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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포용하면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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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은성 교수(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역사신학) 

“포용은 돌아온다.” 미국에서 물건을 구입하면 언제든 ‘refund’가 (반품 또는 반환이) 된다. 어디든 물건을 구입하고 사용하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영수증을 첨부하여 가면 가게에서는 언제든 소비자에게 반환하거나 교환할 수 있다. 영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여러 이야기들이 있을 수 있지만 이런 사회는 소비자 중심의 사회임에는 틀림없다. 소비자가 구입했지만 언제든 마음이 바뀌거나 값이 갑자기 내려가면 언제든 바꿀 수 있기 때문에 물건을 일단 구입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지난 달, 어느 교수는 미국에서 후배의 부탁으로 디지털 카메라를 구입하여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오고와서 보니 본체는 없고 액세서리들만 잔뜩 있었다. 그래서 미국으로 전화를 걸어 아내에게 구입한 가게에 가서 사정을 이야기하라고 했단다. 그런데 미국에 있는 가게의 점원은 미안하다는 식으로 말하며 나머지 악세사리를 보지도 않고 소비자의 말만 듣고 그 제품을 새 것으로 주었단다.

나중에 교수가 미국에 들어올 때 갖다 주면 된다고 하였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을 듣고 황당했다. 물건도 보지 않고 소비자의 말만 듣고 새 제품을 주는 사고방식은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미국으로 가는 분으로 액세서리만 있는 제품을 곧 보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말만 듣고 믿을 수 있는 사회가 부럽다.

학교에서 가르치다보면, 학생들이 결석계를 가지고 교수에게 제시한다. 병원의 의사가 사인한 종이다. 아니면 학교의 일로 인해 결석하게 되면 학회장이나 학생회장의 명의로 된 결석계를 제출한다. 그래서 어떤 교수님은 그 종이를 되돌려 보내면서 하는 말이 “학생의 말만으로 믿을 수 있어요. 제가 학생의 말을 믿지 내가 종이의 내용을 믿겠느냐?” 학생은 당황했다는 것이다. 서류를 믿는 것보다 학생, 즉 당사자의 말을 더 믿는다는 것은 정말 귀한 일이다. 말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각종 서류들이 첨부되어야만 한다. 복잡한 인감증명서부터 시작하여 등본까지 첨부되어야만 이뤄지는 사회라면 매우 피곤할 것이다.

자녀와 부모와의 관계도 서로 신뢰로 이뤄져야만 한다. 자녀가 바라는 것은 부모의 신뢰감이다. 세상 모든 사람이 뭐라 해도 부모의 신뢰를 받는다면 그 자녀는 행복하다. 그렇지 못하면 불행하다. 꾸중을 하거나, 제대로 좋은 환경을 마련해 주지 않아도 서로 신뢰 속에 있으면 행복하다.

낳아주고 길러준 사람들로부터 신뢰감을 받지 못하는 자녀는 어디에서 신뢰감을 받거나 심어줄 수 있을까? 채벌을 가해도 부모의 사랑 속에서 이뤄지는 채벌은 가혹하지 않고 눈물로 받을 수 있는 고마움이다. 그래서 부모가 자녀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말이나 자녀가 부모로부터 들을 수 있는 최고의 말은 “I am proud of you” (네가 자랑스럽단다)이다. 이와 반대로 가장 실망적이고 절망적인 말은 “I am disappointed” (나는 정말 실망했단다)이다.

전자의 말은 신뢰를 주는 말이고, 후자의 말은 절망을 주는 말이다.

미국 영화들 중 ‘sister 2’ 라는 영화가 있다. 흑인 여배우가 라스베이거스의 쇼걸이었는데 악당의 범죄 장면의 목격자가 되었다. 그래서 검찰에서는 증인 보호를 위해 수녀원으로 그녀를 보냈다. 그러다가 수녀들과 친해지고 수녀원에서 수고하는 고등학교 음악선생님에 이르렀다. 문제를 많이 가지고 있는 학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면서 그들에게 삶의 의욕을 심어주었다. 그런데 학교의 재정난으로 인해 폐교의 순간에 학교를 살리기 위해 복음송 경연대회에 참석하게 된다. 그래서 학교의 위상을 올리고 폐교를 극복한다는 감동적인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한 흑인 여학생은 경연대회에 참석하고 싶지만 모친의 반대로 참석할 수 없었다. 몰래 모친을 속이고 참석한다. 그런데 마음이 부담스러워 노래를 하지 못한다. 관중석에 앉아있는 모친의 얼굴을 보고서 마음이 무겁기도 하고 죄책을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부드러워진 모친의 얼굴을 보고 힘을 내어 복음송을 힘차게 불러 영예의 1등을 하게 된다. 상을 받은 후 분장실을 찾은 모친과 딸이 주고받는 대화이다. 딸은 말한다. “다시는 어머니의 말씀에 불복종하지 않겠습니다. 어머님, 용서해 주세요. 죄송합니다.” 그러자 모친은 대답한다. “그만 말해라. 나는 정말 네가 자랑스럽단다.” 그리고 모녀는 서로 부둥켜 앉았다. 그리고 서로 울게 된다. 감동적인 순간이다.

타인을 포용하면, 용서하면, 언젠가 돌아온다. 주님은 우리를 정말 용서하신다. 무한정하게 용서한다. 그 용서를 우리는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용서에 인색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서로에게 신뢰감이 있음을 인식시켜줘야만 한다.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요구하지 말고 먼저 포용해야만 한다. 그러면 그 대상자는 다른 사람에게 포용을 나타낼 것이다. 포용을 전염시켜야 한다. 그러면 언젠가 우리 사회는 포용과 관용이 넘치는 사회가 될 것이고 신뢰가 회복되는 사회가 될 것이다. 먼 훗날을 바라보면서 포용해야만 한다. 현재의 난관에 직면하지 말고 내일을 바라보며 포용을 베풀자.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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