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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복지수가 높은 사람 (빌 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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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신만교 목사

(빌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빌 4: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빌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모든 사람들의 공통의 꿈은 행복(幸福)을 추구하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 행복한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는 불행(不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 그것을 행복감(幸福感)이라고 말하는데, 그 행복감을 수치로 나타내는 것을 '행복지수'(Happiness Quotient)라고 합니다. 이 행복지수가 높은 사람이 진짜 행복한 사람입니다. 요즘에 삶의 질이니 웰빙이니 하는 말과 상통하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여러분의 행복지수는 어느 정도나 될 것 같습니다. 꽤 높을 것 같습니까? 아주 낮을 것 같습니까? 우리교회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 즉 행복지수가 높은 사람은 누굴 까요? 그런데 남이 볼 때는 정말 행복해 보이는데, 정작 자신은 행복하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남이 볼 때는 불행해 보이는 데도 정작 자신은 행복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어요.

  어떻든 행복이라는 것은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해야지 남이 행복하다고 봐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그러니까 스스로 느끼는 행복감, 행복지수가 중요한 겁니다. 이게 진짜 행복입니다. 우리 화평 교우들 모두가 진짜 스스로 행복하시고 행복지수가 아주 높은 사람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고 행복지수가 높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오늘 그 비결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알아야할 것은 

1. 행복(幸福)은 물질의 소유나 환경에 따라서 비례하지 않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흔히 사람들은 행복의 기준을 물질의 많고 적음이나 환경, 여건과 같은 가시적인 것으로 평가를 합니다. 그래서 돈이 얼마나 있느냐? 혹은 몇 평짜리 아파트에 사느냐? 보유한 주식이 얼마나 되느냐? 또는 어떤 지위에 있느냐? 등으로 그 사람의 행복을 평가한다는 겁니다. 과연 행복이 이런 것들과 비례할까요?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이 주는 기쁨은 많습니다. 사고 싶은 것을 다 살 수 있고 갖고 싶은 것을 얼마든지 가질 수 있습니다. 돈이 없으면 참 불편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습니다. 사람 노릇을 못 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돈이 진정한 행복을 책임져 주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돈은 전능한 신(神)이 아닙니다. 

  오히려 물질이 슬픔과 고통을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옛말에도 '천석군 천 가지 걱정, 만석군 만 가지 걱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돈 많은 재벌회장들이 빌딩에서, 혹은 한강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는 것 보셨지요.
  이렇게 '물질이 곧 행복이다'라는 보편적 사고(思考)를 뒤엎는 통계가 이미 나와 있습니다. 영국(英國)의 LSE대학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65개국의 국민들의 행복지수를 조사한 결과, 놀랍게도 행복지수 1위인 나라가 방글라데시였습니다. 그 다음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는 나이지리아였고 우리나라는 23위를 차지했으며, 영국이 32위, 일본이 44위, 미국이 46위를 차지했습니다. 

  대부분 가난한 나라 국민들이 행복지수가 높았고 국민소득이 높은, 선진국 국민일수록 행복지수가 낮았습니다. 가난한 나라로 알려진 방글라데시나 지지리도 못 사는 나이지리아 국민들이 오히려 행복감을 느끼며 살고 있다는 겁니다. 뭔가 생각해 볼 의미가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선진국에서 오히려 자살율이 높다는 것 아시지요? 미국 샌프란시스코는 미국에서도 살기 좋은 곳으로 10위권 안에 드는 도시입니다. 그런데도 자살(自殺)하는 사람의 숫자가 미국 전체에서 5위라는 겁니다.   
  얼마 전 '주간동아’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100점 만점에 64점의 행복을 느끼고 있었고 남녀간의 차이는 거의 없었지만 지역 별 행복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서울, 경기, 인천 지역 사람들은 행복지수가 59점의 낮은 점수를 보였지만, 강원도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71점으로 전국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임을 보여주었습니다. 여기, 강원도 사람 손들어 보세요. 모두 행복해 보이지요. 그러니까 시골 사람들보다, 도시 사람들이나 강남(江南)들이 더 행복하지 않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못 사는 사람들이 다 행복하니 우리도 가난하게 살자. 시골로 가자'그런 말이 아닙니다. 다만 '돈이 많고 부자가 돼야 행복하다'는 말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돈이 행복이려니 생각하고 돈만 버는 것을 목적을 삼지 마세요. 또한 나는 돈이 없어서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도 마세요. 돈이 인생의 주인이 되면 안 됩니다. '돈은 악한 주인이요, 선한 하인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돈이 주인이 되면 그 돈이 얼마나 횡포를 부리는 줄 아세요. 그렇게 되면 진짜 불행해 집니다. 우리는 돈을 관리할줄 알아야합니다.   

  중국 설화(說話)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돈을 벌기만 하고 도무지 쓸 줄을 모르는 큰 부자(富者)에게 한 청년이 찾아와서 돈 버는 비결을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이때 부자는 그 청년을 데리고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쳐다만 봐도 아찔한 절벽(絶壁)위에 서게 했습니다. 그리고 절벽 정상 위에 소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그 청년보고 그 소나무 위로 올라가라고 했습니다.
  청년(靑年)이 소나무 위로 올라가자, 이번에는 큰 가지로 옮겨가라고 했습니다. 청년은 벌벌 떨면서 큰 가지로 옮겨갔습니다. 부자는 다시 가지 끝으로 가서 작은 가지를 붙잡으라고 했습니다.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요, 청년은 나무 가지에 매어 달려 있습니다. 나무 가지는 금방이라도 꺾어질 판입니다. 청년은 식은땀을 흘리며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나무 가지를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습니다. 그때 부자가 말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비결이다. 돈을 그렇게 꽉 움켜잡아야 부자가 되느니라.'라고 말하더랍니다. 

    이 부자가 과연 행복했을까요? 오늘날 돈을 목적으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바로 이런 겁니다. 천길 낭떠러지 위에 있는 나무 가지를 붙잡고 있는 심정이니 뭐가 행복합니까? 식은땀만 나고 고통스럽기만 하지요. 
  예수님께서도 어리석은 부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눅 12:15)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모으는 재미보다는 의미 있게 쓰는 기쁨이 더 큽니다. 부자는 모으기만 했지 쓰는 기쁨을 몰랐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한달에 300만원을 벌어도 불평하고 늘 모자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150만원을 가지고도 감사한 마음으로 십일조 드리고 선교헌금도 하고 맥추감사헌금도 하나님께 드리고 이웃까지 도우면서 행복하게 사는 성도들도 많습니다. 사람의 행복(幸福)이 그 소유나 환경의 넉넉함에 있지 않습니다. 어떻게 주님 뜻대로 선하게 잘 쓰느냐에 달려 있는 겁니다.   
  두 번째 행복지수를 높이려면?

2. 지나친 욕심(慾心)을 버려야 행복(幸福)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욕망(慾望)을 다스리지 못하면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행복감을 어떻게 느끼는 가에 대한 행복지수의 공식이 있습니다. '행복지수는 욕망 제곱 분의 소유다'(행복지수=소유/욕망2)라는 겁니다. 갖고 싶은 욕망에 비례하여 얼마나 소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행복을 느낀다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제일 행복지수가 높은가? 욕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행복지수가 제일 낮은가? 욕심은 많은 사람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행복하기를 원하면서 욕심을 채우려고만 하지 욕심을 줄이려고 는 하지 않습니다.

  오늘 날 보편적으로 생활여건이 점점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행복한 생활을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지나친 욕심(慾心) 때문입니다. 욕심을 다 채울 수 없기 때문에 불만입니다. 욕심은 다스리기가 어렵습니다. 욕심은 가질수록 더 생겨요. 얻는 것보다 이 욕심이 갑절로 불어나는 겁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30평짜리의 아파트를 갖겠다는 욕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욕망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만족하고 행복해야 할 것 아닙니까? 만족하지 않습니다. 왜요? 욕망이 제곱으로 불어나게 됩니다. 그러면 이제는 30평이 아니라 60평이 됩니다.

  인간의 욕망은 무서운 겁니다. 여러분이 욕망이라는 속성을 알아야합니다. 마치 욕망(慾望)이란 지옥의 끝이 없는 구덩이와 같습니다. 잠언 27:20절에 '지옥과 저승은 아무리 들어가도 한이 없듯이 사람의 욕심도 끝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세상 것을 다 가져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 인간의 욕심입니다. 
(사 5:14) 음부가 그 욕망(慾望)을 크게 내어 한량없이 그 입을 벌린즉 그들의 호화로움과 그들의 많은 무리와 그들의 떠드는 것과 그 중에서 연락하는 자가 거기 빠질 것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욕심(慾心)을 다스려야 합니다. 그래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북한(北韓)을 다녀오신 어느 목사님이 '북한 사람들은 못산다는 것을 모르고 남한 사람들은 잘 산다는 것을 모른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북한 사람들은 욕심이 없어서 못 사는 대도 행복지수가 높고 남한 사람들은 잘 살면서도 욕심 때문에 행복지수가 낮다는 겁니다. 

  전에 김동건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11시에 만납시다'라는 프로에  모범적인 소녀(少女)가장이 초대(招待)되었습니다. 이 소녀는 병든 할머니와 어린 남동생과 함께 달동네에서 살았습니다. 소녀의 아버지는 그가 어렸을 때 돌아 가셨고 엄마는 그 후로 집을 나갔다고 합니다.
  이런 소녀와 대담을 하는 가운데 소녀는 자신도 남들처럼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했습니다. 그러자 사회자가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소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동생과 함께 어린이 대공원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그리고 평소에 타보고 싶은 바이킹도 타고 싶다고 얼굴을 붉히며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김동건 씨의 눈이 붉어지며, 그 비용을 자신이 낼 테니 얼마면 되겠냐고 소녀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소녀는 의외의 제안에 조금 생각에 잠기는 듯 했습니다. 그러다가 소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입장료, 아이스크림, 바이킹요금, 대공원까지의 버스 요금 모두 합해서 4,750원 이라고 상세한 사용처를 밝혔습니다. 4,750원짜리의 소박한 행복을 갖고자하였습니다. 그 소녀가 어느 날 동생과 함께 대공원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바이킹을 탈 때 얼마나 행복하였을까요.

  우리도 이렇게 소박한 욕심을 가지고 삽시다. 그래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딤전6: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 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다 이 정도는 있지 않습니까? 족한 줄로 여기십시오. 지나친 욕심을 버려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행복지수를 높이려면?

3. 주 안에 거(居)하는 사람만이 항상 기뻐하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하여 주신 말씀입니다. 4절 말씀입니다. 
(빌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사도 바울이야 말로 항상 기뻐하고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무슨 소유나 환경으로 봐서는 전혀 기뻐하거나 행복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얼마나 매를 많이 맞고 굶주리고 죽을 고비를 많이 넘겼습니까? 사도 바울이 무슨 재산(財産)이 있습니까? 지위가 있습니까? 명예가 있습니까? 아무 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항상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그 기쁨의 근원(根源)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무엇을 소유해서, 무슨 좋은 환경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께로부터 온 겁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 만나고 이 기쁨을 찾은 겁니다. 그러니까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권합니다. 여러분, 이 기쁨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예수 안에 있게 되면 욕심(慾心)이 메꾸어 집니다. 파스칼이 말한 대로 '인간의 마음속에는 온 천하를 가지고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라는 구덩이가 있는데, 이 욕망의 구덩이는 오직 예수로만 채워  진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를 소유하고 나면 세상적인 욕심이 다 사라집니다. 그만큼 예수가 좋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02장의 찬송을 부르게 됩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행복과 바꿀 수 없네
유혹과 핍박이 몰려와도 주 섬기는 내 맘 변치 못해
[후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이것이 여러분의 진실한 고백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 안에 거하게 될 때, 기쁘고 행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  예수 안에 모든 것이 다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각종 보화를 얻게 됩니다. 무슨 보화입니까? 예수 안에 죄 사함도 있고 구원도 있고 영생(永生)도 있고 천국도 있습니다.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 되어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천국이 상속됩니다. 그러니 항상 기뻐할 수 있고 범사에 감사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환경과 여건 대문에 오는 행복은 진정한 행복이 아닙니다. 이런 것은 환경이 변하면 없어질 행복이니까요. 우리가 누리는 행복은 영원히 변치 아니하는 행복입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린 사도 바울의 전천후적(全天候的)인 삶, 기억하시지요. 그 어떤 환경과 여건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자족하고 감사하는 바울의 고백 말입니다. 
(빌 4: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그는 어떤 형편과 처지 가운데서도 그는 자족할 수 있는 비결을 터득하였다고 했습니다. 그게 뭡니까?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는 것과 같은 말씀입니다. 6, 7절을 다같이 읽습니다. 
(빌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주님께서 지금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애들아 아무것도 것도 염려하지 말라. 염려거리가 있으면 내게 기도를 하라. 기도하되 감사하면서 다 나에게 아뢰라 그러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평강(平康)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켜 줄 것이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평강의 복을 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옛날에 영국(英國)에 루이스라는 황제가 있었습니다. 그는 왕(王)으로써 행복할 수 있는 많은 조건들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좋은 옷, 맛있는 음식, 높은 권력, 아름다운 아내, 건강한 몸, 똑똑한 자식들, 명석한 두뇌 등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마음속에는 진정한 기쁨과 평안(平安)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머리도 식힐 겸, 백성들의 생활도 알아볼 겸해서 평민복으로 갈아입고 신하 몇 사람만 데리고 궁중(宮中)을 빠져나가 민정시찰에 나섰습니다.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왕(王)이 어느 시골마을에 물레방아간 옆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골 초라한 물레방아간 안에서 흥겨운 노래 가락이 흘러 나왔습니다. 그 노래는 너무나 평화롭고 기쁨이 넘치는 노래 가락이었습니다. 그때 그 노래가 바로 이겁니다.

  1.세상 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나도 역시 세상 사람 부럽지 않네
    하나님의 크신 은혜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노래에 흠뻑 취했던 왕(王)은 물레방아간의 문을 열고 노래의 주인공(主人公)을 찾았습니다. 왕의 눈앞에 나타난 사람은 뜻밖에 물레방아를 지키고 있던 촌 할아버지였습니다. 왕이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그렇게 좋으세요? 무엇이 그렇게 좋으세요? 할아버지, 그 노래를 한번 다시 불러주세요?' 할아버지는 흥겹게 또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흐르는 땀을 훔쳐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저는 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저를 날마다 이렇게 행복하게 해주신 답니다. 예수님만 생각하면 너무너무 기뻐요. 나 같은 인생에게 구원을 주시고, 영생도 주셨어요. 그리고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평강(平康)도 주셨답니다. 저는 너무 행복합니다.' 할아버지는 자기 앞에 서 계신 분이 왕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기쁨에 넘쳐서 말을 했습니다.

  할아버지의 행복한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왕은 내심 할아버지가 부러웠습니다. 왕궁(王宮)으로 돌아온 루이스 왕은 그때 만난 그 행복한 할아버지를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그 할아버지를 왕궁으로 초대를 했습니다. 왕의 부름을 받고 영문을 모른 체 달려온 할아버지가 왕의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할아버지, 고개를 들고 날 보세요' 할아버지는 두려운 마음으로 고개를 조심스럽게 들고 왕(王)을 쳐다보았습니다. '할아버지, 저를 알아보시겠어요. 얼마 전에 물레방아간에서 만났던 바로 그 사람입니다.' 할아버지는 깜짝 놀라며 '이 늙은이가 황제 신 줄도 모르고 주책을 부렸습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때 임금은 '아닙니다. 할아버지, 안심하십시오. 할아버지를 벌주려고 오시라고 한 것이 아니라, 그때 부르신 그 노래를 다시 한번 듣고 싶어서 오시라고 한 것입니다. 할아버지, 물레방아간에서 불렀던 그  노래 한번만 더 불러주세요' 할아버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 또 노래를 불렀습니다.

    세상 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나도 역시 세상 사람 부럽지 않네

  할아버지의 노래를 다 듣고 나서 루이스 왕이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2절은 없습니까?' '예, 없습니다' '그러면 2절은 이렇게 만들어 불러보세요'

  2. 세상 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영국 황제 루이스가 날 부러워해
    하나님의 크신 사랑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할아버지의 찬송을 듣고 난 왕(王)은 그 자리에 모인 많은 고관대작(高官大爵)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여기 계신 할아버지는 우리들보다 가진 것이 없지만, 우리에게 없는 것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것은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할아버지처럼 주님을 믿고 마음에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성도 여러분, 누가 행복한 사람입니까? 누가 행복지수가 높았습니까? 한 나라를 호령하던 루이스 왕이 아니고 고관대작들이 아니었습니다. 물레방아를 돌리던 무명의 할아버지가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행복(幸福)은 물질의 소유나 환경에 따라서 비례하지 않습니다. 지나친 욕심(慾心)을 버려야 행복(幸福)할 수 있습니다. 주 안에 거(居)하는 사람만이 항상 기뻐하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주 안에 거하는 자가 된다면 이렇게 행복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진정한 행복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찬송가 102장을 부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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