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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축제의 봄날이 아주 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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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태화 (안양대 기독교문화학과 교수)

부활주일은 춘분 뒤 보름을 지난 주일에 지켜진다. 그래서 4월 중순에 부활절을 맞는 경우 시기적으로 봄이 확실한 데도 불구하고 겨울 추위가 조금 남아 있다. 때론 눈발이 휘날려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한다. 그러나 부활주일이 지나면 완연한 봄이다. 꽃들은 만발하고 대지는 생명의 잔치를 벌이느라 여념이 없다. 북풍한설로 어깨를 웅크리게 했던 시절,대지를 꽁꽁 얼어붙게 하고 그로 인해 쓸쓸하게 만들었던 마음의 그늘마저 일곱길로 사라진다. 부활의 봄날이 온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아직도 걸치고 있는 두꺼운 외투를 벗어버려야 한다. 외부의 냉기도,온기도 제대로 피부에 와닿지 못하게 하는 갑갑한 갑옷을 벗어던져야 한다. 그 외투 속에 목을 움츠리고 빼꼼한 눈으로 외부 세계를 바라보던 우리의 가엾은 페르조나를 벗겨내야 한다. 내복과 겉옷,외투에 꽁꽁 싸여있던 내면의 속살을 드러내야 한다. 우리의 속사람 안에서 스멀스멀 자라고 있었을 박테리아나 진드기 같은 것들을 아예 햇볕의 시퍼런 날끝에 멸균소독 해야 한다. 집안 대청소하듯 심령의 대청소 또한 필수가 아닐까.

그동안 우리는 자연과 동떨어져 살아왔다. 바람과 추위를 피하느라 인위적 공간을 만들었다. 두꺼운 옷을 걸치고 난방기를 가동해 점점 자연성을 상실했던 것이다. 호흡기 질환과 아토피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버렸다. 게다가 우리는 현재 가상의 세계에 살고 있다. 인위적 가치와 기준으로 세워진 신도시 '시뮬라시옹'의 공간에 주민으로 입주한 것이다. 유감스럽게 정신적으로,영적으로 다른 세계에 거하는 사람처럼 변해가고 있다. 그런 연유로 죄와 구원을 선포해도 감각이 무디며 부활을 전하여도 말귀가 어둡다.

이 시간에도 만물의 피곤함은 고난과 상처,한숨과 탄식이 되어 끊이지 않고 들려온다. 그래서 가상의 세계,시뮬라시옹의 공간을 만들어 그 속에 안식하려 하지만 그곳도 생명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매트릭스'의 신화가 그 이야기를 잘 전해주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가상의 세계에서 허덕이는 백성들에게 진실이 무엇인지 선포하신다. 존재는 시뮬라시옹으로 해결될 수 없는 것이다. 봄날이 아주 가버리기 전에 염두에 둘 일이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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