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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쓴 약이 사람을 살린다 (미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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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서영원 목사  (동암교회)

잠언 6장 23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그리고 우리나라 속담에 몸에 좋은 약은 쓰다는 말이 있습니다.
훈계와 책망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훈계와 책망을 듣고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들은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일 것입니다. 우리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충고를 듣는 것에 익숙해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훈계나 책망을 들으면 먼저 기분 나빠합니다. 그렇지만 그 훈계와 책망을 듣고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은 인생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 뿐만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사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때로는 그 훈계와 책망을 듣고 돌이킴을 통해 자신이 위기 가운데 위기를 극복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처럼 책망을 들을 때는 기분이 나쁘지만 그 책망을 겸허히 받아들이면 자신에게 많은 유익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교인들이 설교자들을 통해 들여지는 말씀이 훈계와 책망의 말씀이 선포될 때 별로 반가워하지 않습니다.
미가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에도 백성들은 미가 선지자를 통해 들려 지는 그들의 죄악에 대한 책망을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미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거침없는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 했습니다. 이런 미가의 심판의 메시지를 들은 사람들은 미가 선지자의 입을 막으려 했습니다. 심지어 미가와 함께 활동하던 선지자들 까지도 미가의 입을 막으려 했습니다. 그들은 미가에게 “이런 것들을 예언하지 말라”고 말했을 정도였습니다. 왜 그렇게 했겠습니까? 바로 자신들의 범죄한 사실들에 대해, 미가는 사실적으로 그리고 정확하게 외쳤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듣기 좋게 이야기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회개할 것을 선포하였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것을 원하셨기 때문에 미가는 죽음을 무릅쓰고 외친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단 것만을 입에 맛 는 것만 준 것이 아니라 비록 쓰더라도 그들을 살릴 수 있는 말씀을 전해 준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위로하는 설교가 인기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부정적인 설교 즉 책망의 설교 회개의 설교에는 별 흥미가 없습니다. 다만 그들은 긍정적인 설교, 축복의 설교, 위로의 설교에만 귀를 기울입니다. 자신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설교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양심을 찌르는 설교는 거부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런 현실에 대해 누가복음 7장32절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을 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자신의 영적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 먹는 어리석은 성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때로는 나에게 쓴 말씀들도 주어 먹어야 합니다. 그래야 살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나의 마음을 찢는 것이라 하더라도 거기에 살길이 있다고 한다면 그곳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미가는 쓴 말씀을 거부하고 자신들이 입맛에 맞는 것만 요구하는 이런 현실 앞에 분통을 터뜨리며 외치고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라는 선지자는 자신들이 듣고 싶은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말해주는 그런 선지자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해 주시려는 말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위로하시기도 하시지만 늘 위로만 하시지는 않는 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자주 우리에게 고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주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생활을 바라보도록 강요하셨습니다. 또한 열린 눈으로 우리 사회를 보라고 요구하셨습니다. 우리는 금방이라고 심판이 임할 것 같은 죄악된 사회에 대해 듣는 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또 자신의 사회를 특징짓는 불의나 범죄, 도덕적 타락 등을 똑바로 보는 일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늘 미가서를 통해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말이 행위 정직한 자에게 유익되지 아니하냐”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성실하기만 하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정말 우리를 유익하게 할 것입니다.
미가 시대의 백성들은 오랜 시간 동안 미가 선지자의 설교를 들었지만. 그것은 그들에게 도무지 유익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유익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의롭게 행하기를 꺼렸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받는 것을 꺼렸고, 그 말씀대로 행동하는 것 역시 꺼려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으로 받아 그 말씀대로 행하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면 이스라엘 역사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유익하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했습니다.

우리가 오랜 시간 동안 강단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져도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아직도 내가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세상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나의 삶에 전혀 유익하지 못합니까? 그 이유는 내가 그 말씀을 귀로는 듣지만 마음으로 듣지 못하고 행함으로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 할지라도 내 몸과 맞지 않으면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인삼이라는 것이 정말 좋은 약제이지만 모든 사람에게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그 몸이 받아 들일 때 유익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들어 갈 때 그 말씀은 그 사람 속에 들어가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며, 새로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강단을 통해 들려지는 말씀이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고 나의 상처를 건드리는 것이고 내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라 할지라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대로 마음으로 받아 들여 행동한다고 한다면 반드시 우리를 유익하게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쓴 약을 주시는 것은, 우리를 살리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의사가 굳이 환자에게 쓴 약을 먹을 것을 권하는 이유는 우리를 병들게 하고 아프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의사가 수술대에 있는 환자에게 매스를 대는 것은 그를 고통스럽게만 하고 아프게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숨겨진 것은 그를 살리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수술을 받는 다는 것, 겁나는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쓴 약을 잘 못 먹는 사람에게 약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먹기 싫은 것입니다. 그러나 의사가 그렇게 먹으라고 지시한 것은 죽이기 위함이 아니라 살리려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 사실을 안다고 한다면 자신의 건강을 위해, 생명을 위해 먹어야 합니다.

저도 하루에 약을 20개씩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의사가 말하기를 하루에 꾸준히 이 약을 일년 동안 먹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건강은 장담할 수 없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정말 저는 일년 동안 꾸준히 20개의 약을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약을 먹을 때마다 정말 먹기 싫었습니다. 그러나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고 하는 것은 너무도 힘든 삶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말씀대로 살면 그 삶을 통해 우리에게 유익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될 때, 힘들어도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미가는 당시 이스라엘과 유대가 망한 이유 가운데 하나로 거짓예언자들을 들고 있습니다. 그들이 마땅히 전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 즉 죄악된 백성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선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거짓된 선지자들은 마땅히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걸어가야 할 길을 올바로 제시해 주지 않았습니다. 오직 그들의 귀를 즐겁게 하고 그들의 구미에 맞는 말씀만을 선포해 준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더욱 죄악 가운데 살았으며, 결국 그것으로 인해 망하게 되었습니다. 심판에 대해 선포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심판을 선포하지 않는 것은 영혼을 죽이는 것입니다. 즉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을 가진 성도들은 즉 저와 여러분은 지금 어떤 신앙의 삶을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성도들이 하나님 말씀에 합당하게 살도록 전해주어야 할 사명이 있고 또한 그렇게 살아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들려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음을 통해 삶의 변화가 일어나야 하며, 자신의 변화된 모습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증거 해야 할 사명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면 지금부터 라도 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 범죄한 모습을 감추어서는 안 됩니다. 비록 하나님 앞에 나와 회개하 고백하는 것이 힘들고 어렵다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 고백함을 통해 우리가 자유 함을 얻어야 합니다.
또한 들려지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고 하는 것이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 하더라도 그 들려지는 말씀은 우리를 살리려는 쓴 약이기 때문에 당연히 받아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주장할 때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죄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지배 받고 살 때 힘들고 어려움도 있고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결국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유익하게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요한복음 8장 51절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사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 자신을 겸손하게 내려놓아야 합니다. 비록 그것이 나의 현실적인 삶과 대치되는 말씀이라 하더라도, 지키기에 힘든 것이라 하더라고 쓴 약이 사람을 살리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적인 삶에 쓴 약이 되어서 우리를 살리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 자신을 정결케 함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경험하고 기쁨의 삶을 누리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사는 길은 오직 말씀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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