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칼럼 적반하장

첨부 1


- 라은성 교수(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역사신학) 

“으르렁대는 개는 물지 않는다.” “교통법규를 위반하다 걸린 사람이 더 큰 소리친다.” “빚쟁이들이 더 큰 소리친다.” 우리가 흔히 듣는 이야기이다. 다른 말로 하면,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는 말이다.

상대방이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오히려 큰 소리를 치는 경우가 있다. 큰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이긴다는 말도 한다. 기가차서 말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흔히 있다. 새벽 일찍 해가 뜨기 전에 직장에 가서 힘들게 일하고 난 후, 저녁에 곧장 집으로 되돌아오지도 못하고 간이식당이나 주막집에 들러 소주 한 잔을 마시는 많은 분들을 길을 지나면서, 버스를 타고 오면서, 또는 운전을 하면서 볼 수 있다.

곤드레만드레 하여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음식과 소주를 먹고 마셔서 에서처럼 붉은 얼굴을 나타내며 이리저리 흔들거리며 큰소리 치고 다니는 무리들을 간혹 본다. 아니면 아침 출근하다보면, 가끔씩 누군가가 토해내었는지 행인들에게 혐오감을 주는 것을 쏟아낸 것을 볼 수 있다.

아무튼 우리는 여러 스트레스들 속에 살아가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술에 빠져 비틀거리는 자들이나 술에 잠긴 자들은 대체적으로 큰 소리와 고함을 친다. 남의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고 보통 때에 가질 수 없는 만용을 부리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꼭 해야 하는 말이 있는데 못하는 경우가 될 때 어떤 이들은 술을 마시고 취한 후에 말을 건넨다고들 한다. 보통 때보다는 더 큰 용기가 생기는가보다.

청교도 설교자였던 존 번연이 쓴 「천로역정」을 보면, 불신(mistrust)과 소심(timorous)은 성에 도달했는데 사자가 있기에 들어갈 수 없으니 오던 길로 되돌아가라고 강력하게 권한다. 주인공 기독교인과 동반자들은 사자가 갇혀있다고 여겨 계속하여 나아갔다. 하지만 듣던 것과는 달리 막상 사자 앞에 서게 되자 그들은 두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당황하고 있는 가운데 안내자는 사자가 덤벼들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권하면서 실제로 사자는 쇠사슬에 묶여 있다고 알려 주었다. 그래서 기독교인과 동반자들은 무사히 사자 앞을 지나갈 수 있었다. 상대방에게 무섭게 보이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그렇게 하지 못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맹수들이 보통 때는 가만히 있다가도 적이 가까이 오면 다가가서 덤벼든다.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곤충들과 선한 동물들은 소리를 내면서 지낸다. 아마도 해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든 운전하면서 접촉 사고를 당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으로 여긴다. 추돌을 하든지 충돌을 하든지 차사고 경험을 한번쯤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큰 소리 치는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라는 것이다.

성격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잘못한 사람이 처음에는 사정하듯이 부탁하다가 피해자가 고분고분하게 사정을 봐주지 않으면 도리어 가해자 큰 소리를 치면서 될 때로 되라고 하는 식으로 막나가는 경우가 있다. 황당한 경우이다. 사고현장을 목격하지 않은 사람들은 큰 소리를 치는 사람이 피해자고 가해자는 가만히 꼬리를 내리고 있는 분으로 착각할 정도로 가해자는 큰 소리를 치면 대들기도 한다.

가끔 각종 회의를 하다보면, 여러 일들을 만난다. 큰 소리를 지르며 막나가는 사람들이 있곤 하다. 그런 분들과 맞서지 않으려고 또 그렇게 심각한 문제가 아니면 그냥 넘어가곤 한다.

가정에서도 보면, 10대는 이유 없는 반항의 시기이다. 분명히 밤늦게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학교생활에 충실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수로 여러 잘못된 일들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큰 소리를 치며 이유 없는 반항을 일삼는 청소년들을 본다. 부모에게 공손하지 못할 뿐 아니라 가족의 의무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잘난 듯이 혼자 우쭐대며 목에 힘을 주며 불평한다. 아니 무뚝뚝하다고 표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친구들에게는 상냥하고 그렇게 좋은 사람이 없는 것처럼 행하면서도, 친구들 앞에서 부모에 대해서 창피를 느끼곤 한다. 살벌하리만큼 부모들에게 막 대하는 청소년들도 간혹 있다.

도리어 큰 소리를 쳐도, 무뚝뚝한 말투를 부려도, 술 취해서 만용을 행해도, 잡아먹을 듯이 고함을 쳐도, 드러나는 것과는 실상은 다른 경우가 많다. 베드로전서 5:8에서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그렇다고 우리가 사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경계할 뿐이다. 가까이 가면 그들의 먹이가 되겠지만 결코 우리들에게 덤벼들지 못한다. 묶여 있기 때문이다. 또 소리를 내기 때문에 사탄의 정체를 우리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무더위, 불경기, 물가인상, 등등으로 인해 우리는 극도로 신경이 예민한 가운데 있다. 서로들 큰 소리를 칠 것이다. 그러한 소리 자체가 본심이 아닌 경우가 많다. 그냥 해 보는 것이라 여겨진다. 누군가가 나에게 큰 소리를 칠 때 받아들일 수 있는 아량이 우리들에게 있었으면 하는 마음을 기대한다.

문을 꽝하고 닫고 나간 사람이지만 금세 되돌아와서 상냥해 지는 경우가 있다. 고함치는 목소리로 두려워하거나 비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사탄이 우리를 그렇게 달려들고, 무슨 일이 당장 일어날 것 같지만 주님의 말씀처럼 믿음으로 기다리면 폭풍노도로 잠잠해진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항해자들이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