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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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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혁 목사 (강변교회 담임,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눅23:33)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성육’(incarnation)의 사건과 함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십자가’(crucifixion)의 사건은 기독교 역사의 두 가지 중심적인 축이다. ‘성육’의 모형으로부터 ‘문화’를 ‘복음’으로 변혁시키려는 다양한 복음화의 노력들(‘그리스도와 문화’)이 시도되었고, ‘십자가’의 모형으로부터 십자가의 복음을 세상에 선포하는 ‘순교’(증언)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교회의 역사는 ‘십자가’(와 부활) 사건으로부터 시작된 역사였고, 주님의 제자들이 ‘십자가’를 지고 고난과 핍박과 순교의 길을 걸으므로 이어진 역사였다.

사도행전의 역사는 스데반과 야고보의 순교로 시작해서 사도 베드로와 바울의 순교로 마감되었고, 신약의 역사는 사도 요한의 순교로 마감되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자.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내 몸에 예수의 [십자가의] 흔적을 가졌노라”(갈6:14,17).

“죽도록 충성하라” (계2:10)

기독교의 역사는 죽도록 충성한 사람들, 즉 순교를 당하기까지 충성스럽게 신앙의 절개를 지킨 사람들에 의해서 이어진 역사였다. 계2:8에 기술된 ‘서머나 교회의 사자’는 주후 155년경 서머나의 투기장에서 화형을 당해 순교한 서머나의 감독 폴리캅이었을 것이라고 교회사가들은 말한다.

폴리캅은 사도 요한의 제자로 그가 물려 받은 순수한 사도적 신앙을 그의 제자인 이레니우스에게 물려주었다. 폴리캅은 로마 황제를 신으로 고백하고 그리스도를 저주하라는 로마 총독의 명령과 위협에 굴하지 않고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충성을 끝까지 지키다가 주후 155년경 서머나에서 순교를 당했다. 폴리캅이 형장에서 남긴 마지막 고백과 기도의 말들은 그리스도인들의 가슴에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충성을 불러 일으키곤 했다.

“나는 86년 동안 나를 구원하신 나의 왕을 섬겨왔소. 그리고 그 분은 나에게 한번도 잘못하신 일이 없소. 그런데 어떻게 내가 그 분을 모독할 수 있겠소…. [그리고 하늘을 향하여] 내가 당신께 찬양을 돌립니다. 당신은 오늘 이 시간 나로 하여금 순교자들의 수에 참예하는 영광을 주셨습니다. 이것을 인하여 그리고 모든 것을 인하여 나는 당신을 찬양하며 당신을 송축하며 당신께 영광을 돌립니다. 아멘!”

죽도록 충성한 폴리캅으로부터 수많은 그리스도의 ‘증인들’과 ‘순교자들’이 배출되었는데, 그들 중의 한 사람이 손양원 목사님이었다. 손양원 목사님은 ‘죽도록 충성하라’는 제목의 설교를 마지막으로 하고 순교의 형장으로 끌려 갔는데, 그는 두 아들의 순교의 현장과 자기 자신의 순교의 현장에서 폴리캅처럼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렸다.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 (행20:28,히10:19)

교회의 기초와 재료와 문은 예수님의 피요 그 뒤를 이은 순교자들의 피다. 처음 300여년 동안의 기독교의 역사는 복음이 세계 곳곳에 퍼져나간 ‘복음 확장의 역사’였는데 그 복음 확장의 역사는 10 여 차례에 거친 박해를 통해서 이루어진 ‘박해의 역사’였고 ‘순교의 역사’였다. 박해의 이유와 근거는 ‘황제 숭배’의 거절과 ‘오이디피안 교제’ (근친 상간)와 ‘티에스티안 잔치”(영아살해와 인육 식)를 한다는 것이었다.

(1) 로마에서 일어난 네로 황제의 박해로(주후 64년) 그리스도인들은 “동물에 가죽에 쌓여 개들에게 찢기기도 했고 십자가에 못 박히거나 화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2) 도미시안 황제의 박해(95년)와 (3) 트라잔 황제의 박해(112)는 일부 지역에 국한했고 교회 지도자들에게 국한했다. (4) 리온과 비엔 지역에서 일어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박해(177)는 매우 극심했다. “모든 사람들이 야수와 같이 사납게 이를 갈면서 우리들에게 덤벼들었다. 군중과 총독과 군인들의 분노가 쏟아졌다.” (5)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의 박해(202)는 제국 전역에 미친 박해로 화형, 태형, 참수형 등의 형태로 나타났다.

칼타고의 페르페투아는 203년 26세의 여인으로 어둡고 더러운 감방 속에서의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이교도 아버지의 간언에도 불구하고, 어린 아기에 대한 애끓는 모정에도 불구하고, 재판관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군중 앞에서 검사의 칼에 찔려 쓰러지는 순간까지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신앙을 굳게 지키므로 수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깊은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6) 막시미우스 황제의 박해(235)는 일종의 정치적 보복으로 교회의 지도자들을 처형했는데 수 개월 동안 계속되었다. (7)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250)는 로마 제국 전역에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극심한 박해로 모든 시민들로 하여금 황제와 로마 신들에게 제사하도록 명령했는데 수 많은 배신자들과 함께 수많은 순교자들을 배출했다.

(8) 발레리안 황제의 박해(257,258)로 교회의 지도자들과 평신도들이 유배, 노예 노동, 사형에 처해졌다. 키프리안도 이 때 사형에 처해졌다. (9)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박해(270-5)는 별로 심하지 않았다. (10) 가장 극심한 마지막 박해가 303,4년에 디오클레시안 황제에 의해서 일어났는데, 교회당을 파괴하고 성경을 불태우고 기독교인들에게 고문이 가해졌고 그들의 지위와 명예를 박탈했다.

십여 차례에 거친 극심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죽지 않았고 기독교는 쇠하지 않았다. 오히려 교회는 왕성하게 성장했고 기독교는 제국 위에 우뚝 섰다. 칼타고의 신학자 터툴리안은 197년에 쓴 「변증서」에서 이렇게 기술했다.

“우리를 십자가에 못 박아라. 우리를 고문하라. 우리를 저주하라. 우리를 멸하라. 너희들의 잔인함은 아무 것도 이루어 놓을 수 없다. 우리가 베어버림을 당하면 당할수록 우리의 수는 그만큼 더 늘어난다.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기독교는 원칙적으로 박해를 당하는 종교이고 순교를 당하는 종교이다. 교회사가들은 이 천년 역사 중에서 교회가 가장 교회답고 기독교가 가장 기독교다웠던 때는 처음 300여년이었다고 입을 모아서 말한다.

기독교는 약할 때 강해지는 종교이고 고난과 박해를 당할 때 찬란하게 빛나는 종교이다. 기독교가 세력화할 때(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기독교는 타락한다. 일부러 고난과 박해와 순교를 자원할 것은 아니지만 평안과 안일과 명예를 탐하는 것은 위태롭다. 나에게 십자가의 의미는 무엇인가?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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