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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일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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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구 교수(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 

주께서 은혜를 주셔서 존재하게 되었고 현존하는 한국 교회 안에는 주께 감사할 일도 많이 있지만, 우리들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의 가장 근원이 되는 문제는 결국 개인적으로나 교회 전체적으로 성령님께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살아 나가는 일의 결여와 부족이라고 판단된다. 왜냐하면 모든 문제들은 결국 성령님을 바르게 따라가지 않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가지 않는 데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성령님께 의존하고 인도하심에 따라 가지 않는 문제를 지적하고, 성령님께 의존하며 그 인도하심을 받아 나가는 삶을 성경이 어떻게 말하는 지를 드러내어 한국 교회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1. 실질적으로 성령님을 따라가지 않는 문제점

어떤 이들은 성령님과 별 관계 없이 살아간다. 심히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또 어떤 이들은 성령님을 많이 언급하고 강조하고 또한 성령님께 의존하는 것을 많이 강조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성령님께 의존하지 않는 경우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모습은 다음과 같은 데서 현저하게 나타난다고 여겨진다.

(1) 비성경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일
실질적으로 성령님께 의존하지 않으면 결국 성경이 가르치는 내용을 무시하고 비성경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특히 가르치는 가르침이 성경의 가르침을 벗어나고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이 실질적으로 성령님께 의존해 가지 않는 것임을 강하게 지적할 수 있다. 이단들이 바로 이런 문제를 잘 드러내고 있다고 보여진다.

(2) 비인격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일
성경을 가르치고 성경의 가르침을 강조하나 그 관계성에서 비인격적인 모습이 드러나는 것도 결국 성령님께 온전히 의존하지 않고 있다는 전형적인 예가 될 것이다. 교회가 어떤 문제를 생각하고 결정하는 일에 있어서 비민주적인 태도, 독단적인 태도를 나타내 보이는 것, 또 바르고 옳은 결정에 대해서 이기적 판단에서 나온 불만을 나타내어 보이는 것들이 이런 비인격성을 드러내는 예가 될 것이다.

(3) 비도덕적 방향으로 나아가는 일
또한 교회의 지도자들이나 교회의 성원들이 비도덕적인 방향으로 나아 갈 때에도 우리는 그것이 성령님께 의존하지 않는 것이 된다는 것을 말할 수 있다. 교회 재정 상황의 불투명성이나 교회 재정의 오용, 바르지 못한 행정 관례와 같은 것이 이에 속하는 대표적인 문제가 된다.

(4) 신비주의적 방향으로 나아가는 일
이와 함께 성령님을 강조하면서도 실질적으로 성령님께 의존해 가지 않는 대표적인 예로 우리는 우리네 교회 안에 나타나고 있는 신비주의적 경향을 언급할 수 있다. 성령님을 많이 강조하되 성경의 가르침을 무시하거나 그것을 대치하려하거나 보충하려는 정향을 가진 운동들이 그런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신약 성경이 교회의 성령님을 의존해 가는 모습에 대해서 어떻게 제시하고 있는 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2. 성령을 좇아 행하는 일에 대한 권면

바울 서신에 의하면, 성령님에 대한 가르침을 받고 우리가 성령님 안에 성령님이 우리 안에 영원히 내주하신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 교회의 지체인 성도들에게 남은 한가지 과제는 이제 계속해서 “성령님으로 행하는 것”이다. 그것은 “성령을 좇아 행하는 일”이며(갈 5:16),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는 것”이다(갈 5:18). 그것은 “성령의 충만을 받는 것”(엡 5:18)과도 밀접한 관계를 지닌 것이다. 그것은 결국 성령님께 민감해서 그가 가르치시고 인도하시는 대로, 또한 성령님의 힘에 의존해서 따라가는 인격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 성령님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형상이 가장 잘 반영되도록 우리를 인격적으로 인도하시고 가르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님으로 행하며,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에 대한 시금석을 우선 다음 두 가지로 제시해 볼 수 있을 것이다.

(1) 성령님의 힘으로 내는 온전하고 구비된 그리스도적인 품성이 드러나는 삶이다. 즉,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가 잘 조화되어 나타나는 성령의 한 열매를 내는 삶이다(갈 5:22, 23). 그런 삶을 사는 이들에게서는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 숭배, 술수, 원수 맺는 것, 분쟁, 투기, 분냄, 당 짓는 것, 분리함, 이단, 시기, 술취함, 방탕함, 또 그와 같은 것들”이 나올 수 없는 것이다(갈 5:19-20). 하루아침에 다 되는 것은 아니라도 날마다 점진적으로 그리스도적인 품성이 온전히 드러나는 삶을 향해 참된 그리스도인은 성령님에 의존해서 나아가는 것이다.

또한 (2)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성령님을 좇는 이들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이 나라가 어떤 나라이며,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떤 상황 가운데 있는지에 유의하며 그 나라와 의를 위해 살아나간다. 특히 그 나라를 증시하는 교회의 사명을 유의하면서 교회가 참으로 교회답게 그 사명을 다해 나갈 수 있도록 “교회의 지체”[敎會我]로서의 모든 활동을 성령님의 능력 안에서 열심히 하여 나가는 것이다. 교회는 항상 성령님의 능력 안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르고 성령님께서 제공하는 힘 가운데서 전진할 때에라야만 유효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어떤 이가 과연 성령님 안에 살면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가는 지를 잘 드러내어 보여 주는 것이다. 아무리 성령님께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성령의 능력을 강조한다고 해도 이와 같이 온전한 성령적 인격성의 드러남과 하나님 나라 중심의 태도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성령님의 역사라고 할 수 없음을 우리는 주의해야 한다. 한국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이런 시금석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시금석을 가지고서 신중하게 판단한다면 우리는 이단의 가르침을 따라 갈 수 없을 것이고, 더 나아가서 우리 자신이 이단의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일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상당히 많은 이단 종파가 성령님을 강조하고 나오는 것은 이런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성령님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에 유의해서 우리가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3.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우리의 태도와 실천

이제 우리들은 성령님과 관련해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생을 살아가며, 우리에게 주어진 잃을 감당해야 하는가? 성령님과 관련된 성도들의 삶과 태도의 특성을 생각해 보자.

(1) 성도들은 성령님의 가르치심과 인도하심에 민감해야 한다. 이는 온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 전체를 깨닫게 하시고, 그 안에서 우리가 사는 이 역사에서의 우리의 역사적 사명을 의식하게 하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에게 의존하는 이들은 시대를 보며, 역사를 바로 인식하는 이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2) 이를 위해서 성도들과 교회는 성령님과 인격적 관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인격을 무시하시거나 우리의 인격을 넘어 서서 어떤 일을 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3) 성도와 교회는 성령께서 성경 말씀을 사용하셔서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을 귀기울여 들어야 한다. 그의 말씀을 사용하지 않고 별 다른 방도로 성령께서 자신의 뜻을 알리거나 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4) 그리고 결국 성도들과 교회는 자신들의 삶과 태도와 결정에서 가장 인격적인 모습이 나타나게끔 성령에 의존해 노력해 가야 한다.

4. 마치는 말

성령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일은 이처럼 신비한 일이기는 하지만, 결코 기괴한 일은 아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전체적으로 이렇게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나아가는 과정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늘 성령님께 민감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은 성경에 주신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 하나님의 경륜 전체를 발견하고, 그 경륜에 비추어 자신의 사상 전체를 세우는 과정이며, 그런 세계관과 성경적 사상에 비추어 자신의 구체적인 문제를 성령과 교제 가운데서 해결해 가는 삶의 과정인 것이다.

부디 우리들 가운데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나아가는 삶의 예들을 많이 드러내 주었으면 한다. 그런 구체적인 예들이 위에서 말한 어떤 진술보다도 더 강력하게 성령님의 인도하심의 실재를 말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전통적 개혁신학에서는 성령님에 대한 구체적인 가르침이 결여되어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가르침에 따라 사는 삶의 구체적인 실례들이 우리 주변에 적었던 것이다. 이것이 많은 이들을 방황하게 하고 이상하고 기괴한 성령론에로 나아가게 하였다면 가장 시급한 일은 이런 전통적 성령 이해에 충실한 신령한 자의 삶을 구체적으로 살아 나가는 일이라고 여겨진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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