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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히스기야왕의 허영심 (왕하 20: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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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 왕이 죽을 수 박에 없는 중병에 걸려 있었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 적인 축복을 받았다.

 삼일만에 건강을 되찾고 그가 원하던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가게 되었다.

그것도 무려 15 년이나 되는 많은 날수를 그렇게 하면서 살게 되었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경험한 병은 요즘의 에이즈나 암과 같이 크고 중한 병이었다.

 히스기야가 병에서 고침을 받고 건강을 되찾았다는 소문이 나자 이웃에 있는 나라들이 많은 예물과 함께 문안을 왔다.

 1,히스기야가 처했던 상황

12절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 왕 부로디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들었다함을 듣고 예물을 저에게 보낸지라

이런 일은 상례적으로 오고 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례적인 일 가운데서 히스기야가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일반 사람들에겐 일상적인 일이지만 성도들에겐 구별이 되어야함을 하나님께서는 보여 주시고 있다.

 그러면 히스기야 당시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부터 보자.

1),많은 은혜 가눈데 있었다.

-왕하19장에 나타나 있는대로 앗수르 왕 산혜립이 18 만 5 천의 대 병력을 인솔하여 작은 유대를 쳐 내려 왔었다.

 그때 히스기야는 굵은 베 옷을 입고 성전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자기의 모든 수하들에게도 다 하나님께 기도하게 했다.

 그 결과 앗수르의 대 병력은 하룻밤 사이에 다 송장이 되고 말았다.

대단한 기적의 체험을 가진 히스기야 였다.

 또 히스기야가 병들었을 때 그것도 죽을수 박에 없는 중병에 걸렸을 때 다시 기도함으로 3 일만에 다시 살되 그것도 15 년이란 확실한 년수를 약 속받는 능력 있는 기도와 믿음의 체험을 했었다.

 그 징표로 일령표를 뒤로 십도나 물러가게 했던 놀라운 체험을 했던 것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히스기야는 그런 것들 말고도 물질적인 특별한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하는 일마다 계획하는 것들마다 만사가 형통이었다.

번영의 꽃이 만발했던 것이었다.

 우리도 알아야 할 것은 이렇게 번영의 꼿이 만발한 정원에 뱀들이 숨어 들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높은 곳은 위험할 때가 많다.

가득찬 잔은 흔들림이 없이 나르기가 쉽지 않다.

짐을 가득 싫은 마차는 짐을 단단하게 얽어 맬 필요가 있다.

또 잘 먹인 말은 단단한 고삐를 필요오 한다.

 2),히스기야는 화제의 대상이었다.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으레이 히스기야왕이 산헤립을 물리친 일과 건강을 되찾은 이야기들로 가득찼었다.

 이것이 히스기야에겐 큰 유혹이었는데 본인은 그것이 유혹이 됨을 알지 못했다.

 산헤립의 십팔만 대군대를 격파한 일이며 죽을 수 박에 없었던 병에서 구원된 일이며 만사가 형통한 일들은 많은 사람들의 화제거리가 되고도 남았다.

 3),히스기야는 일을 할 수 있는 많은 여건을 가지고 있었다.

-기도하는 일마다 하나님께서는 주시었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산헤립을 물리친 다음에 하나님을 향하여 무었을 어떻게 했다는 말이 전혀 없다.

 또 죽을 병에서 건짐을 받고 난 다음에도 하나님에 대하여 무었을 했다는 말이 한 마디도 없다.

 대하32:27-30절을 다 같이 보자.

히스기야가 부와 영광이 극한지라 이에 은금과 보석과 향품과 방패와 온갓 보배로운 그릇들을 위하여 국고를 세우며 28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산물을 위하여 창고를 세우며 온 갓 짐승의 외양간을 세우며 양떼의 우리를 갖추며 29 양떼와 많은 소떼를 위하여 성읍들을 세웠으니 이는 하나님이 저에게 재산을 심히 많이 주셨음이며 30 이 히스기야가 또 기혼의 윗 샘물을 막아 그 아래로 좇아 다윗성 서편으로 곡게 인도하였으니 저의 모든 일이 형통하였더라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주셨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 모든 일이 형통했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히스기는 보배로운 그릇들을 위하여 국고를 세우고 기름진 산물을 위하여 창고를 세우며 많은 소떼를 위하여 성읍들을 세웠다고 했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하나님을 위하여라는 말이 없다.

 4),히스기야만은 하나님께 특별한 의무감을 가져야 했다.

 우리들은 가끔 헌신 예배를 드리는데 어떻게 하는 예배가 헌신인가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은 생명을 주신 분이기에 하나님께 우리들의 생명을 돌려 드림이 헌신이다.

 더우기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연장된 생명이라면 이는 더 그렇게 했어야 한다.

 아브라함은 100 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서 요구하실 때 모리아 산에서 두말 없이 드렸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그렇게 살것 같았는데 그리 살지 못했었다.

 대하32:25절에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받은 은혜를 보답지 아니하므로 라고 되어 있다.

 히스기야는 많은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그 많은 은혜를 주신 하나님 앞에 아무런 표시도 없었던 것이다.

 왜 으랬을까 우리들은 지금 이 시간 이 후의 일을 알지를 못하면서 살고 있는것이다.

언제 하나님께서 부르실지를 알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우리들과 달랐다.

그에게는 15 년이란 년수는 너무도 학실한 것이었다.

 그 확실한 년수의 보증이 히스기야를 교만하게 하고 말았다.

 5),하나님의 시험에서 낙제하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에게 이렇게 많은 것을 주심을 한 마디로 엄청난 축복이었다.

 그렇게 많은 것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중심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바벨론 왕의 신하를 보내어 히스기야의 중심을 시험해 보셨던 것이다.

 대하32:31절에 그러나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 중심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

이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하나님을 자랑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산헤립으로부터의 승리이며 죽을 병으로부터의 구원이며 모든 일의 형통함을 얻게된 이적은 사람의 재주로 힘으로 됨이 아니라 전적으로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신 일임을 자랑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었는데 ...

 히스기야는 바벨론의 사자 부로닥발라단에게 하나님에 관한 말을 하지 못한다.

아니 아에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히스기야가 교만했다는 말이 무었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의 시험에 완전 낙방하고 말았다.

 2,히스기야의 행동의 잘못

사39:2절에 이런 내용이 있다.

히스기야가 사자를 인하여 기뻐하여... 사자는 바벨론의 사자를 두고 한 말이다.

 그리스도 인들이 세속의 사람들을 보고 이렇게 기뻐하고 있는 ....

 그리스도인이라면 보고 기뻐할 대상을 바로 볼줄 알아야한다.

 지금 히스기야가 바벨론 사자가 왔음을 보고 기뻐했던 것은 자기는 작은 나라의 왕이고 바벨론 나라는 날로 번성해 가고 있는 큰 나라의 왕이니 친해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만약에 이 큰 바벨론과 동맹을 잘 맺는 날에는 히스기야에게 크게 유익된 일이 있을 것을 계산 했기 때문이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를 하루 아침에 송장으로 만든 하나님을 잊고 있었다.

바로 이런 행위가 하나님을 멀리하는 결과가 되었다.

 이런 행위는 자기의 신분을 우상을 섬기는 자들의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결과를 만들었다.

 요지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고 있는 잘못된 풍조는 친한 친구사이에 되도록이면 종교문제는 거론 하지 않음이 예의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 나고 있는 실정이다.

 히스기야처럼 하나님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침묵으로 보내 는 분들이 많음을 볼 수 있다.

 하나님에 대하여 침묵하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하여는 목청을 돋구는 것을 많이 본다.

 물론 보석과 금은과 향료에 관해서(세상 사업)는 더 없이 크게 떠 벌리는 것을 볼 수 있다.

 3,히스기야가 받은 징벌과 용서

20:17-18절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무릇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열조가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을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 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이말이 무슨 말인가 이 말은 네가 바벨론 사람들에게 이 진귀한 것들을 보여 줄 때는 좋았을 것이나 날이 이르러 이 좋던 것들과 함께 남의 나라로 포로되 갈 것을 예언 함이다.

 오늘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에겐 직접적으로 죄의 형벌을 가한 것이 아니라 그 후대에게 내리리라는 것이었으나 이는 자기가 직접 당하는 것보다 어쩌면 더 쓰라린 것이었다.

 이런 속담이 있다.

해적은 짐을 싣지 않은 배는 공격하지 않는다라는 속담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 우리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늘 기억하면서 그 앞에서 살자.

우리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겸손을 배우자.

우리들은 우리들의 형통함을 느낄때 하나님을 자랑하자.

 나의 살아 가는 삶 자체가 하나님의 이적이며 지극히 작은 것에까지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자랑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되시어 더 크 은혜 와 축복과 형통함이 넘쳐 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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