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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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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필곤 목사 (열린교회)

아침에 눈을 떠보니 이불 위가 질펀하게 젖어 있었다. 그렇게 정정했던 할머니의 총기는 봄날에 눈 녹듯 사라져 갔다. 할머니는 장손인 청정이를 무척 좋아했다. 8살 때 아버지 모내기하는 곳에 따라가서 물놀이를 하다 그만 깊은 방죽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청정이를 구한 것은 할머니였다. 어릴 때부터 늘 맛있는 것을 주었던 할머니를 청정이도 무척 좋아했다.

청정이 부모는 시골 생활을 정리하고 서울로 이사 와 논을 판 값으로 구멍가게를 차렸다. 할머니는 자신이 태어나 시집 와서 한 평생 살았던 정든 시골 생활을 계속하고 싶다고 반대를 하였다. "너희들 정 가고 싶으면 집하고 텃밭만 남겨 놓아, 나 여기서 죽을 때까지 너희들에게 신세지지 않고 살터이니까?" 그러나 청정이 부모는 할머니 홀로 살게 할 수 없으니 같이 가자고 했다. "어머니, 내가 서울에 가서 어머니 고생시키지 않고 잘 모실 테니 같이 가요" 할머니에게는 돌아갈 고향이 없어졌다.

낯선 타향에서 할머니는 왜소해져 갔다. 말수도 적어지고 나들이하는 곳도 없었다. 고모들과 작은 아버지가 서울에 살고 있었지만 홀로는 갈 수가 없었다. 하루 일과 중 중요한 것은 시골에서와 마찬가지로 새벽에 근처 교회에 가서 기도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교회 생활도 쉽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정들었던 시골 인심 풍요로운 교회와 영화 감상하듯이 다니는 도시 교회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남의 옷 입은 것처럼 도시 교회 생활은 할머니에게 맞지 않았다. 글자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도시 노인들과 어울리기도 쉽지 않았다.

할머니는 늘 홀로 방에서 지내었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홀로 무엇인가 말했다. 할머니는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죄스럽게 생각하여 텔레비전도 잘 보지 않았다.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들은 세상과 친해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아침 저녁이면 고향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치매 증상이 나타났다. 할머니가 치매에 걸리자 청정이 어머니가 가장 힘들어했다. 청정이 부모는 다행이 도시 생활에서 성공하였다. 대형 음식점을 내어 많은 돈을 벌었고 조그마한 빌딩도 한 채 샀다. 시골 사람들은 다 늘 기도하는 청정이 할머니 덕으로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교회에서 청정이 부모는 장로와 권사가 되었지만 할머니가 치매에 걸리자 할머니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신앙이 없는 사람과 별 차이가 없었다. 아무 곳에서나 오줌을 줄줄 흘리는 할머니는 짐이 될 뿐이었다. 할머니는 늘 방에 갇혀있었고 모두 빨리 죽기만 기다리는 것같았다.

두 작은 아버지도 큰 고모, 작은 고모도 할머니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학 교수를 하는 작은 아버지는 할머니를 모시고 싶어하는데 수험생을 둔 작은 어머니가 반대했다. 시험 보는데 지장이 된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선생님을 하는 작은 아버지는 처음부터 할머니를 싫어했다. 재산 상속을 해 주면서 작게 주었다는 이유에서이다. 명절 때만 되면 할머니 문제로 집안은 온통 전쟁터가 되었다. 모두다 할머니의 유산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일찍이 홀로 되어 많은 농사를 지으며 자식들을 가르쳤고 그 많은 논들을 팔아 자식들에게 나누어주었는데도 치매에 걸리자 자식들은 모두 외면을 하였다. 자신들이 보살피기 힘이 들면 돈을 모아 치매 병원에 보내어도 될 텐데 다들 돈에 인색했다.

명절에 모이면 다들 대형 교회에 다닌다고 서로 자기 교회를 자랑하였다. 서로가 지지 않기 위해 자신의 교회가 하는 일을 자랑하였다. 수를 신으로 삼고 명예와 출세, 성공을 자랑하는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었다. 청정이에게는 모든 자랑이 공허하게 들렸다. 회칠한 무덤처럼 보였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막 8:34)"라는 말씀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 20:28)"라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는데 가질 만큼 가진 사람들이 섬김보다는 누림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지방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청정이는 할머니를 자신이 모시겠다고 제안을 하였다. "학교 다니는 네가 어떻게..."라고 염려하는 사람도 있었고 "제 앞가림이나 잘하지, 공부도 못하는 것이..." 조롱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청정이는 "돌아가실 때까지 할머니는 제가 고향집을 다시 사서 모시겠습니다. 앞으로 할머니 문제로 다시는 싸우지 마십시오."라고 말했다. 그가 다니는 학교가 고향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기저귀를 채워주고 목욕을 시켜드리는 일이 가면 갈수록 어려워졌다. 무엇보다 학교에 갈 때가 더 큰 문제였다. 어머니처럼 열쇠를 채우고 가두어 놓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고향에 돌아온 할머니는 빨리 변화가 되기 시작했다. 그는 할머니에게 희망을 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이 주신 마지막 축복이자 가장 중요한 축복은 바로 희망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할머니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예전의 교회에 모셔갔고 시간만 나면 큰 소리로 성경을 읽어 주었다. 복지를 전공하는 청정이는 학교에 갈 때는 휠체어로 모시고 같이 강의실에 갔다. 손자와 함께 교육을 받는 할머니의 모습을 교수와 친구들은 따뜻하게 배려해 주었다. 할머니에게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동네 사람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청정이가 할머니를 교회에 모셔 놓고 밖에 나와 있는데 시골예배당에서 찬송소리가 들렸다. 할머니의 찬송소리였다. 악보 없는 찬송가를 보고 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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