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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복주의와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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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한국교회가 한창 성장하고 있을 때 신학자들 중의 일부는 물량주의와 기복주의를 비판했다. 그들의 지적은 타당하다. 그런 건전한 비판이 있기에 교회는 곁길로 가지 않고 정도로 간다. 그러나 비판의 정도가 지나쳐서 오히려 하나님께 마땅히 구해야할 복을 구하지 못하고 누릴 수 없게 하였다면 이 비판은 다시 비판받아야 한다. 왜 그럴까? 하나님은 복의 하나님이요,당신의 자녀들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천지창조 이후에 맨 먼저 인간에게 복을 주셨다(창1:28). 노아 홍수 심판 이후에도 복을 주셨고(창9:1),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도 복의 근원이 되리라 약속하셨다(창12:2).

그렇다. 성경의 복은 세상적인 기복과 다르다. 성경의 복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첫째,복의 선교성이다. 구약에서 복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고 전하는 것이었다. 신약적 복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사역을 섬기기 위해서 주신 것이다. 이처럼 복은 자기 영광을 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더 드러내고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목적이 있다. 둘째,복의 통로성이다. 기복은 자기 성을 쌓고 타인과의 접촉을 막는다. 관계성을 허문다. 그러나 성경의 복은 어디를 가든 복의 전달자,통로자가 되어 황폐한 땅을 푸른 초장으로 만든다.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복의 근원이 되었다.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 있을 때에도, 감옥에 갇혔던 때에도 복의 통로가 되었다. 애굽의 황제에게까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고 복을 전달하지 않았는가. 셋째,복의 섬김성이다. 성경의 복은 혼자 부귀영화를 누리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다. 자기 야망을 쟁취하기 위한 수단도 아니다. 오히려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위하여 사랑하고 섬긴다. 그래서 복은 섬김과 희생을 위한 씨앗이 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에게 더 큰 복을 주신다.

이제부터 성경이 말씀하시는 진정한 복을 깨닫자. 기복과 복은 다르다. 천국이 침노하는 자의 것인 것처럼 어떤 의미에서 복도 정복하고 침노하는 성격이 있다. 성도는 세상으로부터 축복의 영토를 빼앗고 정복해야 한다. 이러한 침노나 축복의 영역을 정복한다는 것은 기복적인 야망이 아니다. 또 다른 의미에서 성도의 거룩한 영성이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복을 추구하자. 복을 받아서 더 하나님을 높이자. 한국교회가 더 부흥 성장하여 영향력의 지경을 넓히자. 이것도 선교의 또 다른 영성이다. 우리가 소극적으로 복을 추구하는 것을 결코 미화시켜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기복적인 야망을 추구하는 건 욕망의 포로가 되는 것이지만 성경의 복은 거룩한 영향력의 지경을 넓히는 것이다. 이것은 성도들이 당연히 구하고 누려야할 복이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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