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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언어의 진실을 회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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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물은 자신의 존재나 의사, 감정을 표현하는 독특한 방법을 가지고 있다. 소리를 지른다든지 몸짓을 하고 꼬리를 흔든다든지 꿈틀거린다든지 각기 나름대로의 표현방법이 있다. 그러나 언어표현방법은 인간만이 지닌 고유한 것이다. 언어는 단지 의사소통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인간의 언어에는 가치관과 세계관이 내포되어 있다.

언어는 일반적으로 문자언어 구술언어 신체언어로 구분한다. 구술언어는 단순히 소리를 내어 말을 하는 발음행위와 말속에 의도를 내포한 발의행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행동을 하게 하는 발동행위로 구분된다.

교회 안에서 사용되는 언어의 대부분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행동을 하게 하는 발동언어들이다. 예를 들어 『이웃을 사랑하자』는 말은 듣는 사람에게 『사랑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사랑하는 사람이 되게 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바람직하지 않을 때 바른 행동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언어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첫째, 더러운 말은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말 아닌 말, 덕스럽지 않은 말, 유익하지 않은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품위를 손상시키는 용어는 사용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둘째, 은혜가 되는 말을 사용해야 한다.
은혜라는 말은 매력적인 것, 언제나 사랑스러운 것을 뜻한다. 은혜가 되는 말이란 언제나 사랑스럽고 매력이 넘치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내가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할 때, 그 말은 은혜로운 말이 되고 매력이 넘치는 말이 된다. 내가 던진 말 한마디 때문에 다른 사람이 상처를 받거나 깊은 고뇌에 빠진다면 그 말은 은혜도 아니고 매력도 아니다. 교회는 은혜스런 말이 넘치는 곳이라야 한다. 듣는 사람을 격려하는 말, 신앙적이고 희망적인 말을 해야 한다.

셋째, 복음 전하는 말을 해야 한다.
예수에 관하여 말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영원한 천국에 관하여 시치미떼는 사람들, 절망과 고난 속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지 못하고 한숨만 쉬는 사람들, 입은 있지만 말이 없는 사람들이다.
의미를 담아 외치는 소리가 웅변이라면 그보다 더 웅장한 웅변은 「예수」를 말하는 것이다. 진리를 전하는 것이다.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시대는 병들고 불행한 시대다. 진실을 깨달았으면서도 말하지 않는 사람들은 불행한 사람들이다. 기독교공동체는 복음을 말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넷째, 하나님을 찬양하는 말을 해야 한다.
예수를 만난 사람들의 삶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는 삶이다. 다시 말하면 믿고 찬양하고 높이던 대상이 달라진 것이다. 화제의 주제가 달라지고 예수가 대화의 내용이 된다. 창조자 하나님을 찬양하고 구속자 예수를 높인다. 이유는 예수가 언행일치의 모범을 보이셨고 그가 태초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언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어느 말이 진실이고 비진실인가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언어의 진실은 행위의 진실을 통해 증명된다. 말을 보아 삶을 알고 행위를 통해 사람됨을 알 수 있다.

언행일치는 크리스천 삶의 최고 덕목이다. 언어의 부도시대속에서 크리스천만이라도 언행의 진실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축복하고 격려하며 위로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신앙공동체다. 덕스럽고 은혜스러운 언어가 통용되는 곳이다. 언행이 일치된 삶을 위해 노력하는 곳이 교회다. 경우에 합당한 말을 사용하는 지혜가 있어야 할 것이다.

- 지금 2004년 1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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