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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진실을 향한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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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달익 목사(서문교회)

독일이 통일되기 이전 베를린은 동서 냉전의 현장이었고 베를린 장벽은 아픔과 응어리를 안은 냉전의 쓰라린 상처였다. 브란덴부르크 문을 중심으로 40㎞의 콘크리트 장벽이 만들어졌고 동독 사람 900여명이 자유를 위해 이 장벽을 넘다가 처형됐다. 그러나 이곳이 이제는 역사적 유물이 되어 수많은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이곳을 찾는 세계인들은 뜻밖의 자료들을 접하고 독일인들의 용기에 놀라게 된다. 장벽 붕괴를 기념하는 역사박물관에 과거 나치 시절의 잔혹한 만행 사실을 전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태여 자기 역사의 치부를 들추어 내지 않아도 될 듯한데 기어이 세계인의 이목 앞에 자기들의 부끄러운 모습을 공개하는 그들의 진실을 향한 용기가 새삼 존경스럽게 느껴진다.

같은 전범국이면서 우리에게 너무나 큰 상처와 고통을 주었던 일본의 억지 논리와 역사왜곡을 자주 보아온 우리로서는 사뭇 이채롭지 않을 수 없다. 누구든지 자기 잘못이 모든 사람에게 알려져 그 숨겨진 치부가 드러나는 것을 기뻐할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신앙인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에 결코 인색하지 않다. 성경에 나오는 이사야도 바울도 베드로도 그러했다.

독일과 일본의 차이는 무엇이며 신앙인들로 하여금 자기잘못을 고백하게 하는 그 도덕적 용기의 원천은 무엇일까? 그것은 ‘신 앞의 존재로서의 인간’으로 인간 실존을 이해하는 것에서 오는 것이다. 하나님의 참 모습을 발견하고 그 거룩하심 앞에 설 때 사람은 숨길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고백할 용기를 얻게 된다.

이사야가 ‘입술이 부정한 자기’를 고백하기 전에 ‘높이 들린 보좌에 계신 거룩하신 왕’을 먼저 뵌 것이나,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지속적으로 ‘나는 죄인입니다’를 고백한 바울의 경우에서 보듯 ‘하나님 앞에 서있는 인간’으로서의 자기를 발견해야 진실을 향한 용기있는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거룩한 긍정이 거룩한 자기 부정을 불러 올 수 있다’는 칼 바르트의 말처럼 진실을 향해 용기있게 만드는 것은 신앙에 근거한 신념이다. 현재의 모순을 변명하지 않고 잘못된 관습과 전통에 미련두지 않으며 내 사람이라 하여 무조건 감싸고 지지하지도 않는다. 내 것이든 남의 것이든 옳은 것은 옳다하고 나쁜 것은 나쁘다고 말하게 된다.

일본이 경제대국이면서도 아직 세계사에서의 중심역할을 할 수 없는 것은 익숙한 거짓과 자기 합리화를 역사가 경멸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한국사회 한국교회가 세계화시대의 중심으로 설 수 있으려면 좀 더 많이 진실을 향한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 존경받는 사회가 되고 세계 교회속의 지도적 위치와 능력도 구비하게 된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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