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하나님의 얼굴

- 한기채 목사(중앙성결교회)

야곱이 얍복 나루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은 후 새 사람이 되어 에서와 가족상봉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야곱은 에서에게 “내가 형님의 얼굴을 본 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창33:10)라고 말한다.

야곱이 에서에게 아부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이 또 다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이 말은 이중적인 의미(double meaning)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에서에 대한 말 뿐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야곱의 신앙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야곱은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극심한 두려움 속에 밤을 보냈다. 그런데 그 밤중에 찾아오신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인간적인 지혜가 아닌 하나님께 맡기고 의지하며 매달리는 체험을 했다. 새 이름과 축복을 받게 되면서 그곳 이름을 브니엘(하나님의 얼굴)이라 부른 사건이 있었다.

야곱은 이러한 위경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뵙게 된 것이다. 날이 밝아 야곱은 믿음의 담력으로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에서에게 나아갔는데, 거기서 그는 형에게서 예기치 못했던 융숭한 영접을 받게 된다. 야곱은 에서의 얼굴에 오버랩되어 보이던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 하나님이셨군요!” 하지 않았을까?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이런 말이 나온다.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너의 장미꽃을 그토록 소중하게 만드는 건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그 시간이란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사람들이 무엇 좀 증거를 보여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목사님,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십니까?” 예수님의 제자 빌립도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요14:8)고 했다. 보지 않고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른다. 그러므로 부활의 사실을 믿지 못하는 도마에게 예수님이 친히 나타나셔서 양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셨다. 믿음이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하셨던 주님은 오늘도 자신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다. 믿음생활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출애굽 광야 시절에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셨다” 고백한 것의 연장이다. 예배하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거나, 기도하던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나,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느끼거나, 추진하던 일들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보고,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의 얼굴을 언뜻 언뜻 볼 때가 많이 있었다. 그러면서 의심할 수 없는 체험적인 믿음이 형성된 것이다.

이제 설날을 맞아 가족들도 만나고 다시 새해 인사를 한다. 금년 경영하는 사업에서, 만나는 사람에게서, 매진하는 학업에서, 가정생활과 교회 생활에서, 신자의 교제에서 하나님의 얼굴이 오버랩 되는 하루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나님의 얼굴이 드러나는 그 곳에 샬롬이 있다. 하나님의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에 사랑과 헌신이 있다.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 하나님의 얼굴로 이웃을 바라보라. 당신의 얼굴과 미소로 인해 세상은 한결 따뜻해질 것이다. 설은 이런 훈훈한 사랑을 확인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