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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20년만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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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 부모님은 낯선 사람이 와서 따라 가자고 해도 절대로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늘 신신당부를 했었다.

일곱 살이었던 어느 날, 나는 동네 한 모퉁이에서 오뎅 국물을 떠 먹는 다른 아이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입맛만 다시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팔기 시작한 바지와 모자 달린 새 돕바를 입고 있던 나는 모자만 연방 썼다 벗었다 하며 빈 주머니의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는데 “얘, 변전소가 어디 있지?” 하고 묻는 중년 신사의 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안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내가 알고 있는 곳을 묻기에 나는 “저를 따라 오세요” 했다. 나와 제일 친한 윤이도 동행해 주었다. 언덕 위로 올라서자 서늘한 9월답지 않게 비가 흩뿌리고 있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나무 밑에 몸을 잠시 피했다. “얘들아, 니들 옷 벗어라. 비에 젖겠다. 옷 버리면 엄마 아빠가 좋아하지 않으실 거야.” 그 말은 나를 위해 주는 말이라고 생각했고, 나는 얼른 새 옷을 벗어 그에게 건네 주었다.

신사는 내 옷을 착착 접어 가방 속에 넣더니 변전소 근방에 가서 돌려 주겠다고 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목적지를 불과 2백 미터 앞두고 있었다. 그가 급하게 내 손에 10원을 쥐어 주며, “얘, 저기 가서 빵을 좀 사 오련?” 했다. 나는 친구와 같이 빵가게에 갔으나 문이 닫혀 있었다. 애석한 마음으로 돌아와 보니 어느새 신사는 골목 어귀를 돌고 있었다. 쏜살같이 내빼는 뒷모습만 보이고….

내 손에 쥐인 10원짜리 동전 하나. 그게 전부였다. 다 떨어진 내의 차림으로 집에 돌아온 나는 결국 집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그날, 윤이와 난 그 10원으로 오뎅 국물만 실컷 마셨다. 20년이 흘렀다. 나는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 받아 조그마한 섬유공장의 책임자가 되었다. 그 날도 비가 약간 내리고 있었다. 거래 관계에 있던 한 동창이 내게 할 말이 있다며 다방으로 가자고 했다.

“어이, 자네 20년 전의 일을 기억하나? 우리 아버지가 실직한 지 2개월 되던 날, 나와 했던 약속으로 새 옷을 한 벌 가지고 오셨더군.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었지. 난 기분좋게 새 옷을 입었었어. 그런데 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니 네 이름이 새겨진 조그마한 뿔명찰이 쥐여지는 게 아니겠어?”

“….”
“미안하게 됐네. 사실 난 그 날 이후 한 번도 그 옷을 입지 않았어. 언젠가 얘기를 해야겠다고 다짐했었지. 어젯밤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네. 네게 그 얘기를 하라고 하셨어. 그 때 미안했다고.”

(낮은 울타리98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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