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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인 아이를 치유 하라 (엡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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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중표 목사

사람은 누구나 좋은 부모가 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부모가 되어 자녀들에게 좋은 유산을 물려주려는 소원을 갖게 됩니다.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유산은 물질도 있고, 정신도 있고, 명예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에게 남겨줄 수 있는 유산 가운데 가장 큰 유산은 인격입니다. 인격은 유산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녀는 부모의 인격을 닮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부모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아서 성장했습니다. 부모에게 체질을 받았습니다. 용모를 받았습니다. 건강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질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 중에는 나쁜 것도 있고 좋은 것도 있는데 나쁜 것은 상처이고, 좋은 것은 은혜입니다. 나쁜 것은 우리의 자아상, 인간성을 굴절시키고 병들게 하지만 좋은 것은 주님의 형상을 닮도록 만들어 줍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4절)
자녀들을 노엽게 하는 것은 나쁜 영향이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는 것은 좋은 영향입니다.
“어버이들은 자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지 말고 주님의 정신으로 교육하고 훈계하며 잘 기르십시오”(4절, 공동번역)
우리 부모님은 죄인이요, 완전한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에게 좋은 영향만 미칠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상처도 주고, 아픔과 고통도 줍니다. 자녀에게 잘못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 속에 있는 모순된 자아로 인하여 자녀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최근에 청소년들에게 설문 조사를 했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기 부모를 미워한다고 응답했습니다. 그리고 부모를 싫어하거나 전혀 존경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학생들도 많았습니다. 그 원인으로는 자존심의 실추, 이유없는 학대, 비난, 상처, 욕설, 구박 등을 들었습니다.
사람은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영향을 받습니다. 부모, 형제, 그리고 주변에 있는 친척, 선생, 친구에게서 영향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 영향을 받을 때 좋은 영향을 받을 수도 있고 나쁜 영향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어린시절에 받은 영향이 우리의 일생을 지배하게 됩니다. 우리가 어린시절에 받은 영향을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우리 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기 때문에 성장하면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 잠재되어 있던 것들이 밖으로 표출되게 됩니다. 현재 내 모습은 내가 어린시절에 받은 영향으로 형성된 것입니다.

우리 속에는 외적으로는 성장했지만 내적으로는 전혀 성장하지 않은 어린 아이가 숨어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길러가면서 자녀가 성장하지 않으면 부모의 마음은 아픕니다. 같은 또래의 아이들은 잘 성장하는데 우리 아이는 성장하지 않을 때 마음이 아픕니다.
이와같이 우리 속에도 어린시절에 받은 상처 때문에 자라지 못한 어린 아이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외적으로는 성장을 해서 어른이 되었지만 내적으로는 어렸을 때 받은 상처가 나를 억압하기 때문에 성장하지 못한 어린 아이가 그대로 내재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심리학자들은 과거적 내적 아이, 성년 된 유아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위를 보면 사업을 잘 해서 크게 성공하고, 높은 지위에 올라서 겉으로 볼 때는 어른다운 모습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에는 어린 아이가 내재되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공부를 많이 한 교수들, 유명한 사회 인사들, 목사, 장로, 권사들 중에서 어린 아이 같이 유치한 인간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4절)
여기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은 헬라어로 ‘parorgiva’ 혹은 ‘parorgivzw’라고 하는데 이 말은 학대하거나 인격적으로 무시하는 등 끊임없는 비난과 책망을 통해 낙담하게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우리는 어린시절의 상처가 감정적으로 자녀를 분노케 해서 생긴 것으로 생각하지만 무의식중에 입힌 상처들이 더 많이 있습니다.
기질은 출생으로부터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질이 부모의 인간성과 환경에 의해 새롭게 형성되어서 습관화되고 개성화 된 것이 성격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정신과 의사 휴 미실다인은 그의 저서 “몸에 밴 어린 시절”에서 성인아이의 성격유형을 여섯 가지로 분류했습니다.

첫째, 불만하는 자아상입니다. 대개 일등주의에 빠져서 자녀에게 책망만 일삼는 완벽주의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입니다. 2등 했는데도 칭찬 받기는커녕 “조금만 더 잘 했으면 1등 했을텐데 왜 안해가지고 2등을 했느냐”고 책망을 듣는 사람, 이런 사람은 성공하고도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돈을 벌어도 불만이요, 잘 살아도 불만이요, 출세해도 불만입니다. 그리고 남이 잘되는 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둘째, 반항하는 자아상입니다. 강압적인 부모 밑에서 사사건건 감독, 지시, 억압을 받고 자랐기 때문에 마음 속의 분노가 반항심으로 응어리져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가출이나 지나친 투쟁으로 자기 의사를 표출합니다. 노사분규, 시위 현장에서 지나치게 앞장서는 사람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셋째, 자기중심적 자아상입니다. 이런 사람은 부모의 과보호로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좋은 것은 자기가 먹어야 되고, 좋은 것도 자기가 가져야 됩니다. 이런 사람과 결혼하면 비위를 맞추면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살기가 힘듭니다. 막내나 독자에게 많습니다.

넷째, 무절제한 자아상입니다. 유약한 부모 밑에서 자라 무엇이든지 요구하는대로 충족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 절제를 못하기 때문에 지나치게 낭비를 많이 합니다. 돈이 떨어지면 우선 쓰고 보자, 먹고 보자 해서 카드를 마구 긁어댑니다. 이런 사람은 낭비벽이 심해서 저축한 돈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다 집 한 채씩 장만해서 사는데 반포에서 안산으로, 안산에서 화성으로 집값만 오르면 이사 다니느라 바쁩니다.

다섯째, 불안한 자아상입니다. 부모가 사업상, 직업상, 학업상, 혹은 유명인사라 너무 바빠서 다른 사람 손에서 자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성격이 불안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원만하지도 못하고 남에게 사랑을 베풀 줄도 모릅니다.

여섯째, 자학적인 자아상입니다. 어린시절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았거나 조실부모해서 친척집에 맡겨져 지나치게 눈치를 보고 자란 사람입니다. 또한 신체적 장애 때문에 가족들과 고립시켜 놓았다든지, 사람들로부터 놀림을 받으며 자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사랑에 굶주려 있습니다. 열등감을 가지고 있고, 자기를 미워하고 학대합니다. 의처증, 의부증이 있습니다.

최근에 장로회 신학대학에서는 신학생을 모집하는데 이색적인 방법을 내세워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신학생 250명을 모집하는데 필기시험에서 500명을 합격시킨 후에 인성테스트를 해서 최종적으로 250명을 합격시킵니다. 인성테스트는 목사의 자질이 있는지 없는지를 분석하는 방법입니다. 인성테스트 한 것을 서울대학 인성테스트 연구소에 의뢰를 해서 채점을 한 다음에 그것을 가지고 교수들이 면접을 하는데 필기시험에서 1등을 했어도 인성테스트에서 점수가 저조하면 목사로서 부적격하다 해서 불합격을 시킵니다.

교회에서 장로를 피택할 때도 인성검사를 해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보통 때는 잘 모릅니다. 교회에서 뭘 할 때 압니다. 사사건건 브레이크를 거는 트러블맨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독재자 히틀러가 유대인 6백만을 학살한 데는 성장배경에서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어렸을 때 우연히 어머니가 이웃집에 사는 유대인 남자와 부정한 행위를 하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장사하러 나가면 어김없이 유대인 남자와 부정한 행위를 했습니다. 그것을 본 어린 히틀러의 가슴속에 유대인에 대한 증오심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급기야는 유대인 6백만을 학살한 사람이라는 오점을 역사에 남긴 것입니다.
이런 어린시절의 상처가 결국은 내 인격을 잘못 형성되게 할 뿐만 아니라 가정생활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오래전 일입니다. 교회 집사님 가운데 사회적으로 성공한 기업가가 있었습니다. 이 분은 사회적으로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전혀 나무랄 데가 없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집에서는 아내를 괴롭히는 못된 남편이었습니다. 부인은 미모도 아름답고, 교양 있고, 살림 잘하고, 나무랄 데가 없는 여자였습니다. 자기 스스로도  “제 아내는 나무랄 데가 없는 여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착한 아내인데도 집에만 가면 아내에게 성질내고, 못되게 굴었습니다. 목사님 설교를 들을 때는 양심에 가책을 받고 ‘서로 사랑하며 살기도 짧은 인생인데 내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지’ 하면서 아내에게 잘해주려고 하는데 막상 아내를 보면 그게 잘 안된다는 것입니다. 저에게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상담을 하면서 어린시절 성장배경에 대해서 물어봤습니다. 거기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자기 아버지가 어머니를 학대하고 때리는 것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그것을 보고 ‘왜 저렇게 어머니를 구박할까 나는 결혼하면 절대로 아버지처럼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모습은 영락없이 어린시절에 봤던 아버지의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사람은 두 가지를 닮는데 하나는 좋은 면에서 닮고 하나는 나쁜 면에서 닮는다. 좋은 면에서 닮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에 닮는 것이고 나쁜 면에서 닮는 것은 미워하기 때문에 닮는 것이다.”

어떤 사람을 미워하면 그 사람과 동일시됩니다. 아버지를 미워하면 아버지와 같이 됩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면 좋은 것을 닮지만 미워하면 나쁜 것을 닮습니다.
그는 상담을 통해서 자신이 받았던 어린시절 상처 때문에 아내를 구박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을 치유하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아버지를 용서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 안에서 태어난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때 안에 있던 상처가 치유되었습니다. 아내를 볼 때 옛날 아내가 아니었습니다. 사랑스럽고, 교양있고, 살림 잘하는 훌륭한 아내로 보였습니다. “여보, 당신에게 용서를 비오. 당신같이 훌륭한 사람에게 내가 너무 못되게 굴었오. 내 부족한 것을 용서하시오.”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자녀와의 관계입니다. 우리가 어린시절에 받은 상처는 놀랍게도 자녀들에게 그대로 표출됩니다. 자녀에게 훈계를 하지만 그 훈계마저도 상처가 됩니다.
우리가 개를 기르면서 개를 향해서 “내가 너를 사랑한다.” 하고 소리치면 개가 으르렁거리면서 달려듭니다. 그런데 개를 쓰다듬으면서 부드러운 음성으로 “내가 너를 미워한다.” 그러면 개가 꼬리를 치면서 좋아합니다.
이처럼 부모가 자녀에게 좋은 말로 훈계를 해도 그 속에 사랑이 담겨있지 않으면 자녀에게 상처만 줍니다.

심리학자들이 유년기에 신체적 학대를 받은 181명을 조사한 결과 70%가 자기가 부모에게 받은 학대를 그대로 자녀에게 하고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어린시절에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가 있다면 은혜로 치유 받아야 합니다. 치유 받아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게 되면 주의 교양과 훈계는 자동으로 이루어집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교양은 훈련이요, 훈계는 말로 타이르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는 훈련을 잘 시켜야 됩니다. 아침에 늦잠 자려고 하면 일찍 일어나도록 훈련시켜야 합니다. 주일날 교회에 안가려고 하면 억지로라도 보내서 훈련을 시켜야 합니다. 기도하는 것도 어렸을 때부터 가르쳐야 합니다. 예배시간에 떠들고 장난치는 것도 못하도록 묶어놓아야 합니다. 어렸을 때 훈련을 안시키고 커서 훈련시키려고 하면 잘 안되고 오히려 상처만 주게 됩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 13:11)
장성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내적인 모습과 외적인 모습이 어른이 되어서 자녀들을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는 부모가 됩니다.

여러분이 부모에게서 받은 상처가 있다면 부모를 용서해야 합니다. 부모를 용서한다는 말은 “아버지를 용서합니다” 하고 용서를 선언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 아버지가 조상적부터 물려받은 상처 때문에 얼마나 괴로웠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면서 안타까운 심정을 가지고 아버지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이때 내 상처는 치유되고 아버지를 위대한 부모로 우러러 보게 됩니다.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우리는 부모님께 감사해야 됩니다. 부모님이 나에게 준 상처까지도 감사로 받아 ‘나에게 은혜를 더 받으라고 준 것이지’라고 생각하십시오.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면 성경에 있는 말씀대로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시 27:10) 이 은혜를 받으십시오. 어떤 환경에서 성장했든 그 환경을 은혜로 받으면 좋은 환경으로 바꾸어집니다.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 50:20)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어떻게 예수의 마음을 품을 수 있습니까? 내가 십자가에 죽어야 됩니다. 예수와 함께 죽을 때 예수의 마음이 내 마음을 차지하게 됩니다.

교회에 믿음생활 잘 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 분에게 딸이 하나 있었는데 이 딸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말도 잘 안듣고, 머리도 빨갛게 물들이고, 이상한 옷을 입고, 전에 하지 않던 이상한 행동을 했습니다. 일찍 들어오라고 하면 더 늦게 들어왔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딸이 못마땅했지만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습니다. 그날도 딸은 어김없이 이상한 복장을 하고는 밤늦게 집에 들어왔습니다. 아버지는 딸의 얼굴을 보자 그동안 참았던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딸의 뺨을 세게 때렸습니다. 그때 딸이 두 눈을 부릅뜨고 “아버지, 나는 아버지에게서 한번도 예수의 모습을 본 일이 없습니다.” 하고 확 쏘아붙이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버지는 너무 너무 충격을 받았습니다. 뭐에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 무릎을 꿇고 통곡을 했습니다. “주님, 예수의 모습을 갖지 못한 이 죄인을 용서하소서.” 한참 후에 마음이 조금 진정되자 딸의 방을 노크했습니다. “똑 똑 똑” 딸이 방문을 열었습니다. 아버지는 딸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딸아, 내가 잘못했다. 네 아버지를 용서해라. 너에게 예수님의 모습을 보이지 못한 것을 용서해라.” 딸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아버지의 행동에 깜짝 놀랐습니다. 아버지를 살짝 껴안았습니다. “아버지,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딸이 잘했든 못했든 아버지가 딸을 때린 것은 상처를 준 것입니다. 딸은 아버지에게 뺨을 맞고 모욕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딸에게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빌 때 딸이 오히려 용서를 빌었습니다.
다음날부터 딸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머리에 물감을 들이지 말아라, 이상한 옷 입지 말아라, 일찍 들어와라 말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아버지가 먼저 변하니까 딸도 변했습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어떻게 양육해야 합니까? 주님의 마음을 품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가정예배를 드릴 때 가정예배가 되는 것이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아이를 축복할 때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자녀들을 양육할 때 아브라함의 가문으로, 축복의 가문으로, 그리스도의 가문으로 변화되는 은혜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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