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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야곱의 애통

  • 이정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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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야곱의 애통                             

창37:25-36


  요셉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에게 갔다가 죽임을 당할 뻔했으며, 구덩이에 던져졌다가 미디안 대상들에게 팔려갔습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바로의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렸습니다. 요셉은 자신이 왜 이런 일들을 당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착오 없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일들을 통해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만들고 계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건에서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습니다. 요셉을 죽이려고 했던 형들이 왜 그를 죽이지 않고 웅덩이에 던져 넣었을까요? 왜 바로 그 시간에 미디안 상인들이 지나갔을까요? 왜 유다가 요셉을 죽이지 말고 팔자고 했을까요? 왜 요셉은 애굽에서도 하필이면 바로의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으로 팔려가게 되었을까요?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이 벌어지고 있던 당시에는 아무도 그 사건을 해석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스러운 일들이 요셉에게 닥쳐왔을 때, 그 모든 일들에는 하나님의 손길이 정확하게 미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요셉의 생애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를 지키시고 인도하시는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이 애굽에서 노예가 되었을 때부터 애굽의 총리가 되기까지, 하나님께서 어떻게 요셉을 인도하시는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열망을 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을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이해할 수 없는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과 사건들 속에서 하나님께서 치밀하게 우리를 인도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그 말씀을 굳게 신뢰하면서 이 모든 것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당신에게 놀라운 일이 이루어지게 하실 것이며, 당신을 귀하고 영광스럽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형들의 죄성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의 보냄을 받아 자기들을 위해 먼 길을 온 요셉을 보자마자 그를 죽이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요셉을 시기했으며, 요셉의 꿈 때문에 그를 더욱 미워했습니다. 요셉이 자기들보다 특별하고 중요한 인물이 된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요셉은 또 자기들의 비리에 동참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아버지에게 일러바치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은 요셉이 미웠고 불편했고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그를 죽이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맏형 르우벤이 요셉을 죽이지 말고 구덩이에 던져버리자고 제안했습니다. 르우벤은 기회를 보아서 동생을 구해내 아버지에게로 돌려보낼 생각이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이렇게 요셉을 구덩이에 던져 넣고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25상) 어떻게 형들이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들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어린 동생을 구덩이에 던져버렸고, 거기서 굶주림과 추위를 견디다 못해 죽게 할 작정이었습니다. 그런 짓을 저질러놓고도 그들은 태평하게 앉아서 음식을 먹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얼마나 악한 죄성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들은 여동생 디나가 세겜에게 강간을 당했을 때, 칼을 차고 가서 세겜 족속의 모든 남자들을 다 죽여 버렸습니다. 그리고 여자들과 아이들을 모조리 잡아왔으며, 그들의 모든 재산을 약탈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보기에 이런 사람들은 절대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 백성이 되는 일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통해서 결국은 그들이 자기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 안에도 요셉의 형들 못지않은 죄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는 도저히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들이요, 절대로 하나님 백성이 될 수 없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사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고, 우리를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얼마나 놀랍습니까?


    팔려가는 요셉


  형들은 요셉을 구덩이에 던져 넣고 태평하게 음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 때 마침 사막의 대상들이 지나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본즉 한 무리의 이스마엘 사람들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낙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지라”(25절) 그 때 유다가 요셉을 죽이지 말고, 그 대상들에게 팔아버리자고 했습니다.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26-27절)


  그들은 요셉이 자기들의 동생이며 골육이므로, 그를 죽이는 것은 좋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요셉을 죽일 작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다가 동생을 죽이는 것보다는 팔아버리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말하자, 모두 그 말에 찬성을 한 것입니다. 요셉을 자기들의 손으로 죽이는 것보다는 이렇게 팔아버리는 것이 훨씬 부담 없고 편한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요셉은 상인들에게 팔려 애굽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미디안 사람 상인들이 지나가고 있는지라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 개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28절)


  요셉은 팔려갈 때 형들에게 살려달라고 얼마나 애걸했는지 모릅니다. 나중에 그들이 양식을 사기 위해 애굽에 갔다가 어려움을 당하자, 그들은 서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인하여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창42:21) 형들은 어린 동생이 울면서 애걸하는 것을 외면하고 그를 팔아버렸던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강퍅하고 완악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르우벤의 탄식


  맏형 르우벤은 형제들이 요셉을 팔아넘길 때 자리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돌아와 보니 구덩이에 동생이 없었습니다. 형제들이 요셉을 팔아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르우벤은 옷을 찢으며 탄식했습니다. “르우벤이 돌아와 구덩이에 이르러 본즉 거기 요셉이 없는지라 옷을 찢고 아우들에게로 되돌아와서 이르되 아이가 없도다 나는 나는 어디로 갈까”(29-30절) 르우벤은 기회를 보아서 동생을 구덩이에서 구해내 아버지에게로 돌려보낼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동생이 팔려가고 없는 것을 알게 되자, 탄식하며 울부짖었던 것입니다.


  이 안타까운 장면은 우리에게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줍니다. 르우벤이 요셉을 구해줄 수 없었던 것은 죄인은 죄인을 구원할 수 없다는 진리를 보여줍니다. 르우벤은 아버지의 첩과 통간한 후 장자의 위치를 잃어버렸습니다. 형제들은 그런 르우벤을 더 이상 맏형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악한 그들 사이에서도 “너는 인간도 아니야”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입니다. 형제들이 그런 르우벤을 끼워준 것만도 감지덕지할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르우벤은 맏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생들의 음모와 잔인한 계획을 저지할 수가 없었습니다.


  요셉을 미디안 대상들에게 팔아버린 형제들은 요셉이 짐승에게 찢겨 죽은 것으로 조작했습니다. “그들이 요셉의 옷을 가져다가 숫염소를 죽여 그 옷을 피에 적시고 그의 채색옷을 보내어 그의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이것을 발견하였으니 아버지의 아들의 옷인가 보소서 하매”(31-32절) 그들은 차마 그 옷을 직접 아버지에게로 가져가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을 통해 그 옷을 아버지에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멀쩡하게 살아있는 요셉을 죽은 것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비통해하는 야곱


  요셉의 옷을 받아든 야곱은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짐승에게 찢겨죽은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가 그것을 알아보고 이르되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도다 요셉이 분명히 찢겼도다 하고”(33절) 요셉이 죽었다고 생각한 야곱은 말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으로 통곡했으며, 좀처럼 진정할 줄을 몰랐습니다.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의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그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이르되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34-36절)


  야곱은 좀처럼 울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를 속이고 자기를 죽이려는 형을 피해 홀로 도망칠 때도 울지 않았습니다. 그의 딸 디나가 강간을 당했을 때도 울지 않았으며, 아들들이 세겜에서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 때도 울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그토록 사랑하던 아내 라헬이 죽었을 때도 그렇게까지 울지는 않았으며, 그의 부모가 죽었을 때도 그렇게 울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없어졌을 때, 야곱은 말할 수 없이 애통해했습니다. 그는 그 누구의 위로도 거절했습니다. 그의 단 한 가지 소원은 죽어서 요셉에게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형제들은 아버지가 충격을 받고 슬퍼할 줄은 알았으나,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습니다. 다른 아들들도 많이 있으니, 잠시 슬퍼하다가 진정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아버지가 그토록 고통스러워하며 오래도록 슬퍼하자, 야곱의 아들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죽었다고 생각했을 때, 야곱은 왜 그렇게 심하게 슬퍼했을까요? 야곱은 요셉을 다른 아들들보다 특별히 더 사랑했습니다. 요셉은 야곱이 노년에, 그것도 가장 사랑하던 아내 라헬에게서 얻은 아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요셉은 다른 아들들과는 달랐습니다. 요셉은 어려서부터 유달리 경건하고 믿음이 좋은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그토록 슬퍼한 것은 단지 이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야곱은 요셉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시는 은혜로우신 계획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야곱의 가정은 아무런 소망도 없고, 기대도 가질 수 없는 형편에 있었습니다. 그의 딸 디나는 가나안의 죄악된 문화를 동경하다가 이방인에게 강간을 당했으며, 그의 아들들은 복수한다고 할례를 빙자하여 세겜 사람들을 속이고 그들을 모조리 죽이는 끔찍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렇게 하고도 그들은 죄책감을 조금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맏아들 르우벤은 자신의 첩 빌하와 통간했습니다.


  야곱은 그러한 자녀들의 모습을 보면서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야곱이 이 모든 일을 당하면서도 단 한마디 말도 없었던 것은, 그의 절망이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하게 해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을 받은 자들이었는데, 이렇게 타락하고 완악했습니다. 이제 이들에게 남은 것은 심판 외에 무엇이겠습니까? 그래서 야곱은 자신의 가정에 대해 두려움과 절망을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자녀들 중에서 요셉만은 달랐습니다. 뿐만 아니라 요셉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심지어는 요셉 자신도 그 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 꿈이 매우 중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나타내고 있음을 짐작했습니다. 그래서 그 꿈을 가슴에 간직해두었던 것입니다.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창37:11) 야곱은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해서 큰일을 이루시고, 자신의 가정을 구원하실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야곱의 소망이었고, 그의 가정의 소망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요셉이 이렇게 죽고 만 것입니다. 사실 요셉은 죽지 않고 팔려갔지만, 야곱은 요셉이 죽은 줄만 알았습니다. 요셉이 죽은 줄 알게 된 순간, 야곱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한줄기 소망의 빛이 꺼져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슬픔과 절망에 깊이 빠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 이러한 야곱의 슬픔과 고통과 절망을 위로할 수가 없었습니다. 야곱은 이제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야곱의 이러한 절망과 깊은 슬픔을 십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야곱이 요셉을 잃고 슬퍼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사 십자가에 죽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슬픔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사랑하사 구원하시려고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미워하고 대적하여 핍박하고 십자가 못 박아 죽였습니다. 이 죄가 얼마나 큰 죄입니까?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 분의 아들을 죽인 죄인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흉악한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십자가에서 흘리신 아들의 피로 우리 죄를 대속하시고 우리를 구원해주셨습니다. 당신은 하나님 아버지의 그 크신 사랑을 얼마나 깊이 깨닫고 있습니까?


    더 깊은 구덩이로 떨어진 요셉


  요셉은 이렇게 구덩이에 던져졌다가 미디안 대상들에게 팔려 애굽으로 갔으며, 애굽에서 바로의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렸습니다. 십칠 세의 꿈 많고 꽃다운 나이에 야곱은 이역만리 타국에서 노예가 된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은 그의 꿈과는 정반대로 진행되었습니다. 그의 꿈은 높아지는 것이었는데, 실제로 그는 가장 낮아졌으며 가장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자리로 떨어졌습니다. 요셉은 도대체 왜 그의 꿈과는 정반대가 되는 이 모든 고통스러운 일들이 자신에게 닥쳐왔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믿음으로 살고 하나님을 위해 살기를 원하면, 당연히 좋은 일만 생기고 복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견디기 어려운 고통과 환난이 닥쳐올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요셉은 그 모든 고난을 어떻게 이겼을까요?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안고,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가 처한 고통 가운데서 그를 강하게 붙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를 보는 사람들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창39:2-3)


  이것은 요셉이 감옥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창39:21-23) 요셉은 고통의 때에도 여전히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변함없이 섬겼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요셉과 함께 하시고 고통의 때에도 그와 함께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그 모든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크고 귀하게 사용하실만한 사람으로 준비되어 갔습니다.


  오늘 당신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원하는 열망을 가지고 있습니까? 당신의 남은 생애를 하나님을 위해서 살기로 결단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위해 독생자를 보내사 십자가에 대신 죽게 하셨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위해 살지 않을 수가 있단 말입니까?


  당신이 하나님을 위해 살기로 결정했다면, 이제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축복하시고 귀하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역경이 닥쳐올 수도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귀하게 쓰시기 위해 준비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여전히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어려움을 당하는 때에도 함께 하시고 위로하시며 형통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당신을 높여 귀하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끝까지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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