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칼럼 바보제와 ‘왕의 남자’

첨부 1


- 추태화 (안양대 기독교문화학과 교수)

유럽은 지금 사육제 기간이다. 주 현현절(1월6일) 다음날 시작되는 사육제는 고난절 첫날인 성회 수요일의 전날까지 계속된다.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고난절에 앞서서 먹고 마시면서 육정으로부터 멀어지는 고난을 준비하는 시간이 사육제다. 이 기간의 절정을 이루는 것이 바보제(祭)이다. 온갖 바보스런 분장과 행동으로 사람들을 웃기는 어릿광대들은 유럽 문화사에서 고유의 역할을 해왔다.

광대의 특권은 대단했다. 왕과 군주는 대부분 자신들을 직·간접으로 비판,직언할 수 있는 특권을 지닌 어릿광대들을 갖고 있었다. 권력을 지닌 자는 그 누구도 광대놀이에서 폭로되어 나오는 간언에 불평하거나 복수해서는 안되었다. 왕조차도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것은 불문율이었다. 유럽 정치사에서 사육제와 광대놀이는 시민의식과 사회비평이 놀이의 이름으로 어우러진 한판의 난장이었다. 헛웃음속에 고도의 패러디와 아이러니를 감추고 정치적 오류에 맞서는 민중의 언어이며 예술이었던 것이다. 군주들은 축제의 한 장으로 공연되는 광대놀이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청종하고 수용해야 했다. 유럽 정치사를 발전시킨 요소 중 하나가 사육제의 광대놀이라는 주장은 그래서 설득력을 얻는다.

최근 상영되어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는 ‘왕의 남자’. 이 한 편의 영화를 둘러싸고 정계에서 벌이는 설왕설래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다. 연산군은 정치권력을,장생과 공길은 광대로서 진리를 향한 몸부림을 연출한다. 광대들은 비록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연기했지만 그들의 사회적 기능은 정말 훌륭했다. 왕의 남자에서는 권력과 예술의 태생적 갈등,왕과 광대의 대리인적인 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문제는 이를 관람한 정치인들이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연산군이 누구같다’ ‘신하들은 누구같다’는 등 서로의 흠잡기에 혈안이 되어 영화를 정치적으로 악용하기에 이르렀다.

예술에는 적어도 심미안을 적용해야 한다. 광대놀이는 유럽 문화사에서나 한국사에서나 아래로부터의 커뮤니케이션을 감당했다. 그런데 근시안적 정치인들은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할 바보제에서 서로를 저격하기 위한 무기만을 발견하려 하니 이 어찌 안타깝지 않으랴. 그런 이들에게 왕의 남자와 같은 영화 열 편,아니 백 편을 갖다 바친들 민심의 진의(眞意)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왕의 남자를 둘러싸고 벌이는 유치한 물총 싸움,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 출처 : 국민일보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