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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칼빈주의자의 마음은 밖으로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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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성구 (한국칼빈주의연구원 원장, 대신대학교 총장)

나는 ‘칼빈’ 또는 ‘칼빈주의’란 말을 가장 즐겨 쓴다. 그 이유는 칼빈주의적인 신학과 신앙이 나의 사상의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칼빈주의는 나의 신학의 근거며 확신이다. 나는 칼빈주의에서 평안을 찾고 기쁨을 찾았다. 왜냐하면 칼빈주의 사상 체계만이 인간과 세계와 우주와 종교에 대한 바른 해답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칼빈주의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기초로 한 사상이기 때문이며 성경이 참된 것이기에 성경을 사상체계로 한 칼빈주의적인 사상도 참된 것이다.

필자가 칼빈주의 사상을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1964년부터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장로교회의 사상체계는 칼빈주의인데도 불구하고, 교회는 이에 대한 연구나 이해가 전무하다. 물론 우리가 스스로 칼빈주의자라고 함으로써 칼빈주의자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 땅에 신학과 신앙의 성숙을 위해서도 칼빈주의 신학과 신앙의 정립은 이뤄져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나같은 사람의 글을 읽으면 지나치게 옹졸하고, 지나치게 편협한 보수주의자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또 어떤 분은 평하기를 오늘날 우리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정황에 너무나 둔감하다고도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 시대의 사상에 지나치게 집착해서 자기의 변화를 시도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낙인찍힐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필자가 깨달은 칼빈주의 사상은 편협하지도 않고 상황에 둔감한 것도 아니며 한 시대에 머물러 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필자가 말하려는 칼빈주의는 하나의 교리적인 서술만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 전체에 영향을 주는 우주적 사상체계요, 삶의 체계로서의 칼빈주의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칼빈주의는 성경의 사상체계요, 성경적 인생관이요, 성경적 세계관이다.

또한, 우리가 칼빈주의를 힘있게 따르는 이유는 칼빈주의가 성경에 가장 충실하게 따르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칼빈주의는 신학적인 사색이라기보다 성경의 사상체계이다. 즉 칼빈주의는 천지와 우주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전제로 하는 우주적 사상체계이다. 그런 뜻에서 보면 우리는 칼빈주의를 신앙하는 것이 아니고 칼빈주의에서 깨달은 성경의 참된 진리를 믿고, 성경에서 가르치는 창조주 하나님과 구속주 되신 그리스도만이 참된 구주임을 믿고 따르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생각해 볼 것은 칼빈주의는 하나님과 인간 자신과 세계를 바로 알게 하는 하나님 중심의 사상체계란 점이다. 세상에는 많은 사상체계가 있다. 가령 유물주의 사상체계나 공산주의 사상체계는 물질이 그 사상의 출발이고 과정이며 결론일 것이다. 그러나 칼빈주의는 하나님이 그 사상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로마서 11장 36절에 있는 그대로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인 것이다.

결국 세상의 모든 만물은 하나님으로 시작되고 하나님으로 말미암고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는 성경의 사상이다. 그러기에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께만 영광과 감사와 존귀를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하나님 사상의 신앙은 인본주의 사상이나 유물주의 사상과는 근본부터 다른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 중심한 사상체계를 가질 때만이 역사와 인생을 바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죄로 어두워졌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서기 전에는 자신을 알 수도 없고 자기의 죄악을 깨달을 수도 없다. 그래서 하나님 중심사상의 체계를 가져야 진리를 바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인본주의나 합리주의나 유물주의 사상체계에서 나온 신학이나 예술이나, 철학이나 문화는 하나님 중심의 사상체계인 칼빈주의적 신학과 칼빈주의적 철학과 칼빈주의적 문화나 예술과는 그 본질에 있어서 하늘과 땅 같은 차이가 있다.

그래서 칼빈주의는 사람을 냉냉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인생과 세계를 바로 알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속을 바로 알아 가슴을 뜨겁게 한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을 향하여 살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의 말처럼 칼빈주의가 매우 편협하고 고집스럽고 독단적인 속이 좋은 사람들의 입장이란 비판은 잘못된 선입관 때문이다. 칼빈주의자들의 마음은 항상 밖으로 크게 열려져 있다.

그 이유는 그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며 땅 위에 어디에도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지 아니한 곳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즉 칼빈주의는 신학뿐만 아니고 도덕적 영역, 진리, 과학, 예술,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께서 주권을 갖고 계심을 믿는다.

일찍이 화란의 칼빈주의 신학자인 아브라함 카이퍼가 말한대로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곳은 한 곳도 없기에 나는 거기서 무관하다고 변명할 수 없다.” 하나님은 어떤 영역에서든지 주인이시므로 이 세상은 일해야 될 장소며 정복해야 할 장소인 것이다. 칼빈주의에서 또 하나 생각해 볼 것은 인간의 사상이나 구체적인 삶을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살아가게 하는 원리이다. 하나님 중심의 사상은 결국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한점 부끄럼없이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실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만이 자기의 죄와 자기의 모습을 바로 알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교회도 하나님 앞에 설 때 바른 양심을 갖게 되고 겸손하게 되며 바른 사회와 바른 문화를 갖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 없는 문화나 사회는 부패한 문화와 부패한 사회가 될 수 밖에 없으며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바로 알지 못하는 종교운동도 결국 부패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영광과 경배를 받을 분이며 인간은 그에게 존귀와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그리고 칼빈주의는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기 때문에 이원론적인 사상을 거부한다. 골로새서 2장 10절의 말씀처럼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고 했다. 우리가 어떤 곳에서 무엇을 하든지 그 장소의 참된 주인은 하나님이시오 그리스도란 말이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진실한 성도라면 우리가 일하는 일터에서도 하나님의 면전에서 살 줄 알아야 진정한 크리스천이다. 신앙생활은 내 삶의 일부를 바치는 것이 아니고 사실은 전부를 바치는 것이다.

끝으로 하나 더 생각해 볼 것은 칼빈주의는 인간의 전통이나 경험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원리이다. 사실상 모든 신학의 갈림길은 성경을 어떻게 보느냐에서 달라진다. 그래서 새로운 신학운동이 일어날 때는 언제나 성경관에서 문제제기를 한다. 가령 요사이 일어난 정치신학, 해방신학, 민중신학 등은 그들의 신학의 입장을 보면 성경은 상대화시켜 버리고 상황을 절대화시켜 버린 사상운동이다.

결국 생명없는 운동은 아무래도 오래 갈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이 자기 힘으로 자기를 깨달을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려는 것이 칼빈주의 사상이요 성경의 사상이다.

따라서 성경을 근거하지 않는 인간의 자율주의 사상은 결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위에서 필자는 평소에 늘 생각하는 칼빈주의 사상의 일단을 말했을 뿐이다. 필자가 언제나 하나님께 기도하고 바라는 것은 이제 한국교회가 정말 칼빈주의 사상을 바로 깨닫고 모든 영역에서 우리 성도들은 소명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을 높이 세워야 하겠다는 것이다. 이단들이 많고 교계에 사상적인 혼돈이 아무리 심해도 성경이 가라는 곳까지 가고 멈추라는 곳에서 멈추는 성경중심의 기독교 그리고 하나님 영광을 중심한 교회와 그 사상은 주님 오시는 날에 들림받을 것이다. 일찍이 아브라함 카이퍼가 ‘나는 칼빈주의에서 평안을 찾았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필자도 이 사상을 깨닫고 평안과 확신을 얻었기에 두어마디 적어 본 것이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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