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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중심이 아름다운 성도 (삼상 16: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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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이 아름다운 성도

사무엘상 16장 6-7절

며칠 전 아침 신문을 보다가 “얼굴만 화장하지 말고 가슴을 화장하라”하는 전면 광고를 보고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를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베드로전서 3장 3-4절)는 말씀이 생각나서 누군지 값진 말을 했구나 하고 자세히 읽어봤더니 여자들의 유방을 성형수술 하라는 말이었습니다. 실망하고 신문을 집어 던졌습니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겉사람은 뜯어 고치고 단장하느라고 별별 짓을 다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겉사람을 보시지 않고 속 중심을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키가 크고 잘 생긴 사울왕을 세우셨다가 교만하고 고집 세고 불순종하면서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보시고 사울왕을 버리기로 결심하시고 다른 사람을 왕으로 기름 부으라고 사무엘 선지자에게 말씀하시고 그 사람은 이새의 집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새의 집에 당도해서 아들들을 데려오라고 하니까 이새는 여덟 아들 중에 맏아들 엘리압을 데려왔는데 기골이 장대하고 인물이 잘생겨서 사무엘은 “바로 이 사람이구나”하고 머리에 기름을 부으려고 했더니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모든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appearance)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heart)을 보느니라” 그래서 둘째로부터 일곱째까지 다 지나가게 하는데도 하나님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아들이 더 없느냐”고 하니까, 신통치 않게 생각하는 막내아들이 들에서 양을 치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무엘은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다윗을 데려왔는데 온몸에 먼지와 양털이 묻고 양의 노린내가 나는 몸으로 들어왔는데 그제서야 하나님께서 “이 사람이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시면서 기름을 부으라고 했습니다. 부모도 신통치 않게 여기던 목동 다윗인데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서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살펴보시는 분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중심이 아름다우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중심이 아름다우면 겉사람은 좀 변변치 못하고 똑똑치 못해 보여도 하나님의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고 엄청난 축복도 받을 수가 있습니다.

  1. 중심이 아름다우려면 진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진실성이 없고 거짓된 사람은 아무리 재능이 많고 지식이 많아도 귀하게 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진실 무망하신 분이며 사탄 마귀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무엇보다도 그 마음이 진실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강도나 창녀도 받아 주시고 구원해 주셨지만 바리세인들은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들이었기 때문에 일곱 번씩이나 “화 있을찐저 외식(위선)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아”하고 저주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제일 가증한 것이 거짓된 자요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 입니다.
  사무엘상 12장 24절에 “…오직 그를 경회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9장 11절에 보면 예수님이 백마 탄자로 나오는데 그 이름이 충신과 진실이라고 했습니다.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Faithful)과 진실(True)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성령 하나님도 “진리의 영”이라고 했고 악령은 “거짓의 영”이라고 합니다. 진실한 사람은 겉보다 속이 더 아름답고 첫인상보다 훗인상이 더 좋고 시작보다 끝이 더 좋은 법입니다.
  진실한 사람은 양심이 맑고 깨끗한 사람입니다. 영혼과 양심은 직결되어 있고 함께 역사합니다. 하나님은 양심을 통해서 제일 많이 말씀하십니다. 디모데전서 1장 19절에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했고, 로마서 9장 1절에 “내가 그리스도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라고 했습니다. 요한일서 3장 20절에 “우리 믿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 보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4장 16절“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고 했습니다.
  중심이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려면 무엇보다 진실해야 합니다. 맑은 양심을 유지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2. 중심이 아름다우려면 정직해야 합니다.

  진실과 정직은 늘 같이 따라 다닙니다. 다윗은 늘 진실하고 정직했습니다. 열왕기상 14장 8절에 “…너는 내 종 다윗이 전심으로 나를 좇으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만 행하였음과 같지 아니하다”고 여러보암을 책망했습니다. 역대상 29장 17절에서 다윗이 기도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즐거이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하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하나님께 정직한 마음으로 즐거이 드렸다고 한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는 데에도 정직함이 필요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정직함을 보십니다. 예레미아 5장에 보면 예루살렘 거리에 그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지만 공의로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서 그 성을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아 9장 24절에 보면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잠언 10장 29절에 “여호와의 도가 정직한 자에게는 산성이요 행악하는 자에게는 멸망이니라”하셨고 잠언 13장 6절에는 “의는 행실이 정직한자를 보호하고 악은 죄인을 패망케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시편 97장 2절에 “의와 공평이 그 보좌의 기초로다”라고 했습니다.
  지난번 미국에서 아르헨티나에 살다가 온 한인 교포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아르헨티나는 비옥한 땅도 많고 석유도 나오고 지하자원이 많은데 저렇게 못사는 이유는 진실성과 정직함이 없고 부정과 부패가 심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나라는 천주교 때문에 망한다는 것입니다. 사기횡령, 별짓을 다하고도 와서 신부 앞에 고해성사만 하면 된다고 믿기 때문에 서슴없이 온갖 죄를 다 짓는다는 것입니다.
  가령 국회의원이 50명이라 한다면 봉급 받는 운전사가 200명이나 되고, 석유 회사가 고용인이 150명인데 이름 걸고 봉급 타먹는 사람은 500여명이나 되기 때문에 언제나 적자라고 합니다. 미국이 300억불을 빌려 주면 밑에까지 한 푼도 가지 않고 중간에서 다 해먹는다는 것입니다. 포클랜드 전쟁 때에도 결코 영국한테 질 수가 없는 전쟁인데 졌다는 것입니다. 영국에서 그 섬까지는 15,000km인데 아르헨티나에서는 500km밖에 안되는 거리라고 합니다. 패배한 이유는 무기나 군수품도 중간에서 다 떼먹고 제대로 보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병사는 총 쏠 줄도 모르고 총을 잡아 보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부정부패가 그 나라를 망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부정과 부패는 나라를 패망케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위정자들로부터 온 백성이 정직한 마음을 가져야 하나님께 복을 받는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다윗은 밧세바와 동침한 후 회개하기를 시편 51편 10절에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식 내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다윗은 정직했기 때문에 회개도 할 수 있었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 아름답게 보셨던 것입니다. 시편 15장 2절에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은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중심이 아름다워서 하나님께 인정받고 특별한 사랑을 받으려면 진실하고 또 정직해야 합니다.

  3. 중심이 아름다우려면 충성되어야 합니다.

  충성된 사람은 하나님을 배신하거나 변질되지 않습니다. 중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골리앗이 나타나 하나님을 모욕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능멸할 때에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워낙 무적의 장수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명장들이 감히 싸울 엄두를 못 내고 무서워 벌벌 떨고 있을 때 소년 다윗은 격분해서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더라도 나가서 싸울 결심을 했습니다. 자기 얼굴에 먹칠을  하고 죽임을 당한다 해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싸우러 나갔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그 중심이 얼마나 아름다웠겠습니까? 다윗은 목동 노릇 할 때에도 사자나 곰이 나타날 때에 도망가지 않고 좇아가 때려잡고 양을 구해내곤 했습니다. 골리앗 앞에 서서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사무엘상 17장 45절)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사무엘상 17장 47절)하고 물맷돌을 넣어 던질 때, 골리앗의 이마에 들여 박혔고 “쾅”하고 땅에 쓰러져 죽었습니다. 다윗은 달려가 골리앗의 칼로 그의 목을 쳐왔습니다.
  다윗의 이런 충성된 행동이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들었던 것입니다. 그 풍전등화 같은 위기에 목숨을 내걸고 나가 싸웠으니 얼마나 하나님이 기뻐하겠습니까? 이런 사람을 왕으로 삼지 않고 누구를 세우겠습니까? 대개 열심이 있는 것 같고 잘 믿는 것 같다가도 주님의 교회에 환난의 바람이 몰아 닥칠 때, 싸악 뒷걸음 쳐 물러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니면 자기의 명예나 이익의 목적을 위해 일하다가도 이익의 소망이 끊어지고 어떤 손해가 올 것 같으면 등을 돌리고 맙니다. 충성된 사람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등 돌리지 않습니다. 위험을 무릎 쓰고 덤벼듭니다. 위험이 오고 손해가 나도 우직하게 나가 싸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웠던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손해가 오고 핍박을 받고 죽음이 닥쳐와도 변절치 않고 뒤돌아서지 않고 주님만 바라보고 전진, 전진 또 전진해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온갖 욕을 먹고, 핍박을 받고, 신변의 위협을 무릎 쓰면서도 이단 신학과 싸우고 사탄의 사상인 공산주의 사상과 싸우는 것은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인정받고 칭찬 받는 것은 영원한 것이요, 사람에게 인정받고 칭찬 듣는 것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기 영광을 앞세우는 사람, 하나님께 인정받고 칭찬 듣는 것보다 사람의 칭찬과 영광을 앞세우는 사람은 조금 불리하다 싶으면 배신하고 변절하고 맙니다. 요한복음 5장 44절에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하나님보다 자기의 영광과 칭찬을 더 추구하는 사람은 결국 예수님을 배신하고 끝까지 믿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충성심을 보십니다.

  4. 중심이 아름다우려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신앙생활을 할 때 최선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야 하나님께서 인정하십니다. 정성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하나님께 상달되고 하나님께 인정을 받습니다. 다윗은 전쟁에서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에 성전 건축을 허락지 않으셨지만 정성을 다하여 건축자재와 은금을 준비했습니다. 이 모든 일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마음에 들었던 것입니다. 한번은 아들 압살롬에게 반역을 당해서 쫓겨났을 때 부하들에게 예루살렘에 있는 우물물을 마시고 싶다고 하니까, 부하 장수들이 목숨을 걸고 적군을 돌파하여 물을 떠 왔을 때, 다윗은 그 물을 마시지 못하고 부하들의 피와 같은 것을 내가 마실 수 없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제단에 부어 드렸습니다. 다윗은 매사에 하나님께 정성을 다하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중심을 아시고 높여 주시고 축복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100이라는 힘을 가졌을 때 50만 쓰는 것보다 50의 힘을 가졌을 때 50을 다 쏟아 붓는 것을 더 귀히 보시는 것입니다. 신명기 6장 5절에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말씀입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 인정받고 칭찬 들으면 무엇이 부럽겠습니까? 몇 주 전에 헌금과 축복과의 관계를 말씀드리면서 말라기 선지자 때의 상황을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선민이란 사람들이 하나님께 제사 드린다면서 깨끗하고 좋은 양은 제쳐 놓고 눈멀고 다리절고 병든 것들, 상품 가치가 없는 것들만 골라서 제사 드리러 오는 것을 보고 “제발 이런 재물을 가져오지 못하게 성전 문을 닫았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너의 총독에게 갖다 줘도 받지 않을 것을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 가져오느냐”고 책망했습니다. 하나님께는 제일 첫째 것(The First), 가장 좋은 것(The Best), 때로는 마지막 것(The Last)이라도 드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항상 보십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중심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게 보일 수 있겠습니까?  ① 진실해야 하고, ②정직해야 하고, ③충성되어야 하고, ④정성을 다하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언제나 중심 보시는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면서 사십시다. 세상 사람들이 죽일 놈, 살릴 놈, 별소리를 다해도 중심 보시는 하나님 앞에 사는 사람은 그런 것 때문에 두려워하거나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중심 보시는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세상 사람의 칭찬을 받고 영광을 받아도 하나님 앞에 책망들을 일을 했으면 애통해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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