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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지도자의 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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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명진 목사(수원중앙침례교회)

한 정치 지도자의 고백을 들었다. 아주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달동네를 전전하고 근근이 끼니를 이어가며 살았단다. 게다가 청소년기에는 뻥튀기 풀빵 장사를 하면서 학비를 벌었고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우여곡절 끝에 만학의 길로 대학을 마쳤다고 했다.

시대가 영웅을 낳는다고 했던가. 어수선하던 시절, 사회 정의를 부르짖다가 급기야는 옥고를 치르기도 했단다. 그는 공사 현장에서 막노동을 했고 새벽부터 인력 시장에 나가 긴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앞에서부터 선발되어 공사현장에 가서 하루 일당으로 연명해야만 했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이렇게 가난한 우리에게 국가나 조국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세월이 흘러 정권이 바뀌면서 몇 번이고 정치 지도자의 길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오더란다. 그것은 달콤한 희망이었고 인생의 축복 같아 보였다. 그때 그 사람은 생각했다. “아니야, 지금 내가 정치 지도자가 되면 너무나도 극심한 가난과 좌절과 억울함으로 고통당했기 때문에 많은 백성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줄거야.” 그래서 그는 사업을 하여 기업체도 경영하고 정상적인 가정도 이루어가면서 삶의 균형을 키우기로 결심했다. 참으로 대단한 깨우침이다. 그는 자신의 인생 과제인 진정한 ‘치유와 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든지, 자신의 열망이 좌절되고 극도의 피폐한 지경에 빠지게 되면, 분노와 악의가 가득하게 되고 실망과 좌절과 체념 그리고 실의에 빠지게 된다. 그런 사람들은 극도의 절망을 경험하면서 분노 원망 두려움과 피해의식으로 치를 떨며 결국 남들에게 큰 폐해를 줄 수 있다. 삶에 균형이 깨어지고 사고가 건강하지 못하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는 모습으로는 지도력을 가질 수 없다.

이런 사람들은 전체적인 것을 아우르지 못해서 모든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 안에 ‘쓴 뿌리’가 있어서 많은 사람에게 해악이 가득한 가시가 되기도 한다. 균형잡힌 인격의 소유자 예수 그리스도의 어린 시절의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눅 2:52)

좌로도 우로도 치우침이 없고 과함도 핍절함도 없는 균형잡힌 모습, 정신적 육체적 사회적 영적인 성장과 성숙의 조화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이런 지도력이 그립다. 우리 앞에 다가오는 지도자가 이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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