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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위로와 희망

  • 조용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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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중략)…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린도후서 4장 1~11절)

 

 사람들은 마음속에 고통과 절망의 늪에 빠졌을 때가 가장 슬플 때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절망의 어두운 환경과 마음의 고통을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한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최선을 다해 소망의 메시지를 전하여 성도들로 하여금 위로를 받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으심은 우리 인생의 쓴물을 달게 하는 기적적인 응답인 것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도 고통과 절망의 시간을 지날 때가 있습니다. 구약의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도 하나님 앞에 “지금 내 생명을 거두어 주시옵소서.”라고 호소했었습니다. 신약의 위대한 사도였던 바울도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잃은 줄 알았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모두가 위로와 희망을 받아서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언제나 위로와 희망을 주어서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새로운 생기를 얻게 해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버림받아야 마땅한 죄인들이 와서 위로와 희망을 얻는 곳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을 통하여 위로와 희망을 얻고 인생을 새롭게 살아갈 수 있어야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 다른 사람이 우리를 위로해 주지 않더라도 내가 나를 위로해 주면서 살 줄 알아야 됩니다.
 우리나라의 한 대형서점에서 책과 함께 꽃을 배달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주문자의 23%, 즉 4명 중 1명이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꽃을 선물한답니다. 아무도 꽃을 선물해주는 사람 없으니까 자기가 책방에 부탁해서 자기 이름으로 꽃을 배달하게 하고, 그 안에 메시지를 적은 카드를 동봉하는데,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는 “용기를 내라. 파이팅!”이랍니다. 남이 위로해 주기만을 바라지 말고 이런 방법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은 좋은 방법입니다.


1. 부정적 생각을 버려라
(생각이 부정적이면 꿈도 믿음도 다 물거품)


 생각이 부정적이면 꿈도 믿음도 다 물거품입니다. 광야 생활 가운데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장 나쁜 모습은 생각이 부정적이어서 늘 불평과 원망의 밧줄에 포박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민수기 14장 2절로 3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야훼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민수기 14장 26절로 30절에 “야훼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야훼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정적인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는 단호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생각 앞에 파수꾼을 세워서 생각을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기를 격려하고 칭찬하십시오.
 잠언 4장 23절에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구절을 많이 외우라는 것은 성경구절 속에 담긴 의미를 묵상하고 준행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외우면 성경 안에 우리를 구원하고, 힘을 주는 말씀이 많이 들어있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칭찬하고 보호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 6절로 7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음과 생각이 보호를 받아야 됩니다. 내 마음과 생각을 아무데나 내뒹굴어 놓으면 온갖 부정적인 것이 마음과 생각을 부패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가족 간의 위로와 격려를 해야 됩니다. 내가 나를 격려하고 “용기를 내어라. 파이팅!”을 할 뿐 아니라 가족끼리 서로 시간을 내어서 위로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결혼한 사람이 혼자 사는 사람보다 몇 년 더 오래 살겠습니까? 결혼한 가족은 결혼 안한 것보다 8년을 더 오래 산답니다. 빨리 안 죽으려면 가족을 이뤄야 됩니다. 자녀가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보다 2년 정도 더 오래 산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키울 때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갖가지 스트레스를 겪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를 둔 부모가 더 오래 사는 것은 자녀로부터 받는 위로 때문이라고 합니다. 키우기에 고달프지만 귀엽잖아요? 그 자녀들이 부모에게 사랑을 나타내는 그것이 부모가 2년이나 더 오래살 수 있는 위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배우자나 자녀가 주는 위로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됩니다.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지만 생각을 잘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특히 어렵고 힘든 시기를 지날 때에는 서로 격려하고 지지해 주는 것이 더욱 큰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위로를 등한히 해서는 안 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가족이나 친구의 위로가 큰 힘이 되기는 하지만, 때로는 사람의 말이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뜻하지 않은 사고로 죽었을 때 그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최근에 저의 친구 몇 사람이 자동차 사고로 죽었습니다. 그 미망인에게 위로의 말을 하러 갔는데, ‘하나님이 왜 우리를 이렇게 하시느냐? 우리는 버림받은 사람이다. 살 필요가 없다.’라고 탄식을 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힘으로 위로할 수 없어요. ‘오직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합동하여 선을 이루게 해주시겠다고 했음으로 짧은 인생을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원 속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되겠다.’라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기도를 해 주었으나, 사람의 말로써는 온전한 위로가 될 수 없었습니다. 
 또 며칠 전 발생했던 소래 어시장 화재 사건을 보더라도 평생을 바쳐 일구어 놓은 삶의 터전이 순식간에 몽땅 재로 변하였는데 그런 일을 당한 사람들에게 어떤 말이 위로가 되겠습니까? 사람의 말로써 말해봤자 아무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극한 고난을 당할 때, 이들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위로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원을 두고 섭리하시고, 만물을 가지고 위로하여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만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시편 19편 7절에 “야훼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 때에 뿐 아니라 평소에 늘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위로로 삼아야 됩니다. 매일 아침 성경을 펴고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루를 시작하면, 그 하루가 위로가 넘치는 하루가 될 수 있습니다.


 2. 용서하고 사랑하라
(용서와 사랑을 마음을 치료하는 효과가 크다)


 용서와 사랑은 마음을 치료하는 효과를 나타냅니다. 우리가 용서하고 사랑을 하면, 우리도 위로를 받고, 우리가 용서하고 사랑해주는 사람도 위로를 받습니다. 스스로 위로하고 희망을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103편 2절로 5절에 보면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령님을 통한 위로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말씀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어 위로의 힘을 주십니다. 요한복음은 성령을 보혜사라고 부르는데, 보혜사로 번역된 헬라어 ‘파라클레토스’는 ‘위로자’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와 늘 함께하시는 성령께서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이사야 40장 29절~31절)라는 말씀을 이루어 주십니다. 때문에 그 성령의 위로를 구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저는 부흥회를 가게 될 때 언제나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게 위로를 주시옵소서. 제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성령의 위로를 받아야 부흥이라는 이 큰 무거운 짐을 감당할 수가 있습니다.” 매 주일 말씀을 전한다는 것은 굉장한 부담입니다. “60년간 복음을 전했는데 무슨 부담이 되느냐? 조 목사님이야 입만 열면 하나님 말씀이 술술 나올 것인데.” 모르는 소리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매 순간이 부담스럽습니다. 수많은 생명에게 하나님을 대변하는 것이니 얼마나 중요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전하면 전할수록 그 중요성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되기 때문에 중압감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성령님의 위로를 믿기 위해 성령님 도와달라고 부르짖어서 기도해서 내가 먼저 은혜를 받아야 성도들이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용서와 사랑을 통해 주시는 위로도 우리가 등한시 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용서와 사랑을 통해 우리에게 위로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엄청난 고난과 괴로움이 아닙니까? 예수님이 그 고뇌와 괴로움을 당하신 것은 자기에게 잘못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은 죄, 불의, 추악, 저주, 절망을 예수님이 대신 끌어안고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려 죽으시면서 이걸 감당해 주셨다는 것을 생각하고 감사하면 큰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아프셨나 못 박힌 그 손과 발 죄 없이 십자기에 매달리신 예수님
하늘도 모든 땅도 초목들도 다 울고 해조차 힘을 잃고 온누리 비치잖네
아~ 끝없어라 주의 사랑 언제나 아~ 영원토록 구원의 강물 넘치네’

 오래 전에 제가 지은 찬송입니다만, 기도할 때 예수님이 우리의 죄와 허물과 모든 고통을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보니 성령께서 이 찬송을 주시더라고요.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에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공개적으로 부인했습니다. 베드로는 사랑도 많이 받았지만, 배신하는데도 선구자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는 찾아와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며 용납하고 사랑하시며, 회복시켜 주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사건은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던 베드로에게 평생 잊지 못할 위로와 격려가 된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이 되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찾아가서 “이 자식아, 3년 반 동안이나 내 밑에서 밥을 먹고, 배우고, 따라다녔는데, 그렇게 무참하게 비난할 수가 있느냐? 내가 살아 나왔다. 어떻게 할래?”라고 책망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말씀을 한 마디도 하지 않으시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예수님이 거기에 사용한 사랑이라는 말은 ‘아가페’라는 말하고, ‘필레오’라는 말로 쓰는데,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너 나를 아가페(사랑) 하느냐?” 즉 ‘아가페’는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 때 베드로가 “내가 아니요. 나는 예수님을 필레오(사랑) 합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인간적인 사랑을 하지, 영원한 사랑은 못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나를 그냥 필레오하면서 사명을 감당하라.”라고 말씀하시며 다시 사도직이 복구된 것입니다.
 시편 103편 8절에 “야훼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라고 말했습니다. 시편 103편 12절로 14절에는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야훼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를 용서하기 원하셔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기까지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의롭기 때문에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로마서 5장 6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로마서 5장 8절),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로마서 5장 10절)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를 향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약하고, 죄를 짓고, 하나님을 원수로 행할 그런 못된 처지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죄지은 그대로, 못난 그대로, 버림받은 그대로를 끌어안고 우리를 사랑해주신 것입니다.


 3. 꿈을 격려하라
(목적 있는 꿈을 격려하라)


 꿈을 주심으로 주님이 또 격려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우리에게 꿈을 주심으로 위로하고 격려하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야곱은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받은 후에, 형의 보복을 피해서 집을 떠나 어머니 친정집에 피신을 갔습니다. 외삼촌이 사는 머나먼 땅으로 길을 떠난 야곱은 밤이 되자 하늘을 지붕 삼고, 돌을 베게 삼아 들판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그때에 야곱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자기의 미래가 어떻게 될까 얼마나 두렵고 불안했을까요.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시어 야곱에게 미래에 대한 꿈을 말해주심으로 그를 격려해주신 것입니다.
 창세기 28장 13절로 14절에 보면 “나는 야훼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꿈을 이룰 때까지 야곱과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창세기 28장 15절에 보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장래에 대한 약속을 꿈으로 확인한 야곱은 ‘내가 이 들판에서 자도 사나운 짐승이 나를 공격 못 할 것이고, 외삼촌 집에 가면 외삼촌이 나를 환영해주겠구나.’라는 위안을 얻게 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꿈도 귀하게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예언적인 꿈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예언적인 꿈을 많이 꾸는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꿈을 주시면 마음에 그것이 큰 위로가 되고, 의지하는 반석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꿈을 주심으로 격려를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십자가가 주는 위로는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고난을 당한 사람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것은 같은 고난을 당해 본 사람의 위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이 겪는 고난을 다 경험하셨습니다. 배고플 때 먹이고, 아플 때 치료해 준 사람들로부터 배신을 당하셨고, 수년 동안 함께했던 제자들에게도 배신을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4장 15절은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사람으로 오셔서 우리 인간의 연약함을 다 겪으셨기 때문에, 우리 마음의 답답함과 막막함을 주님께서 이해하시고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 문제를 청산하시고,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위로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됩니다. ‘자비의 아버지시요 위로의 하나님께서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시는 하나님(고린도후서1장3절)’이신 것입니다.

 

 4. 믿음을 가져라 (믿음은 꿈과 말씀에서 주어진다)


 믿음은 꿈과 말씀에서 나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로마서 10장 17절)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의심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자꾸 의심이 생기는데 어찌할까요?’ 의심이 생기는 것을 두려워 할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 반대인 의심도 다가오는 것입니다. 믿음이 한 방울도 없는 사람은 의심도 한 방울도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난 다음 ‘정말일까? 정말일까?’ 그런 의심이 생기면 이 믿음이 있기 때문에 의심이 마음을 흔들어 놓는 것입니다. 믿음은 말씀을 통해서 나오기 때문에, 여러분 말씀을 입으로 자꾸 시인하면 의심은 말씀에 부딪혀 깨어지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기 때문에 의심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말씀을 듣고 믿음이 생기면, 마귀는 곧 와서 의심을 자꾸 던져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입술로 말씀을 고백함으로 말미암아, 마귀가 던져주는 의심이 우리 말씀의 고백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고 마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말씀을 등불처럼 우리가 들고서 걸어야 됩니다.
 시편 119편 50절에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 11장 23절로 24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결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 수르 광야로 들어와서 사흘 길을 가되 물을 얻지 못하다가, 물을 발견하여 백성들이 허둥지둥 물을 마시다보니 그 물은 독이 있는 쓴물이었습니다. 백성들이 통곡하고 낙심하였을 때, 모세가 하나님께 계시를 받아 쓴물이 있는 주변에서 나무를 꺾어 물에 던지니 물이 달아졌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 우리의 생활에도 시험과 환난의 쓴물을 마시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의 십자가의 나무를 던지면, 그 물이 달아집니다. 죄악의 물이 위로 달아지고, 부정부패한 죄악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역사로 쫓겨나가고, 질병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몸에서 떨어져 나가고, 우리의 생활에 부요함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축복을 주시기 때문에 부자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죽어서 ‘예수 부활 내 부활’이 되고, ‘예수 승천 내 승천’이 되고, ‘예수 천국 내 천국’이 되니 굉장한 위로와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나가면 수많은 고통을 당하지만,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최고의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주를 앙망하고 기다리면, 주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통으로 말미암아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를 마음에 부어주심으로 쓴마음이 달아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매달리신 십자가는 우리에게 영원한 축복의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이 십자가를 놓치지 말기를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주 없이는 우리가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주 안에서 위로와 희망의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가 무한하신 하나님! 이 땅을 사는 동안 수많은 위기와 환난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모든 저주와 죽음과 질병과 가난을 청산하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예수님 안에 생명과 소망과 위로와 축복이 있습니다. 부정적인 사람이 아니라 긍정적인 사람으로, 의심의 사람이 아니라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십자가 보혈의 능력으로 승리하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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