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칼럼 선택의 길

첨부 1


- 이재연(소설가)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눅 10:41∼42)

저는 영국 의식흐름의 작가 버지니아 울프를 좋아합니다. 울프는 여자가 창작을 하려면 매달 들어오는 일정 수입의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일생 조울증에 시달리면서도 해방과 자유를 상징하는 자기만의 방에서 시공을 초월하는 작품을 썼습니다. "나는 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여러 사람이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전혀 모른다." 울프의 절망과 우울, 일에 대한 수도자 같은 자세가 100년 후의 여자를 끌어당깁니다.

시공을 넘어 2000년 전 성경 속의 마리아도 좋아합니다. 예수가 베다니 마을의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집에 왔을 때입니다. 언니 마르다는 부엌에서 일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 앞에 꿇어앉아 혼을 기울여 말씀을 경청했습니다. 사회의 인습과 관습을 개의치 않고, 예수라는 남자가 이 세상을 구원하실 분이란 것을 영의 눈으로 알아본 그녀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택했습니다. 용기로, 열정과 믿음으로 영원히 사는 쪽을 택했습니다. 앞서간 여자의 삶의 선택으로, 2000년 후의 여자는 힘을 얻습니다. 어떻게 무얼 붙잡고 살아가야 할지 막막할 때 그 아름다운 장면은 환하게 길을 보여줍니다. 햇빛에 반짝이는 바다처럼 생기를 안겨줍니다.

작년 초여름 요양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밖에서 하는 미술치료 시간에 남자 선생은 찰흙더미를 주면서 무엇이든 만들고 싶은 대로 빚으라고 했습니다. 저는 두 팔을 흔들며 걸어가고 있는 한 남자의 형상을 빚고, 그 옆에 역시 걸어가고 있는 한 여자의 형상을 빚었습니다. 상상 속에서 빛나는 환영과 같은 모습, 예수와 마리아였죠. 여자는 예수 앞에 앉아 말을 경청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 두 팔을 흔들며 앞날을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다. 여자는 이 시대를 실천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마리아 후예들의 상징입니다.

이 변화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그들은 앉아서 경청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 자기만의 일을 붙들고 꿈꾸면서 더 넓은 세계로 나가고 있습니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미지의 새로운 곳으로 가고 있습니다. 어디서인지 싱그러운 환희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