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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역사적인 예장 90회 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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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규 박사 (대신대학교 한국교회사) 

지난 9월 한달동안은 한국의 장로교총회 계절이었다. 9월 초순부터 추석을 전후해 크고 작은 장로교단들의 총회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계속 이어졌다. 그 중에서도 27일부터 30일까지 대전중앙교회에서 열린 예장합동 90회 총회가 단연 돋보였다. 그동안 장로교 총회를 앞두고서 임원선거 때문에 금품살포 문제로부터 사전 선거운동 등으로 총회 분위기를 어지럽혀온 전례와는 전혀 다르게 약간은 큰 소리가 나올법한 변수가 많은 안건들이 산적해 있는데도 이상하리만큼 금년 총회만은 평온하게 개회되고 폐회하였으니 말이다.

한국장로교회는 제일 먼저 신학사상의 문제로 기독교장로회가 갈라져 나가고 신사참배 문제로 인해 예장고신측과의 분열이 일어났다. 이 44회 총회가 분열된 요인이 표면상으로는 경기노회 총대문제와 맞물려 W.C.C와 연관된 신학사상문제와 소위 3천만원 사건으로 알려진 박형룡 박사의 책임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분열의 회오리 속으로 말려들어 대한예수교장로회란 이름이 핵분열로 이어져 똑같은 이름의 장로회가 100개를 넘기게 된 것을 보면 아무리 부인하고 싶어도 장로교회 안의 헤게모니(Hegemoney) 쟁탈이란 귀신이 도사리고 앉아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당시 문공부 직원이 교단등록을 하러온 교회 지도자들을 향해 하는 말이 "무슨 놈의 장로교가 이렇게 많아요. 똑같은 이름이..."라는 말이었다. 이같은 불평 아닌 질타를 당한 교계 지도자들이 할말을 잃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예장00측'이라는 웃지못할 장로교회가 지금까지 150여 교단이나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1959년 9월 44회 총회가 분열총회로 오점을 남겼던 바로 그 '대전중앙교회'에서 예장합동총회에서 1979년 분리되어 나갔던 예장개혁측 총회(총회장 홍정이 목사)와 46년만에(통합측 총회가 아니어 유감이지만) 3,000교회와 갈라져 나갔던 교단과 아무 조건없이 현재의 신학교(광신대학교)와 교역자와 교회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합동감사예배로 이어져 눈물의 성찬식에 동참하는 역사적인 총회로 이어진 것이다.

여기 '역사적'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하나됨(요17장)의 역사를 이룩했다는 말이다. 깨어지고 갈라지기는 쉬워도 하나로 치유되고 고치기에는 어려운 것이 '분열'이라는 사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은혜가운데 그것도 양교단 지도자들의 열렬한 환영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교단내의 합동반대 세력들까지 잘 이해시키고 보다듬어 갈려지고 분열하기를 좋아한다는 오명을 한순간에 깨끗이 씻어버리고 화합과 일치의 정신으로 하나가 되는 모범을 보였다는 점에서 정말 교단임원들과 지도자들, 나아가서 전국에서 모인 총대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고 박수갈채를 보내고 싶다.

이후로는 진정 한국장로교회가 말로만 '하나님 중심', '성경중심', '교회중심'이라 할 것이 아니라 생활의 실천으로 '하나님 제일주의'의 칼빈주의적이고도 개혁주의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주력해야 하겠다. 그동안 겪은 시련과 고통이 교단발전의 밑거름이 될 줄 알지만 이같은 모범이 한국교회 전체에도 확산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빌어본다. 다음에는 통합측과 대신측과 합동정통측과 합동이 되는 역사도 상상해본다.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해 보이고 안될 것 같아도 성령께서 지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한국교회를 이끌어주신다는 믿음이 있다면 그것 또한 불가능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21세기'라는 새시대를 주셨으니 한국교회도 새시대에 걸맞는 새롭게 거듭난 교회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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