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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기만 하라

  • 신윤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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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40강) 믿기만 하라
2012.12.16 09:42 
눅8:49-56


<본문>

 

49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말하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선생님을 더 괴롭게 하지 마소서 하거늘

50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

51 그 집에 이르러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아이의 부모 외에는 함께 들어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52 모든 사람이 아이를 위하여 울며 통곡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53 그들이 그 죽은 것을 아는 고로 비웃더라

54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이르시되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55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예수께서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시니

56 그 부모가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경고하사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시니라


<설교>

 

◉ 죽음과 인간의 무능력 ◉


죽음 앞에서 사람은 무능력할 뿐입니다. 제아무리 현대 과학과 의술이 발달했다고 하나 죽은 자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것은 세상 마지막까지 인간이 뛰어 넘을 수 없는 한계입니다. 앞으로도 세월의 흐름과 함께 인간의 과학과 의술은 끊임없이 발전할 것입니다.

 

 어쩌면 수명을 지금보다 더 연장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죽은 자를 살릴 수 없고 죽음을 막을 수 있는 길 또한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래서 죽음 앞에서 인간은 무능력하고 무기력할 뿐이며 죽음을 끝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죽음이라는 자연적 현상 앞에서의 무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은 인간의 죄로 인한 결과입니다. 말씀을 벗어난 인간의 현실이 곧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죽음 앞에서 무능력하다는 것은 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의 무능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죽은 자가 살아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일 말씀드린 대로 회당장 야이로가 가버나움으로 돌아오신 예수님 앞에 나아가 집에 오셔서 병으로 죽어가는 자신의 딸을 고쳐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회당장 야이로의 집으로 가시는 도중에 12년을 혈루증으로 앓는 여인이 예수님의 뒤로 다가와 옷깃을 잡는 일로 인해서 여인이 병 고침을 얻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있을 때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선생님을 더 괴롭게 하지 마소서”라고 합니다. 이 말의 의미가 뭐겠습니까? 제아무리 병을 고치는 능력이 큰 예수라 할지라도 이미 죽은 딸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죽음의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따라서 죽은 자를 살리신 예수님의 일에도 인간이 도울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 믿음의 토대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참된 믿음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게 됩니다.

 

50절에 보면 딸이 죽었다는 말을 들으시고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합니다. 믿기만 하라는 것은 죽은 딸이 다시 사는 일에 있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옷 가에 손을 댄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에게서 나오는 능력으로 고침을 받은 것처럼 죽은 자의 구원 역시 예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실을 믿을 뿐입니다.

 

요 19:30절에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다 이루었다’입니다. ‘다 이루었다’는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믿기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해야 할 것은 없다는 사실을 믿고 예수님의 다 이루심을 믿는 것입니다.

 

이런 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곤 합니다. 특히 목사는 이 말에 대해 ‘그러면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단 말인가?’라며 노골적으로 반발 합니다. 교인들에게 열심을 요구하고 ‘하면 된다’라는 비복음적인 말로 선동을 일삼으면서 교회를 위한 일꾼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방해받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인간이 예수님을 도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 잔다 ◉


회당장의 집에 도착한 예수님은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아이의 부모만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십니다. 집은 이미 아이의 죽음으로 인해 모든 사람들이 울고 통곡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죽은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절망의 상태에서 아이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이처럼 죽음으로 인해 절망과 슬픔만 있는 현장에서 예수님은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라고 말씀합니다. 죽은 것과 잠자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문제입니다. 죽음은 이미 생명에서 단절된 상태입니다. 생명에서 떠났으며 다시는 생명으로 되돌아 올 수 없는 상태가 죽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절망하고 슬퍼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잠자는 것은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깨우면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죽은 아이를 바라보는 예수님의 시각입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비웃습니다. 그들이 바라보는 아이는 분명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지금껏 죽은 자를 잠잔다고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들의 경험과 상식과 이치에 어긋나는 말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이 그들 귀에는 허황되게 들렸을 것이고 그래서 비웃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왜 죽은 아이를 자는 것으로 표현하셨을까요? 예수님이 다시 살려낼 것이기 때문일까요? 물론 그것도 가능성이 있는 말이겠지만 그것은 예수님이 살려내지 않은 다른 죽은 자는 자는 것이 아니라 죽었다는 뜻이 됩니다.

 

‘잔다’는 말은 회당장의 딸에게만 아니라 예수님과의 관계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죽음을 생물학적인 죽음으로 보시는 것이 아니라 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보십니다. 따라서 죄 문제가 해결되면 죽음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고 그처럼 죽음이 없는 새로운 세계를 예수님이 이루시기 위해 오셨기에 ‘잔다’라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물론 죽음이 없는 새로운 세계가 회당장의 딸처럼 몸이 죽어도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드린 대로 죽음은 죄로 인한 심판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음을 실증해주는 것이 죽음인 것입니다.

 

따라서 죽음은 단지 육신의 소멸이 아닌 영원한 멸망을 의미하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이 영원한 멸망으로부터의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새로운 세계이며 이 세계야 말로 죽음이 없는 생명의 세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는 비록 그 몸은 죽는다고 해도 영원한 멸망이 아니라 예수님의 생명에 속해있기에 ‘잔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같은 생명의 사건에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 믿음과 행함의 관계 ◉

 

이처럼 믿음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기독교인들은 믿음을 뭔가 할 수 있는 힘으로 인식을 합니다. 이것이 믿음에 대한 오해이며, 이런 오해로 인해서 ‘하면 된다’라는 말을 마치 믿음의 말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믿음을 행함으로 생각하게 되면 회당장의 딸이 살아난 일이나 혈루증 여인이 고침을 받은 일에서 인간의 행함에 초점을 두게 됩니다. 그래서 지난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혈루증 여인이 무리들을 비집고 예수님의 뒤로 다가온 열심과 옷을 만지기만 해도 낫는다고 믿었기에 병이 고침 받았다고 하면서 ‘믿으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라는 확신을 가지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회당장의 딸이 살아난 것도 회당장이 예수님께 나아와 자기 딸을 위해 예수님께 엎드려 간구했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열심히 간구하면 된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혈루증 여인이 고침을 받은 것도, 회당의 딸이 살아난 것도 모두 인간의 행함으로 인한 결과로 보는 것입니다. 과연 예수님이 이러한 믿음을 말씀하셨을까요?

 

믿음은 인간의 행함을 배제합니다. 물론 믿음으로 인한 행함은 있습니다. 믿음이 신자를 주관하고 다스림으로 인해서 맺어지는 열매로서의 행함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행함을 근거로 한 성취는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행함을 보시고 원하는 것을 이뤄주시는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아이야 일어나라’고 말씀하시자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일어납니다. 영이 돌아왔다는 것은 죽은 아이의 몸에서 떠난 영혼이 다시 그 몸으로 돌아와 살아났다는 뜻이 아니라 아이가 영적인 존재가 됨으로 인해서 생명을 얻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아이가 죽자 몸에서 영혼이 떠났다고 하지 않고 다만 영이 돌아왔다고 말할 뿐입니다. 따라서 아이가 죽었을 때 영이 떠났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상상일 뿐입니다.

 

만약 인간에게서 영이 떠났다면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육입니다. 영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소통하는 상태에 있는 것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과 소통하는 관계에 있는 것을 영이라고 하고 그 관계가 단절된 상태를 육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이 떠났다는 것은 실제로 인간의 몸에서 혼과 같은 것이 빠져 나간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소통이 단절된 상태로 육으로만 존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전제로 한다면 영이 돌아왔다는 표현은 하나님과 단절된 관계가 다시 회복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고, 이것이 곧 생명이며 이 일을 예수님이 이루신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일에 있어서도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인간의 어떤 행함으로도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를 회복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행함을 보시고 그 뜻을 결정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인간의 행함으로 인해 결정하신 뜻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심판일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행함을 선한 것으로 간주하며 그것을 근거로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의 의를 바라보지 않는 것임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 하나님의 구원 사건 ◉


인간은 여전히 죽음의 권세 아래 있기에 누구도 살아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오늘 이야기는 예수가 곧 그리스도시며 우리의 생명이심을 전하고 있습니다. 죽은 아이가 비록 살아났다고 하지만 그것은 단지 소생에 지나지 않습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죽은 자의 소생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고나 병으로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면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일인 것은 틀림없지만 적어도 기독교 신앙에서는 중요한 일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결국은 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병 고침과 같은 사건에 관심을 둘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이야기는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구원 사건이 일어났음을 말해줍니다. 이 구원 사건이 우리에게 일어났으며 따라서 우리는 죽음과 상관없는 생명의 세계에 속한 자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생명의 세계에서 우리가 할 일은 믿기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 이루신 의의 행함을 믿기만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그러면 아무것도 하지 말란 말이냐’라고 반문한다면 여전히 믿음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믿음의 권능 아래 있지 않음을 뜻합니다. 믿음이 주관하고 다스리는 세계를 아직 알지 못한 것입니다.

 

죽음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울고 통곡하는 것 밖에 없음을 잊지 마십시오. 이러한 절망의 자리에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죽음에서 일으키신 것입니다. 이 같은 예수님의 구원 사건을 믿는 것이 우리의 일입니다.

 

일어나라고 하신 말씀의 권능이 여러분께 주어졌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생명의 영으로 인해 그 삶이 풍요로워져야 합니다. 세상의 것이 우리 마음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충만이 되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행함이 아니라 오직 믿음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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