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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법궤가 뭐길래 (히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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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법궤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을 통하여 법궤를 만들었습니다. 다윗 왕같은 사람은 왕이 되자마자 먼저 작정기도에 들어갔습니다. 어떤 작정 기도였느냐 하면 하나님의 법궤를 찾기 위한 기도였습니다. 그래서 그 법궤를 찾을 때까지는 침상에 오르지도 않고 집에 들어가지도 않겠다고 각오하고 기도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법궤를 발견하자 다윗왕은 기쁨으로 춤을 추면서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성으로 모셔오는 장면도 성경에 나옵니다.

여호수아 장군시절에는 레위 제사장들이 법궤를 메고 백성들을 앞서서 나갈 때에 법궤를 맨 제사장들이 요단강물로 들어서자 갑자기 요단강물이 끊겨서 뒤따르던 모든 백성들이 다 건너간 기록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길을 갈 때에 불기둥 구름기둥이 법궤위에서 올라가면 그제야 비로소 법궤가 먼저 출발하고 그 뒤를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따라갑니다. 그러다가 법궤가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사람들도 머물면서 그곳에 장막을 칩니다.

구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법궤와 더불어 살았고 법궤를 가장 귀하고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명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법궤에 무슨 뜻이 있기에 그렇습니까? 우리는 보통 법궤에 대해서 이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기 때문이라고 간단하게 생각을 하지만 법궤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깊은 진리가 담겨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토록 소중히 여기신 뜻이 있었습니다.

이 법궤는 나무로 만들어졌고 하나님께서 법궤의 겉에 금박을 입히라고 하셔서 금빛으로 아주 휘황 찬란합니다. 그리고 그 위에는 뚜껑이 있는데 특별히 뚜껑의 이름을 '속죄소'라고 부릅니다. 이 뚜껑 위에 하나님께서 앉는 자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특별히 다르게 만든 것은 아니고 뚜껑의 가운데 부분을 속죄소라 해서 문양을 새기고 그곳에 하나님께서 앉는 자리라고 해서 '은혜의 보좌'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법궤는 하나님이 내려 오셔서 앉으시는 보좌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법궤속에 들어있는 것이 이상합니다. 속에 보석이라든지 금을 넣은 것이 아니라 히브리서 9장은 이 법궤속에 들어있는 세가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길에서 먹었던 하늘에서 내려주신 만나가 그속에 있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십계명을 새긴 두 돌판이 들어 있습니다. 이 세가지가 법궤속에 있고, 그리고 법궤 뚜껑을 속죄소라고 해서 덮어높고 그 위에 하나님이 앉아 계시는 은혜의 보좌가 있습니다. 이것이 법궤의 모든 것인데, 하나님께서,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것을 그렇게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벧세메스 사람들은 이 법궤속에 무엇이 있는가 궁금해서 속을 들여다 보았다가 칠십명이라는 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죽임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법궤는 절대로 속을 들여다 보아서는 안됩니다. 아무나 만져서도 안됩니다. 아무나 그 앞에 가까이 가서도 안됩니다. 이렇게 굉장히 소중하게 여기는 법궤. 그런데 그속에 이상하게도 만나와 지팡이와 돌판이 들어있는데, 여기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의도와 뜻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것들을 법궤안에 넣고 소중히 간직하라고 명하신데는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법궤속에 만나를 집어 넣어 보관하라고 하셨습니다. 광야길을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만나를 그 속에 넣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만나 때문에 또한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나를 계속해서 먹고 살다가 민수기 11장 4절로 6절에 보면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도다'하면서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탐욕을 부린 것입니다.

또 민수기 21장에 보면 '이 박한 식물 만나를 싫어하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완전식품을 싫어하면서 그 백성들은 고기를 달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동안 이 한가지 음식만 먹고 살았고,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것인데, 이 백성들은 얼마 안가서 이 만나가 싫다고 다른 것에 탐욕을 부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메추라기를 보내 주셨는데, 이 백성이 먹으려고 하자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기브롯핫다와에서 엄청난 숫자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것을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탐욕을 부린 자들을 거기서 장사하였음이라' 하나님이 주신 만나이외에 다른 탐욕을 부렸습니다. 이것이 만나의 죄입니다. 이 만나가 법궤속에 간직되어서 수많은 후세 사람들에게 교훈이 되도록 집어 넣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또 두 번째로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거기 있었습니다. 아론은 제사장인데, 같은 레위제사장들이 아론을 대 제사장으로 세워주신 것에 항의하면서 받아드리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모든 제사장들을 모으시고 지팡이를 다 모아서 그 다음날까지 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보니까 아론의 지팡이에서 싹이나서 꽃이피고 이미 열매가 맺혀져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서로 높아지려고 하고 서로 교만하며 하나님의 권위에 대항하는 사람들에게 교훈하는 것으로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법궤속에 집어넣어 영원히 간직하라고 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교만 죄를 의미합니다. 교만한 인간들에게 두고두고 교훈을 삼기 위해서 아론의 지팡이를 법궤 속에 넣도록 하신 것입니다.

또 세 번째로는 법궤속에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두 돌판이 그곳에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이 율법을 어겼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도 어겼습니다. 분명히 돌에 새겨져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지키겠다고 했는데 이 말씀을 어겼습니다. 두 돌판이 법궤속에 들어가 있는 것은 인간의 불순종과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상하게도 이 법궤속에 들어가 있는 것들은 인간들 속에 있는 가장 근본적인 죄성을 상징합니다. 종교 심리학자들은 인간 마음속에 옛날부터 있었던 가장 큰 죄성 세가지를 말하는데 탐욕과 교만과 불순종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근본적인 세가지 죄성이랍니다. 사실 창세기에도 인간 최초의 범죄가 기록되어 있는데 선악과의 범죄에 보면 세가지의 구체적인 죄가 나옵니다. 첫째는 탐욕의 죄입니다. 선악과를 보고 먹음직스럽기도 하고 탐스럽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인간이 탐욕을 부렸습니다. 또 두 번째로 교만의 범죄가 있습니다. 뱀이 와서 '네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려는 교만. 최초의 죄에도 인간의 교만의 모습이 드러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아담과 하와는 그 말씀을 버리고 말씀에 불순종하고 거역했습니다. 이것이 최초의 범죄속에 들어있는 세가지 본성적 죄의 모습입니다.

탐욕과 교만과 불순종. 정말로 종교 심리학자들이 지적한 인간의 세가지의 죄성과 일치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법궤속에 이 세가지를 상징하는 만나와 싹난 지팡이와 율법의 돌판이 들어있으니, 이 법궤는 바로 이런 세가지 죄성을 깊이 품고 있는 인간들을 상징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이 법궤에는 뚜껑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세가지 죄성을 가지고 있는 법궤를 뚜껑으로 덮어버리는데 그 뚜껑 이름이 속죄소요, 다른 이름은 은혜의 보좌입니다. 은혜로 덮어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속죄해 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뚜껑을 열어보면 속안에 더러운 것이 다 보입니다. 그러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속죄소로 법궤 속을 덮어주십니다. 그리고 열지 못하게 하십니다. 특별히 언악궤에는 제사장들이 피를 그 위에 뿌렸습니다. 참 놀랍습니다. 피를 왜 뿌립니까? 피는 속죄함을 받아야 할 필요성이 있는 대상에게 뿌리는 것입니다.

레위기 16장 14절에 '그는 또 수송아지의 피를 취하여 손가락으로 속죄소 동편에 뿌리고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속죄소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 라고 하며 여호와 하나님의 법궤에 피를 뿌리라고 했는데 이것은 법궤가 속죄의 피가 발라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장 안에 들어가서 그 수송아지 피로 행함같이 그 피로 행하여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릴지니' 하나님께서 그 위에 앉으셔야 하는데 법궤가 더럽습니다. 그러므로 피를 뿌리라는 것입니다.

법궤는 바로 그 속에 세가지의 죄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인간과 함께 거하고 싶으신데 더럽기 때문에 언약궤에 피를 뿌리라는 것이 아닙니까?

히브리서 9장 5절에 보면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라고 했습니다. 법궤위에는 속죄소라는 뚜껑이 있습니다. 은혜의 보좌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그 속죄소를 천사들이 호위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 속죄소의 원어는 카포ㄹ이라는 단어입니다. 신약 성경에 단 두 번 쓰여있습니다. 또 한곳은 로마서 3장 25절에 쓰여있습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라고 하셨는데 여기 화목제물이라는 말이 히브리 9장 5절에 속죄소라고 번역된 카포ㄹ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에서는 속죄소라고 번역해놓고 로마서에서는 화목제물이라고 써 놓았습니다. 그래서 한국어 성경보다 때로 원어 성경을 보면 더 정확한 의미가 나옵니다.

바로 화목제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죄를 묻지 않으시고 참아주시며 죄를 가볍게 여겨 주신다는 것입니다. 속죄소, 곧 은혜의 보좌를 인하여 인간들의 죄를 간과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뿌리깊은 죄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들에게 은혜의 뚜껑으로 덮어주시고 속죄소의 뚜껑으로 덮어주셔서 속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언약궤는 곧 하나님의 속죄의 은혜를 입고 있는 구원받은 인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을 하나님께서는 전부터 그토록 중하게 여겨주시고 이러한 인간에게 내려오셔서 하나님이 좌정하여 계시고 이러한 인간을 지성소안에 놓아 주시고 예루살렘 깊은 곳에 놓아주시고 늘 이 언약궤에 하나님이 함께 하여 주십니다.

죄 많은 인간들을 하나님은 이렇게 사랑하시며 은혜의 뚜껑으로 덮어주시고 속죄소로 덮어주시고 예수의 피로 뿌려주셔서 께끗하게 의롭다 여겨주시고 하나님이 내려오셔서 인생과 함께 하심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언약궤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로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 속을 다 열어보시고 판단하신다면 하나님앞에 견딜 사람이 어디있습니까? 벧세메스 사람들처럼 다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하나님께서 뚜껑을 열지 못하게 하십니다. 이러한 인간의 모습을 예수님을 통해서 덮어주시고 속죄소라는 뚜껑으로 가려주십니다. 그리고 은혜의 보좌위에 하나님께서 와 계십니다. 이땅에 오셔서 인간과 함께 영원토록 앉아 계시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우리는 속에 죄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인데 예수 그리스도라는 피로 우리를 덮어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뚜껑으로 우리를 덮어 주시고 우리의 죄를 다시는 기억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시고 우리를 의롭다 칭하여 주셨습니다.

이렇게 가장 근본적인 죄성을 가지고 있는 언약궤. 그러나 하나님이 그 죄를 가리워주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언약궤의 모습은 바로 신약시대 성도의 모습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구약시절부터 그토록 사랑하시고 특별한 관심으로 소중히 여기셨던 것입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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