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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큰 은혜가 임한 교회 (행 4:3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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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종영 목사

  초대 예루살렘 교회도 정치, 경제, 사회 및 종교적인 측면에서 많은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에는 큰 은혜가 충만히 임하는 교회였습니다. 실로 큰 은혜가 계속적으로 임함으로 그 모든 어려움을 넉넉히 극복하고 초대 교회 가운데 가장 모범적인 교회로 성장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여러가지 어려움의 직면한 우리교회가 주목해야할 일입니다.

그러면 큰 은혜가 임한 교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1. 큰 권능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교회입니다.

  1) 본문 33절에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라 했습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중심 사역은 모든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그가 친히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생명의 주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사도들의 수많은 설교의 중심은 바로 십자가와 부활이었습니다.(행 2:23-24, 3:15, 4:12, 5:30-31, 23:6) 사도 바울은 가는 곳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도(道)가 구원 얻는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고전1:28) 그러나 부활 없는 십자가는 미완성일 뿐입니다.

  2) 그러므로 사도들은 그리스도를 증거하되 그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 했습니다. 부활은 십자가가 구원의 완성임을 확증해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죄의 비참한 종말을 봅니다. 그러나 부활을 통해 죄 사함과 새 생명의 시작을 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처절한 지옥 고통을 봅니다. 그러나 부활을 통해 영원한 천국의 기쁨을 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나의 죽음을 봅니다. 그러나 부활을 통해 내게도 주실 영생을 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허무와 절망을 봅니다. 그러나 부활을 통해 칠전팔기의 용기와 찬란한 소망을 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증거 되는 곳에 큰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3) 특히 사도들은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 했습니다. 큰 은혜는 증거자의 권능에 비례합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가 성령의 능력에 사로잡혀 증거 할 때, 무리가 큰 은혜를 받습니다. 초대교회는 말씀의 진미를 체험한 교회이므로 저들은 일심으로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이로서 말씀의 부흥이 일어났고, 사도들이 곤경에 처하자, “담대히 말씀을 전하도록 합심 기도” 했습니다. 이로서 기도의 부흥이 일어났으며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 할 때, 큰 은혜가 임했습니다. 지금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삶 속에 찾아 오셔서 구원의 역사와 치료의 역사와 축복의 역사를 이루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성도들의 마음과 뜻이 하나 되는 교회입니다

  1)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성도들이 “한 마음과 한 뜻이 된 교회”라 했습니다.(32) 여기 “마음”이란 헬라어 “카르디아”로서, 사람의 감정(롬 9:2)과 의지(고전 4:5)와 사상(롬 10:6)의 좌소입니다. 그리고 “뜻”이란 헬라어 “푸스케”로서, 보통 “혼”이라 번역되기도 합니다. 이는 육적 생명의 중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마음, 한 뜻이 된다는 것은 히브리 식 표현법으로, 감정과 의지와 사상이 하나 되는 완전한 일치(대상 12:38, 렘 32:39)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저들은 각각 출신과 성분과 취미와 성향이 달랐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인정하여 혼연일체가 되었습니다.

  2) 큰 은혜가 임하는 교회는 완전한 일치를 이루는 교회입니다. 우리는 초대교회의 이 단결된 모습을 성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마음을 같이하여 모이기를 힘썼습니다(행 2:46-47). 떡을 떼며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교제를 힘썼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이로 인해 온 교회 성도들이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구원받는 사람이 날마다 늘어나는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또한 초대교회는 마음을 같이하여 일심으로 기도하기를 힘썼습니다(행 4:24). 초대교회는 일심으로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했습니다.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가 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큰 은혜가 임한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3) 이렇게 수적인 열세요, 초라하고 빈약한 교회였지만, 모든 무리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모이기를 힘쓰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교제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며 기도할 때 날마다 승리하는 교회가 되었고, 위대한 역사가 성취되었습니다. 가정이나 교회나 국가가 흥왕하려면 단결해야 합니다. 은혜 충만하여 안팎의 모든 시련을 극복하고 승리하려면 일심 단결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일심 단결하여 기도하고, 찬송하고, 교제하고, 헌신함으로 큰 은혜를 체험하고 안팎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여 더욱 큰 복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큰 위로 자 헌신 자가 있는 교회입니다.

  1) 사실, 32절 이하 37절은 초대교회가 유무상통하는 사랑의 공동체였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큰 은혜가 임한 결과 자생적으로 이뤄진 사랑의 공동체였습니다. 큰 은혜가 임하자 모두 한 마음 한 뜻이 되었을 뿐 아니라 모든 물건까지 서로 통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기의 것을 아낌없이 바치는데 앞장섰던 대표자는 바나바였습니다. 바나바란 이름은 “선지자의 아들 혹은 권위자”란 뜻입니다. 그는 요셉(더함)이라는 별명도 있었습니다. 이는 그가 누구에게나 도움을 주는 자요, 더해주는 자였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는 숨어있는 사도 바울을 찾아 발굴하여 위대한 사도로 등장케 하는 안내자가 됩니다.

  2) 그런데 본문 37절에는 바나바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 바나바는 말로만 위로하는 자가 아니라,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 남을 섬기며 위로한 사람이요(37), 둘째, 선한 일을 위해 결심한 바를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여기 “팔아(톨레싸스).. 가지고(에넹켄).. 두니라(에떼켄)” 했습니다. 이 동사는 모두 부정 과거형으로, 한번 굳게 결심하고 단번에 실천한 헌신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셋째, 사도들의 권위를 존중하여 맡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나바는 자신이 직접 기분대로 구제하지 않고, 밭을 판 거액의 돈을 사도들에게 맡겼습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참된 구제의 생활이요, 헌신의 생활입니다.

  3) 바나바의 헌신의 결단은 초대교회 성도들의 경제관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 한 사람의 모범적인 헌신 생활은 온 교회의 빛이 되었습니다. 온 교회 성도들은 경제관과 물질관 그리고 소유의 주체가 바뀌었습니다. 물질은 다 하나님의 것이요, 우리는 다 청지기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키로 과감히 헌신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결단의 헌신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금번 성회를 통해 큰 은혜를 받고, 일심단결하면, 우리 앞의 큰 산도 평지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사명은 영광스럽게 성취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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