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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세 줄의 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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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성주 (㈜이롬 회장)

혁신의 최대 적은 ‘자기와의 타협’이다. 이자크 펄만은 소아마비를 극복한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이다. 그는 자신에 대해 과감하게 창조적 파괴를 단행한 혁신적인 인물이다.

그는 1945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이발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4세 때 소아마비로 왼쪽 다리를 못쓰게 된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10세에 첫 대중연주를 했으며 13세에 미국으로 이주하여 줄리어드 음대의 문을 두드렸다. 그는 19세에 레빈트릿 콩쿠르에서 우승,명성이 절정에 달했는데 이는 보잘 것 없는 외모에 장애인이라는 약점을 딛고 일어선 것이기에 더욱 의미있는 일이었다. 그는 1990년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와 ‘투게더’라는 앙상블로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다. 현란한 기교로 세계에서 가장 탁월한 바이올리니스트로 평가 받고 있다. 그가 위대한 점은 신체장애인으로 얻는 프리미엄을 단연코 거절했다는 데 있다. 그는 “사람들은 누구나 내 연주만을 갖고 평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두 번의 부자유를 겪는 것이지요”라고 말했다.

몇년 전 뉴욕 링컨센터 애버리 피셔홀에서 있었던 초청 연주회 때 일이다. 드디어 오케스트라가 자리를 잡고 양쪽 다리에 보조장치를 한 이자크 펄만이 도착했다. 그는 두 개의 목발에 의존해 중앙무대로 등장한 뒤 보조장치를 풀고 몸의 균형을 유지했다. 그런데 연주가 시작되고 얼마 안되어 마치 총소리처럼 ‘탕’하고 바이올린 줄 하나가 끊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 순간 예측을 뛰어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가 바이올린을 바꾸거나 줄을 갈아끼우지 않고 계속 연주한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그는 세 줄로 연주를 계속했다. 이제껏 들어본 적이 없는 뜨거운 열정과 파워로 그는 청중을 사로잡았다. 지금까지 연주한 적이 없는 새로운 곡을 연주한 것이다. 세 줄로 교향곡 연주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던 그는 매순간 편곡을 하고 재작곡을 해서 전에 들어보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음을 창조해갔다. 경이에 찬 침묵이 끝나자 모든 청중은 일제히 일어나 열광적인 박수를 보냈다. 그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채 땀을 닦으며 침착한 목소리로 “때로는 자신에게 남아 있는 것을 갖고 아름다운 작품을 창조하는 것이 바로 예술가가 하는 일”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꿈꾸는 자여,자신에게 없는 것을 탓하지 말라. 자신에게 남아 있는 것을 가지고 한 차원 높은 삶을 창조하는 것이 진정한 프로다.

- 출처 : 순복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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