 사람들은 성숙하게 되고 눈을 뜨게 되고 깊은 세계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일을 합동해서 유익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제 3기 소명의 인생

모세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을 때 하나님이 그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새 사명을 주셨습니다. “너는 가서 고난 받는 네 동족을 바로에게서 구원하라.” 그래서 모세는 비로소 나이 80에 민족을 위해서 봉헌하는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40년 인생을 민족을 구원하고 출애굽 시키는데 인생을 송두리째 바칩니다. 그래서 모세의 제 3기 인생은 소명을 이루는 봉헌의 인생이었습니다. 

밥 버퍼드라는 분이 “후반전” 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하루 시간에도 오전시간이 있고 오후시간이 있습니다. 운동에도 전반전이 있고 후반전이 있습니다. 인생에도 전반전이 있고 후반전이 있습니다. 모세는 모두 120년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 인생을 3기로 나누어서 전반 중반 종반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모세의 전반 40년 인생은 기고만장하고 안하무인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중반 40년 인생은 실패와 좌절의 쓴맛을 경험한 생애였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때 인생의 깊이를 알게 되었고 깊은 곳을 볼 수 있는 눈이 뜨였습니다. 그리고 종반 40년 인생은 송두리째 하나님을 위하여 동족을 위하여 자신을 기꺼이 헌신시키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120년 인생가운데서 종반 40년간이 가장 빛이 나타났고 화려하고 소중하게 운영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인생도 그렇게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80여년 산다면 대략 35세 까지를 전반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때는 성공에 미쳐서 살아갈 때입니다. 대부분 성공하고 돈을 벌고 출세하기 위해서 인생의 초점을 다 맞추고 살아갈 때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정신없이 밤잠을 설치며 살아갑니다. 그 때는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때로 반칙도 서슴지 않습니다. 변칙도 구사합니다. 성공을 우상처럼 떠받들고 살아갈 때입니다. 그 때는 가족도 둘째고 이웃도 둘째고 신앙도 둘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별로 필요로 하지 않을 때입니다. 그것이 모두 반칙 인생입니다. 그때는 오직 성공을 위해서 모든 것을 투자하고 질주하며 살아갈 때입니다. 인생의 전반전은 모세의 청소년 시절과 같이 자기우선 입니다. 그래서 그 때는 얻는 것도 있지만 집이 불탄 사람처럼 잃는 것도 너무 많을 때입니다. 그 때가 너무 오래가면 안 됩니다. 그 시기가 오래 가면 잃어버리는 것이 너무 많아집니다.

클린턴 정부 때 경제정책을 주름잡던 로버트 라이사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때 이 사람은 권력의 실세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루아침에 그 자리를 내놓고 조용히 초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쓴 책이 “The future of success" 우리말로 ”부유한 노예“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습니다. 그 책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권력의 실세의 자리에 있을 때 너무나 기뻤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출근하는 것이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래서 퇴근하는 것이 싫을 정도로 돈과 권력에 빠져 살았습니다, 그런데 1년 2년 지나다 보니 관계하던 사람들과 단절되고 아내와 관계가 소원해지고 자식들과 관계도 금이 가기 시작했고 친구들과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나는 성공이 무엇인가, 무엇을 위한 권력인가, 무엇을 위한 출세인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나는 성공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고 일 중심 성공 중심 보다는 관계중심적인 삶을 살아야 되겠다고 다짐하면서 미련 없이 그 좋은 자리를 내 놓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출세가 중요하기는 합니다. 성공도 중요합니다. 물론 일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관계를 버리면서까지 가족과 멀어지면서까지 친구들과 관계가 깨지면서까지 성공을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결코 복이 아닙니다. 그렇게 살면 인생의 후반전에 들어가면 막심하게 후회를 하게 됩니다. 지금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뭔가 이루어 보겠다고 형제도 부모도 가족도 모른 채 일에 매달리고 출세를 위해서 동분서주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 마음에 하나님이 자리하실 여백이나 있겠습니까.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나 있겠습니까. 그 마음에 부모가 눈에 보이겠습니까. 형제도 보이질 않을 것입니다. 오직 보이는 것은 자신뿐일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뭔가 내 뜻대로 이룬 것이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아마 기고만장할 것입니다. 별소리를 다 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얼마나 자만하고 교만하고 큰소리를 다 하며 살아가겠습니까. 그런 모습을 보시고 시편 2:4절을 보면 “하늘에 계신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내려다보시고 웃으셨다”고 했습니다.

모세가 한때 그렇게 기고만장했습니다. 그래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었습니다. 그 때는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다 실패하고 40년 동안 초라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는 동안 눈이 뜨였습니다. 생각이 열렸습니다. 깊은 곳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때 비로소 모세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그 말은 깊이 깨달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순종할 준비가 되었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살겠다고 고백하는 태도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그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오셔서 하나님께서 새로운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너는 애굽에 가서 고난 받는 네 동족을 이끌어 내라” 그때 모세는 인생의 후반에 가서 새로운 사명을 부여받고 인생후반을 아주 소중하게 하나님을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 송두리째 바치게 됩니다. 그것이 모세의 인생입니다.

인생 중에서 젊었을 때는 비교의식이 큽니다. 그래서 동료들 보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애를 씁니다. 그래서 빨리 빨리를 외칩니다. “누구는 몇 년 만에 성공했다” 그 말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젊은 아내들은 당신은 왜 못하느냐고 따집니다. 그래서 낙심하기도 합니다. 빠른 것이 좋기는 합니다. 빨리 성공하고 빨리 돈 벌고 빨리 이루는 것도 좋습니다. 그래서 커닝해서 1등도 합니다. 반칙으로 뛰어서 1등을 하기도 합니다. 오늘은 이 빨리가 너무 우상화 되었습니다. 1등하면 어떻게 1등을 했느냐고 따지지도 않습니다. 그 과정을 묻지도 않습니다. 나타난 결과만을 보고 사람들은 성공했다 실패했다고 단정지어버립니다. 그래서 온갖 편법들이 난무하고 반칙이 난무하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중년이 되면 삶의 초점을 바꾸어야 합니다. 성공, 출세, 소유에서 그보다 더 중요한 일로 초점을 바꾸어야 합니다. 성공도, 출세도, 부자 되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것이고 내가 지금 무엇을 하느냐, 내가 지금 무엇을 알고 있느냐가 더 중요한 일입니다. 전반전에는 1등을 위해서 빨리 빨리 정신없이 뛰어 다녔다면 인생의 후반전은 의미를 따지고 격식을 따지고 얼마나 내가 옳은 가를 따질 때입니다. 하나님은 큰일을 많이 했을 때도 칭찬하시지만 그런데 어떻게 왜 그 일을 했느냐를 더 생각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양도 중시하시지만 무슨 생각으로 왜 그 일을 했느냐를 더 따지십니다. 그것이 성숙한 태도입니다. 그것이 중년이후에 생각하고 알게 되고 느끼게 되는 깨달음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사명을 부여받았을 때 모세는 한사코 사양을 했습니다. 하기 싫어서가 아니고 자신의 부족함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뭔가 알고 눈이 뜨이고 보니까 자신의 부족함이 보였습니다. 자신의 무능도 보였습니다. 그리고 두려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모세가 기고만장했을 때였다면 “염려마십시오, 제가 간단하게 해 치우겠습니다” 하고 말했을 것입니다. 원래 사람이 좀 무지할 깨다 가장 용기 있을 때입니다. 그런데 철이 들고 눈이 뜨이고 경험을 하게 되면 무엇보다도 부족한 자신이 눈에 보이게 됩니다. 그래서 사양하기도 하고 양보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처음에 하나님이 주시는 소명을 사양하다가 재차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이 주어졌을 때는 자신을 송두리째 헌신시켜서 혼신을 다해서 민족의 해방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내는데 몸을 던집니다. 

이것이 중년의 때에 할 일입니다. 중년의 때는 의미를 중시할 때입니다. 중년의 때는 더 겸손하게 엎드려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세로 살아갈 때입니다. 중년의 때는 더 소중한 것을 위해서 일할 때입니다. 중년의 때는 나를 떠나서 이웃을 생각하고 나라를 생각하고 민족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살아갈 때입니다. 유한양행의 창설자 유일한 씨는 미국에 유학 가서 기초를 닦고 터전을 이루었지만 조국을 위해 헌신하기 위해서 그 모든 것을 놓고 돌아와 가난한 민족을 살려야 한다는 뜻을 가지고 유한양행을 창립했다고 합니다. 연세대학교 총장을 지낸 송자총장은 미국에 터전을 다 이루어 놓았지만 조국을 위해서 뭔가 이바지해야 한다는 뜻 때문에 그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돌아와 일했습니다. 어떤 대학교수는 그 좋은 자리를 놓고 미개한 나라에 선교사로 떠났습니다. 인생의 중년 때는 무릎을 꿇게 되면 이런 생각을 갖게 되고 눈이 뜨이게 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중년의 인생입니다. 이것이 모세의 인생을 통해서 발견하게 되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입니다. 하나님은 오늘이 이렇게 우리 인생의 중앙에서 섭리하시고 역사하고 계십니다.
(이정익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