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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관장 헌신예배] 무릎을 꿇는 기관장이 됩시다 (단 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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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황영복 목사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어떤 주부에게 질문를 했습니다. 가정생활 하시면서 가사일로 힘드시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조용한 가집니까?’라고 물어보았더니 '예! 저는 자주 가집니다.’ ' 그렇습니까? 다행이이네요. 그렇다면 주로 그 시간에 무엇을 하십니까? '예. 그 시간에 저는 잡지에 나오는 오늘의 운세를 봅니다.' 라고 하더랍니다.

여러분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때 주로 무엇을 하고 지내십니까? 이 귀한 간을 허비하고는 있지 않으십니까? 우리 기관장 여러분들에 귀한 직분을 맡겨주셨는데 여러분들은 기관원들을 위해 무엇을 하십니까? 혹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시는 분은 안 계십니까? 글렇다면 가장 충성된 일꾼이라고 칭찬해 드리고 싶습니다. 성도 여러분들고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자신을 조용히 주님 앞에 무릎을 꿇어 보시기 바랍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이며, 때로는 신비한 영적체험과, 응답과 은사를 공급받고, 지혜를 얻으며, 믿음을 얻고,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어느 몸시 추운 겨울밤이었습니다. 한 과부가 어린 아들과 함께 불도 때지 못한 방에서 떨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먹을 것도 없었습니다. 두 모자는 배고픔을 느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성경만 읽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열왕기상 17장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곳에는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통하여 엘리야를 먹이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말씀을 읽으며 두 모자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가 끝나자 어린 아들은 까마귀가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놓자고 하였습니다. 그때 우연히 지나가더니 동장이 추운 겨울에 창문이 열린 것을 이상히 여겨 찾아 들어가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들은 동장님은 자신이 까마귀가 되어 주겠다고 하면서 먹을 것과 땔감을 갖다 주었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은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이겠습니까? 반대로 기도하지 않으면서 사명과 직분을 감당하겠다고 한다면 얼마나 보기 흉한 모습이 되겠습니까? 기도하는 기관장들의 모습을 하나님께서는 더욱 귀하게, 아름답게 보실줄로 믿습니다.

오늘 기관장 헌신예배 설교의 제목을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자"로 정했습니다. 일본인 신도양(新島襄)씨는 말하기를 "하늘나라는 무릎으로 가야한다"고하였습니다. 무릎의 생활은 두말할 것 없이 기도의 생활을 의미합니다.

본문에 주인공 다니엘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왜 기도했습니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또 사명을 감당할 때 마다 찾아오는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기도생활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이방나라에 포로로 잡혀갔지만 바벨론의 국무총리로 3명의 왕을 섬기는 귀한 총리의 직무를 잘 수행하는 성공적인 사명자가 되었습니다.

당시 다니엘은 조서에 대해 불복할 때 목숨이 위태로움을 알고 있었지만, 조서 때문에 매일의 기도를 멈춘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부인하고, 신격화된 왕을 숭배하는 행위로 생각해서 결코 따르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함과 사자굴 속에 들어가는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지만 승리를 했습니다.

우리 미스바교회의 모든 기관장님들과 성도여러분들이 이러한 다니엘의 기도생활을 본받기 원합니다.

아울러 이 시간 진정한 충성을 다하는 기관장여러분과 성도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되길 원하시면 다니엘과 같이 기도하는 삶으로 충성하시기를 복빌어 드립니다. 다니엘의 무릎꿇음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 신앙의 아주 좋은 모델 케이스가 됩니다.

다니엘의 승리하는 기도생활에서 그는 어떻게 기도의 모범을 보여주었습니까?(본문 이해: Meaning & Significance).


1. 하루에 세 번식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따라합시다. 우리도 하루에 세번 이상 시간을 정해놓고 간절히 기도합시다. 하루 세 번의 기도는 시 55:17에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라는 성경귀절과 관련된 것으로 '저녁과 아침과 정오' 때의 기도를 말합니다. 이러한 규칙적인 기도의 자세는 다니엘의 탁월한 영적 성숙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정한 시간이 되면 틀림없이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쓰임 받고 충성했던 모든 사람들이 그러했습니다. 베드로가 그랬고, 고넬료도 그랬으며, 초대 유대인 성도들은 대부분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물론 세 번은 유대인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횟수입니다. 삼(3)이라는 숫자는 하나님의 수로 정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무엇이든 세 번을 하면 후회하지 않을 만큼 했다고 생각합니다. 겨루기를 해서 삼 세 판해서 지면 별 불만이 없고, 이기면 제대로 된 승리라고 자부합니다. 한번이나 두 번하면 뭔가 모자란다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져도 잘 승복하지 않고, 이겨도 떳떳한 승리가 아닌 것 같아 아쉽고, 찝찝합니다.

물론 세 번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시간을 정해놓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니엘서 6장 4절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으나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고 기록되어있는데

국사에 대하여...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에서

'틈'(* , 일라)이라는 단어의 뜻은 '구실', '기회'란 뜻이며, 여기서 '고소할 틈'은 공적인 업무에 관계해 법적으로 고소할 수 있는 근거나 구실을 말하며,

'허물'(* , 쉐하트)은 업무상의 부패한 행동이나 속임수를 말하며, '태만', '잘못', '실패'란 뜻의 '그릇함'(* , 솰루)은 실수로 빚어지는 업무상의 차질이나 중대한 과오를 각각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 보면 '열정적으로 찾다', '열열히 구하다'란 뜻의 '얻고자 하였으나'(* , 베아)와 함께 동관(同官)들이 공적 업무와 연관해서 다니엘의 결점을 집요하게 찾으려 했으나 결국은 실패하고 말았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다니엘의 탁월하고 철저한 행정 수완을 단적으로 증명해줍니다. 이 귀한 지혜가 어떻게 다니엘게 있었습니까? 그것은 이미 포로로 잡혀온 때에 기도로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소유했고, 기도 생활로 하나님께로 부터 신령한 지혜를 공급 받았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시간 기관장과 성도 여러분께서도 신령한 지혜와 능력을 공급받아 하나님께 충성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정한 시간에 하나님 앞에 하루에 최소한 세번은 무릎을 꿇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관장 여러분들께서는 기도하는 모범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2. 죽인다는 위협을 받았지만 무릎을 꿇고 기도를 쉬지아니했습니다.

6장 8절~9절에 “그런즉 왕이여 원컨대 금령을 세우시고 그 조서에 어인을 찍어서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를 따라 그것을 다시 고치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다리오왕이 조서에 어인을 찍어 금령을 내니라

“그 조서에 어인을 찍어서...고치지 못하게 하옵소서” 6절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모여서 요청합니다.??'어인을 찍어서'의 단어를 살펴보면(* , 티르슘 케타바)는 원어상 '기록으로 써서 표시하다'란 뜻으로 단순하게 왕의 인장을 찍는다는 의미를 넘어 왕이 직접 친필로 서명하는 것을 가리킵니다(sign,LB).

이는 곧 그 조서의 내용과 시행에 대한 불변성과 확고함을 극적으로 강조하기 위한 것이며, 다리오가 그 조서에 서명한 것은 고대 근동의 이방 국가에 있어서 왕을 신의 대리자나 신의 아들 또는 신 그 자체로 여겼다는 사실에 미루어 자신을 신격화하는 이 조서에 대해 특별한 거부감을 가질 이유가 없었던 때문으로 보여집니다.

또한 당시 피정복국들의 다양한 민족과 민족 신들을 포괄하고 있던 메대와 바사 제국으로서는 이들의 종교적, 정치적 규합이 긴요했던 바,

동관들은 다니엘 제거라는 목적을 은폐하면서 타당한 명분을 내세워 자신들의 의도를 관철할 수 있었기 때문에 요청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다니엘은 그의 다스리는 바벨론의 다리오 왕이 내린 조서에 오늘부터 30일 동안 왕 외에 그 어떤 신에게든지, 사람에게든지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는다는 금령에 어인이 찍혀 그 효력이 발생되고 있었던 때입니다.

먼저 9절까지는 그 사건의 발단부로서 탁월한 지혜와 능력을 인정받아 바벧론 제국이 멸망한 후 메대의 다리오 왕에게까지 총애를 받게 된 다니엘을 시기한 동관(同官 )들이 '황제 숭배 예식'을 통해 다니엘을 제거하려는 음모가 있었습니다.

한편 이러한 다니엘 살해 모의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정치인들의 죄적 성향과 부패성 그리고 권력 쟁취를 위한 허위와 기만, 잔인성 등에 기인한 악의였습니다. 따라서 지금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 당장 사자 굴에 던져지게 됩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릎을 꿇고 지속적으로 하루에 세번씩 하나님께 기도를 하였습니다. 적어도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자는 하나님보다 더 크신 이가 없음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권력이나, 사람의 위협에 겁이 나서 하나님께 무릎꿇는 것을 포기한다면 온전한 무릎을 꿇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다는 것은 겸손의 표현인 동시에 하나님께 대한 절대 순종을 의미합니다(왕상 8:54- 서서 큰 소리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위하여 축복하며 가로되; 바울의 기도: 행 20:36-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저희 모든 사람과 함께 기도하니).

우리는 어떻습니까? 조그만한 일이 닥쳐와도 그것을 핑계삼아 기도시간을 얼마나 많이 포기합니까? 죽음의 위협이 아니라 하찮은 이유로 인해 기도를 포기할 때가 많지 않습니까? 직장 상사의 위협 때문에, 거래처의 위협때문에, 부모의 위협때문에, 형제의 위협때문에 무릎꿇는 것을 너무나 쉽게 포기하고 맙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아직도 하나님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 외에 나의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고 있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능력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멀리 있다고 믿습니다. 잘못된 신앙관을 가진 것입니다.

어떤 이유가 있어도 기관장들은 기도생활에 모범을 보여야만 합니다. 지금 당장 생계의 위협이 있고, 육신이 커란 질병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생계의 위협으로 시간을 낼 수 없다는 핑게로 기도생활을 쉬었다면 각기관에 다시 기도의 불을 붙이는 앞장서는 기관장 여러분들이 되어 충성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3. 다니엘의 기도 내용을 보면 감사의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무엇이 감사했겠습니까? 기도의 내용이 하나님께 대한 감사라는 것은 다니엘이 포로되었던 자신에게 이루어진 하나님의 지속적인 보호와 은혜의 섭리를 항상 기억하면서 자고하지 않는 겸허한 감사의 삶을 살았음을 알게됩니다.

지금 일이 형통해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지금 사정이 좋아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다니엘은 의지할 하나님이 계시기에 감사했습니다.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무릎을 하나님께 꿇을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기관장 여러분들과 성도 여러분 무엇이 이루어져서 감사하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지금 내가 하나님의 자녀 된 것에 대해서 감사하십시오. 의지할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 때문에 감사하고, 내가 출석할 교회가 있어 감사하고, 나의 이름을 기억해 주는 목사가 있어 감사하십시오. 내가 헌신하고 충성할 수 있는 기관이 있음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무릎을 꿇으면 현재 상황이 어렵고 힘들지라도 감사부터 하시기 바랍니다. 이미 무릎을 꿇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조건이 됩니다. 어렵고 힘들 때 무릎꿇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목사를 원망하고, 교회를 비난하면서 떠나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하박국 선지자는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3:17-18)

성도 여러분 그리고 기관장 여러분들이여,

이제부터 충성을 다짐하되 무릎을 꿇으시기 바랍니다.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최고의 시간으로 여기고, 어떤 일 때문에도 양보하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시간에는 목숨의 위협이 와도 포기하지 마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조용히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마음이 시원하시고, 축복하고 싶고 춤이라도 추고 싶으실 것입니다. 기특하고 대견스러워 못 견디실 것입니다.

누군가가 말하기를 "세상은 하나님의 손이 움직이고 하나님의 손은 기도가 움직인다"고 하였습니다. 과연 틀린 말이 아닙니다.

생리학 부문의 노벨상을 수상한 의학박사인 ?알렉시스 카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란 인간이 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에너지의 형태이다. 기도가 인간의 심신에 끼치는 영향은 호르몬의 영향과 같다. 기도를 꾸준히 하면 지적 활력을 증가하고 인간관계에 넓은 이해를 도모할 수 있다. 또한 기도는 완전한 인격성장에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기도 속에서 우리는 나약한 인간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능력을 얻을 수 있다." 고 했습니다.

지속적인 기도는 삶에 막강한 에너지원이 됩니다. 6장 14절의 '해가 질 때까지'란 말이 암시하듯 다니엘에 대한 다리오의 처벌 결정이 지연되자 참소자들은 다시 법적 형태로 내려진 왕의 조서는 변개될 수 없다는 메대와 바사의 전례를 들어 다니엘의 즉각적인 처벌을 촉구합니다.

14절에 “왕이 이 말을 듣고 그로 인하여 심히 근심하여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마음을 쓰며 그를 건져 내려고 힘을 다하여 해가 질 때까지 이르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16절에 “이에 왕이 명하매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 굴에 던져 넣는지라 왕이 다니엘에게 일러 가로되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하니라”

이에 왕이 명하매 - 다리오는 자신이 내린 명령으로 빚어진 불의 한 결과를 알면서도 철회하지 못하는 인간적인 유약함과 무력함을 보여준다. 한편 다니엘에 대한 형의 집행은 동양의 관습에 따라 참소의 혐의가 밝혀진 그날 저녁에 시행되었었을 것입니다.(Delitzsch).

17절에 “이에 돌을 굴려다가 굴 아구를 막으매 왕이 어인과 귀인들의 인을 쳐서 봉하였으니 이는 다니엘 처치한 것을 변개함이 없게 하려함이었더라”

“돌을 굴려다가...인을 쳐서 봉하였으니”

여기서의 사자굴은 그 입구가 위를 향한 일종의 구덩이로 생각되는 바(창 29:3;37:24, Hitzig) 일반적으로 이 입구는 돌로 막아놓지 않았었는데(Delitzsch). 따라서 그 입구를 돌로 막아 놓은 조치와 그 막아둔 돌에 이중의 봉인을 했다는 사실은 비록 그 안에 갇힌 자의 무죄가 입증된다 할지라도 다시는 나오지 못하게 하는 조치로 참소자들의 다니엘 제거 의지가 어느 정도였는가를 여실하게 드러내줍니다.

18절에 “왕이 궁에 돌아가서는 밤이 마ㅊ도록 금식하고 그 앞에 기악을 그치고 침수를 폐하니라”

다리오가 식음을 전폐하고 기분 전환을 위한 모든 수단을 중단시킨 채 근심으로 밤을 세운 사실을 보여주는 바, 이는 다니엘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과 함께 불의한 명령의 결과에 대한 다리오의 양심의 가책과 인간적 고뇌를 엿보게 해줍니다.

그러나 19, 20절은 “이튿날에 왕이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굴로 가서, 다니엘의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는 슬피 소리질러 다니엘에게 물어 가로되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

절망적 상황이 반전되는 부분입니다. 21절에 다니엘이 왕에게 고하되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왕이여 나는 아직도 살아 있나이다'란 말을 부연합니다. 22절에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여기서 '그 앞에'는 곧 '하나님 앞에'라는 뜻으로 다니엘의 무죄함은 이미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통해 하나님에 의해서 입증되었음을 밝힙니다. 할렐루야!

단 6:24절에 “왕이 명을 내려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끌어오게 하고 그들을 그 처자들과 함께 사자 굴에 던져 넣게 하였더니 그들이 굴 밑에 닿기 전에 사자가 곧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숴뜨렸더라”

“참소한 사람들을...사자굴에 던져 넣게 하였더니 ”??무고한 다니엘을 참소한 자들의 비참한 최후에 대한 기록으로 에스더서의 사건을(에 7:9, 10) 연상시키는 본 구절은 상징적으로 불의한 악법을 만든 자들은 반드시 자신들이 만든 법에 의해 심판받는다는 사실을 주지시킨다(시 7:15, 16;9:15, 16).

특별히 참소자들과 함께 그 처자들까지 처벌된 것은 고대 근동 국가의 관습(수 7:24, 25)으로(Herodotus), 모세의 율법에서는 금지된 것이었다(신 24:16). 한편 혹자는 이 처벌된 참소자가 두 총리를 포함한 122명(1절 참조)이라고 주장하나(Hitzig)

방백 전체가 다니엘을 참소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로 미루어(6절 주석 참조) 다니엘을 적대시한 자들의 수에만 국한시키는 것이 타당합니다(Delitzsch, Thomson). 70인역(LXX)은 이를 다니엘에 반대해서 증언했던 두 사람과 그들의 처자로 번역했습니다.

아뭏튼 다니엘은 구원받았고 적들의 참소에 승리했습니다.??기도의 능력을 받아야 내가 속한 기관을 지킬수가 있거, 부흥시킬 수 있습니다. 할수만 있으면 택한자라도 넘어지게 하려는 사탄의 역사로 부터 내가 속한 기관원들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 기도를 생각하사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하실 때에 그의 조카 롯을 구원해 주지 않았습니까? 무릎을 꿇읍시다. 무릎을 꿇고 지속적으로 쉬지아니하고 내가 속한 기관원들과 구역원들을 위해, 성도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기관원들을 맡겨주신 것을 감사하며, 기도하는 기관장과 미스바교회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부탁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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