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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 대~한민국 (롬 14: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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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롬14:17 성경본문보기   
제목  오!대~한민국 

지난 6월 월드컵의 국가적 열기가 이땅의 백성들에게 가져다준 선물의 하나는 민족적 정체성의 회복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지난 6월 이전만 해도 이땅에 태어난것을 자랑스럽다고 대답하는 국민들이 불과 30%미만 이었지만 월드컵 이벤트 이후, 한 리서치 통계에 의하면 대한민국 국민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가 70%이상으로 뛰어올랐습니다. 그러나 이런 열기가 한때의 감정적인 냄비현상이 아닌 국가 발전의 진정한 원동력으로 승화 되기 위해서 이제 우리는 우리가 소망하고 추구해야 할 나라의 모습을 진지하게 모색하고 공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자 플라톤의 공화국이후 인류는 끊임없이 국가의 이상을 찾아 실험해 왔지만 그 여행은 아직도 끊나지 않았습니다. 민주주의는 근대 국가들이 찾고 실험한 국가의 가장 건강한 모델이었다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와 밀착된 근대 민주주의가 반드시 이상적 국가의 완벽한 모델은 아닙니다. 우리가 소망하는 미래의 대한민국-어떤 나라이어야 할까요? 저는 광복 57주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이 질문에 대한 성경적 대답을 함께 찾고 그런 미래의 조국을 향한 비전의 그림을 위해 함께 기도의 제목을 나누고 싶은 것입니다.

바울이 주후 57년경 고린도에서 세계의 수도인 로마를 바라보며 로마서를 기록하고 있을때 그의 조국인 이스라엘은 아직도 로마의 통치아래 있었습니다. 바울사도는 세계를 가슴에 품고 살아간 전도자이었지만 그러나 조국의 장래를 한시도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9:1이하에서 조국의 미래를 그가 근심하고 있다고, 그치지 않는 고통으로 민족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로마서 9-11장에 이르는 부분은 그가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기도하다가 얻은 이스라엘의 역사적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의 비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좁은 의미의 국수주의적 애국자는 아니었습니다. 민족을 잊어버리고 사는 뜬구름 인생 못지않게 민족 지상주의적 애국주의자들은 인류의 역사에 적지않은 피해와 상처를 남겼습니다. 가까운 실례로 히틀러의 게르만 민족 우월주의는 600만의 유대인 학살을 포함한 2차대전의 참극을 남겼습니다. 선교학자들은 오늘날도 세계선교의 가장 큰 장애물의 하나가 '자민족 중심주의'라고 지적합니다. 자기민족 중요한것은 알고 다른 민족을 쉽게 무시하고 편견으로 대하는 사람은 세계시민 혹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자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이 소망한 나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소망해야 할 나라의 이상은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도 우리에게 기도할때 마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기도하라고 가르치시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소망해야 할 하나님의 나라 닮은 미래의 대한민국-어떤 나라이어야 할까요? 그리고 이런 나라가 이땅에 오게 하기 위한 우리의 책임은 무엇일까요?

1.우리가 소망하는 나라는 의의 나라입니다.

바울의 로마서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가 있었다면 의의 문제였습니다. 로마서에서 의란 단순한 사회정의의 개념이 아닙니다. 로마서에서 정의되는 의는 본질적으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완성된 나라입니다. 그리고 로마서가 특히 로마서1장에서 8장까지 다룬 가장 중요한 메세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들어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교리적인 표현으로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칭의)고 말합니다. 우리의 어떤 도덕적인 행위나 노력으로도 하나님앞에 설수 없었던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 그 공로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좀더 쉽게 말하면 우리들이 하나님과의 바른관계에서 살아가도록 예수께서 희생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의 문제에 대해서 벌리는 대부분의 논쟁은 "무엇이 정의인가?"라는 질문입니다. 그러나 이 논쟁이 하나님을 떠나면 무의미해 집니다. 왜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없으면 의도 없습니다. 인간이 주장하는 정의는 지극히 상대적인 것입니다. 일찌기 파스칼이 팡세에서 말한 것 처럼 "피레네 산맥의 이쪽에서 정의가 저쪽에서는 불의가 되는것"이 인간적 정의의 실상입니다. 절대적인 정의의 표준은 하나님 한분이시요, 그분이 바로 정의의 원천인 것입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때로 우리의 시각으로 이해될 수 없는 일을 하라고 명하시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 때에 정의는 하나님 명하시는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무슨 문제를 결정할때 "어떻게 하는 것이 정의로운 일인가?"에서 시작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가? 하나님이 어떻게 하는것을 기뻐하실까?"로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안에서 사는것--그것이 바로 정의롭게 사는 성경적 처방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들어가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가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말 하나님과의 바른관계에서 살아가려면 진부한 대답처럼 들리지만 우리민족이 예수님을 믿도록 해야 합니다. 여기에 포기할 수 없는 민족 복음화의 사명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우리 민족이 예수님앞에 나아와 믿음을 고백할때 그만큼 우리나라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의로운 나라가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이 땅안에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안에서 그분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져 갈때 그만큼 하나님이 이 민족을 기뻐하시고 이 민족을 축복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 나라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의 나라가 되는것--그것이 우리가 소망하는 미래의 대한민국입니다.

2.우리가 소망하는 나라는 평화의 나라입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사도는 평화의 주제를 다룰때 하나님과의 평화로 시작합니다. 죄인된 인간은 본성적으로 하나님과 화평한 관계속에 있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과 원수된 자리에 있었습니다.(롬5장)그러했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서 화목제물로 드리심으로 하나님과 화목(화평)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과 화평을 이룬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숙제는 사람들과의 화평입니다. 로마서12장에서 마지막장까지 바울사도는 이 주제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로마서12:18에서는 "할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고 말합니다. 이어서 오늘의 본문이 들어있는 로마서14장에서는 특히 그리스도인의 평화를 깰 수 있는 문제들을 다룹니다. 어떤 음식을 먹을 것인가, 말것인가 혹은 어떤 날을 꼭 지켜야 하나, 안지켜도 무방한가 등의 문제 들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바울의 대답은 이런 비본질적인 문제로 형제를 실족하게 하거나 평화를 깨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이 대답을 하다가 주신 말씀이 본문입니다.--"하나님의 나라는 먹는것과 마시는것이 아니요,오직 성령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형제들과 평화를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속한 하나님의 나라가 평화의 나라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평화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아들 예수님은 평화의 왕자이십니다. 그는 평화를 주시기 위해 이땅에 오셨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라이프 스타일은 평화의 스타일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 전쟁을 치를 때에라도 평화의 방법으로 해야합니다.그런데 최근의 우리 한국인들은 전쟁을 치른후 민주화 투쟁에 이어 치열한 생존경쟁 시대를 통과해서 그런지 몰라도 너무 투쟁에만 익숙하고 평화에 낯선 민족으로 변질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오죽하면 최근 한국인의 인상을 그린 유머에 폭탄시리즈가 등장했다고 합니다.--공포탄/보기만해도 공포에 질리게 만드는 얼굴, 시한폭탄/언제, 어느 순간 터질지 모르는 인상을 하고 앉아있는 사람, 오발탄/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상한 말로 깨는 사람, 유도탄/자기만 화를 내는것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유도하여 미치게 만드는 사람, 야광탄/밤만되면 발작하고 터지는 사람, 조명탄/무대위에 올려 세우면 그때부터 다른 사람 헐뜯고 파괴하는 사람, 최루탄/발냄새, 땀냄새, 입냄새로 이웃을 공격하는 사람)

문제는 어떻게 다시 한번 평화를 살아가는 민족이 될수 있을까요? 의를 가져오는 방편은 믿음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평화를 가져오는 방편은 사랑입니다. 형제를 정말 사랑한다면 형제와 화평할 수 있습니다. 형제에게 양보할 수 있습니다. 기득권도 포기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민족의 문제도 다시 이런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민족은 아직도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 싸움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현 정부의 해빛정책에 대해 사람마다 견해를 달리할 자유가 있지만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포기하지 말아야 할 민족에 대한 기도제목이 있는데 그것은 하루속히 남북이 대결의 구도를 청산하고 민족화해와 평화통일을 이루어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남북은 형제의식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한번 형제사랑의 큰 가슴으로 돌아가서 서로를 포용할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전쟁의 상흔으로 얼룩진 이땅을 평화의 동산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제가 DMZ나 전선 부대를 방문하게 될 때마다 가슴에 타오르는 기도제목이 있는데 "하나님, 어서 속히 이 땅에 평화통일의 은혜를 주시고 이 DMZ가 세계인들에게 평화를 학습시키는 인류 최대의 평화공원이 되게 하소서"라는 것입니다.우리가 소망하는 미래의 대한민국-평화의 나라입니다.

3.우리가 소망하는 나라는 기쁨의 나라입니다.

로마서에서 의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덕목이라면, 평화는 이웃과의 관계에 강조적 초점이 있는 덕목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하나님나라 특성의 세번째 요소는 기쁨인데 이 기쁨은 자신과의 관계에서 특히 하나님 나라 백성의 내면에서 갖추어져야 할 덕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5장 첫 부분에 보면 이 세가지 덕목이 단계적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즉, 우리가 먼저 예수를 구주와 주님으로 믿게되면 의롭다함을 얻습니다. 그 다음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롬5:2에 보면 이렇게 하나님과의 화평을 이룬 사람들의 삶을 가르쳐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 하는(기뻐하는) 삶"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참 백성이 된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선물은 기쁨의 삶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즐거움의 나라 혹은 기쁨의 나라입니다. 저는 이땅에 소개된 율법주의적 기독교가 가장 잘못 가르친 신앙생활의 모습이 "인생을 즐거워 할줄 모르는 삶"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을 롬5:3에서 "환난중에도 즐거워 하는 삶"이라고 가르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환난중에도 즐거워하고 기뻐합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의의 삶의 열쇠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를 얻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들어갑니다. 평화의 삶의 열쇠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형제와 평화의 관계에 들어갑니다. 그러면 기쁨의 삶의 열쇠는 무엇입니까? 로마서5장에는 그것이 소망이라고 대답합니다. 환난중에도 기뻐할 수 있는 이유-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구주로 믿는 순간 세상이 빼앗지 못할 하늘의 소망을 가진자가 되었습니다. 어떤 역경, 어떤 환난 중에도 우리의 소망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기뻐할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 한국민족은 유달리 역사적으로 많은 환난을 겪어온 민족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저는 우리민족이 복음화되어 정말 복음안에서 기뻐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복음안에서 기뻐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우리의 삶의 난제들이 한순간에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신앙의 성숙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관점으로 고난을 바라보게 합니다. 이런 사람은 고난속에서도 기뻐할 수가 있습니다.

제가 미국 지구촌교회 교차사역을 위해 미국교회 갈 때마다 방문하는 가정이 하나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 가정을 방문하는 것이 마음의 부담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습니다. 이번에 그 집을 방문하고 나오면서 저는 천국에 갔다온 심정이었습니다. 김태화 집사님이란 분의 가정인데 이분은 오랜 세월 병을 앓고 있는 환자인데 전신에 근육이 마비되어 계속 몸이 말라가는 그런 난치병과 투병중 이십니다. 벌써 여러해를 꼼짝 못하고 집에 누어 계시고 그의 부인과 세 딸이 지성으로 간호를 하고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얼마나 힘드세요?"하고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뜻밖에 그 부인되는 분의 대답이 "천국생활 연습하지요"였습니다. "천국생활이라니요?"--제가 반문했더니 "천국이 섬기는 곳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이번에 방문해보니까 환자의 모습이 환해요. 가족들의 모습도 기쁨으로 충만한 모습이었습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위로차 갔던 우리는 오히려 위로받고 부흥회를 하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집에서 천국 가기전에 천국을 경험하는 가정의 살아있는 기쁨의 모습을 볼수 있었습니다. 천국의 소망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직면한 여러 위기에도 불구하고 만일 우리 민족이 주께로 돌아올 수만 있고 주님의 통치를 경험할 수만 있다면 오늘의 정치상황, 경제상황을 떠나서 우리민족은 다시 한번 행복한 기쁨의 민족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소망하는 미래의 대한민국, 기쁨의 나라입니다. 진실로,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하나님나라 가치관모델에 근거한 의의 나라, 평화의 나라, 기쁨의 나라가 되도록 기도하십시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의 대한민국이 기도로 시작된 나라라는 것을 혹시 아시는지요? 1948년 5월31일 제헌국회 제1차 회의는 당시 임시회장이었던 이승만 박사의 다음과 같은 개회사로 시작되었습니다."대한민국 독립민주국 제1차 회의를 여기서 열게 된것을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종교, 사상 무엇을 가지고 있던지 누구나 오늘을 당해 가지고 사람의 힘으로만 된 것이라고 우리가 자랑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리지 않을수 없습니다. 나는 먼저 우리가 다 성심으로 일어서서 하나님에게 우리가 감사를 드릴 터인데 이윤영의원 나오셔서 간단한 말씀으로 기도를 올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오늘의 광복 기념주일 설교 마무리를 당시 이윤영 의원의 기도문으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이윤영 의원 기도문(일동기립/제헌국회 속기록)

"이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시여/이 민족을 돌아보시고 이땅에 축복하셔서 감사에 넘치는 오늘이 있게하심을 주님께 저희들은 성심으로 감사하나이다/오랜 시일동안 이 민족의 고통과 호소를 들으시사 정의의 칼을 빼서 일제의 폭력을 굽히시사 하나님은 이제 세계만방의 양심을 움직이시고/ 또한 우리민족의 염원을 들으심으로 이 기쁜 역사적 환희의 날을 이 시간에 우리에게 오게 하심은 하나님의 섭리가 세계만방에 현시하신것으로 믿나이다./하나님이시여,이로부터 남북이 둘로 갈리어진 이 민족의 어려운 고통과 수치를 신원하여 주시고 우리민족 우리동포가 손을 같이 잡고 웃으며 노래 부르는날이 우리앞에 속히 오기를 기도하나이다./하나님이시여,원치아니한 민생의 도탄은 길면 길수록 이땅에 악마의 권세가 확대되나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광은 이땅에 오지 않을 수 없을 줄 저희들은 생각 하나이다./원컨대,우리 조선독립과함께 남북통일을 주시옵고 또한 민생의 복락과 아울러 세계평화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에 의지하여 저희들은 성스럽게 택함을 입어 가지고 글자 그대로 민족의 대표가 되었습니다./그러하오나 우리들의 책임이 중차대한 것을 저희들은 느끼고 우리자신이 진실로 무력한 것을 생각할때 지와 인과 용과 모든 덕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께 이러한 요소를 저희들이 간구하나이다./이제 이로부터 국회가 성립되어서 우리민족의 염원이되는 모든 세계만방이 주시하고 기다리는 우리의 모든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며 또한 이로부터서 우리의 완전 자주독립이 이땅에 오며 자손만대에 빛나고 푸르른 역사를 저희들이 정하는 이사업을 완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하나님이 이 회의를 사회하시는 의장으로부터 모든 우리 의원 일동에게 건강을 주시옵고,또한 여기서 양심의 정의와 위신을 가지고 이 업무를 완수하게 도와주시옵기를 기도하나이다./역사의 첫걸음을 걷는 오늘의 우리의 환희와 우리의 감격에 넘치는 이 민족적 기쁨을 다 하나님에게 영광과 감사를 올리나이다./이 모든 말씀을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받들어 기도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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