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칼럼 연어를 보면서

첨부 1


- 최요한 목사(남서울비전교회 담임)

명절 때가 되면 북한 땅이 가까운 휴전선에서는 많은 실향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전쟁을 피해 남으로 내려온 실향민들이 고향을 보며 흘리는 눈물과 애끓는 탄식에 가슴이 아플 때가 많다. 고향이 무엇인지 그들의 평생 소원은 고향 땅을 한번만이라도 밟아보는 것이다. 태평양 전쟁 시 일본에 의해 징용이나 학도병으로 끌려간 사람들도 꿈에서라도 가고 싶은 곳이 고향이었다고 한다. 인간에겐 고향에 대한 본능적인 의식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고향하면 연어를 떠올린다. 연어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자기가 태어난 고향을 알고 찾아온다. 연어의 귀소능력 때문이다. 바다에서 수년간 생활하다 고향의 작은 시내까지 수천 킬로미터를 헤엄쳐 돌아오는데, 과학자들이 그 점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했지만 아직도 명쾌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다만 여러 가지 이론을 드는데, 태양의 위치로 찾아온다는 태양설과 지구의 미세한 지자기를 감지하여 회유한다는 지구자기설, 해류에 따라 수온이 크게 달라지는 것을 기억한다는 수온기억설 등으로 설명을 한다. 그 어떤 것도 먼 바다에서 고향인 강으로 돌아올 수 있는 원인이 되기에는 충분치가 않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연어가 강에 도착해서 고향의 하천을 찾아내는 것은 자신이 태어난 시내의 냄새를 정확하게 기억하기 때문이다. 연어는 사람이 흘린 땀 한 방울을 무려 8백억 배로 희석시켜도 정확하게 식별해 낼만큼 후각이 발달되어 있다. 이렇게 발달한 후각으로 연어는 아무리 짧은 기간을 살았다고 하더라도 모천의 냄새를 죽을 때까지 구분할 수 있고, 그 냄새를 따라 강에서 자기가 태어난 하천을 정확하게 찾을 수가 있는 것이다. 각각의 지류가 겉보기나 수질에 있어서는 거의 차이가 없어 보여도 연어는 고향의 시냇물을 정확히 구별해낸다. 하나님이 주신 신비한 능력이 아니고서는 그것을 설명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로 회귀하는 연어는 북태평양으로부터 찾아오는데 가을 단풍이 들기 전인 요즈음에 태평양을 건너온다. 그런데 고향으로 돌아오는 과정이 그리 녹녹치가 않다. 마치 그리스도인들의 순례여행을 떠오르게 한다. 수천 킬로미터를 헤엄치는 동안 때로는 거센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하고, 여러 가지 장애물과 암초를 피해야 하고, 또 상어 같은 육식성 물고기들을 피해야만 한다. 그런 후 고향의 하천에서 알을 낳고는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다. 그런데 우리와 연어가 다른 점은 연어에겐 고향이 목적지이며 종착지이지만,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죽음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관문(關門)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의 삶이란 영적 고향을 준비하는 삶으로서, 천국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한 광야 훈련의 기간인 것이다.

오늘날 많은 종교에서 그 종교의 기원이 되는 성지를 방문하는 순례여행을 한다. 이슬람교 같은 경우에는 평생에 한 번은 성지인 메카를 의무적으로 방문해야만 한다. 순례절기인 하지기간에는 세계 1백여 개국에서 온 2백50만 이상의 순례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섭씨 35도를 넘나드는 뜨거운 햇살을 맞으며 순례객들은 걷는데, 불편한 환경으로 인해 순례 도중 병에 걸려 고생하거나 죽는 사람들도 상당수 발생한다. 그들의 믿음의 대상이나 내용 자체는 잘못되었지만, 영적 고향에 대한 그들의 열정만큼은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에게는 육신의 고향보다 더 귀한 영적 고향이 있다. 육적인 고향보다 영혼의 고향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가 죽으면 돌아가야 할 곳, 그 곳에 대한 소망이 우리의 영원한 삶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