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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가슴이 뭉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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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은성 교수(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역사신학) 

우리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며 가슴을 뭉클거리게 하는 것들이 우리 주위에는 많이 있다. 가슴이 뭉클거리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면 새로운 의지와 용기가 일어난다. 용기가 솟아난다. 수십년 동안 헤어졌던 부모와 자식 간의 만남, 형제들의 만남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울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오래 전에 모든 국민들은 TV 앞에서 이산가족의 만남을 시청하였다. 그때 팔도강산은 눈물의 바다였다. 온 국민의 관심이 모두 이산가족 찾기에 있었다. 가슴이 뭉클거리다가, 콧등이 시큰거리다가,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참으려 해도 참을 수 없던 눈물이 마침내 흐른다. 참을 수 없는 눈물의 흐름을 우리는 경험했다.

방송국 앞에는 잃어버렸고 형제자매와 부모자식을 찾는 호소문, 사진, 또는 글들이 보인다. 골 깊고, 태양에 검게 탄 주름살 사이에 비쳐진 눈망울은 보는 이들과 상상하는 이들에게 감동적이다. 우리 민족은 타민족과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었고, 지금도 갖고 있고, 앞으로 풀어야 할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장애인으로 세계 정상에 오른 이들이 있다.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환경이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이를 악물고 참아내며 견디어 내어 마침내 정상에 오르는 장애인들이 있다. 많은 이들이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노력 자체가 우리에게 큰 감명을 안겨다 준다. 한없는 눈물, 흐르는 비지땀, 수없는 반복적 행동, 산을 옮길 만한 한숨을 쉬면서 넘어졌다 다시 일어나는 장애인들의 순간들...

두 팔이 없어도, 두 다리가 없어도, 두 눈으로 볼 수 없어도, 두 귀로 들을 수 없어도, 온 몸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아도 그들은 수십번, 수백번, 아니 수천번 반복하면서 현실을 견디고 이겨내기 위해 이를 악물고 다시금 일어난다. 정상인들이 1분이나 한번만에 할 수 있는 일들을 장애인들은 수천번 반복하여 마침내 실현해 나간다. 주위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눈물을 흘린다. 감동적이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수 있는 상황이지만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사람들이 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들이지만 묵묵히 현실을 받아들이며 역경을 이겨내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있다.

먹다 남은 캔들을, 먹다 남은 종이 박스들을 여기 저기 몇 시간이나 걸려서 모아 단돈 1,000원이라도 벌기 위해 굽어진 허리로 수레를 끄는 분들을 가끔 거리에서 만난다. 굽힌 허리를 펴지도 못한 채로 거리를 행보하는 분들을 본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짐을 싣고 나르는 노무자들을 본다. 장정이라도 하기 어려운 일들을 중년 부인들이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덮고 높은 건물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가족을 부양한다는 일념으로 소금으로 절인 옷을 마다하지 않고 눈물어린 차가운 도시락을 건물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먹고 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육신이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목에 두른 수건을 툭툭 무릎을 치면서 일어난다. 마디마다 굵어져가는 손가락과 손마디를 본다. 갈라지고 상하여가는 피부를 보면서도 다시금 일어나는 분들을 볼 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아들을 군에 보내는 부모들, 어린 나이에 자녀를 잃는 부모들도 슬픔을 겪는다. 이 슬픔은 땅에 묻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평생 묻어두게 된다. 기차가 지평선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저으며 눈물을 흘리는 부모들의 마음은 정말 찢어지는 듯하다. 보다 잘 해주지 못해서 슬프고, 보다 잘 먹이지 못해서 슬프고, 보다 사랑하지 못해서 미안하고 슬프다. 다시 볼 수 있을지도 모르는 헤어짐을 직면하면 누구든 눈물을 흘린다. 아무 말도 없다. 그저 상대방의 행동 하나하나를 본다. 울지 않으려고 하다가 상대방의 눈망울을 보게 되면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아놓고 만다. 흑흑 울면서 상대방을 껴안는다. 그리고 엉엉 운다. 한참 울고라도 속이 시원하기는커녕 슬픔을 참지 못한다.

성공하면 다시 돌아오겠다고 하며 집을 떠났다가 고향으로 되돌아온다. 어두운 밤에 집에 들어섰다. 완전히 닫히지 않은 문틈 사이로 자녀는 부모의 모습을 본다. 아니면 차창가로 보이는 부모의 일상생활을 보면서 눈물이 왈칵 터져 나온다. 손가락으로 눈물을 감추려고 하지만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다. 인자하게 평상시처럼 일에 몰두하는 모습이다.

때묻은 종이돈을 하나씩 세어서 손에 쥐어주던 부모님, 비가 오면 맞을까봐 걱정하며 정류장까지나 학교까지 억수같이 내리는 비속을 헤치며 찾아오신 부모님, 자녀의 자는 모습을 보며 힘든 모든 일을 잊어버리는 부모님, 남들에게 몸을 숙이면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여기저기 힘들게 다니면서 일하시는 부모님, 힘들다고 하며 일어났다가 곤하게 코를 골며 주무시는 부모님들의 모습은 자녀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교회당에 가면 새벽기도나 조용한 가운데 홀로 기도하시는 분들이 있다. 고요한 정막을 깨뜨리며 “주여!”하는 순간 고요한 공기의 파장을 일으킬 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오직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만나는 분들의 기도와 구슬픈 찬양은 듣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캄캄한 새벽길을 걸어 기도회에 참석했다가 아침 햇살을 받으며 교회당을 나설 때 맞이하는 기쁨의 눈물이 있다.

설교를 들으며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생각이 나면 우리의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미안하고 죄송하고 송구해서 머리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멀리 나간 자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잊을 수 없다. 탕자를 한결같이 기다리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잊을 수 없다. 말씀을 접할 때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볼 때 우리는 그 사랑을 잊을 수 없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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