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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정함을 받는 삶을 살라 (눅 1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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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성철 목사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누가 19:9)

해외 목회지에 부임한 후, 저의 두 딸이 그곳 생활에 적응해 가는 과정은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무엇보다도 학교생활이 쉽지를 않았습니다. 큰 아이가 어느 정도 학교생활에 적응해 갈 때쯤 작은아이가 유치원 전 단계인 ‘preschool’에 입학했는데, 이 아이는 학교생활을 시작부터 감정표현이 눈에 뛰게 달라졌습니다. 학교를 다녀온 후 이유 없이 울어대는가 하면, 공연히 심술을 부리고, 때로는 어린 아기 같은 행동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유의 가장 큰 원인은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과 같이 언어가 자유롭게 표현되지 못하는데 있었습니다. 영어표현의 자유롭지 못함으로 선생님과 다른 아이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데서 오는 소외감이 집에 돌아와 이상한 행동을 드러내게 한 것이었습니다. 어린것이 학교에서 돌아와 피곤하고 지친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얼마나 힘들까 생각하며 가슴아픈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반면에 큰 아이는 달랐습니다. 언어가 어느 정도 극복되어 친구들과 선생님과 익숙해져 학교 생활을 제법 즐기는 것 같았습니다. 학년 중간, 두 주간의 방학기간에는 책을 54권이나 읽어 fantastic reader(최우수 독서자)라는 상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서는, 말하기에서 따라 갈 수 없기에 책을 많이 읽는 것으로 만회하려고, 밤낮 책을 읽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이해하고 읽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주말이면 도서관에 가서 한 아름 책을 빌려와서 밤낮 가리지 않고 틈만 있으면 읽었습니다. 질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양적으로라도 인정받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어떻게 인정받고 있느냐’ 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인정받고 있다는 것과 그렇지 못하다는 것에 따라 즐겁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며 불행하기도 한 것입니다. 사람의 진정한 행복은 인정받는 삶을 살아가는데 있습니다. 인정받고 있다는 데서 행복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사람들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은 인정받는 인생을 살기 위함임을 봅니다.

‘인정받고 싶다는 것’, ‘인정받고 있다고 느끼는 감정’, ‘인정받아야 하겠다는 의지’ 이 모든 것들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합니다. 인정받고자 하는 삶이 우리의 삶의 행동을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감정에 사로잡혀 이상한 행동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봅니다.
인정받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첫째 형태는, 인정받는 삶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생활자체가 올바르고 분명합니다. 인관 관계가 건강하고 희생과 헌신의 생활에 익숙해 있습니다. 인정받는 삶에 행복을 느끼며 그 행복을 지켜가고자 적극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둘째 형태는, 인정받지 못하는 삶을 살면서 인정해달라고 강요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인정받지 못하는 삶을 살면서 소외감속에 빠져 있습니다. 이런 형태의 사람들은 인정을 강요하면서 인정하라고 강요하는 행동을 드러냅니다. 저의 둘째딸이 학교에서 돌아와 이유 없이 울고, 떼를 쓰며, 심술궂게 행동하고, 어린 아기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은, 학교에서 인정받지 못한 것을 집에서 인정해 달라고 부모에게 강요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공연히 다른 사람을 헐뜯고 비난한다든지, 이유 없이 화를 낸다든지, 편을 가르고 분열을 조성한다든지, 남의 가문을 들추어내어 비하시킨다든지, 자신의 과거의 경력이나 업적을 과시하는 것은 보게되는데, 이러한 것들은 인정을 강요하는 데서나오는 행동인 것입니다.

셋째형태는,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을 채우려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인정받지 못하면서 그 이유가 자기에게 있지 않고 다른데 있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나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을 무식하다고 하거나 잘못되었다고 비난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자신이 인정받지 못함은,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의 무식함과 잘못됨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남과 다르게 자신은 유식하고 이상적인 사람이라고 과시합니다.

이런 사람은 가정에서 아내나 자식을 사랑하지 못하면서도 사회에 나가서는 이웃사랑을 외치면서 인정받으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항상 사람들 속에서 자기본위의 독선자로 행동하면서 사회정의와 공의를 외치며 자기인정의 욕구를 채우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생활은 성실하지도 아니하면서 특이하고 이상한 이론과 행동을 주장하면서 자신은 앞서가는 사람이라고 티를 냅니다. 이런 모든 것은 인정받지 못하면서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행동인 것입니다.

‘삭개오’ 라는 사람의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조건과 환경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입니다. 특히 그는 키가 작은 기형적인 사람으로 외모가 잘 생기지 못하였기에 사람들로부터 호감과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억지로라도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출세하고자했습니다. 그는 노력해서 로마정부의 세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치부하였고, 더 높은 권력을 가지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결국 부유한 경제의 도시 여리고의 세리의 수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가 가지고 있는 부와 권력 앞에서는 고개를 숙였을지라도, 그를 진심으로 인정해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그에게 동족에게서 세금을 걷어 로마정부에 바치는 매국노라고 손가락질했습니다. 세리로 부자가 된 그를 도둑놈이요 죄인으로 보았습니다. 키가 작은 그를 난쟁이라고 비웃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삭개오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삭개오는 외로웠고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삭개오가 인정받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정함을 받는 사람이 되는데서 이웃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과의 만남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아니하는 삭개오를 부르셨고 그의 집에서 유하셨습니다. 그리고 뭇 사람이 죄인이라고 하는 삭개오의 가정에 구원이 이르렀다고 선언하셨고 삭개오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인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인정함을 받았다는 선언입니다.
하나님께 인정함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깨닫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놀라운 삶의 경험이자 축복의 사건입니다. 인간의 축복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데서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는 자니라”(고후10:18)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사람들은 세상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아갑니다. 그들의 삶에서 의미성과 가치가 드러나고, 그 삶은 즐거움과 기쁨, 곧 행복자체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우리 인간을 그리스도안에서 인정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기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인정하십니다. 하나님은 십자가 안에서 용서와 용납으로 우리를 인정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그리스도 안에서 가치 있고 귀중한 사랑의 대상으로 인정해 주십니다. 마치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듯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충주에서 목회 할 때에 한 불행한 가정을 방문했었습니다. 그 가정의 아들이 20세 후반인데 사람이기보다는 짐승과 같았습니다. 태어날 때에 심한 정신장애자로 태어나 아무 것도 모르고 짐승처럼 성장한 것입니다. 제가 방에 들어가자 짐승의 소리를 내며 긴장한 표정과 공격적인 자세를 가졌습니다. 대소변을 가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고, 사람도 전혀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 아들은 집에서 기르는 소나 강아지보다도 못한 지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그 아들을 자식으로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30년 가까이 대소변 받아내고 밥을 먹여 주었습니다. 홍수가 났을 때는 그 아들을 둘러 업고 나왔습니다. 동네사람들이 죽어버리게 버려 두라고 할지라도, 어머니는 그 아들이 자기의 소중한 아들임을 인정했습니다. 그것이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사람으로 인정할 수 없는 그를 사람으로는 물론이고 자녀로 인정하는 그 어머니의 사랑을 그 아들이 얼마나 깨닫고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로 사랑 받고 인정받는 삶을 버리고 죄 가운데서 짐승과 같은 인간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그의 자녀로 용납하시고 인정하시기 위해 그의 아들을 십자가의 구속의 제물로 삼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복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하시고 받아들이시는 이 하나님의 사랑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발견하는 사람들이 되십시다. 나를 인정하시는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에 충격적인 감격을 체험함과 함께 그 인정함 안에서 새로운 삶의 능력을 찾는 성도가 되십시다.

삭개오는 이런 인정함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집에 구원이 임했다는 것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신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할 수 없는 그를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인정해 주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할 때에 기쁨과 능력과 행복을 가지는 것입니다.
저는 둘째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이유 없이 울고 심술부리며 어린아이 같은 행동을 할 때에 처음에는 야단을 쳤습니다. 그러나 그런 방법으로는 그 아이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없었습니다. 생각 끝에 저의 부부는 아이에게 열심히 인정해 주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학교에서 인정받지 못했다는 감정보다, 더 큰 부모의 인정하는 감정을 전해주고자 더욱 많이 인정해 주었습니다. 부모의 인정함에서부터 이 아이는 학교생활을 잘 적응해 갔습니다. 결국, 학교선생님은 이런 저희 딸에 대해서 아주 영리하다고 “clever!” 라면서 칭찬해 주었습니다
인정함을 받았다는 감격은 세상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인생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만들어 냅니다. 삭개오는 주님으로부터 인정함을 받았다는 충격과 함께, 세상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행복한 삶의 능력을 찾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주님 앞에 서서 “내 소유의 절반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고 했습니다.

삭개오는 강제로 인정해 달라고 강요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충족을 위한 이상한 행동의 삶도 버렸습니다. 삭개오는 인정해 주시는 주님의 사랑 안에서 인정함 받는 행동과 함께 진실로 인정받는 인생의 길을 택한 것입니다. 삭개오는 참으로 칭찬 받고 인정받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바울은 “자랑하는 자는 주안에서 자랑할 지니라.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는 자시니라”(고후5:17)고 했습니다. 삭개오는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들을 수 있는, 인정받는 자의 축복자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는 하나님으로부터 인정함 받는 사람이 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인 십자가의 진리와 능력을 받아드리고 인정하십시오.

삭개오와 같이 진지하고 진실하십시오. 삭개오는 자신이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데 진지했고 진실했습니다. 인정받지 못하는 삶을 살면서 강제적으로 인정하라고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가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처럼 남을 깎아 내리거나 자신을 합리화하지를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은 인정함 받지 못하기에 외로운 사람이라고 솔직히 인정하고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또한, 삭개오는 자신의 문제에 대하여 적극적이었습니다. 자신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뽕나무에 올라가는 적극성을 보였습니다. 또한 예수님 앞에서 자신의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남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다는 회개와 결단의 적극성을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멸망당하고 죽어가고 있는데도 자신에 대해서 진실하지 못하고 적극적이지 못함을 봅니다. 담배를 너무 피우고 술을 너무 마셔 몸이 망가져 가면서도 자신의 위험에 대해 진지하고 진실하지 못하고 담배와 술의 습관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있으면서도, 진지하고 진실함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지도 않고, 오히려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자신의 신앙문제에 대하여 적극적이지 못함을 봅니다. 무너져 가는 인생의 길에 있으면서도 그렇지 않은 것처럼 살아갑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지하고 진실하지 못하고 적극적이지 못하기에 기도하지 않고 기도에 깨어나지 않는 것을 봅니다.

자기의 인생을 불행하게 하는 게으름이나 방종, 성적인 문란이나 좋지 못한 습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런 자신에 대하여 진지하고 진실하거나 적극적이지도 못합니다 그러면서 정치가 썩었느니, 교회가 썩었느니, 누구누구가 틀려먹었느니 하며 인정받지 못함을 남에게 떠넘기는 가증한 행동에 있음을 봅니다.
자신의 문제에 대하여 진지하고 진실함과 적극성을 가진 삭개오는 우리를 인정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간직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인정하심을 받았다는 감격과 기쁨을 가지고 이웃의 사람들로부터 인정함 받는 인생을 살아가는 삭개오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인정함을 가지고 사십시오. 그 기쁨과 능력이 세상에서 인정받는 축복의 삶이 되게 하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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