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칼럼 경이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지혜

첨부 1


- 강준민 (LA동양선교교회 목사)

경이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지혜란 살아가는 기술이다. 그런데 문제는 살아가는 기술 즉,사는 법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데 있다.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는 “모든 개미는 개밋둑을 쌓을 줄 알고 모든 벌은 벌집을 만들 줄 안다. 그놈들은 우리 식이 아니라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며 그것을 체득한다. 오직 인간만이 사는 법을 모른다”고 말했다.

어떤 의미에서 사는 법을 배우기 전까지 우리는 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생존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사는 법을 하루아침에 터득할 수는 없다. 세네카의 말처럼 우리 인간은 평생 동안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내가 그동안 터득한 삶의 기술 가운데 하나는 경이감 속에 사는 것이다. 경이감은 신비를 체험하면서 경험하는 감정이다. 경이감은 동심에서 나온다. 경이감이란 신비로움에 대한 감격이다. 경이감이란 신비로움을 감지하는 통찰력이다. 통찰력이란 만물을 통해 하나님의 신비로운 솜씨를 보는 안목이다. 경이감을 가지고 만물을 볼 때 모든 것이 신비로워진다. 모든 것이 감동과 감격으로 다가온다. 경이감에 사로잡히면 우리는 행복감에 젖게 된다. 우리는 경이에 넋을 잃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때 우리는 생존을 넘어 풍성한 삶을 살게 된다.

아인슈타인은 신비를 체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비는 우리가 체험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일이다. 신비는 모든 진정한 예술과 과학의 원천이다. 신비를 알지 못하는 사람,더 이상 놀라움에 멈춰서거나 경이에 넋을 잃을 줄 모르는 사람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의 눈은 감겨버렸다.”

신비를 체험할 수 없다면 눈은 떴지만 볼 수 없는 사람이다. 눈을 떴다고 해서 다 보는 것이 아니다. 참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일상의 삶속에서 신비를 볼 수 있는 사람이다. 자연속에서 신비를 볼 수 있는 사람이다. 신비를 체험하기 원한다면 집안에만 갇혀 있으면 안된다. 신비를 체험하기 원한다면 밖으로 나가 자연의 신비를 바라보아야 한다. 아침 이슬의 영롱함을 통해 하나님의 신비를 경험해야 한다. 작은 풀잎이 흔들리는 것을 보면서 우주의 움직임을 느껴야 한다. 동심을 가지고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의 신비를 바라보라. 신비에 감격하는 경이감으로 날마다의 삶을 풍성케 하라. 

- 출처 : 국민일보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