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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엇이 더 중요합니까? (왕하 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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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마경훈 목사 (소망교회)

  세상을 살다보면 좋은 것이라고 다 좋은 것이 아니고 나쁜 것이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어떤 경우는 좋은 것이 화가 되고 화가 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나아만 장군이 좋은 예입니다. 그는 아람의 군대장관이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국방장관에 해당되는 높은 직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인간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몸에 문둥병이 걸린 것입니다. 그 당시 문둥병은 불치의 병입니다. 사람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화가 임한 것입니다. 그런데 나아만이 하늘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엘리사에 대한 소문을 듣습니다. 그리고 엘리사를 찾아가서 병을 치료 받습니다. 뿐만아니라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만약 나아만이 건강한 상태로 아람의 군대장관으로 있었다면 높은 지위에서 호의호식할지는 모르지만 영원한 멸망을 당할 것인데 몸이 병들어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을 섬기는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롬8:28에서는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들은 이 세상에서 당하는 어떤 문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화도 복으로 바뀌는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합니다.
  세상에는 중요한 일들이 많습니다. 그가운데 보다 더 중요한 일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나아만의 문둥병이 치료된 사건을 통하여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1.겉보다 속이 더 중요하다(1절).

  나아만은 존귀한 지위에 있었습니다. 그는 군대장관 즉 국방부장관입니다. 1절에 보면 그는 왕 앞에서도 존귀한 자라고 말합니다. 나아만은 멋진 옷을 입었을 것입니다. 그의 군복에는 그의 지위를 나타내는 표시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가 입고 있는 군복만 봐도 대단한 장군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는 화려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러번의 전쟁에서승리한큰 용사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문둥병자였습니다. 그의 옷을 벗어보면 화려한 옷 속에 썩어 있는 살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가 가진 존귀한 지위, 화려한 경력, 멋진 옷도 그에게 만족을 주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화려함 뒤에 썩어 문들어진 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나아만과 비슷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육신적으로는 성공한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장점도 많고 사회적으로 성공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인정 받고 장래도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영혼은 영적인 문둥병에 걸려서 영원한 멸망으로 달려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육신적인 성공, 사회적인 인정도 인간에게 필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혼의 구원입니다. 나아만처럼 세상적인 자랑거리가 많아도 영혼이 죽어 있다면 그 사람은 불행한 것입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보면 부자는 성공한 사람처럼 보이고 거지 나사로는 완전히 실패한 인생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반대입니다. 부자는 사회적인 성공은 거뒀을지 몰라도 영적으로 실패했습니다. 그는 살아서는 화의호식했으나 죽어서는 영원한 지옥에 떨어지는 불쌍한 존재였습니다. 나사로는 실패한 인생 같았으나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영원한 낙원에 들어가는 행복한 존재였습니다.
  사람들은 내면보다 외모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외모보다 내면 즉 중심을 더 보십니다. 바리새인들은 종겨적인 복장을 하고 철저하게 율법을 준행하는 것 같았으나 올바른 중심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을 책망하시면서 회칠한 무덤 같다고 하셨습니다. 다윗은 베들레헴 촌부의 아들로 들판에서 양을 치는 일을 하는 촌띠기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의 중심을 보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육신적으로야 어떻든 간에 영혼은 구원 받은 복된 존재들입니다. 이제 외모보다 중심을 치장하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2.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는 아람의 군대장관이었습니다. 그가 그냥 그대로아람에 있었다면 문둥병이 악화되어 비참하게 인생을 마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이스라엘에 가게되고 엘리사를 만나 문둥병이 치료되었습니다. 아람에서는 고침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땅에서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노아의 시대에 하나님께서 홍수로 멸하는 그 날, 방주 안에 있던 사람들은 구원을 얻었고 방주 밖에 있는 사람들은 물에 잠겨 죽고 말았습니다. 여리고가 무너지던 그 날, 라합의 집에 있던 사람들은 구원을 받았고 라합의 집 밖에 있던 사람들은 죽음을 당했습니다.
  우리들은 위치적으로는 가능하면 자주 오랫동안 교회 안에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있는 사람들은 복된 사람들입니다. 교회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집입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는 예수 안에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복된 사람들입니다. 고후5:17 말씀대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존재입니다. 예수 안에 생명과 능력과 승리가 있습니다.
  나아만이 이스라엘을 찾아가므로 문둥병이 치료되었던 것처럼 교회 안에 있고 예수 안에 있으므로 영적인 문둥병이 치료되는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3.누구를 만나느냐가 중요하다.

  우리가 범하기 쉬운 실수 중에 하나가 사람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주변에 좋은 배경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자랑거리로 삼는 경우가 흔합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런 사람들이 인생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아만은 아람의 왕 앞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뿐만아니라 이스라엘의 왕도 만났습니다. 그런데 아람의 왕도 이스라엘의 왕도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치는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나아만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복된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2절에 보면 나아만에게 엘리사 선지자를 소개해준 사람은 전쟁 중에 잡혀온 작은 계집아이였습니다. 그 아이는 나아만에거 엘리사를 만나면 문둥병을 고칠 수 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나아만은 그 소식을 듣고 엘리사를 찾아가서 치료를 받게 된 것입니다. 만약 그 아이가 나아만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면 나아만은 비참하게 죽어갔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비록 자신이 나아만의 집에서 일하는 계집 종과 같이 하찮은 직업을 가지고 사회적인 배경이 약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아만처럼 구원 받는 사람들이 나오게 됩니다.
둘째로 나아만은 하나님이 쓰시는 하나님의 종 엘리사를 만났습니다.
  영적인 가르침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영적인 가르침은 하나님이 세우신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받는 일이 많습니다. 만약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다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듯이 소경된 영적 지도자를 만난다면 불행한 일입니다.
셋째, 조언자를 만났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조언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복입니다. 나아만이 요단강에서 일곱 번 씻으라는 엘리사의 말을 듣고 기분 나빠 돌아가려고 할 때 옆에서 조언해 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조언을 듣고 나아만이 엘리사의 말에 순종해서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넷째,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일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일은 하나님을 만나는 일입니다. 나아만은 믿음의 사람들의 소개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그에게 큰 복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으로 만족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난 인생만이 성공한 인생인 것입니다.

4.내 생각보다 말씀이 더 중요하다.

  일국의 국방장관인 나아만이 엘리사를 방문했는데 엘리사는 나가보지도 않고 사람을 보내서 요단강에서 일곱 번 씻으라고 말합니다. 엘리사의 말과 태도에 나아만은 기분이 나빳습니다. 그리고 자기 생각을 말합니다. 자기 생각에는 엘리사가 맨발로 달려나와서 힘을 다하여 안수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나라의 강은 요단강보다 더 나은 강인데 그곳에서 싯는 것이 더 좋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은 자신을 죽이는 생각이었습니다. 만약 그가자신의 생각을 따라갔다면 죽었을 것입니다
  그가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엘리사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때 치료의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베드로가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갈릴리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자시느이 생각을 고집했다면 기적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주님으로 알아보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주님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5.말씀을 받는 것보다 순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나아만이 엘리사를 통하여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두 말할 것도 없이 문둥병으로 인생을 마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에 치료를 받았던 것입니다.
  신자는 기도하다가 설교를 듣다가 혹은 생활 속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임했던 것처럼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물론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듣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여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사울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불순종하여 심판을 받게 되었었습니다.

6.체험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신앙생활에서 체험은 필수적입니다. 아버지를 이론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경험적으로 아는 것처럼 하나님도 이론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체험을 통해서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체험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받거나 기도응답을 받습니다. 신비한 경험도 합니다. 이러한 경험은 단지 우리의 생활에 힘이 되고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그 체험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체험 자체가 목적이고 체험 자체가 자랑입니다. 체험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고 자신이 변해야 합니다. 나아만은 체험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았고 자신도 변화되었으며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7.은혜를 받는 것보다 감사하는 더 것이 중요하다.

  신앙의 성숙해야 합니다. 은혜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은혜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은혜를 유지하기 위한 좋은 방법 중에 하나는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의 방법입니다. 시편기자는 “감사로 제사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나니”라고 말했습니다. 구약의 제사 법에도 보면 5대 제사 중에 화목제는 세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에 대해 감사를 드리는 제사입니다. 5대 제사 중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화목제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만큼 감사를 기브게 받으신다는 뜻입니다. 살전5:18에서는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감사의 방법 중에 가장 쉬운 것이 입술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입을 열어 하나님이 하신 일을 말하고 그분께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하나님 앞에 할 수도 있고 다른 사라들에게 하나님의 역사를 간증하고 감사할 수도 있습니다.
  마음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중심을 하나님께 올바로 드리며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늘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물질로 감사해야 합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는 마음이 있습니다. 구약 백성들은 절기에 공수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제물을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풍성한 감사가 더 풍성한 감사거리를 만들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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