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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만나 교제하라 (출 34:2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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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세상의 빛, 세상의 소금, 너희는 그리스도의 편지, 그리스도의 향기!
이 세상을 향해 보여져야 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표징들, 어떻게 해야 이런 삶이 가능한가? 바로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나의 삶이 저절로 빛의 삶이 된다. 향기로운 삶, 편지로서의 삶, 소금의 맛을 내는 삶이 된다.
출34:29 이하의 모세를 보라. 모세가 하나님과 대면하고 시내산에서 내려올 때 하나님과의 깊이 있는 교제는 얼굴 꺼풀에 광채가 나게 하였다. 사람들은 모세 곁에 가까이 가는 것이 두려웠다. 아론도, 이스라엘 자손도 광채 나는 모세 얼굴에서 하나님에 대한 경의감을 느꼈던 것이다. 결국 빛으로, 향기로, 편지로, 어떤 표징으로든지 하나님의 사람, 예수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라고 그 권위를 인정받는 것은 그 출처가 하나님과 만나는데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만나고 교제함으로써 말씀을 받는 것, 영광의 광채를 받는 것, 그것이 우리에겐 중요하다. 나의 삶이 이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나게 될 때 하나님 임재의 표징이 있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얼굴에 하나님의 빛이 어려있는가? 영광의 사인이 우리의 삶 속에 나타나고 있는가?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 질문이어야 한다. 겉사람을 단장하기에 바쁜 우리들은 우리의 얼굴에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사람이라는 흔적이 있는지 조차도 모른다. "아! 저 사람은 성령의 사람이로구나!" 이런 것조차 나타나는지 모른다.
사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을 수 있다.

1. 본인은 모를 수 있다. (출34:29)

출34:29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씀하였음을 인하여 얼굴 꺼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자신의 얼굴이 해처럼 빛나고 환한 모습이 되었는지 자신이 알 수는 없다. 본래 자신의 빛나는 얼굴은 자신이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목사 티가 나는지, 선생 티가 나는지 잘 알 수 없다. 예전엔 교회에 오는 사람들이 나를 목전에 두고도 목사님이 어디 계시냐고 묻곤 하였다. '「목사가 여기 있음」이라고 써 붙여야 하나, 목사 티를 내야 하나?' 고민스럽다. 요사히는 "목사님이시죠?"라고 묻는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릴 때 "오목천교회 목사님이시죠?"라고 묻는다. 그래도 난 잘 모른다. 시장에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교인인지 아닌지는 잘 안다. 그러나 나는 모른다. 산기도를 하고 내려왔다 해서, 금식기도하고, 성령체험을 했다고 해서 내 얼굴에 빛이 나는지 나는 잘 모른다. 하나님의 임재란 하나님이 내 삶에 내려오시고 동행하는 것이기에 나는 잘 모른다.

2. 다른 사람이 알 수 있다. (출34:30)

출34:30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꺼풀에 광채 남을 보고..."
본인은 자기 얼굴을 몰라도 타인들은 나를 잘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나 자신을 잘 모른다해도 다른 사람들은 내가 무엇 때문에 얼굴에 빛이 나며 또는 어두워져 있는지 알 수 있다.
창21:22을 보면 아브라함은 그랄 왕 아비멜렉과 군대 장관 비골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아브라함은 여전히 아내를 누이라고 하여 어려운 위기를 겪게 되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아내를 이방 왕에게 빼앗기는데서 보호해 주시고 또 태의 문이 닫힌 아비멜렉의 아내를 위해 기도하므로 태의 문을 열게 하셨다. 이런 아브라함은 또 100세가 되어 아들을 낳아 젖을 뗄 때 큰 잔치를 베풀게 되는데 아브라함의 삶은 하나님이 철저히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축복하시는 삶이었다. 이것을 바라보는 아비멜렉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아브라함을 보게 된 것이다.

나는 몰라도 다른 사람들은 안다. 나는 나를 보지 못해도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본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방 사람에게 신앙인 인지 불신앙인 인지 판단 받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당신을 보니 예수 믿어야겠어, 당신을 보니 하나님은 틀림없이 계셔. 얼굴에 쓰여 있어." 이런 말을 들어라. 나는 나의 삶을 잘 몰라도 다른 사람들은 알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직하라. 더욱 신실하라.

3. 겸손하라. (출34:33∼35)

나는 나를 모르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알게 되니 우리는 잘난 척 해서는 안된다. 더욱 친철하며 상냥해야 한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표징, 얼굴에 나타나는 광채들을 일부러 나타내려 하지 말라. 오히려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말하라. 가능하면 모세처럼 얼굴을 가리우라.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얼굴을 볼 때 영광스런 광채만 보는 고로 모세는 안타까웠다. 영광의 빛을 주신 하나님을 보아야 하는데 모세만 보려하니 잘못이다. 얼굴을 가리우는 것이 더 좋은 일이다. 성령의 영광, 주의 영광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자랑하려 하지 말라. 가리우라. 은혜를 받으면 겸손하라. 가리우는 것이 매력이다. 먼저 말을 건네라. 먼저 인사하라. 먼저 허리를 굽히라. 먼저 섬겨라.

4. 권위가 세워지게 된다. (출34:30下∼33)

권위는 내가 세우려 한다고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권위의 출처는 하나님이고 하나님이 보장해 주시면 권위있는 리더가 된다. 모세는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산한 것 뿐이다. 그러나 모세의 얼굴에 빛나는 광채를 보고 사람들은 모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 하였다.

출34:31을 보면 모세가 사람들을 먼저 부른다. 자기를 먼저 열어 보이는 것이다. 친절하고 교제하기를 먼저하는 것이다. 출34:32을 보면 "그후에야 온 이스라엘 자손이 가까이 오는지라" 하였다. 사람들은 모세에게 경의감을 느꼈다. 감히 가볍게 다가갈 수 없는 카리스마를 느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의 축복은 다른 것이 아니다. 내가 먼저 말을 건네고 내가 먼저 인사를 하고 섬기고 내가 인간의 한계를 지닌 약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이 역사하는 사람이 되면 사람들은 그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심스럽게 귀하게 여긴다. 약한 사람 뒤편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기에 보잘 것 없는 그 사람을 섬기려는 마음, 순종하려는 마음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사무엘을 보라.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일할 때 그의 권위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에서 생겨났다. 삼상3:19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사무엘의 말이 입에서 나오면 그 나온대로 성취되며 합당한 말이 된다. 축복의 말을 하면 축복이 맺혀지고 안된다고 하면 말대로 안된다. 그렇게 된 이유는 하나님이 보장이 되어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대로 되어지는 사무엘의 삶은 존경의 대상이 되어 권위가 세워졌다.
우리는 존경을 받으려 애쓰지 말자. 권위를 세우려 권위주의자가 되는 실수를 저지르지 말자. 목에 힘주지 말고 큰소리로 고집 부리지 말자. 우리가 하나님과 말씀을 나누며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 되면 그리고 사람에게 겸손하면 저절로 권위를 세워주시고 놀라운 역사가 동반되게 해 주신다. 나의 방법을 앞세우지 말자.

중세의 사람 성 프란시스는 사물과도 이야기를 나누는 대물 방언의 은사가 있었다. 하루는 큰 늑대 한 마리가 어린 아이 몇 명을 죽임으로써 사람들을 두려움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이 사실을 안 프란시스는 그 늑대가 나타나는 장소를 찾아가서 늑대 앞에 다가갔다.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먼발치에서 프란시스를 바라보는데 사나운 늑대는 큰 입을 벌리고 프란시스를 삼키려고 으르렁거리며 다가왔다. 그때 프란시스는 부드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외쳤다. "오라, 늑대여 나의 형제여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네가 나와 다른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을 것을 명령한다." 권세 있는 예수의 이름으로 외칠 때 늑대가 갑자기 입을 다물고 머리를 숙인 체 양처럼 프란시스의 발 앞에 누워 뒹굴고 있었다. 프란시스는 발 앞에 누운 늑대를 향하여 마을을 혼란케 하거나 두려워 떨게 하지 말 것을 권유하였다. 이에 늑대는 꼬리를 흔들고 머리를 끄덕이고 숲속으로 사라졌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프란시스를 존경하게 되었는데 실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권위인 것이다.

19세기의 전도자 찰스피니는 1826년 친척이 감독으로 있는 제조 공장을 방문하였다. 많은 여공들이 베틀과 방직 기계에서 일하는 커다란 방을 지날 때 여자들 몇몇이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었다. 피니가 가까이 다가가자. 그들은 더 심하게 동요하였고 피니가 그의 앞으로 다가가자 한 여자가 바닥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곧 다른 사람들도 흐느끼기 시작하였는데 자신들의 죄가 마음에 찔렸기 때문이었다. 성령의 역사는 순식간에 건물 전체로 퍼져 온 공장이 하나님의 임재를 느꼈다. 불신자인 사장도 하나님이 역사하고 계심을 느끼고 잠시 공장 문을 닫았다. 그는 피니에게 설교를 부탁하였다. 영혼의 평안을 찾는 법을 말해 달라는 것이었다. 피니는 그 누구에게도 말을 건네지 않았다. 다만 공장 안을 걸어갔을 뿐인데 피니의 삶 속에 거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보여주시는 거룩한 영의 임재가 너무나 강해서 주변을 압도하며 사람들을 뒤흔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 친교를 깊이 할수록 하나님은 함께 하심의 표식을 주신다. 웨슬리가 성령 충만함을 받고 설교하는데 강도들이 웨슬리를 돌로 치려 하는데 설교하는 그의 얼굴에 빛이 났다. 그래서 "저 사람 천사인가봐" 하니까 또 하나의 강도는 "천사같은 사람이야"라고 하였다.

하나님과 교제하라. 다른 사람이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도록 역사해 주신다. 모세의 권위는 하나님과의 만남에서 왔다. 양치는 목동, 혈기부리다 망명객이 된 모세, 보잘 것 없는 지팡이 하나를 들고 바로 앞에 나서게 된 모세, 그를 지도자로 누가 따를 것인가? 누가 그를 신뢰할 것인가? 그러나 그에겐 하나님과의 확실한 만남이 있었다. 호렙산에서의 거룩한 하나님과의 만남, 방황하던 40년을 청산하는 가시떨기 나무 앞에서의 만남이 있었다. 그리고 시내산에서 약속의 돌판을 받을 때 나타나신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 40일간의 금식기도와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받는 만남이 있었다. 만남이 그를 지도자로 만들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방법은 학력으로, 신앙의 경력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다. 박사 가운을 입고, 남보다 더 나은 지위를 얻는다고 일하는 것이 아니다. 조직을 잘하고 사람을 잘 선택하는 것보다 더 우선의 일은 하나님과의 만남이다. 금식의 만남이 우선이다. 말씀을 받는 만남이 우선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란 표징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나의 약함, 나의 못남,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오히려 하나님의 일은 성취된다.

오늘 우리의 삶의 초점을 다른 것에 두지 말라. 하나님의 함께 하시는 역사, 하나님의 임재가 내 삶 속에 일어나는데 관심을 가지라. 은을 구하는 것만큼 금을 구하는 것만큼 영적인 일,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에 집중한다면 당신의 얼굴이 달라질 것이다. 정말 모세처럼 금식한다면, 주야로 기도한다면, 말씀을 듣는 일로 하나님과 친교하며 하나님과 함께 머물려 한다면, 모세의 영광은 당신의 영광이 된다. 주의 얼굴을 사모하려 한다면 우리의 얼굴이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게 될 것이다. (고전3:18)

우리는 거울과도 같다. 무엇을 대면하느냐에 따라 우리에게 바라본 것들이 타나난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의 얼굴을 보라. 추하고 더러운 내게 거룩한 하나님의 빛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얼굴이 빛나고 영혼이 빛나고 사역이 새롭고 가정이 새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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