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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갇힌 자, 학대받는 자(II) (히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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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몇 십 년 전의 일이 되었지만, 제 사촌동생 중에 한 명이 해군에서 위생병으로 복무한 적이 있었습니다.
  언젠가 휴가 나왔을 때에 제게 이야기를 해주는데, 수병들이 배에 매달려서 페인트칠이나 함정 수리 따위를 하다가 위쪽에 있는 누가 망치 따위의 연장을 떨어뜨리게 되면 밑에 있는 사람의 머리가 찢어지는 사고가 발생하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머리뼈가 크게 다치지 않은 경우에는 군의관이 돌볼 것도 없이 위생병이 직접 그 찢어진 부위를 몇 바늘 꿰매어주는 것으로 치료를 끝내는데, 제 사촌동생의 말에 의하면 마취제도 쓰지 않고 그냥 꿰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제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아니, 너는 의사도 아닌데, 더구나 마취제도 없이 어떻게 그렇게 하니? 자기 머리를 바늘로 꿰매는 사람은 얼마나 아프겠냐?"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제 사촌동생 대답이 걸작이었던 것이, "내 살 아닌데, 뭐."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당시 군대에서는 모든 물자를 가능한 한 아껴 써야만 했으니 마취제 같은 것도 넉넉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병사로 하여금 전투 훈련 때에는 물론이요 치료 받을 때조차 군인으로서의 인내를 키우게 한다는 취지에서 그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어디까지나 '내 살 아닌데.'라는 전제 하에서 성립되는 것이지, 그것이 '내 살'일 경우에는 그렇게 생살을 바늘로 꿰맨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학대받는 자'를 생각할 때에는 그 학대받는 몸이 그처럼 바로 '내 살'이라고 가정하고 생각해볼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8.15 해방 61주년을 맞이하여 '갇힌 자와 학대받는 자를 생각하라'는 제목을 가지고, 지난 주일에는 북한 공산독재정권에 의하여 자유와 생존권을 박탈당하고 '갇혀있는' 북한 동포들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먼저 가졌고, 오늘은 거기에 이어서 두 번째 대지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2. 우리는 북한 공산주의의 무신론 정권에 의하여 '학대받고 있는'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본문 하반절에 "자기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지난 주일에 잠시 언급해드렸지만 당시 로마제국에 의하여 체포된 사람들이 당하는 육체적인 학대는 정말 끔찍한 것이었습니다.
  그때의 감옥이라는 것은 춥고 덥고 습기 차며 온갖 벌레들이 들끓는 장소로서, 비위생적이라는 말 정도로서는 표현조차 되지 않을 정도였으며 결코 사람이 장기간 동안 살 곳이 못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그런 로마 감옥 생활을 하면서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의 1차 투옥은 아마도 일반 가옥 같은 집에서 일종의 연금 상태로 있는 것이었지만, 순교를 앞둔 2차 투옥 때에는 진짜 감옥에 갇혀 있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바로 그 기간 중에 쓴 디모데후서 4장 13절에 보면, "네게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고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부탁하는 말이 나옵니다.
  '겉옷'을 갖다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그 감옥생활이 추웠기 때문이며, 성경책을 '가죽종이에 쓴 것' 즉 양피지 두루마리로 된 것을 부탁한 이유는 감옥 안의 눅눅한 습기 때문에 파피루스에 쓴 책은 금방 상해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처럼 육체적으로도 하루하루가 괴롭기 짝이 없는 감옥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던 형편인 데다가 자기를 면회와주는 사람마저 하나 둘씩 발길이 끊어지는 바람에 인간적인 외로움의 고통이 극에 달했던 사도 바울이었던 까닭에, 그는 디모데를 향하여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고, 자기의 사랑하는 후배가 목회사역에 바쁠 줄 잘 알면서도 그런 간절한 마지막 부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실 어떤 면에서는 죽음 그 자체보다도 죽기 전까지의 학대와 고문이 훨씬 더 견디기 힘듭니다.
  그래서 주기철 목사님께서도 감옥생활의 극심한 고통과 무서운 고문 때문에 "하나님, 저 이러다가는 순교 못합니다."라는 기도까지 드렸다고 하지 않습니까?
  바울 같은 사도나 주기철 목사님 같은 순교자와 꼭 같이 오늘날의 저나 여러분들 역시, 고통스럽게 서서히 죽는 것보다는 그냥 총 한 방 맞고 당장 죽는 것이 훨씬 쉬운 것입니다.

  바로 그런 까닭에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25장 31절 이하의 비유에서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가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돌아본" 자들은 그 "오른편"에 있는 "양" 무리 가운데 두고, 그렇게 하지 아니한 자들은 그 "왼편"의 "염소" 무리 가운데 둘 것이라고 하신 것 아니겠습니까?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란 두말할 필요 없이 성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된 성도가 옥에 갇혀서 고생을 하고 있는 데도 그를 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비록 신자처럼 보였고 교인의 이름은 가지고 있었다 할지라도 실상은 불신자나 꼭 마찬가지인 까닭에 그 마지막에는 '염소'의 무리로 분류되고 영벌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처럼 "학대받는 자"를 생각할 때 꼭 필요한 자세가 있는데 바로 "자기도 몸을 가졌은즉"이라는 말씀이 강조하는 바입니다.
  이것은 바로 '내 몸'이 학대당하고 있다고 가정을 해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학대받는 자"의 "몸"이 '남의 살'이 아니라 바로 '내 살'이라고 여기고, 지금 그 내 살이 찔리고 찢기고 짓물러터지고 썩어가고 있다고 생각해보라는 뜻입니다.
  물론 이것도 그렇게 상상해본다는 것조차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께서는 지금 자기 팔을 한번 세게 꼬집어보십시오.
  아프시지요?
  저와 여러분이 그처럼 아픔이 느껴지는 "몸을 가졌은즉" 그보다 훨씬 극심한 고통을 매일 당하고 있는 "학대받는 자"들을 꼭 "생각"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고 교회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는 성도들의 '지체의식'이 아니겠습니까?
  바로 고린도전서 12장 25절과 26절에 "25b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26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팔을 꼬집으면 어디 팔만 아픕니까?
  그 고통은 온 몸이 함께 느끼게 됩니다.
  몸 어디 한 군데만 지독하게 아파도 몸 전체가 땀을 흘리고 경련을 하면서 같이 괴로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 몸' 안에 있는 '지체'들은 서로 신경과 핏줄로 다 연결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그런 생각을, 즉 '학대받는 자'들이 당하는 고통을 '자기 몸'으로 당하는 것처럼 실감해보려고 노력을 하면서 그런 핍박받는 성도들을 기억하는 것을, 지금 이 순간 그 누구보다도 먼저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을 두고 해야만 합니다.
  이들이 당하고 있는 일은 교회사에 나오는 한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사실입니다.
  이들이 매일 매순간 그 몸으로 당하고 있는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고통은 지어낸 이야기나 약간의 과장도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만큼을 그대로 말로 전달해주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기독교 역사상 최악의 박해입니다.

  북한은 원래 평양신학교를 중심으로 하여 일제 때부터 해방 직후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기독교 부흥이 사실상 남쪽보다 훨씬 더 크게 일어났던 곳입니다.
  하지만 해방 이후에 북한에 진주한 소련은 북한을 공산화하는 데에 가장 큰 장애물이 바로 기독교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당시 조만식 장로를 중심으로 한 건국준비위원회를 무시하고 김일성을 내세운 공산괴뢰정부를 세웠고, 북한의 5개 노회들이 연합하여 소련군정과 김일성의 인민위원회의 북한 공산화 운동에 대하여 5개 항목의 성명서를 발표하자 이에 대항하여 강양욱 목사를 앞세운 '조선기독교연맹'을 1946년 11월 28일에 결성하여 교회와 목사들로 하여금 북한의 공산화에 적극 협력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결국 북한의 교회들은 여기에 야합하여 북한 공산화에 일조하든지 아니면 신앙양심을 지키고 순교를 택하든지 기로에 서게 됩니다.
  실제로 김일성의 공산정권은 자기에게 반대하는 많은 목사와 장로들을 6.25 사변 직전에 처형하기 시작했고, 그런 핍박이 심화되는 가운데 북한 교회 성도들의 일부는 남한으로, 혹은 당시만 해도 어느 정도 신앙 자유가 있던 만주로 피신을 했었습니다.
  그리고는 6.25 사변이 일어나게 되었고 그 동란 중에도 많은 북한 교회의 성도들이 남한으로 피난을 왔으며, 1953년 7월 휴전협정 이후에 북한에는 '조선기독교연맹'을 제외하고는 아무 노회도, 교회도 남지 않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북한에는 바로 그 '조선기독교연맹'이 존재하고 있으며 공산당이 1988년에 평양에 직접 세운 소위 저 유명한 '봉수교회'와 김일성이 어릴 때 교회에 다녔다는 동네에 세워진 '칠골교회'라는 것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런 기독교 단체나 교회들이 대외전시를 위한 선전용이라는 것은 무슨 자질구레한 설명이 필요 없는 뻔한 사실입니다.
  소위 봉수교회에 가서 예배드리고 왔다는 목사들에게 직접 한번 물어보십시오.
  그 교회 찬양대원들이 너무 찬양을 잘해서 예배 끝난 뒤에 "어떻게 그렇게 노래를 잘 부르느냐?"고 물어보았더니, 그 중에 한 명이 대답하는 말이 "뭐 이런 정도의 노래는 악보만 척 보면 금세 부를 수 있어요."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그 찬양대는 전문 성악인들을 동원해서 그날 급조한 것이었고, 그런 까닭에 그들은 그 찬송을 그 이전에는 한 번도 불러보지도 못했지만 그날 아침에 나누어준 악보만 보고도 쉽게 합창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헌금 순서도 있기는 했지만, 사람들이 주먹만 쥐고 헌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빼는 것이 그 남한에서 갔던 목사의 눈에도 보였다고 했습니다.
  물론 목사의 설교라는 것도 순전히 김일성 찬양이고 기껏해야 남북이 화해해야 한다는 정도의 말이 들어가는, 순전히 '정치선전'이나 다름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예배가 끝나자 그 모였던 교인들이라는 사람들이 다 같이 단체로 어디론가 떠나버렸는데, 원래가 단체로 동원된 사람들이니까 떠날 때에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뻔한 일이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한민국에서 목사라는 사람들이 그런 조선기독교연맹의 허수아비 목사들과 신앙 교류라는 것을 하면서 마치 북한 공산정권이 신앙의 자유를 허용해주고 있는 것처럼 선전을 해주는, 부끄러운 '적과의 동침'을 버젓이 자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의 진짜 교회는 6.25 사변 이후 지하로 잠적하여 여전히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1958년 평북 용천의 이관화 목사 사건, 1959년 박천에서의 인민학교 여교사 체포와 그 이후 1966년까지의 잔여 교인들의 색출사건, 1968년 평남 온천군 운하리의 박 목사 사건, 1974년 10월 함흥에서 적발된 김태용 목사와 교인들의 소탕 사건, 그리고 1970년대 이후 적발된 기독교인 수천 명을 유배시킨 일과 최근에 신의주 자강도, 함북, 황해도 등지에서의 지하교회 적발사건 등은, 북한에서 여전히 지하교회가 명백을 유지하고 있음을 충분히 증명해줍니다.
  그야말로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사 6:13) 오늘도 암혈과 토굴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거룩한 씨"들이 "이 땅의 그루터기"처럼 끈질기게 살아남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지하교회의 자세한 내막은 무슨 정상적인 취재나 소식을 통해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일반 대중들의 사는 모습도 사진 한 장 마음대로 찍지 못하는데, 지하교회 성도들의 모습은 두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그런 지하교회의 모습을 보았거나 그런 지하교회 생활을 하다가 탈북한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증언은 사실상 북한의 실상에 대한 그 어떤 기자의 기사보다도 훨씬 더 사실에 가까운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제가 대표적으로 한 명을 소개해드립니다.
  탈북자 이순옥 씨는 원래 함경북도에서 당간부 전용물자 공급소장을 지낸 고위 공산당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보위대 간부의 뇌물 요구를 거부한 뒤에 정치범으로 몰려서 13년 형을 받고 평남 개천 교화소에서 7년 동안 복역한 뒤에 1992년에 특사를 받아 출옥하게 되었고, 1994년에 아들과 함께 중국을 거쳐서 탈북에 성공했습니다.
  그 이후에 이순옥 씨는 인권단체인 '프랑스 리베르테'의 초청을 받아 파리의 공개방송에서 북한 인권 실태에 대하여 증언하는 등, 북한 자유화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대표적인 사람들 중에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그녀는 김일성 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기 때문에 정치범 수용소에서도 죄수들의 생산 지휘와 재정 업무를 맡게 되어서 수용소 안의 작업장 여러 곳을 가볼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재정부장 교도관이 그녀를 불러놓고는 "너는 오늘부터 매일 어떤 공장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 공장에는 당과 수령님을 믿지 않고 하늘을 믿는 미친 정신병자 놈들만 모여 있으니 너는 정신 바짝 차리고 그 곳에 가야 한다. 그리고 그 미친 자들 하고는 절대로 눈길 한 번 마주치지 말아라. 그렇지 않고 네가 그자들이 믿는 하늘을 믿게 되면 네 목숨은 여기서 끝나게 될 것이다."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어지는 이순옥 씨의 증언을 지면 관계상 어쩔 수 없이 부분적으로만 발췌해드립니다.

  "그런데 거기 가서 그 사람들을 보는 순간 나는 너무 놀랐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무리 같지 않았습니다. 1,500도 이상 시뻘겋게 타오르는 용광로의 고열 노동 작업장이었는데,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을 때 무슨 짐승의 무리 같기도 하고 외계인 같기도 하고 도무지 사람의 모습을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머리에 머리카락이 붙어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얼굴은 해골 같고 이빨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키가 다 줄어들어서 120센티, 130센티 정도로 땅에 딱 붙은 난쟁이들처럼 움직였습니다. 나는 가까이 가서 그들을 보았습니다. 전 너무나 놀랐습니다. 잡혀올 때에는 정상인들이었는데 거기 와서 하루 열여섯 시간, 열여덟 시간 먹지도 못하고 그 고열 속에서 노동을 하다 보니 그 사람들은 척추가 녹아내려서 뒷잔등에 혹이 되어 있었고 몸이 다 휘어져서 앞가슴하고 배가 마주 붙어 있었습니다.(중략) 저는 처음에 그 사람들을 멀리서 보았을 때 모두가 꺼먼 옷을 입고 있는지 알았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찬찬히 보니 그 사람들은 맨 살가죽에다 앞에 시커먼 고무 앞치마 하나만 걸치고 있었습니다. 용광로의 뜨거운 불꽃이 앙상하게 말라붙은 살가죽에 튀고 또 튀고 딱지가 앉고 그 자리에 쇳물이 떨어지고 또 떨어져서 타버리고 해서 그 사람들의 피부는 한 곳도 성한 곳이 없었고 마치 들짐승의 가죽과 같았습니다."

  "어느 날 저는 그 곳에서 정말 말로 전하기 힘든, 너무나 끔찍하고 참혹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중략) 작업장 한 가운데 수백 명의 죄수 아닌 죄수를 모아놓고 담당 교도관들 두 명이 눈에 핏발을 세우고 미친 듯이 고함을 치며 날뛰고 있었습니다.(중략) 교도관들은 수령님을 믿지 않고 하늘을 믿는 미친 정신병자놈들이라고 소리소리 지르면서 그 사람들을 차고, 때리고 하면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하고 있었습니다. 교도관들은 '너희들 가운데서 단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 대열 앞에 나서라. 하늘을 믿지 않고 수령님을 믿겠다고 하면 자유세상으로 보내서 잘 살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하면서 그 사람들을 윽박지르며 하늘을 거부하라고 채찍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이상했습니다. 수백 명의 그 사람들은 왜 그런지 아무 대답도 없이 그렇게 매를 맞으면서도 침묵으로 맞섰습니다. 저는 너무나 무서워서 '빨리 한 사람이라도 나서야 되는데, 그래야 오늘 누가 맞아죽지 않을 텐데 왜 계속 저렇게 입을 다물고 있나... 저러고 있으면 또 누구를 끌어내다가 밟아 죽일지 모르는데, 빨리 한 사람이라도 나서야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마음속으로 다급하게 생각하며 문 옆에 서서 무서움과 공포 속에서 떨고 있는데, 예수를 믿는 그 사람들은 계속해서 침묵으로 대응했습니다."

  "그 때 독이 오른 교도관이 그 사람들에게 달려가서 닥치는 대로 아무나 여덟 명을 끌어내다가 땅바닥에 엎어놓았습니다. 그리고는 구둣발로 내리밟고 짓이겼습니다.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고 허리며 팔다리뼈가 부러졌습니다. 그 사람들은 고통 중에서도 몸을 뒤틀면서, 짓밟힐 때마다 신음소리를 냈는데 그 신음소리가 너무나도 이상하게 들렸습니다. 저는 그때 '주님이 누군지, 하나님이 누군지' 전혀 몰랐습니다. 뒤에 알고 보니 그 사람들이 고통 중에서도 몸을 뒤틀면서, 짓밟힐 때마다 뼈가 부러지고 머리통이 부서지면서 신음소리처럼 애타게 불렀던 것이 바로 '주여, 주여'하는 이름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그 사람들이 당했던 고통의 천 만분의 일도 제대로 여러분에게 전해주지 못합니다. 미쳐 날뛰던 교도관들은 '수령님과 당을 믿는 우리가 사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믿는 너희가 사는가 보자!'하면서 달려가더니 펄펄 끓는 쇳물통을 끌어왔습니다. 그리고는 피투성이가 된 그 신자들 위에 부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순식간에 살이 녹고 뼈가 타면서 숯덩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저는 난생 처음으로 내 눈앞에서 사람이 숯덩이로 변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그 충격이 컸던지, 그 곳을 어떻게 튀어나왔는지 기억에도 없습니다. 그리고 얼마동안 도무지 눈을 감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정신적 충격으로 눈만 감으면 눈앞에 숯덩이가 된 사람들이 어른거려서 도무지 눈을 감을 수도 없고, 잠을 잘 수도 없었고, 일을 제대로 할 수도 없었으며,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고 정신이 들어갔다 나갔다 했습니다."

  "저는 그 일을 목격하기 전까지는 그래도 마음속 한 구석에 실오라기만큼이라도 수령님과 당에 대해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때 깨달았습니다.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를 말입니다. 인간은 주님을 꽉 붙잡아야 된다는 것을 저는 그때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다시, 우리 어머니가 평생을 하늘에 기도했다는 그 하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너무나도 간절하게 하늘을 찾았습니다. '저 사람들이 저렇게 불에 타 죽으면서도 거부하지 않고, 목숨 걸고 믿는 하늘이, 진짜로 그 하늘이 어디에 계시다면 나를 좀 살려달라고..... 그리고 저렇게 무서운 짓을 하는 저 자들에게 하늘에서 정말 벌을 내려야 하지 않겠냐고' 그렇게 마음속으로 부르짖으며 자나 깨나 꿈속에서도 하늘을 찾고 또 찾고 기원했습니다.(하략)"

  바로 그 기도가 응답이 되어 이순옥 씨는 기적적으로 조기 석방을 받게 됩니다.
  모든 죄수들 앞에서 그 특사의 소식이 공포되는 순간, 그 자리에서 "목을 무릎에다 끼우고 맨 앞줄에 엎드려 있던 신자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동시에 고개를 번쩍 들었는데" 이순옥 씨는 그들의 눈빛에서 '밖에 나가거든 우리들의 실상을 세상에 알려 달라.'는 간절한 부탁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바로 그 잊을 수 없는 눈빛의 약속을 따라서 북한 신자들에 대한 탄압과 박해를 폭로하면서, 끝으로 이렇게 당부합니다.
  "여러분, 이 땅에서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철.저.하.게.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북한을 위해 '꼭'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입니다.
  저는 그 외에도 북한 지하교회에 대하여 탈북자들이 증언하는 끝없는 참상들과 그들이 친필로 쓴 눈물 젖은 편지들을 공개할 시간이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성도님 여러분, 제가 북한 공산당과 김정일 독재정권이 이처럼 우리의 이천만 동포의 자유를 박탈하여 가두어 놓고 특히 우리의 신앙 형제들을 학대하고 있다고 설교를 하면, "성경에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는데, 목사가 어떻게 이런 설교를 할 수 있는가?"라고 비판하는 인터넷 댓글들이 자주 뜹니다.
  제 표현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마는, '개똥철학'이라는 말도 있듯이 '개똥신학'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것은 우리의 개인적인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말씀이었지 결코 악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뜻이었을 수가 없습니다.
  김정일과 북한 공산독재정권이 저지르고 있는 악한 일을 도대체 어떻게 용서하고 사랑해줄 수 있다는 말입니까?
  왜 김정일은 사랑해주어야 한다면서 그 김정일에게 그토록 압제와 고통을 받고 있는 이천만 명의 형제들은 사랑해주기는커녕 까마득히 잊고, 아니 아예 모른 채 외면하는 것입니까?
  그런 사람들에게 한번 되물어 보십시오.
  그들은 이 대한민국의 군사독재자들을 용서하고 사랑했습니까?
  정말 웃기지도 않는 '개똥신학'입니다.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이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깨닫고 실천하는 신자는, 비록 김정일 때문에 자신이 죽임을 당하게 될 때에도 개인적으로는 그를 용서하고 그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지만, 그가 온 민족에게 저지르고 있는 이 극악무도한 죄에 대해서는 결코 용납할 수도 없고 침묵해서도 안 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김정일도 사랑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소위 기독교인들이나 목사들은 그야말로 '천사의 탈'을 쓰고 있는 '거짓 선지자'들일 뿐입니다.

  몇 년 전에 중국 신천으로 탈북하게 된 2명의 지하교회 여성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녀들이 구출된 후에 제일 먼저 했던 말이 "남조선 사람들이 북조선 사람들을 생각이나 한대요?"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쌀 보내줍니까? 김정일 정권 타도를 위해서 노력합니까? 탈북자를 돕기 위해서 힘을 쓰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이 아니라, 그들의 첫 질문은 "우리를 생각해줍니까?"였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들께서는 이 북한 동포들을 생각이라도 해주고 있습니까?
  미국이 우리의 원수라고 입에 침을 튀기는 사람들, 이 북한 동포들을 생각하고 있습니까?
  남북이 주체사상으로 뭉쳐야 하고 대한민국도 벌써 적화통일 되었어야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지금 그 김정일 우상화에 사로잡혀 있는 북한동포들을 생각은 하고 있습니까?
  김일성과 포옹한 것을 두고 무슨 선교 활동이나 하고 온 것처럼 자랑하는 목사, 김일성 동상 앞에 가서 참배하고 와서 남북 화해의 길을 열었다고 자랑하는 목사들, 그들은 바로 그 김일성과 김정일에게 죽임당한 이름도 모를 수많은 목사들과 성도들을 생각이나 하고 있습니까?

  그 알 수 없는 수많은 북한 순교자들의 대표로 한 사람의 이름만 제가 여러분들에게 알려드립니다.
  '리영희' 성도님(37세), 이분도 북한에서 대학도 나오고 성분도 좋은 당원이었다가 어떤 사정으로 숙청당하게 되어 남편과 함께 아오지 탄광 노동자로 전락하게 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997년에 가을에 굶주림을 견디다 못하여 탈북하였다가 중국의 어느 지하교회를 통하여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는데, 그 이후에 다시 북한에 돌아가서 전도하다가 2000년 1월 말 경에 체포되었습니다.
  그녀는 2주간에 걸쳐 채찍과 몽둥이로 실로 잔인하기 짝이 없는 고문을 당하면서도 중국 지하교회에 관한 정보나 교인들의 신상에 대해서는 끝까지 함구했고, 그 대신에 자기를 고문하는 보위부원들에게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라고만 전도했습니다.

  결국 그 모진 고문 때문에 하반신은 이미 마비가 되었고 많은 출혈로 인하여 생명을 부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자 보위부원들은 그녀를 2000년 2월 10일 12시 정각에 함경북도 무산시 장마당에서 공개총살을 시켰는데, 거기서도 그녀는 그 모인 군중들에게 예수 믿으라고 끝까지 전도하다가 "주여"라는 마지막 한 마디와 함께 12발의 총탄을 맞고 순교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순교자들이 북한에 얼마나 더 많이 있는지는 알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께서는 그저 이 한 명의 이름, 우리가 천당 가게 되면 반드시 만나게 될 이 자매님의 이름, '리영희' 이 이름 하나만이라도 그 모든 북한의 핍박받는 이름 모를 형제자매들을 대표해서 꼭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남조선 사람들이 우리를 생각이나 해줍니까?'라는 부끄러운 질타를 더 이상 받지 않도록, 이 공산독재정권에 의하여 '갇힌 자' 된 이천만의 동포들과 이 사악한 무신론 사상에 의하여 '학대받고 있는' 이름 모를 수많은 지하교회의 성도들을 늘 '생각하고 기억하면서,' 이 8.15 해방보다 훨씬 더 기쁠, 완전한 자유민주주의 민족통일의 그 날을 위하여 더욱 간절히 기도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석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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