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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황포강가의 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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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의환 총장(칼빈대학교)

1979년 1월에 중국이 미국과 국교를 재개한 직후의 일이다. 나는 중국 방문단의 일원으로 상해를 방문할 기회가 주어져서 상해의 야경을 구경하러 나섰다.

나는 택시 운전사에게 밤의 구경거리를 물었다. 택시 운전사는 나를 황포강가로 안내해 주고서 앞으로 몇 년 후에는 볼 수 없을 구경거리라고 귀뜸하여 주었다. 나는 그 곳에서 정말로 희귀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밤이 깊어가고 있는 황포강가가 아베크족들로 붐볐다. 젊은 쌍쌍들이 강쪽을 바라보면서 수백미터의 긴 줄을 이루고 있었다. 내가 놀란 것은 그 행렬 같은 긴 줄이 아니라, 애인끼리 조금씩 떨어져서 앉아있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그 누구 하나 서로 기대거나 손을 잡고 있지 않았다.

더욱 놀란 것은, 그런 모습이 하도 진귀해서 뒷모습이라도 찍으려고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렸을 때였다. 누구 하나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우리와는 전혀 다른 연애 모습, 그것은 나에게 충격이었다. 남자는 28세까지 결혼할 자유도 없는 그 곳, 애인이 있다 해도 사랑의 표시가 터부시된 그 곳,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이 부정되고 있는 공산 사회의 극적인 단면성이 가슴에 저며왔다.

그 뒤로 상해를 방문할 때마다 황포강을 찾아갔다. 그 운전사의 말대로 다시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근대화의 바람이 황포강의 야경을 바꿔 놓은 것이다. 요즈음의 상해 연인들은 서로 손잡고 웃으며 길을 걷는 자유를 누린다. 거리가 얼마나 밝아 보이는지.

철인 사르트르는 “인간은 자유 그 자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동물이 공기를 호흡해야 살 수 있는 것처럼 사람은 자유를 호흡할 때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그 자유도 자신을 위해 남용하면 방종이 된다. 외부적인 자유는 내면적인 자유의 다스림을 받을 때만이 가치가 있다. 그러기에 시인 보카치오는 “내면적인 자유가 없는 외부적인 자유는 무가치한 것이다”라고 신곡을 강의하면서 외쳤다.

그 내면적인 자유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아들여 죄에서 해방된 영혼의 자유에서 온다. 그 자유를 향유하는 자는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않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섬기는 삶(갈5:13)을 누린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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