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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백절불굴의 신앙 (단 3:13~1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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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절불굴의 신앙
다니엘서 3장 13~18절, 28절

  오늘 본문에 보면 신앙의 최고봉에 우뚝 서있는 세 젊은이들을 볼 수 있는데, 그들이 바로 다니엘의 세 친구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입니다. 이들은 참으로 위대한 신앙의 용사들입니다.

  1.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신앙

  바벨론 나라의 느브갓네살 왕이 전에 꿈으로 본 큰 금 신상 때문인지 아니면 종교를 표방해서 자기의 권력을 유지할 계책으로 그랬는지 모르지만 큰 금 신상을 만들어 놓고 각양 악기를 불어댈 때 모든 백성이 그 우상 앞에 절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 명령을 어기면 누구를 막론하고 극렬히 타는 풀무불에 집어넣어서 태워 죽이겠다고 엄명을 내렸습니다.
  이 때에 유대나라에서 포로로 잡혀와 살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신앙이 독실한 사람들이라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 앞에 절하지 말라”고 하는 지엄한 계명을 범할 수가 없기 때문에 엎드려 절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왕의 총애를 받는 것을 시기하던 무리들이 왕에게 고해바쳤습니다. 느브갓네살 왕은 심히 노하고 분했지만 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 세 청년을 불러다가 타일렀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니 짐짓 그리하였느냐 이제라도…내가 만든 신상앞에 엎드리어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손에서 건져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하고 협박과 회유로 권면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세 청년은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라고 담대히 대답했습니다. 이 대답에서 그 세 청년은 ①“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생각해 보고 말고 할 것도 없다는 단호한 신앙을 볼수 있고 ②“풀무불에 던져 넣을지라도 건져 내시리이다”하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확고히 믿는 신앙을 볼 수 있고 ③“그리 아니하실지라도”하는 말에서 풀무불에 던지워져 죽는다할지라도 죄와 타협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신앙을 볼 수 있습니다. 무조건의 신앙이요, 백절불굴의 신앙입니다. 생명을 버릴지라도 우상숭배는 하지 않겠다는 용감한 신앙입니다. 이것이 참 신앙입니다.
  화가 난 왕은 평상시 보다 풀무불을 칠배나 더 뜨겁게 한 다음 세 청년의 손을 묶어서 불에 던졌는데 얼마나 뜨거웠던지 불에 던지던 사람들은 타 죽었는데, 이 세 청년들은 털끝하나 타지 않은 채 불속에서 빙글빙글 돌아다녔습니다. 이상한 것은 “인자 같은 이”가 함께 걸어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구약시대에도 예수님은 천사와 같은 몸으로 위급할 때에 나타나시곤 했습니다.
  결박한 끈은 타버렸어도 이 세 청년은 털끝 하나 타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불같은 환란과 시험을 당할 때에도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결박하는 죄의 세력과 마귀의 결박은 타버려도 결코 우리를 해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이 광경을 본 왕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하니까 세 청년은 다시 나왔는데 털끝하나 상하지 않고 탄 냄새도 나지 않았습니다. “불이 능히 그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고의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탄 냄새도 없었더라” 풀무불 보다 더 뜨거운 신앙이 풀무불의 시험을 이긴 것입니다.
  이들은 “죽으면 죽으리라”는 일사각오의 신앙, 백절불굴의 신앙으로 신앙의 절개를 지켰더니 하나님께서 그 극렬한 불도 그들을 태우지 못하게 지켜주신 것입니다. 이들의 신앙고백에서 절정을 이루는 말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하는 말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런 풀무불에서도 능히 건지실 줄 믿지만은 만약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상숭배의 죄는 지을 수가 없다는 신앙입니다.
  얼마나 훌륭한 신앙입니까? 이것이 최고의 신앙입니다. 열심히 믿는 것 같다가도 자기 생각대로 안된다든지 고난과 시험이 계속 될 때에 “하나님이 계시면 내가 왜 이런 고통을 당하는가”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뒤로 물러서면 조건부 신앙이며 이기적인 신앙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기적도 능력도 나타내시지 않습니다.
  로마서 14장 7-8절에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말씀했습니다. 로마서 8장 35절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하는 신앙이 참 신앙입니다.
  몸이 탈지라도 그 영혼이 주님과 함께 낙원에 거할 것을 알기 때문에 어차피 육신은 조만간 죽어 흙이 될 것이고 마지막 날 신령한 몸으로 부활할 것을 믿는 성도들은 이런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큰 그릇으로 쓰임 받을 사람이나 큰 복을 받을 사람은 남다른 시련과 환란을 당하는 법입니다. “왕이여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우상 앞에 절할 수 없습니다“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2.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이 세 청년과 같은 훌륭한 신앙을 욥에게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욥기 13장 15절의 난 아래 주를 보면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신뢰하리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영어 성경은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로 되어 있습니다. “Though he slay me, yet will I hope (trust) in him"라고 되어있습니다.
  욥기 1장 1절에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정직하고 믿음이 좋은 이 욥에게 큰 복을 주어 큰 부자가 되게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탄이 하나님께 참소하기를 “욥이 하나님을 잘 믿는 것은 복을 많이 주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에게서 모든 복을 거두어 가시고 큰 고통을 주어 보십시요 분명히 하나님을 원망하고 돌아 설 것입니다”라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기를 “그의 생명만은 건드리지 말고 그를 시험해 볼테면 해봐라”하니까 하나님의 허락받은 사탄은 욥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욥의 자녀들이 맏형의 집에서 음식을 먹는 중에 종 하나가 헐레벌떡 뛰어와서 보고하기를 “스바 사람들이 갑자기 달려들어서 소와 나귀들을 다 빼앗아 가고 종들을 다 죽였는데 나홀로 살아왔나이다”하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또 한 종이 뛰어 들어와 보고하기를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 많은 양들과 종들을 태워버렸나이다”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 한 종이 달려 들어오더니 “갈대아 사람들이 세 떼로 달려들어 약대들을 다 빼앗아 가고 종들을 다 죽였는데 나 홀로 살아 왔나이다”하고 보고하자마자 또 한 종이 뛰어 오더니 “대풍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맏형의 집에서 음식을 먹던 10남매가 다 깔려 죽었습니다”하고 보고 했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힌 재난입니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하나님 믿어봐야 소용없구나 하나님이 계시다면 내게 이런 고통이 오겠느냐?”했을 터인데, 욥의 말을 들어 보십시오. 욥기 1장 20-22절에 “그가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하면서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재난과 고통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고 배반하지도 않고 도리어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취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을 찬송할 것 밖에 더 있겠느냐고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이 때에 하나님이 사탄을 불러 이르시기를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오히려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켰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사탄이 “하나님이 물질만 치고 자식들만 치니까 그렇지요. 그의 뼈와 살을 쳐 보십시오. 분명히 하나님을 욕할 것입니다”하고 참소하니까 이번에도 하나님이 허락하시기를 “생명만은 건드리지 말고 욥을 쳐 볼테면 쳐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욥이 하나님을 신뢰한 만큼 하나님도 욥을 신뢰하니까 시험 당함을 허락했습니다.
  사탄이 욥을 치니까 온 몸에 악창이 나서 피고름이 줄줄 흐르고, 구더기들이 버글버글해서 기왓장으로 몸을 긁으니까 피가 더 나고, 따갑고 쓰렸습니다. 욥의 얼굴은 형체를 알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그의 아내도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하고 친구들이 와서 위로 해 주지는 않고 무슨 죄를 많이 지었기에 그렇게 되었느냐고 비난을 퍼붓습니다. 변명할 수도 없으니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그러나 욥은 끝까지 하나님을 욕하거나 원망하거나 배반치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 극심한 고통 중에도 말하기를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신뢰하겠노라(혹은 그에게 소망을 두겠노라)”(Though He slay me, yet will I hope in Him)고 했습니다.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내 믿음이 변치 않으리라고 하는 놀라운 신앙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하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와 같은 신앙입니다. 욥의 신앙은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는 조건적인 신앙도 아니고, 무슨 일이 잘 될 때에만 믿음생활 하다가 무슨 일이 제 생각대로 안될 때는 삐치고 토라지는 그런 신앙도 아닙니다. 결국 사탄이 패배하고 도망갔고 욥에게 하나님은 전보다 갑절이나 축복을 주셨습니다. 에베소서 6장 24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자들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하고 복을 빌었습니다.

  3. “해로울지라도”(시편 15편 4절)

  시편 15편에 주의 장막에 거할 수 있는 사람과 주의 성산에 거할 수 있는 사람의 자격을 말씀하고 있는데, 즉 하나님이 늘 함께 하시고 지켜주시고 하나님과 가까이 지내는 사람의 자격을 말하는 가운데 시편 15편 4절에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 지킨다는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과 약속하고 서원한 것은 무슨 손해가 와도 꼭 지킨다는 말씀입니다. 성실하고 진실한 성도를 의미합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하는 신앙과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하는 욥의 신앙과 통하는 “해로울지라도”는 하나님께 서원한 것은 지키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한나 입니다. 그가 자식을 낳지 못하여 남편의 사랑을 빼앗기고 첩 브닌나에게 멸시를 받을 때에 남편을 원망하거나 브닌나를 미워하지 않고 하나님께 간절히 서원기도를 드리면서 “아들 하나만 주시면 삭도를 머리에 대지 않고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하고 기도 드렸더니 하나님이 아들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생전 처음 안아 보는 아들이지만 지연시키거나 마음이 변하지 않고 서원한 대로 젖 떨어지자마자 성전에 갖다 바쳤습니다. 얼마나 애간장이 녹아내리는 것같이 쓰리고 아팠겠습니까마는 한나는 하나님께 그 약속을 이행했습니다. 사무엘상 1장 27-28절에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나의 구하여 기도한 바를 허락하신지라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하고 제사장 엘리에게 맡기고 돌아섰습니다. 얼마나 진실한 신앙입니까? 이런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기도 응답을 받을 수 있었고 그런 어머니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사무엘이 이스라엘을 멸망의 위기에서 구원할 수가 있었습니다.
  “해로울지라도” 하나님 앞에 결심한 바를 지키는 것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축복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길입니다. 거짓말을 떡 먹듯 하고,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제멋대로 변경하고 안 지키는 사람은 하나님의 신뢰를 받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민수기 30장 2절에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마음을 제어하기로 서약하였거든 파약하지 말고 그 입에서 나온 대로 다 행할 것이나라”고 했고 신명기 23장 21-23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 네가 서원치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니라마는 네 입에서 낸 것은 그대로 실행하기를 주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 대로 행할지니라”했고 시편 66편 13-14절에 “내가 번제를 가지고 주의 집에 들어가서 나의 서원을 갚으리니 이는 내 입술이 발한 것이요 내 환난 때에 내 입이 말한 것이니이다”고 말씀했습니다.
  다급할 때 “살려만 주시면…하겠습니다”, “아들을 주시면 주의 종으로 바치겠습니다”, “건축헌금 얼마를 드리겠습니다” 그 외에 십일조를 드리기로 했으면 온전하게 드려야 하나님이 신뢰하고 복을 주십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와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와 “내게 해로울지라도”하는 백절불굴의 신앙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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