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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뜨겁게 신앙생활 합시다 (계 3: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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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사람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소설과 영화를 물어보면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고민하지 않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비비안 리와 클라크 게이블 주연의 영화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원작자인 마가렛 미첼은 21살 때 다리에 골절상을 입고 걸어 다니기가 힘들어졌습니다.  거동은 불편했지만 왕성한 상상력을 동원해서 소설을 쓰게 되었으며 10년 만에 완성하게 됩니다.  그 후 미첼은 원고를 들고 여러 출판사를 찾아 다녔지만 무명작가의 글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읽어보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미첼은 애틀랜타로 출장을 떠나는 맥밀런 출판사의 레이슨이라고 하는 사장에게 원고를 주면서 제발 이 원고를 한번만 읽어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벌써 여려 차례 와서 자기를 괴롭히다시피 한 미첼이었고 여행을 하는 순간에 미첼과 실랑이를 벌일 수 없어서 레이슨 사장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원고를 가방에 대충 넣습니다.  그리고 그가 목적지를 향해서 가는 도중에 미첼로부터 “제발 그 원고를 읽어주세요!” 하는 전보를 받았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것이 아니고 기차를 타고 여러 날 동안 가는 길이었기 때문에 전보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지나치게 귀찮게 하는 별사람이 다 있다고 생각하면서 미루어놓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가고 있는데 “제발 그 원고를 한번만 읽어주세요!” 라는 다급한 전보를 받았습니다.  3번이나 반복해서 동일한 전보를 받게 된 레이슨 사장은 미첼의 열심과 집념에 감동을 받습니다.  도대체 어떤 내용의 책을 만들었기에 이렇게 읽어보라고 강요를 하는가 하는 마음으로 원고를 펼쳐 읽어나가기 시작합니다.  원고를 얼마 읽지도 않아서 레이슨 사장은 책 내용의 아름다움에 빠져들기 시작합니다.  열차가 도착지에 도착한 줄도 모르고 원고의 내용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그래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소설과 영화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열심 없이 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자원과 방법을 탓하곤 합니다.  그러나 열심만 있으면 자원도 있고 아이디어도 얼마든지 떠올릴 수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자원과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다고 해도 열심히 없으면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일상생활의 필수품은 대부분 에디슨이 발명한 것입니다.  에디슨이 받은 특허가 2,000여 가지가 넘습니다.  지금은 여러 가지의 전구를 사용하고 있지만 초창기의 전구는 백열등입니다.  이 전구를 만들 때 에디슨은 10만 번을 기도하고 시험을 했다고 합니다.  말이 10만 번이지 헤아리기조차도 어려운 횟수입니다.  말로 헤아리기도 힘든 10만 번을 실험을 했다는 것입니다.  10만 번 실험을 했다는 것은 실패도 10만 번을 했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고, 실험하고, 실패하고, 또 실험하고, 또 실패를 10만 번이나 반복하면서 만들어진 작품이 바로 전구입니다.  이 전구를 통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밤을 낮처럼 일하면서 살고 있습니까? 

요즘은 약도 많이 개발되어서 좋은 주사도 많이 있지만 옛날에는 606호라는 주사가 있었습니다.  606호는 굉장히 효과가 좋은 주사인데 605번까지 실험해서 실패를 했습니다.  그 후 606번째의 실험을 통해서 만든 약이 606호입니다.  이 약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생명을 얻었는지 모릅니다. 

1. 하나님의 열심 바울의 열심

열심 없이 되는 일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이 원리는 우리의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류의 구원도 하나님의 열심 때문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는 열심히 없었다면 마음만 먹고 하다가 포기했다고 한다면 중도에 끝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1장 12절에서는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두 가지의 열심히 나옵니다.  하나님의 열심과 바울의 열심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류를 구원하기위한 하나님의 열심의 대단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크고 위대합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그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그 피를 뽑아서 인류의 죄를 사하는 일을 하시는데 아들을 내어 놓을 정도로 열심을 보이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 땅에서 열심 내는 일이 많이 있지만 내 자녀의 생명을 주고 그 일을 성취할만한 일이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독생자를 내어 희생시켜서라도 우리를 구원하려고 하는 열심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게 된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열심히 바울의 마음에 붙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통신술과 여행업이 발달되지 않은 그 때에 바울의 열심을 통해 소아시아와 로마에게까지 복음이 전파되어집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나이와 비슷합니다.  바울은 회심하고 40년도 채 살지 못했습니다.  바울의 삶의 37년, 38년 정도를 살펴보면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에 10년이 넘게 자기 자신을 기도로 준비합니다.  그 후 10년동안 1차, 2차, 3차 전도여행을 합니다.

그리고 난후 10년 동안은 옥에 갇히기도 하고 풀리기도 합니다.  주로 옥중생활로 10년을 보내게 됩니다.  그가 순수하게 복음만을 전한 시기는 10년 정도밖에 안됩니다.  그렇게 짦은 기간이지만 얼마나 열심히 전했는지 소아시아 전역에 복음을 전해서 “이제 더 이상은 내가 복음을 전할곳이 없다.” 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고 할때 사람들은 이번에 올라가면 잡혀서 죽게 된다고 하며 말렸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결심은 변함이 없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로부터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하면 나의 생명은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는 복음을 전하는 것에 생명을 내어 걸었습니다.  생명을 내어 걸었던 바울의 열심 때문에 오늘의 우리에게까지도 복음이 전파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생활도, 우리의 신앙도 열심을 내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습니다.  열심히 있어야만 일을 이루어나가고, 열심히 있어야만 우리의 삶도 더욱 더 윤택하게 만들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열심이 없는 라오디게아 교회

그런데 라오디게아 교회는 이런 열심히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15절에서는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절에는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19절에서는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내”라고 쓰여진 곳은 예수님이고 “네”라고 쓰여진 곳은 우리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네” 라고 쓰여진 곳을 저의 이름을 넣어서 읽어봅니다.  “내가 성진이의 행위를 아노니 성진이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성진이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이렇게 일어볼수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여러분 각자의 이름을 넣어서 15절, 16절, 19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성진이의 행위를 아노니 성진이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성진이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성진이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성진이를 토하여 내치리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성진이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성진이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아멘”

원어에는 회개하여 열심을 내라고 되어있습니다. 
우리에게 열심을 내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라오디게아 교회에게만 주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나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내 신앙은 조금 더 열심을 내야하는 신앙이 아닙니까?  계시록에서 볼 수 있는 7개의 교회는 당시에 존재했던 교회이지만 장차 역사상에 나타날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림자와 같은 교회입니다.  특별히 라오디게아 교회는 7개의 교회 중에 마지막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직전에 있는 현대 교회의 모습을 의미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특징은 미지근한 신앙이며, 열심히 없는 신앙입니다.  주님을 구역질나게 하는 신앙이며, 주님을 구토하게 만드는 신앙입니다.  미지근한 음식은 먹기가 아주 거북합니다.  물을 끓여서 식힌 후 미지근할 때 마시면 구토가 납니다.  미지근한 사이다 먹기도 아주 역겹습니다.  미지근한 커피 정말 맛이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예배도, 찬양도 다 하나님 앞에 바치는 것인데 우리의 신앙이 미지근하고 우리의 예배가 미지근하다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받아 드실 때 비위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도 찬양을 할 때도 뜨겁고 정열적으로 한다면 우리가 뜨거운 국물을 먹을 때 입에 들어갈 때는 뜨겁지만 속으로 내려가면 시원함을 느끼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찬양을, 우리의 예배를 시원하다고 하시면서 받으실 것입니다. 
예배가 미지근하다면 하나님께서 받으시겠습니까?  기도가 미지근하다면 하나님께서 응답을 하시겠습니까?  찬송이 미지근하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헌금과 헌신이 미지근하다면 하나님께서 거부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하라! 열심을 내어라!” 라고 명령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조금 더 열심을 낼 때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열심을 내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을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생각하고 조금 더 열심을 내어서 주님을 섬길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라오디게아 교회의 믿음이 식어진 이유

라오디게아 교회가 열심히 없는 미지근한 신앙의 교회가 된 이유는 17절에 있는 것처럼 라오디게아 교회는 물질적으로 풍족했습니다.  스스로 부족한 것이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좋은 것을 입고 다녔고, 금과 은의 다양한 폐물로 장식하고 다녔습니다.  잘 먹고 잘 사는 편안한 생활을 하다보니까 신앙생활도 열심히 없어졌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누리고 있는 건강이나 물질이나 지위와 같은 하나님의 축복들은 하나님을 잘 섬기라고 주신 도구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도구들을 오히려 더 사랑하고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되어지면 라오디게아 교회의 교인들과 같은 사람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권면합니다.  너희가 가나안에 들어가서 너희가 파지 아니한 우물의 물을 마시고, 너희가 심지 아니한 과일을 먹고, 너희가 짓지 않은 집에서 사는 풍요한 삶을 누리게 될 것인데 그때에 하나님을 잊어버릴까 염려된다.  너희가 평안할 때, 너희가 잘될 때, 너희가 풍요할 때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라고 하나님께서는 권면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서 풍요한 삶을 살면서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멸망의 길입니다.  인공위성을 쏘아올릴 때 로켓의 본체가 있고 이 로켓을 추진시키는 보조 로켓이 있습니다.  일전에 무궁화호를 발사 할 때도 로켓의 본체와 6개의 보조 로켓이 한데 붙어서 같이 올라갔습니다.  6개의 보조 로켓은 로켓의 본체가 괴도에 진입하기 전까지 밀어주는 로켓입니다.  이 보조 로켓은 연료를 다 쓰고 난 다음에는 자동적으로 본체에서 떨어지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한 개의 보조 로켓이 분리되지 않아서 그 중량 때문에 본체 로켓이 계획된 궤도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본체 로켓과 같습니다.  우리의 건강과 물질과 지위와 가정과 모든 것은 보조로켓입니다.  신앙이라는 로켓이 잘 나갈 수 있도록 보조하는 것이 우리의 모든 삶입니다.  마지막에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때 보조로켓은 모두 떨어져 나갈 것입니다.  본 로켓인 우리의 신앙만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보조로켓인 건강과 물질과 지위와 가정이 주가 되어서 떨어지지 아니하면 본 로켓은 추락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바로 그런 경우였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라고 준 물질이 하나님이 되어버렸습니다.  그것 때문에 믿음이 식어졌습니다.  물질에 빠져서 하나님을 섬기는 열심히 식어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라오디게아 교회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의 현실일수도 있습니다.  가난할 때는 “하나님 나에게 물질을 허락해주시면 내가 주님을 잘 섬기겠습니다.” 하면서 예배도 잘 드리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더니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시고 물질을 주시니까 그것을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생활하면서 신앙생활이 식어지고 결국 하나님을 떠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병이 들었을 때도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에게 건강을 주시면 이 건강을 가지고 주님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하면서 열심히 기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건강을 주시면 그 건강을 가지고 세상에서 죄를 짓고 딴 짓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십일조를 적게 낼 때는 “철저하게 드리겠습니다.  더 주시면 더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약속을 했는데 많아지니까 대충 드리고 하나님께는 적게 드리고 다른 곳에 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지위가 낮을 때는 겸손하여서 하나님과 사람을 잘 섬겼는데 지위가 높아지면서 바빠지니까 교만해지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건강할수록 더욱더 열심히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물질 축복 받을수록 더욱더 겸손하고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위가 올라가고 바쁠수록 하나님을 더욱더 잘 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워너메이커는 국가에서 체신부 장관을 맡아달라고 하는 청인 왔습니다.  우리 같으면 지금 하던 모든 일을 다 치워버리고 “예!” 하며 넙죽 받았을텐데 워너메이커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주일날마다 어린 자녀들에게 주일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체신부 장관으로서 매 주일마다 고향에 가서 어린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한다면 내가 체신부 장관이 되어서 봉사하겠습니다.”  얼마나 위대한 신앙입니까? 

4. 열심히 기도하여 성령충만 받읍시다.

이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 봅시다.  내게 주신 지위나 물질과 건강에 관련된 모든 것은 하나님을 잘 섬기라고 주신 것이지 그것을 섬기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우리가 열심을 낼 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신앙생활의 기본은 기도와 말씀입니다.  이 두 가지만 잘 되어지면 우리의 신앙은 날마다 성장할 수 있습니다.  기도에 먼저 열심을 내어봅시다.  기독교의 모든 역사는 기도로부터 시작되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명령하시기를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이야기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요엘서에서 약속하신 성령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들은 11제자를 위시한 120여명이 와서 기도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을 받기위해서, 마음을 같이하여 전 힘을 다해 기도에 힘을 씁니다.  약속하신 성령을 받기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우리에게 가장 좋은 선물은 성령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자녀가 떡을 달라고 하면 돌을 주고 생선을 달라고 하면 뱀을 주는 아버지가 어디에 있느냐, 하물며 너희의 천부께서 좋은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성령님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이 가장 좋은 이유는 성령님을 통해서 믿어지고, 성령님을 통해서 힘을 얻습니다.  그래서 파라크래토스라고 하는 성령님의 원어에서의 뜻에는 “Help [돕는자]” 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카운셀러로서 우리를 상담하시는 변호사하십니다.  우리가 힘이들 때, 우리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우리를 돕기 위해서 오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우리가 어느 길로 가야할지 판단이 서지 아니할 때 우리가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판단해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우리가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말하지 못하고 있을 때 변호사가 되어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하나님이십니다.  가장 좋으신 분이 바로 성령하나님이신데 이런 성령님을 받은 방법은 전혀 기도에 힘쓰므로 받게 되어진 것입니다.  성령님이 없이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성령님을 충만히 받아야 진짜 예수님을 알 수 있습니다.  2장의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전혀 기도에 힘쓰니까 성령을 충만히 받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이 깜짝 놀랍니다.

2장 4절에 보면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 하니라.”  42절에서 보면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재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기도할 때 전혀 힘쓰며 기도했습니다.  기도에 힘을 썼습니다.  3장에서는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가 앉은뱅이를 고치게 됩니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4장에서는 제사장, 서기관, 레위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며 핍박을 합니다.  그러자 핍박을 받은 교회가 합심해서 또 기도를 합니다.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손을 내밀어 병을 낳게하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합니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8장에서는 사마리에 성에 성령 받기를 위해서 기도했더니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10장에서는 가이사랴에 고넬료가 기도하다가 환상을 보고 지시를 받습니다.  베드로가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지시를 받습니다.  12장에서는 베드로가 옥에 갇혔는데 교회가 철야 기도를 하니까 옥문이 열리고 베드로가 나오게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13장에는 금식기도를 통해서 선교사가 파송되어집니다.  19장에는 에베소에 안수기도를 통해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습니다.  이와 같이 사도행전은 성령행전과 같은데 이렇게 성령님이 역사하도록 만드는 환경이 바로 기도입니다.  성령을 받는 비결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하면 성령 받고, 성령 받으면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있습니다. 

우리를 돕는 성령님, 카운슬러인 성령님, 우리의 변호사인 성령님과 더불어서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인생이 전혀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기도 열심히 해서 성령 충만 받을 수 있는 성도들이 될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 같이 아주 귀한 말씀인 성경 한 구절을 찾아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 10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비해놓으시고 그 예비해 놓으신 것을 보여주는 방법이 있는데 지금 다 같이 한번 읽어보고 집에 가서도 또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아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비하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지 못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엄청난 축복을 예비해놓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으로는 생각지도 못할 축복을 예비해놓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예비해놓으신 축복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엄청난 축복을 준비해놓으시고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기를 원하십니까?  보여주지 않기를 원하십니까?  보여주기를 원하십니다.  누구를 통해서 보여주기를 원하십니까?  성령을 통해서 이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도 할 수 없는 축복을 예비해놓으시고, 그것을 성령을 통해서 귀한 보물을 도자기에 넣어서 보자기로 덮으면 그 보자기를 살짝 들어보면 그 안에 귀한 보물을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그 엄청난 예비 된 축복을 성령님을 통해서 살짝 보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예비 된 축복을 보고 사는 사람과 보지 못하고 사는 사람은 굉장히 큰 차이가 납니다.  볼 수 있는 비결이 바로 성령입니다.  기도하면 성령 받게 되고 성령님을 통해서 생각지도 못한 하나님의 예비 된 축복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기도에 열심을 내십시다.  뜨겁게 기도하십시다.  부르짖어 기도하십시다.  깊이 기도하십시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하나님께서 예비해놓으신 생각지도 못할 축복을 보고 발견하고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열심히 기도하면 준다고 예수님께서 얼마나 많이 강조하셨습니까?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해서도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한 친구에게 또 다른 친구가 왔다.  여행하다가 먹을 것이 없었다.  그런데 자기 집에도 먹을 것이 없어서 이웃집에 가서 먹을 떡을 달라고 하니까 아무리 대문을 두드려도 주지 않습니다.  너무 심하게 두드리니까 그 친구가 나와서 이야기하기를 “너와 내가 친구 관계이기 때문에 이 떡을 주는 것이 아니고 간청하기 때문에 이 떡을 주는 것이다.”라는 예를 들어서 이야기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대문을 두드려보아라.  내가 너에게 안주겠느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불의한 재판관이 있었다.  억울한 과부가 날마다 밤낮으로 와서 자기의 소원을 들어달라고 이야기하니까 처음에는 듣지도 않다가 나중에는 너무 번거롭고 귀찮아서 여인의 소원을 들어주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습니다.  “마찬가지로 불의한 재판관도 이렇게 들어주는데 하나님의 대문을 계속 두드리면 왜 안들어주겠느냐?  간청해보아라!  그러면 내가 들어주겠다.”  라고 약속해주셨습니다. 

히스기야가 눈물로 기도한 것은 매우 간절한 열심히 기도한 모습입니다.  여리고성을 돌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함성이 바로 뜨거운 기도입니다.  엘리야가 뜨겁게 기도하니까 불이 내렸습니다.  이와 같이 뜨겁게 기도하면 주님께서 다 들어준다고 약속해주셨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기도할 때도 열심히, 찬송할 때도 열심히, 예배를 드릴 때도 열심히 드려서 주님을 시원하게 해 드릴 수 있는 성도들이 될수 있기를 바랍니다.

5. 40일을 축복의 기회입니다.

이런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40일의기도 훈련기간을 우리에게 허락해주셨습니다.
부산 영락의 온 성도들은 다 동참하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부자라서 부족한 것이 없다.  나는 기도하지 않아도 너보다는 잘 살 수있다.  네가 아무리 기도해도 기도하지 아니하는 내가 더 잘살수 있다.  나는 기도 안해도 괜찮아!”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라오디게아 교회가 이렇게 자만한 삶을 살았습니다.  회개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만한 삶을 산다면 내친다고 했습니다.  열심을 내지 않으면 뱉어내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의 제목을 주면, 기도 시키면, 눈물 흘리며 고통하며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 전에 내게 주신 이 축복이 있을 때 열심을 내어 스스로 기도해서 주신 축복을 잃어버리지 않고 소유하고, 누리면서 하나님을 더 뜨겁게 섬길 수 있는 성도들이 될수 있기를 바랍니다.  몸이 아파서 기도하지 못한다는 분도 있습니다.  몸이 아픈 분은 이번에 나와서 기도해서 고쳐보시기 바랍니다.  치료받기를 바랍니다.  한번도 새벽기도 나오지 못한 분도 있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기록을 깨시기 바랍니다.  멀어서 나오지 못하는 분은 저녁에 나와서 교회에서 주무시고 새벽에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가용도 없고, 교회차도 운행을 안되기 때문에 못 나오시는 분은 택시비를 들여서라도 참석해보시기 바랍니다.  40일동안의 택시 요금도 갑절로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내가 차를 가지고 있다면 이럴 때 다른 사람과 같이 다니라고 차를 준 것으로 생각하고 가까운 성도들과 함께 올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40일 동안은 무조건 기도로서 헌신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생각도 못한 축복을 하나님께서 예비해놓으시고, 보여주시고, 축복해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새벽에 많이 응답해주셨습니다. 
잠언 8장 17절에서는 간절히 나에게 기도하면 나를 만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간절히”라는 말에 옛날성경에는 “주1) 새벽에 나를 찾으면 만나리라” 라고 강조되어 있습니다.  새벽에 홍해가 갈라지고, 새벽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성경에 보면 새벽에 얼마나 많은 역사가 일어났는지를 알수가 있습니다.  이번 새벽을 하나님께서 나에게 축복하여 주시는 기회로 믿고 나와서 기도하면 생각지도 않은 놀라운 축복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실줄 믿습니다.

루터가 어느 식당에 가서 아침식사를 하던 중에 섬뜻해서 아래를 보니까 강아지 한 마리가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데, 숟가락이 밥그릇으로 내려가면 강아지 눈도 따라 내려가고 입으로 들어가면 따라 올라오고 침을 흘리면서 계속해서 눈을 떼지 않고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하도 진지하게 바라보길래 고기 하나를 던져주니까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모릅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루터가 깨달았습니다.  개가 내 손을 쳐다보는 것처럼 나도 하나님만을 바라본다면 하나님도 내게 감동하셔서 내 모든 것을 들어주셨을 것이다. 

이제 앞으로 40일 동안은 하나님만을 바라봅시다.  열심히 기도해보십시다.  미지근한 신앙 갖지 말고 뜨겁게 기도해봅시다.  40일 동안 전심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해봅시다.  그래서 열심히 기도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던 것처럼 40일 동안 기도해서 성령의 충만함을 다 받아봅시다.  이 기간 동안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하나님의 축복을 예비해 놓으시고 우리에게 주실 줄 믿습니다.  뜨겁게 기도해서 이 축복을 다 받아 누리는 성도들이 될수 있기를 바랍니다.

구역질을 일으키게 하는 성도가 아니라 뜨거운 국물을 먹고 “아, 시원하다!” 하는 것처럼 우리가 뜨겁게 찬송하고, 뜨겁게 예배하고, 뜨겁게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아, 시원하다!” 하면서 우리의 찬양과 예배와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을 시원하게 해 드리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응답받되 생각지도 않은 축복까지 다 받아 누리는 40일 동안의 주인공들이 다 될 수 있는 영락의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윤성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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