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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통령이 되게 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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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충영 박사 (경북대학교 명예교수, 현 대구도시가스 사장)

지미 카터는 미국 39대 대통령으로서 인권과 중재역에 대한 공로로 2002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지만 성공적인 대통령으로 평가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 임기가 끝난 후 그는 크게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의 대통령직은 그가 더 큰 일을 하기 위한 일시적인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간 그는 사람들에게서 완전히 잊혀지는듯 했습니다. 그러나 공직생활 후의 그의 삶은 더 아름다웠고 그는 만인으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으로 조명되기 시작했습니다. 소외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국제적인 봉사활동에 나선 새로운 삶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퇴임 후 84년 뉴욕에서 열린 해비타트(사랑의 집짓기운동) 노동수련캠프를 인솔하면서 실제 노동자들과 함께 일하며 간소한 잠자리에서 노동자와 함께 숙식한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이 덕분에 해비타트운동이 널리 알려졌고 기금을 모으거나 자원봉사자를 확보하거나 택지와 건축자재들을 기탁받는 일이 쉬워졌습니다. 지금도 지미 카터는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미 카터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미국 대통령에 당선시킨 것은 대통령을 잘하라는 뜻이 아니라 대통령직을 마친 다음 시키고 싶은 일이 있어 그리하신 것으로 믿습니다.”

카터는 땅콩 재배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무료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해군 사관학교를 다녔으며 출중하지도 않은 장교생활을 하다 부친이 별세하자 땅콩농사를 이어 받았습니다. 이 젊은이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리라는 것을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만, 그는 열심있는 교회학교 교사였고 신앙으로 충만해 있었습니다.

닉슨의 사임으로 워싱턴 정가가 큰 소용돌이에 빠졌을 때 지미 카터는 뜻밖에도 대통령 출마를 선언하고 대통령이 되었지만 내세울 것이 없는 이 선량한 땅콩 농부의 백악관 생활은 실패와 시련의 연속이었습니다. 에너지 위기가 다시 닥쳐왔고 이란 사태를 해결하려는 그의 노력은 철저하게 실패하였습니다.

해비타트에 참여하여 일주일 동안 집짓기에 참여한 후 그는 말했습니다. “희생이 아닙니다. 저는 지금까지 열심히 일해 왔고, 목수 일도 처음 해 보는게 아닙니다. 저는 일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면서 동시에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입니다.”

건축현장에서 만난 카터는 확실히 남다른 모습을 보였습니다. 섭씨 40도가 넘는 무더위 속에서 카터는 다른 자원봉사자들보다 하루 일찍 도착해 현장을 일일이 돌아보았고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현장 책임자와 함께 짓고 있는 집들의 진행 상황을 하나하나 점검했습니다.

일주일 내내 75세의 노구를 이끌고 벽돌을 쌓고 창문을 달고 페인트를 칠하는 전직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는 ‘자원봉사자’라는 칭호 외에는 달리 불리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일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식사하고 이야기하고 땀흘리는 그는 바로 ‘예수 중심의 삶’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일 뿐입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사 43:19]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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