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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영혼의 병, 수치심을 치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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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선영 목사(온누리가정상담연구원 원장)

치유 소그룹에서 정기적으로 ‘수치심’을 다룰 때가 있다. 소그룹의 멤버들은 돌아가면서 자신이 오랫동안 감추어 왔던 깊은 수치심을 조금씩 드러내는 힘겨운 작업을 하게 된다. 내면화된 수치심은 어느새 우리의 인격 속에 자리잡게 되어 자신의 본래 성향인지 아닌지 혼돈을 가져오지만 대개의 경우 조금씩 펼쳐내 보이는 수치심은 사람에 따라 살을 에는 듯한 통증과 부끄러움을 동반하기도 한다.

모든 소그룹에서 리더인 내가 가장 먼저 나의 깊은 수치심을 드러냄으로 말미암아 다른 그룹원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게 된다. 대개의 내담자들은 목회자이며 상담가인 나를 완벽한 사람쯤으로 인식하고 의존하기도 하는데, 나의 이러한 자기 공개는 그들에게 상당한 도전이 된다. 소그룹을 인도하는 리더가 마음의 밑바닥을 열어 보이지 않고 감추는 느낌을 받는다면 그룹원들은 마음을 더욱 무장하고 닫아버리게 될 것이다.

“저는 부당한 일을 당해도 말을 못해요. (힘없는 목소리로) 머릿속에서는 논리적으로 나의 억울함을 말해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너무 부끄럽고 창피해서 땅 속으로 숨어버리고 싶어요.”

“제 남편은 밖에서 다른 사람들한테는 너무 친절하게 대하는데 집에만 오면 완전히 딴사람으로 변해요. 아이들한테나 저에게 너무 함부로 대하고 모든 화풀이를 다해요. 아이들도 모두 불안에 떨고. 아빠를 너무 싫어해요.”

"저는 매사에 자신감도 없고 의욕도 안생겨요. 내가 왜 이렇게 무기력한지 모르겠어요.”

“제가 잊지 못하는 아버지의 한마디가 있어요. 병신같은 자식, 겨우 그것밖에 못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 (눈물을 글썽거린다) 그 말은 평생 지워지지 않아요. 아버지의 그 한마디는 지금까지 저를 따라다니고 제 발목을 잡고 있어요.”

“상담을 받고 치유그룹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제가 왜 이렇게 자신감이 없고 매사에 무기력한지 몰랐어요. 제 안에 그렇게 수치심이 가득한 줄 몰랐으니까요. 그냥 저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인식하며 살았어요.”

부모의 자녀에 대한 잘못된 표현들은 심한 수치심을 불러일으킨다. 교사나 목사, 권위자들의 생각없는 한마디는 한사람의 영혼에 깊은 수치심의 상처를 남기게 된다. 수치심이 내면화됨에 따라 파생된 열등감이나 중독이나 그밖의 다양한 역기능적 성향들은 자신을 파괴하고 가족들을 고통 속으로 몰고 가게 되는 것이다.

대개 우리는 어린 시절에 들었던 자신에 대한 잘못된 평가나 피드백이 자신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오게 된다. 그 잘못된 부정적인 평가가 곧 자기 자신이라는 인식을 무의식적으로 하면서 마치 ‘나는 A형이니까 소심하고 소극적일 수밖에 없어’라고 잘못 생각하듯이 평생 스스로에게 부정적인 인식의 굴레를 씌우고 살아가게 된다.

부모의 한마디가 자녀의 영혼 깊숙이 수치심을 가시처럼 찔러 넣게 된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부모들은 자신의 기분 내키는 대로 자녀들에게 가시 돋힌 말을 해서는 안된다. 그 가시는 치유가 되기 전까지는 죽는 날까지 뿌리 깊게 박혀 저절로 뽑혀지지 않는다.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다. 다만 사랑의 이름으로 무자비하게 행해지는 자녀에 대한 무지한 비난과 체벌과 비인격적인 분노의 표현 등이 자녀를 평생 수치심의 노예가 되어 자신감을 상실한 채 꽁꽁 묶인 죄수처럼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다.

게센 카우프만은 <수치심>에서 이렇게 말했다. “수치심은 영혼의 병이다. 이것이 모멸감 또는 굴욕감에서 느낀 것이든, 난관에 성공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실패감에서 느낀 것이든 간에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스스로에 의해 경험하게 되는 가장 쓰라린 경험이다. 수치심은 내면에서 느끼는 상처로서 우리를 자기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서 분리시킨다.”

또한 존 브래드쇼는 <상처입은 내면아이 치유>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서적 신체적 성적 학대들은 수치심 중독을 만들어낸다. 수치심 중독이란 흠집이 나서 위축되고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감정이다. 수치심 중독은 죄책감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죄책감은 당신이 무엇인가 잘못했지만 그것을 다시 고치고 그걸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수치심 중독은 당신 자신이 무엇인가 잘못된 존재라는 것이고, 그것에 대해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당신은 그저 부족해 보이고 불완전할 뿐이다. 수치심 중독은 바로 상처받은 아이의 핵심이다.”

자신이 받은 상처와 모멸감과 수치심이 자녀대로 내려가지 않도록 부모가 치유받고 회복되어야 한다. 수치심의 뿌리에는 우리의 영혼을 파멸시키려는 사탄이 있다. 자녀가 부모의 상처받은 자아상에 감염되어 그대로 답습하게 되는 수많은 사례들을 보면서 비탄에 잠기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하는도다’라고 하시며 탄식하신다. 우리에게는 지식과 지혜가 모두 필요하다.

숨겨진 수치심을 하나님 앞에 드러낸다면 수치심은 그 힘을 잃게 된다. 파괴적인 수치심은 비밀과 침묵 속에 숨어 있기 때문에 치유가 이루어지려면 우리는 고통을 드러내야 한다. 존 브래드쇼는 “우리는 자신의 비탄으로부터 나와서 고통을 끌어안아야 한다. 진실로 느끼고 있는 고통을 있는 그대로 느껴야 한다”고 말한다. 용기를 내어 우리 내면의 수치심을 하나님 앞에 드러내어 치유받아야 한다. 그러면 어떤 종류의 상처나 수치심도 모두 치유받을 수 있게 되고, 우리는 하나님 형상으로서의 온전한 자아를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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