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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생활 속으로 파고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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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태화 교수(안양대 기독교문화학)

기독교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온지 어언 십수년이 지난 듯하다. 그 말은 1990년대부터 우리의 귓가를 맴돌더니 얼마 전 통계에 전체 기독교인 수가 14만명 정도 감소했다고 보도되었다. 여기에 어떤 이들은 한국 기독교의 위기설을 말하면서 목회자들에게 책임 있다는 목회자론,제도화된 교회에 문제가 있다는 교회론 등의 원인을 내놓으면서 뼈아픈 자기반성을 촉구했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훌륭하게 작동했던 기독교 리더십은 어디 갔는가.

이런 가운데 2007년을 다시 부흥의 해로 삼아야 한다는 소명이 우리를 위로하고 힘을 준다. 한국 기독교의 회개와 성령 운동을 통한 부흥으로 1907년을 원년으로 지목한 것은 역사적 당위성이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비전을 위한 우리의 자세이다. 지금 교파를 초월해 여러 연합 부흥운동이 불씨를 지피고 있다. 온 크리스천이 개교회주의를 넘어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야 할 것이다.

몇 가지 나누고 싶은 생각이 있다. 그 운동이 또다시 구호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동안 전도가 너무 개념화되었다고 반성해본다. 전도 자체가 목적이 될 때 영혼은 안 보이고 전도 방법과 기술이 우선시되기 십상이다. 전도는 사람의 심장으로 다가가는 행위이며 영혼을 감싸안는 일에서 시작된다.

또한 전도를 통해 우리 이웃이 처해 있는 삶의 상황을 이해하고 구체적인 영적 갈증을 해결해주어야 한다. ‘와보라’는 말은 단지 우리편을 만들자는 이기주의적 발언이 아니다. 복잡다단한 현대사회 속에서 방황하는 이웃들에게 실제적인 해법을 제시해주어야 한다. 복음의 능력을 만나게 해야 한다. 구원을 단지 추상화하려 했던 지난 세월의 폐해를 우리는 체험했다. 그리하여 교회는 삶의 공동체,문화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기독교인 안에 은연 중에 배어 있는 선민사상은 없는지 반성해야 할 것이다. 이 무의식적이며 배타적인 고자세가 전도를 막는다. 부흥은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시작된다. 비신자들에게 선한 이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가 되어야 한다. 부흥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의 실천에서 비롯된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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