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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비전의 땅을 찾아가는 여로 (창 12: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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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창12:1-9 성경본문보기   
제목  비전의 땅을 찾아가는 여로 

만일 누가 저에게 인생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서슴치 않고 "비전을 찾아가는 여로"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부모나 주변 어르신네들에게 가장 흔히 받았던 질문가운데 하나는 "너 커서 이담에 뭐가 될래?"였을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선생님, 의사, 간호사가, 과학자, 사업가 또는 훌륭한 과학자가 되겠다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이런 대답은 마치 작은 불꽃처럼 우리 의식의 깊은 곳에서 처음으로 내 인생의 미래에 대한 어떤 그림을 갖게 되는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그림들을 어렸을 때 그대로 실현하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들 대부분은 여러차례 우리의 성장 과정에서 이 그림을 조금씩 조금씩 수정해 가면서 우리의 인생의 궁극적인 소명의 자리 혹은 비전의 땅을 찾아갑니다. 저는 초등학교 시절에서 중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는 법을 공부해서 어려운 사람들을 변호해주는 변호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우리집안이 가난해서 억울한 일을 당한다고 생각했기에) 변호사는 저의 인생의 첫 번째 꿈이었던 셈입니다. 그러다가 20대초에 예수님을 만나면서 나와 같은 젊은이들에게 이 소중한 복음을 전도하고 복음을 변호하는 학생운동의 간사로 평생을 헌신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20대후반 미국에서 신학을 하면서 신학교 졸업반때 바울의 옥중서신을 공부하며 '교회의 영광'을 깨닫게 되었습니다.(처음 미국유학을 떠날때는 목사된다는 생각은 안하고--) 그러면서 저의 꿈은 젊은이를 소중히 여기고 키우는 교회의 목사가 되겠다는 쪽으로 마지막으로 수정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목사안수도 받고 귀국해서 교회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35살쯤 되었을 때 내인생의 궁극적인 비전은 한 지역교회의 좋은 목사가 되어 좋은 교회를 만드는 것이다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줄곧 한길을 별로 후회 없이 걸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인생을 비전을 찾아가는 여로라고 정의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의 믿음의 조상이라고 일컬어지는 아브람이 비전의 땅을 찾아가는 여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브람 사건을 생각할때에 하나님이 그를 부르셔서 곧장 가나안땅에 오게 하시고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셨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몇단계로 거쳐가야 할 과정이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처음엔 아브람도 갈바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께 이끌려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갔다고 증언합니다. 우리는 아브람의 인생을 크게 네단계로 나누어 생각할수 있습니다.

1단계-갈대아 우르의 삶과 소명
2단계-갈대아 우르에서 하란까지
3단계-하란에서 가나안까지
4단계-가나안에서의 정착과 성장

간단히 각 단계의 과정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단계는 갈대아 우르에서의 시절입니다.
창11:31을 보면 본래 아브람은 그 아버지 데라와 함께 갈대아 우르라는 곳에서 살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가나안으로 떠나게 된 것을 알수 있습니다. 여호수아 24:2에 보면 그때에 아브람은 아버지 데라, 형제 나홀과 함께 우상 신을 섬기고 있었다고 기록합니다.(또 한 형님 일찍 죽은 것으로 보이는 하란-11:31/하란의 아들이 조카 롯이었습니다.) 그에게도 불신의 시절, 미신의 시절이 있었던 것입니다. 갈대아 우르는 아브람에게 있어서 불신앙의 땅이요, 이 시기는 불신앙의 계절을 대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그에게 하나님의 소명이 임했습니다.

2단계는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으로 가는 단계입니다.
아브람이 갈대아 우르를 떠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이었다고 할수 있습니다. 행전7:2-3에 보면 우리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약속의 땅으로 가라고 지시하셨다고 증언합니다.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그에게 나타나 그의 인생의 새 계획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이때 처음으로 아브람은 약속의 땅에 대한 비전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본문 12:1은 이때에 주신 명령의 확인인 것입니다. 그리고 비로소 아브람은 비전의 땅을 찾아가는 떠남을 시작합니다. 이 시기는 아브람에게 있어서 첫 비전을 잉태한 계절이었습니다.

3단계는 하란에서 가나안까지 가는 단계입니다.
하란은 갈대아 우르에서 서북쪽으로 600마일/960km 약2,400리길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 하란까지 와서 상당히 오래 그곳에 지체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다가 아버지 데라가 죽은후 다시 가나안으로 떠나게 됩니다. 이 기간이 아브람에게는 제일 어려운 기간이었을 것입니다. 아브람의 비전이 흔들리고 주저하는 기간이었다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학자들은 일반적으로 가족문제(행전7:2에 보면 고향과 친척을 떠나라고 했는데--아버지, 조카 다 데리고 떠나다 보니까--불완전한 순종이 원인)가 그 원인이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자유를 얻고 떠나갑니다. 이때 아브람의 나이가 75세라고 기록합니다.(4절) 하란은 아브람에게 있어서 비전이 지체되는 계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떠나 마침내 가나안에 도달합니다.(5절)하란에서 가나안까지는 약400마일(처음 우르에서 하란까지는 600마일), 그러니까 도합 고향에서 1,000마일(4,000리) 떨어진 가나안 세겜땅에 도달한 것입니다.

마지막 4단계는 가나안에서의 정착과 성장의 계절입니다.
가나안땅이 절로 행복을 약속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기서도 시련을 경험합니다.(10절의 기근의 예) 이 시련속에 한동안 다시 애급으로 내려가 방황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시련의 과정을 통해 아브람이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한후 창15장에 보면 "네 자손이 이땅에서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알처럼 되리라"는 약속의 확인을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됩니다. 성경은 아브람이 이 말씀을 믿었다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를 의롭다고 여겨 주십니다.(창15:6) 아브람의 비전이 확고해진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람(높으신 아버지)은 아브라함(민족들, 열방들의 아버지)으로 불리워지게 되는 새 이름을 받고(창17:5) 그 땅에 비로소 온전히 정착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아브람이 비전의 땅을 찾아가는 여로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비전을 찾아가는 여로는 아브람 개인만이 아닌 그의 발자취를 좇아가는 믿음의 공동체도 동일하게 혹은 유사하게 경험해 가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앞으로 한달간 우리교회는 제2예배처소를 준비하기 위한 일련의 재정 캠페인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그에 앞서서 우리는 주께서 우리교회에 허락하신 비전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잠시 지나간 짧은 8년반의 역사의 세월이었지만 그동안 우리교회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저는 지나간 우리교회의 역사도 한 네가지의 단계 혹은 시대로 요약해 볼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개척의 시대(1993년11월.-1995년7월)
2.부흥의 시대(1995년8월-1998년4월)
3.성장의 시대(1998년5월-2002년9월)
4.성숙의 시대(2002년10월-)

첫단계는 개척의 시대입니다.(1993년 11월-1995년 7월)
65명의 건강한 교회, 행복한 교회를 꿈꾸는 성도들이 당시에는 허허 벌판에 유일하게 문명스러운 건물이었던 수지 선경스매트 5층강당을 빌려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이때에 막연하나마 우리에게는 민족복음화의 주역이 되고 세계복음화에도 능동적으로 기여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다는 큰 그림의 비전이 있었고 이런 비전의 실현을 위해선 무엇보다도 성경공부에 힘쓰는 훈련공동체가 되어야 하겠다는 의식으로 새생명반과 새가족반 공부에 열을 올리면서 우리는 개척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에어컨도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에 5층 강당까지 비지땀을 흘리며 오르내리면서도 비전이 있기에 행복했던 시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1년9개월만에 수지를 떠날 때 당시 우리교회 장년교우출석은 1,000여명, 어린이, 청소년을 합쳐 1,400명에 달하게 되었습니다.

둘째단계는 부흥의 시대입니다.(1995년 8월-1998년 4월)
이 시기는 문자그대로 폭발적 부흥을 경험하던 시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양적 성장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교회사에 흔치않은 폭발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기에 우리는 분당을 떠날 때까지 장년출석성도 1000명에서 4,000여명으로/어린이까지 합하여 1,400여명에서 5,500여명으로 성장한 기간이었습니다. 이때 우리는 분당 성심빌딩과 그 주변에 2개 건물을 더 빌려 사용해야 했고, 강남에는 정신여고에서 모이다가 YMCA강당을 임대하여 회집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좀더 우리는 교회가 무엇인가를 고민하면서 교회교육의 기틀을 준비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시기에 현재 우리교회가 진행하는 교회교육의 전체적 그림이 그려질수 있었습니다.

셋째단계는, 성장의 시대입니다.(1998년5월-2002년 현재까지)
우리교회가 가장 안정적인 성장을 한 시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우리교회는 임대가 아닌 자체건물을 갖게 되었고 우리 자신의 의도대로 교육공간을 구상하고 시설하게 된 것입니다. 이 시기에 다시 우리교회는 장년 출석성도들만 7,000명으로, 교육부서의 청소년을 합하여 매주 10.000명 이상의 교인이 출석하는 교회로 자라가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가장 의미있는 일은 교회창립5주년을 기념하며 비전과 감사의 축제를 기획하면서 교회비전을 다시 정리해본 것이었습니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교회에 특별히 젊은 전문 직업인들을 그렇게도 많이 보내 주시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묻게 되었고, 그래서 우리교회의 21세기의 중요한 사명은 이같은 직업인들과 가정주부들을 평신도 선교사로 훈련시켜야 한다는 것이었고, 이일을 통해 민족을 치유하고 세상을 변화시키자는 21세기 교회비전을 새롭게 창출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교회 역사에서 그 넷째단계인 성숙의 시대를 열고자 합니다. 여기서 제가 성숙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사람만 많이 모이는 교회가 아닌 성숙한 교회가 되어 우리가 마땅히 할 일을 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는 영혼구원을 중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영혼들을 구원하는 사명을 주님의 지상명령으로 알고 복음전도에 힘쓰는 교회존재의 이유, 그 우선순위를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장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성장이상으로 성숙에 우리의 에너지를 집중하고자 합니다. 다행히 작년부터 주께서는 우리교회가 셀교회, 목장교회로 가야 한다는 강력한 부담을 주셨고 지금 우리는 이 인도하심에 따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주일의 축제예배와 주간의 목장모임이 두날개가 되어 초대교회의 교제를 회복하기 위해 우리는 힘쓰고 있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는 수지성전과 분당성전도 새로운 두 날개가 되어 두 지역의 영혼들을 구원하며 민족치유와 세계선교의 비전을 실현해 가고자 합니다. 이 두날개를 활짝 펴고 21세기의 세상을 복음으로 책임지는 그 소명을 다하고자 합니다.

특별히 수지성전과 함께 분당성전을 열면서 우리는 넓혀지는 시설이 효율적으로 주간중에도 사용되도록 이제 민족을 섬기기 위한 세 개의 프로젝트를 조만간에 함께 동시적으로 추진하고자 합니다. 이땅의 청소년들에게 기독교적 가치관에 근거한 교육의 미래를 보여주기 위한 지구촌 고등학교, 그리고 수지지역과 분당지역의 장애인들과 소외된 이웃들을 섬기기 위한 사회복지관으로서의 기능, 다음으로서는 한국교회의 미래의 리더십을 육성하고 목사님들을 재훈련시키는 센타로서의 기능을 동시에 갖추도록 시설 활용계획을 추진 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제2예배처소도 단순히 예배처소로 부르기보다 지구촌교회 비전센타로 부르고자 합니다. 진실로 이 비전센타를 통해 민족을 치유하고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우리의 비전이 실현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그러면 끝으로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이 비전센타의 헌금에 참여할 것인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무엇보다 아브람에게서 그 헌신을 배우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비전을 보여 주셨을 때 아브람은 첫째 믿었고, 둘째 순종했고, 셋째 희생했습니다. 본문4절에 보면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라고 기록했습니다. 가나안 땅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순종하고 고향과 친척을 떠나 갈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히11:8에 보면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땅에 나갈쌔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라고 기록합니다. 그래서 그는 믿음으로, 순종함으로, 희생함으로 갈대우르를 떠났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또하나는 그의 인생이 이웃들에게 축복이 되는 일에 쓰임을 받기 위해서를 생각했던 때문입니다.--"내가 너를 축복한다. 너는 축복의 근원이 되리라.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12:2-3) 그렇습니다. 우리가 희생하지 않으면 다음세대가 축복을 누릴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헌금의 결과는 우리자신보다도 다음세대가 하나님을 알고, 그 은혜안에 자라, 이 민족과 한국교회의 지도자로 자라가는 일에 더 큰 유익과 영향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보람이요, 존재의 이유가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보여주신 삶의모습이 아닙니까! 십자가가 주님앞에 다가오는 것을 느끼셨을 때 그는 내게 고통이 오고 있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인자가 영광얻을 때가 왔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무엇이라고 하셨는지 기억하시나요?--"한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그는 자신의 죽음과 희생으로 열매 맺게될 수많은 구원받을 영혼의 환상을 바라보시며 기쁨으로 영광스럽게 자신을 희생의 제물로 던지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부담이 아닌 기쁨과 감사로 영광스러운 마음으로 이 역사에 동참하게 되시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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